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통 러시아 문예지 ‘한국현대문학’ 특집 조명

61년 역사를 자랑하는 러시아의 문학잡지가 한국현대문학을 특집으로 다뤘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오는 12월 1일과 2일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최고 권위의 외국문학 소개 잡지인 ‘이나스트란야 리테라투라’의 한국현대문학 특집호 발간 행사를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나스트란야 리테라투라’는 1955년 구 소련에서 창간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유명 문예지다. 소비에트 시절 서방 문학을 소개하는 유일한 창구역할을 했던 만큼 현재도 러시아 지식인들 사이에서 외국문학과 관련해서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로 꼽히고 있다.

‘이나스트란야 리테라투라’ 한국현대문학 특집호에는 채만식, 황순원, 이문열, 오정희, 구효서, 안도현, 김연수, 김중혁, 김애란의 소설, 시의 경우 서정주, 김승희, 정호승의 작품을 비롯해 에세이는 이어령, 김윤식, 김훈의 작품이 실렸다. 전체 해설은 문학평론가 권영민 단국대학교 명예교수와 모스크바 국립외국어대학교 마리아 솔다토바 교수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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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16.11.28)

원문 :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I31&newsid=03165206612850312&DCD=A403&OutLnkChk=Y

조정래 “헬조선에 절망하는 젊은이들, 투표부터 잘 합시다”

“<정글만리>의 주인공은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이 아니라 그의 조카로 중국 여성과 결혼하게 되는 유학생 청년 송재형입니다. 저는 중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알려주려고 이 소설을 쓴 거예요. 우리에게 중국은 무척 중요합니다. 미국과 러시아, 일본도 중요하죠. 그게 우리 민족의 운명입니다. 이 강국들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평화통일과 영세중립이 바로 우리 민족이 살 길이에요.” 18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브라워 센터. 작가 조정래가 300여 청중을 앞에 두고 특유의 열정적인 어조로 말을 했다. 지난달 초에 나온 <정글만리> 영어판(Human Jungle, 브루스 풀턴·윤주찬 공역) 출간을 기념해 이 대학 동아시아연구소 한국학센터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 제2부 ‘작가와의 대담’에서 객석의 청중이 한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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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초빙교수로서 이날 행사를 기획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조정래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거느린 작가임에도 해외에는 비교적 덜 알려졌다”며 “<정글만리> 영어판 출간을 계기로 한국 문학의 폭과 깊이를 미국 독자들에게도 보여주고자 행사를 마련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청중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2016.11.22)

원문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71511.html

소설은 거짓이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희대의 국정 농단 사건을 담당한 변호인들이 검찰의 조사 내용을 ‘소설 같은 이야기’라면서 부정하고 있다. 검찰 조사 내용이 모두 근거 없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며, 법리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혐의 내용을 부인하고 있다. 소설 연구에 일생을 걸어온 나 같은 연구가가 듣기에 어이가 없다. 꽤나 높은 학식과 교양을 지닌 것처럼 행세했을 사람들이 아무 데나 소설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이 불만이다. 소설에 대한 인식이 겨우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소설은 어떤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다. 작가는 일련의 사건들을 배열하여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소설을 꾸며낸 이야기라고 한다. 소설 속 이야기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은 어떤 행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장소와 시간을 실제처럼 그려내는 일이 필요하다. 소설의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에 근거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만 그려내지는 않는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소설의 세계를 흔히 허구라고 하는데, 그것은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가공의 현실을 지적하는 말이다. 물론 허구라는 것도 실재성을 토대로 성립된다. 

‘최순실 게이트’야말로 거짓된 정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권력과 사욕이 치정(癡情)처럼 뒤엉켜 있다. 정치는 민주적 제도와 법적 질서를 통해서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우리 국민이 험난했던 민주화 과정을 통해 확립해 놓은 법적 제도와 질서를 권력이 자기 욕심대로 다시 짓밟아 버린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멸시다. 국가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거창한 정책이 권력 뒤에 숨겨진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데 동원되었다는 것은 국가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모두 ‘최순실 게이트’가 너무나 부끄럽고 그 내막에 대해 치욕감마저 느낀다. 하지만 거짓된 정권을 혐오하면서도 바로잡아야 할 정치를 위해 촛불을 들고 있다. 권력이 멋대로 국가 질서를 무너뜨렸는데 그것을 비호하는 사람들은 그 권력을 위해 구차한 법리를 따지고 옹색하게 법치를 내세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다.

