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조 : 낙화(오세영)
자작시조 : 몽룡이가 부르는 춘향 노래(이근배)
특별공연 : 시조창, 대금, 가야금
시조만세 특별공연
시조창(이유경), 대금(고진호), 가야금(홍세린)
고은 시인 왈 “황진이 누나 이어 이 아우도…”
“시조 하고 있네∼.”
문인들이 종종 농담 삼아 하는 말이다.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하는 ‘답답이’를 비아냥거릴 때 주로 쓴다. 요즘 시조를 ‘한물간 장르’로 보는 문단 일부의 시각을 반영한다.
문화 장르별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시단과 시조계는 함축적인 언어미를 추구한다는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물과 기름처럼 지내왔다. 문예지도 따로 내고 모임도 따로 갖는다. 서로를 ‘한 수 아래’로 보는 폄하의 시각까지 있다.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다. 만해 한용운도 시조를 많이 썼고, 주요한 김동환도 적지 않은 시조를 남겼다. 김영랑 서정주 조지훈 박재삼 같은 걸출한 현대 시인들도 시조의 리듬과 형식을 현대시에 접목해 역작들을 꽃피웠다. 문단의 홀대 속에서 시조가 일본 전통시인 ‘하이쿠’에 비해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현실도 답답했다.
권 교수는 국내를 대표하는 원로 및 중진 시인들에게 ‘시조 한 수 지어 달라’고 청했다. 문단 경력 수십 년에도 시조를 써보지 않았다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취지에 공감한 이들은 생소하다면서도 끙끙대며 시조 한 수씩을 내놨다. 총 87명에게 부탁해 50수를 모았다. 김종길 고은 이근배 허영자 신달자 오세영 천양희 유안진 조정권 문정희 나태주 이문재 이재무 이은봉 정끝별 이정록 조용미 박형준 김언 등이 참가했다. 나머지 37명은 ‘지금이 어느 때인데 시조 청탁을 하느냐’ ‘시조가 뭔지 모른다’ ‘쓸데없는 청탁은 하지 마라’라며 거절했다.
고은 시인은 시조를 갖고 한바탕 놀았다. 시조 ‘누나 진이에게’의 진이는 조선 시대 명기(名妓)이자 문필가인 황진이다. 고은 시인은 이런 시작메모를 동봉했다. “좀 안 근엄하고저 이런 염치 모르는 풍류를 빚어 보았소이다. 그동안 심심해하시던 황진이 누나 해골께서도 사뭇 반겨 마지않았소이다. 간밤 꿈에 이렇듯이 그이를 뵈었소이다.”
신달자 시인은 등단 48년 만에 첫 시조를 썼다. ‘어둠이 햇살자리 지우고/달빛자리 어둠을 지우고/여명 다시 달빛을 지우느니//그대여//너를 지워라 지워라/가는 세월을 불렀는데//너는 남아있고 내가 지워지느니’(시조 ‘공(空)’ 일부)
신 시인은 “문학을 공부하면서 그 짧은 황진이의 시조 속에 연애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의 빛과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한 편의 시조가 나는 어려웠다”며 ‘신인 시조 시인’이 된 감회를 밝혔다.
올해 86세인 김종길 원로 시인은 평생 시조 2수를 썼다고 털어놨다. 그 가운데 하나는 문우 조지훈(1920∼1968)이 먼저 세상을 떴을 때 장례행렬의 만장(輓章)으로 썼던 시조 ‘지훈(芝薰)과 영결(永訣)하며’였다.
‘일월산(日月山) 지초(芝草) 향기 맑고도 매웁더니/쉬흔을 못다 살고도 웃으며 떠나는가/술 익는 강마을에는 오늘도 타는 저녁노을’
시인 50명이 낳은 시조들은 2012 만해축전의 일환으로 12일 오후 7시 강원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리는 ‘권영민의 문학콘서트-시조만세’(경기문화재단 후원)에서 공개된다. 고은 이근배 오세영 고형렬 등 시인들, 한분순 이우걸 홍성란 권영희 등 시조시인들이 한바탕 시와 시조를 놓고 소통하는 자리도 펼쳐진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네 번째 문학 콘서트 : 사진으로 보는 문학 콘서트
네 번째 문학 콘서트 : 사진으로 보는 문학콘서트 3
네 번째 문학 콘서트 : 사진으로 보는 문학콘서트 2
네 번째 문학 콘서트 : 사진으로 보는 문학 콘서트 1
왜 시조인가?
