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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현

무산 시조를 이야기하다 1 조선시대의 고승이었던 휴정이나 유정 등은 많은 선시(禪詩)를 남겼지만 시조 한 수도 짓지 않았다. 정병욱 교수가 펴낸 을 보면 조선시대 수백 명의 시조 작가 가운데 승려 시조 시인이 한 사람도 없다. 개화 이후 만해 한용운이 시조를 썼지만 그의 시집 『님의 침묵』 속에는 시조가 한 편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무산 조오현 큰스님의 시적 출발이 시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무산 스님은 운명적으로 시조를 끌어안고 선의 다양한 화두(話頭)와 대면해 왔다. 자체가 보여주는 종교적인 경지는 말할 것도 없고, 등에서 보여주는 역설의 언어는 그 자체가 곧 선의 화두이면서 그 언어적 해체에 해당한다. 무산 스님은 시조의 시적 형식을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요건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더보기
만해와 백담사 그리고 오현스님 설악의 백담 계곡은 언제나 아득하다. 여름 산사의 정취를 이곳처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은 다시없다. 골은 깊고 물이 빠르고 산은 높푸르다. 그러나 험준한 설악의 계곡임에도 골골이 사람을 품을 만큼 넉넉하다. 여름내 계곡의 물이 넘쳐흐르는 소리가 서늘한 바람을 일으킨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백담사에서 처음 만해축전을 열던 해였다. 나는 백담사를 찾았다. 만해 한용운의 문학을 새롭게 평가하는 심포지엄에서 나도 논문 하나를 발표하게 되어 있었다. 만해 한용은 1919년 3.1운동을 주도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두 해 넘게 투옥되었다. 그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출감한 후 다시 찾은 곳이 바로 이 백담사다. 그는 여기서 시집 (1926)의 시들을 썼다. 시집 은 지금까지도 그 창작 배경이 베일에 싸여 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