거짓말은 진실을 말하기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다. 거짓말은 거짓으로 꾸며진 것이므로 그 거짓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반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거짓말도 그 긴 꼬리에 단서가 잡힌다. 거짓말은 진실을 통해 거짓의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며 그 위선(僞善)의 가면으로 인해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결코 허황된 거짓말이 아니다. ‘소설처럼 재미있다’든지, ‘소설 같은 일’이라든지, ‘소설에서나 가능하다’든지 하는 말은 소설이라는 양식 자체가 그만큼 인간의 삶에 밀착돼 있음을 의미한다.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 속에 삶을 바라보는 진지한 자세와 그 진실을 담아낸다. 소설이 허구이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소설은 전혀 터무니없이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서사 기법에 따르는 일정한 짜임새를 갖는다.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 등을 얼마나 짜임새 있게 꾸며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이야기 형식으로 바꿔 놓는다. 소설 속 이야기는 개인의 삶과 사회적 가치 사이의 조화로운 통합을 지향한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자기 운명의 궁극적인 지점까지 살아가야 하는 인물을 창조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현실 속에서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지향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의 인물이 평범한 개인이면서도 문제적 성격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설 같은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것을 뜻한다. 소설이라는 말을 함부로 폄하하지 말라. 소설은 거짓말이 아니다. (<동아일보>, 2016.11.29.)

정지용 전집

국문학자 권영민 교수가 새로이 엮은 정본 『정지용 전집』 1, 2, 3권이 민음사에서 완간되었다. 정지용의 시가 해금된 1988년 최초로 김학동 교수의 편집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된 『정지용 전집』이 정지용 바로세우기와 정지용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면, 이번 정본 『정지용 전집』은 이전의 오류를 바로잡고 그 이후 발굴된 작품들을 추가 수록하여 정지용 작품을 총망라하였으며, 연구자들뿐 아니라 정지용의 시를 사랑하는 일반 독자들도 더욱 쉽고 편리하게 다가가도록 전면 재편집하여 새로운 정본으로 거듭났다.

이 전집은 정지용의 모든 작품을 총망라하여 정지용 작품의 ‘정본’을 확립하고 전문 연구자들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꾸몄다. 이를 위해 편자는 원문을 정밀히 대조하고 세밀한 주석을 붙여, 정지용의 시와 산문을 『정지용 전집 1 시』, 『정지용 전집 2 산문』, 『정지용 전집 3 미수록 작품』 등 전체 3권으로 구성했다.

『정지용 전집 1 시』는 정지용이 생전에 발간했던 시집의 작품들로 구성했다. 정지용은 생전에 세 권의 시집을 펴냈다. 첫 시집 『정지용 시집』(1935)에는 1920년대 후반부터 시집이 발간될 때까지 등단 초기 10년에 가까운 시작 활동을 총망라한 작품 89편이 수록되어 있다. 둘째 시집『백록담』(1941)에는 첫 시집을 간행한 후에 발표했던 33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셋째 시집 『지용 시선』(1946)에 수록한 작품은 모두 25편인데, 『정지용 시집』과 『백록담』에서 자신이 직접 가려 뽑은 것들이다. 이 세 권의 시집은 정지용이 발표했던 대부분의 작품들을 싣고 있는 데다 시인 자신이 직접 선별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정본’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새 전집에서는 이 세 권의 작품들을 기본 텍스트로 삼고 신문 잡지에 발표했던 원문을 찾아 함께 수록했으며, 일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모든 작품을 현대어 표기로 바꾸어 별도로 실었다.

『정지용 전집 2 산문』은 정지용이 펴낸 산문집의 작품들로 구성했다. 정지용은 광복 직후 두 권의 산문집을 펴냈다. 첫 산문집 『문학 독본』(1948)에는 37편의 시문과 수필 및 기행문이 수록되어 있다. 둘째 산문집『산문』(1949)에는 총 55편이 실려 있으며 시문, 수필, 역시(휘트먼 시) 등으로 엮였다. 새 전집에서는 앞의 두 산문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일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모두 현대어 표기로 바꾸었다. 편자의 판단에 따라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했고 주석을 덧붙였으며, 원문의 발표 지면을 확인하여 표기했다.

『정지용 전집 3 미수록 작품』은 세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산문집에 수록되지 못한 작품들로 구성했으며, 시와 산문으로 크게 구분해 놓았다. 정지용이 자신의 시집에 수록하지 않은 시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광복 직후의 몇몇 작품들은 주목할 만하다. 미수록 시 작품의 대부분은 일본 유학 시절에 발표했던 일본어 시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어로 개작되어 국내 잡지와 신문에 다시 발표되었다. 이 전집에서는 정지용의 이중 언어적 시 창작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본어 시의 원문을 모두 수록했고, 이와 관련되는 한국어 작품도 함께 실었으며, 편자의 초역도 붙였다. 정지용의 산문 가운데에는 광복 직후 펴낸 두 권의 산문집에 수록되지 못한 작품들이 많다. 특히 《경향신문》에 근무하면서 발표했던 신문 칼럼은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미수록 작품 가운데 시는 1권의 편집 원칙대로 따랐고, 산문은 2권의 원칙을 따랐다. 다만 번역시, 번역 산문 등은 모두 발표 당시의 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먹방’의 시대

최근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 CNN이 한국에서 한창 유행하는 ‘먹방(mukbang)’이라는 방송 형태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내보냈다. ‘먹방’은 음식을 먹으면서 방송을 하거나 먹는 모습을 그대로 방송하는 것을 말한다. 2010년을 전후하여 한국에서 시작된 이 특이한 방송 형태가 세계 각국으로 널리 퍼져 유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는 것이 흥미의 초점이었는데, 지금은 일종의 사회적 소통 방식이 되어 세계인의 폭넓은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 CNN의 진단이다.