왜 시조인가?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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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권영민의 문학콘서트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강원도 인제 백담사 만해마을에 왔습니다. 오늘 저는 아주 특별한 주제를 문학콘서트의 제목으로 내세웠습니다. ‘시조 만세’ – 문학콘서트 준비를 옆에서 도와준 제자 한 사람은 이 제목이 너무 촌스럽다고 불만이었지요. 그래도 저는 이 주제를 그대로 쓰고자 했습니다.
제가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40년 가까이 해 왔는데, 듣기 거북한 말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소설 쓰구 있네.’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시조 하구 있네.’라는 말입니다. 모두가 문학적 양식을 지칭하고 있는데 거기에 비아냥의 어조가 담겨 있어요. 믿기지 않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할 때 ‘소설 쓰구 있네.’라고 합니다. 현실 상황에 맞지 않고 세상 물정 모르며 엉뚱한 일을 하거나 그런 말을 할 때 ‘시조 하구 있네.’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여기서 시조는 이미 낡고 현실성이 없는 쓸데없는 짓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시조 하구 있네’라는 비아냥을 떨쳐 버리기 위해 ‘시조 만세’를 내세웠습니다. 왜 하필이면 제가 이 자리에서 시조를 문제삼게 되었는가를 먼저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2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데이빗 맥캔 교수는 요즘 ‘영어시조(English Sijo)’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은 이미 국내에도 알려졌지요. 그런데 미국의 한국학 전문가들 가운데에는 이러한 맥캔 교수의 할동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이도 많습니다. 왜 하필 시조인가?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맥캔 교수의 입장은 다릅니다. 맥캔 교수는 단순한 개인적인 관심이나 취미활동을 넘어서서 ‘영어 시조 짓기’를 문학 교육 현장에 널리 확대해 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맥캔 교수는 이미 여러 권의 시집을 발간한 바 있는 시인이기도 한데, 오랫동안 한국문학을 연구하여 왔고 한국 시가들을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던 그분이 자기 문학생활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로 시조를 영어로 짓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놀랍습니다.
맥캔 교수는 자신이 직접 지은 영어 시조들을 모아 만든 자가본 영어 시조집을 만들었지요. <도심의 절간 Urban Temple>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 작은 시집이 영어 시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맥캔 교수가 시도하고 있는 영어 시조는 기본적으로 3연 구성이며 각 연은 영어식 음절수를 따라 3.4조를 지킨 짧은 2행 구조를 이룹니다. 그는 한국어의 통사 구조가 의미 구조와 일치하도록 배열되고 있는 시조 형식의 특징을 그대로 영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시조의 독특한 율격 구조를 살려낼 수 있는 리듬의 규칙성을 부여하여 그가 이름 붙인 ‘영어시조’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학생들은 영어 시간에 짧은 글짓기 연습을 많이 하는데, 그것을 ‘영어하이쿠(English Haiku)’라고 부릅니다. ‘영어하이쿠’는 영어 단어 몇 개를 골라 감각적인 문장 하나를 짤막하게 만드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선생님들은 이 짧은 문장 짓기를 영어 단문(短文) 짓기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영어 하이쿠’라고 합니다. ‘하이쿠(俳句)’는 일본 고유의 단시(短詩)로서, ‘5 • 7 • 5’의 음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영어 하이쿠’에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영어권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외국 사람들에게 영어로 ‘하이쿠’를 짓는 법을 소개하기도 했지요. 그 결과 ‘영어 하이쿠’가 널리 알려져서 미국의 중학교 교실에서도 ‘영어하이쿠’라는 것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센스있게 단어를 골라 문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해활용한 ‘영어 하이쿠’는 지금도 인기가 많습니다.
맥캔 교수는 ‘영어하이쿠’와 마찬가지로 ‘영어시조’를 미국의 교육 현장에서 널리 확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 앞으로 ‘영어시조’라는 말이 미국의 각급 학교 영어 시간에 자연스럽게 사용될 정도로 영어 시조 짓기가 정착되기를 기대합니다. 근래 미국의 유명 신문인 <보스턴 글로브 Boston Globe>에서 맥캔 교수의 영어시조 운동을 특별취재하여 소개한 적도 있고, 각종 인터넷 웹사이트에서도 영어시조 짓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학의 뿌리에 해당하는 시조가 ‘영어시조’를 통해서 그 문학적 생명력을 더욱 인정받게 된다면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물론 맥캔 교수의 영어 시조 짓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성공 여부도 아직은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 일입니다. 한국문화의 세계화라는 말을 하면서도 번역 이외에 별다른 방식을 찾지 못했던 점을 놓고 본다면, 더욱 주목되는 새로운 발견이지요. 영어 시조 짓기는 번역을 통해서만 한국문학을 접했던 외국의 독자들이 직접적으로 한국문학의 정신을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년 전에 미국에 갔다가 미국의 계관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하스 선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여러 차례 초대되었던 이 세계적인 시인은 지난 2009년에 만해대상 문학부문상을 받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이 시인이 저에게 갑자기 시조에 대해 물었습니다. 하버드대학의 데이빗 맥캔 교수가 근래 영어시조 운동을 펼치면서 자기에게 영어시조를 한번 써보라고 부탁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갖고 있던 한국 시인들의 영어 번역판 시집을 펼쳐보았답니다. 하지만 그는 맥캔 교수가 설명했던 시조 양식을 한국 시인들의 시집에서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시 양식으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는다면 당연히 한국의 저명 시인들이 창작한 시조가 시집 안에 들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것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저는 시조의 역사와 그 특징적인 3행 형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는 한국의 시인들이 자유시로서의 현대시에 매달리고 있는 점도 소개를 했습니다. 세계문학 가운데 주목되는 시와 시학을 총합해 놓은 <프린스턴시학사전 The New Princeton Encyclopedia of Poetry and Poetics, 1993>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시 형식으로 시조는 사전 자체의 단위항목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도 로버트 하스 시인과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로버트 하스 시인은 맥캔 교수의 영어시조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 앞으로 자기도 꼭 영어시조를 한번 쓰겠노라고 제게 약속을 했습니다.
3
왜 시조인가?
이제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저는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의 편집 주간으로 이 잡지에 매달 ‘신작시조’ 란을 별도로 두어 시조시인들의 시조를 싣고 있습니다. 이러한 편집 방침을 고수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문학사상은 매달 6-7명의 시인들에게 신작시를 청탁합니다. 그런데 제가 편집 주간을 맡아온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신작시에 시조를 써서 보내온 시인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시인들이 모두 시조는 자기들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시인들이 시와 시조의 영역을 너무나 엄격하게 구분하여 두고 있는 것에 늘 불만이었습니다. 왜 시조는 시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늘 궁금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신작시조’ 란을 만들고 시조시인이라는 명패가 붙은 시인들에게 별도의 청탁을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번 만해축전에 <권영민의 문학콘서트>의 주제로 ‘시조’를 내세우면서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시조는 과연 무엇인가?’ ‘시조는 시조시인들만 쓰는 것인가?’ ‘시조는 이미 생명이 끝난 구시대의 유물인가?’ ‘시조라는 시적 양식은 언어의 감옥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정형시라는 양식으로서의 시조의 가능성은 없는가? 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 행사를 후원하고 있는 경기문화재단과 문학사상사의 도움으로 한국 시단의 원로시인과 중진시인 그리고 신진 시인 백 분(아흔 분의 시인과 열 분의 시조 시인)께 시조 한 편씩을 써 주십사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시조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히는 창작노트도 곁들이도록 했지요. 이 작품들은 모두 다음 달 문학사상에 수록예정이며 여기 자료집에 그대로 수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원고 청탁의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시조 한 수를 써 주실 수 있느냐는 저의 청탁에 서른일곱 분의 시인들이 청탁을 사양하거나 거절하였습니다. 시인들이 청탁을 거절한 사연을 들어볼까요? 제가 그 사연들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보았습니다.
첫째 유형은 시조에 대한 부정론(否定論)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조가 현대시와 다른 게 무엇인가?
시조의 파격이니 뭐니 해서 현대시와 아무 차이가 없어진 지 오래다.
시와 시조를 구분할 이유가 없다.
시라면 되는데, 왜 시조를 따로 구분하는가?
둘째 유형은 시조에 대한 무용론(無用論)입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시조 청탁을 하느냐.
시조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다.
시조는 시대적 의미가 사라졌고,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쓸데없는 청탁은 하지 마라.
셋째 유형은 시조에 대한 무지론(無知論)입니다.
시조가 뭔지 나는 모른다.
시조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 못한다.
당신이 한 마디로 설명해 준다면 그렇게 한번 쓰겠다.
넷째 유형은 앞의 셋째 유형과 비슷하지만 시조에 대한 무관심(無關心)입니다.
시조라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
나는 시조를 써보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시조를 써 본적이 없으니 지금 그것을 쓸 수가 없다.
시조를 쓰려면 공부해야 하는데 지금은 공부할 시간이 없다.
내게 청탁하지 말고 시조시인에게 청탁하라.
이런 식의 반응들이 저게는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다른 일이 겹쳐서 지금 곤란하다고 완곡하게 거절하신 분도 있었는데 아마 그분의 뜻도 앞의 네 가지 유형의 답변 중의 하나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흔 명의 시인 가운데 40명 가까운 시인들이 이같은 대답을 하셨으니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시인 가운데 절반 정도는 시조라는 문학 양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시조에 대해 잘 모르거나, 시조에 별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이 자리에서 시조에 대한 시인들의 무지와 무관심을 꼬집어보자는 것이 저의 의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이같은 반응이 좀 뜻밖이었습니다. ‘시조 부정론’ 또는 ‘시조 무용론’이 오늘의 시단에도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1920년대 중반에 최남선, 이병기, 이은상 등이 중심을 이루어 전개했던 ‘시조부흥운동’ 당시에도 ‘시조 부정론’ 또는 ‘시조 무용론’이 제기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시조는 봉건시대의 유물이며, 이미 그 사회문화적 존재 의미가 사라진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의는 시조 부흥의 의미를 복고적인 것으로 왜곡한 데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조는 엄연하게 존재해온 문학양식으로 우리 문학사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남선이 신체시를 통한 자유시형의 실험과 함께 현대시조의 재창조를 가능하게 하였다면, 가람 이병기는 현대시조의 시적 형식에 감각성이라는 고도의 미의식을 부여하였습니다. 뒤이어 이은상은 전통시조의 기품을 바탕으로 시적 의지와 기개 등을 덧붙이고자 하였고, 김상옥은 보다 더 섬세한 미의식을 시조의 시적 형식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였지요. 해방 직후 월북한 시조시인 조운의 시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적 형식미, 이호우와 이영도의 감성적 시조, 이태극이 주력했던 시조 시학의 확립 등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완영의 시조에서 볼 수 있는 시적 형식과 주제의 변주는 시조의 닫혀 있는 형식을 새롭게 열어 놓았는데,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도 있지만 현대시조 시단에서 장순하, 최승범, 이상범, 김제현, 윤금초, 유제영, 조오현, 박시교, 한분순, 이우걸, 홍성란 등이 거두고 있는 시적 성과를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시조에 대한 양식적 부정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봅시다. 앞의 네 가지 청탁 거절의 유형 가운데 첫 번째로 지목했던 ‘시조 부정론’을 보면, 시인들은 현대시의 넓은 범주 속에 시조가 다 포함되는 것이며 시조는 이미 그 형태적 파격 실험을 통해 양식적 구분 자체가 모호해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시의 장르론에 속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본격적인 논의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조 형식의 파격실험과 현대시의 자유시형을 동일한 것으로 인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적 형식에 관한 본격적인 미학적 논의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시조의 파격과 자유시는 그 출발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시조는 시조시인에게나 물어보라는 식의 태도입니다. 이런 자세는 시조에 대한 무지(無知)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시조에 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이 시조시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조는 시조시인만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입니다. 물론 시의 영역에서 자유시로서의 현대시가 있고, 시조는 시조로서의 고정적 형식이 별도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러한 시조와 시의 구분 문제는 시학상의 구분법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시는 현대시인만의 것이고 시조는 시조시인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 문제는 시조시인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혹시 시조시인 가운데에서 시조는 시조시인만의 것이고 시조시인만이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입니다. 시인이라면 누구든지 시와 시조를 다 쓸 수 있다고 하는 제 말씀을 놓고 시조의 고유의 특성과 그 전통에 대한 훼손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걱정입니다.
저는 현대시와 현대시조의 구분은 시학상의 영역에 속하지만 시인들 스스로 특정의 한 영역만을 고집하는 것은 편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의 정철이 시조만 고집했습니까? 윤선도가 시조만 썼나요? 시와 시조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 시적 형식의 긴장과 이완이라는 미적 특성을 얼마든지 시인들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만해 한용운이 시조를 많이 썼고, 주요한이나 김동환도 많은 작품을 시조를 남겼습니다. 김영랑이나 서정주나 조지훈이나 박재삼 같은 시인도 시조 형식에 관심을 두고 거기서 빚어지는 리듬과 형식의 균제미를 현대시에 접목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시조 쓰기가 시조시인만의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경계 구분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앞서 소개드렸던 로버트 하스 시인은 영문학 교실에 이루어지는 시창작 교육의 출발점이 서구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정형시 소네트에 대한 공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운시(無韻詩)라는 것도 배우고 하면서 시의 리듬과 율격에 대해 익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시의 형식과 리듬과 거기 배어 있는 전통을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시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고은 선생의 시집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시조를 읽을 수 있고 제가 좋아하는 선배 오세영 시인의 시집 속에서도 시조를 많이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의 첫 출발 단계에서 시적 리듬의 원리를 시조를 통해 익히길 원하며 시조의 형식에서 맛볼 수 있는 시적 긴장을 현대시에서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길 원합니다. 한국의 시문학이 자유시로서의 현대시와 정형시로서의 시조를 함께 가짐으로써 더욱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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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번 <문학콘서트>에서 비록 절반 가까운 시인들이 제 청탁에 응해주시지 않았지만 모두 쉰 분의 시인들이 시조를 짓고, 창작노트도 보내오셨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종길, 고은, 김후란, 이근배, 허영자, 이수익, 신달자, 김초혜, 오세영, 천양희, 유안진, 유자효, 조정권, 문정희, 나태주, 허형만, 조창환, 이준관, 송수권, 최명길, 구재기, 고형렬, 이문재, 이재무, 이승하, 이은봉, 공광규, 김완하, 정끝별, 이정록, 박주택, 이홍섭, 김용택, 양애경, 김상현, 조용미, 박형준, 이태관, 배한봉, 이영광, 이재훈, 김언, 이기인, 길상호, 류인서, 안명옥, 차주일, 강회진, 김지윤, 오주리 시인 등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자료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고은, 이근배, 신달자, 오세영, 유자효, 허형만, 조창환, 이준관, 최명길, 구재기, 고형렬, 이재무, 이승하, 이은봉, 공광규, 이홍섭, 김상현, 배한봉, 이영광, 김언, 이기인, 안명옥, 차주일, 오주리 시인 등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셨고, 현대시조를 대표하는 윤금초, 유재영, 한분순, 이우걸, 이지엽, 박권숙, 박기섭, 정수자, 홍성란, 고정국 시인등 여러 시조시인들께서도 여기 와 계십니다. 여기 참여해 주신 시인 여러분들께서는 시조라는 시적 양식이 한국문학의 중심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므로 보다 창조적이고도 발전적인 시조이야기를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제 결론삼아 시조에 대한 저의 생각을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이 자리를 접겠습니다. 저는 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 오면서 시조의 시적 형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조의 시적 형식 문제는 현대시조의 등장과 함께 새롭게 부각된 것입니다. 고시조에서 현대시조로의 전환이 창곡과의 분리라는 중요한 변화를 거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조는 3행의 시적 형식과 규칙적인 리듬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시조의 3장 분장 형식이 외형상 시적 형식의 전통으로 유지된 셈이지요. 현대시조가 고시조의 3장 분장 형식을 깨고 새로운 형식을 추구했다면, 아마도 그것은 시조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시조가 지니고 있는 시적 특성은 이 3행의 형식과 리듬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는데, 시조에 대한 미학적 해명 또한 이러한 시적 형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에 여러 시인들이 써주신 시조를 함께 읽으면서 저는 현대시조의 운명이 3행의 시 형식과 그 리듬의 변주에 걸려 있음을 새삼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의 현대시조의 역사도 시조가 지켜온 3행의 시적 형식과 리듬에 대한 도전의 기록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시인 여러분께 다시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올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시인 몇 분의 시조 이야기를 듣고 시조 몇 수를 감상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모든 시인들이 모여 시조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권영민의 문학콘서트 참여시인 50인 명단)
김종길, 고은, 김후란, 이근배, 허영자, 이수익, 신달자, 김초혜, 오세영, 천양희, 유안진, 유자효, 조정권, 문정희, 나태주, 허형만, 조창환, 이준관, 송수권, 최명길, 구재기, 고형렬, 이문재, 이재무, 이승하, 이은봉, 공광규, 김완하, 정끝별, 이정록, 박주택, 이홍섭, 김용택, 양애경, 김상현, 조용미, 박형준, 이태관, 배한봉, 이영광, 이재훈, 김언, 이기인, 길상호, 류인서, 안명옥, 차주일, 강회진, 김지윤, 오주리
(권영민의 문학콘서트 참여 시조시인 10인 명단)
윤금초 유재영 한분순 이우걸 이지엽 고정국 박권숙 박기섭 정수자 홍성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