‘먹방’이라는 말은 ‘먹는 방송’을 줄여 만든 신조어(新造語)다. 한국에서 ‘먹방’이라는 형태가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은 ‘아프리카TV’를 비롯한 몇몇 인터넷 방송에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방송 출연자가 직접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대로 방송으로 내보내게 된 것이 그 시초다. 음식을 먹으면서 시청자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방송계에 널리 확산되었다. 지금은 인터넷 방송만이 아니라 여러 방송사의 중요 TV 프로그램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먹방 스타’가 등장할 정도로 이 방송 프로그램의 대중적 인기와 그 위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먹방’에 대한 외국 언론의 관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이코노미스트’라든지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2014년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먹방’의 실태를 취재한 적이 있다. 이들 언론은 한국에서 ‘먹는 방송’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경기 침체에 따른 한국 사회의 불안 심리와 젊은 세대의 욕구 불만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CNN의 보도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CNN은 한국에서 왜 ‘먹방’이 유행하는가를 취재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먹방’의 형태가 왜 전 세계로 확산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자기가 혼자 음식을 먹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CNN은 ‘먹방’의 형태를 일종의 새로운 ‘사회적 식사법(social eating)’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먹방’이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특이한 소통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유대 관계도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보도에서 흥미로운 것은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각종 미디어의 동영상을 모두 ‘먹방’이라는 한국말로 직접 지시하면서 범주화하고 있는 점이다. 이제 갓 만들어진 ‘먹방’이라는 한국말을 세계인의 일상적인 삶의 트렌드를 설명하는 최신 유행어로 격상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먹방’은 그것을 즐기는 대중과 영상물의 내용 사이의 거리를 없애면서 더욱 가깝게 개인적 체험의 영역으로 파고든다. 어떤 영상물에서는 한 여성이 푸짐하게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고 혼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영상물은 두 사람이 함께 마주 보고 앉아 준비한 음식을 나누면서 하루 일과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사적(私的)인 순간을 놓고 일반 대중은 구경꾼이 되어 그 장면을 보고 즐긴다. 바쁜 일상에 쫓겨 누군가와 함께 식당을 찾아 즐겁게 식사하기가 어려워진 현대인이 이런 유형의 영상물을 서로 공유하면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누려온 것이 음식에 관한 다양한 문화와 풍습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것이 먹거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음식에 대한 관심이 일차적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먹방’의 시대는 다양한 먹거리와 식습관 등으로 관심이 확대되면서 당분간 지속될 걸로 보인다. 특정 음식에 대한 편견도 모두 없애고 서로 다른 음식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혀줄 수 있을 것이다. 기왕이면 ‘먹방’이라는 한국말이 맛있는 우리네 먹거리를 세계인들에게 흥미롭게 보여줄 수 있는 ‘먹방’과 함께 널리 전파되기를 기대한다. (<동아일보>, 2016.10.29.)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흑인역사박물관

미국의 수도 한복판에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이 지난달에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은 국립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열아홉 번째 박물관으로 국립자연사박물관, 국립항공우주박물관 등이 자리 잡고 있는 워싱턴 내셔널 몰 안에 위치해 있다.

이 박물관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노예 상태로 미국에 강제 이주당한 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을 거쳐 미국 시민으로서 당당한 지위를 누리게 되기까지의 역사를 기록 보존하고 전시 교육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흑인이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억압당했는지, 어떻게 인종 차별의 고통을 극복해 왔는지 연구하고 이와 관련된 기록과 유물을 정리 전시하면서 흑인 문화가 미국 사회의 역사와 문화에 끼친 영향을 함께 보여주게 된다.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의 건립 문제는 1980년대 흑인 인권운동가 출신 존 루이스 하원의원이 관련 법안을 의회에 상정하면서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무려 15년 동안 의회 안에서 발이 묶여 있다가 2003년에야 비로소 의회를 통과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서명에 의해 박물관 설립의 단계적 실행이 가능해지자 오프라 윈프리, 마이클 조던 등 유명 흑인 인사들과 수많은 기업, 사회단체들이 거액을 기부하면서 사업에 속도가 붙었고, 준비팀에서는 전국 15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개최한 ‘앤티크 로드쇼’를 통해 전시 자료를 폭넓게 수집했다. 

이 박물관에서 수집 전시하고 있는 자료는 무려 4만여 점이나 된다. 초기 흑인 노예들의 생활용품들에서부터 흑인들의 사회 문화 예술 활동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다. 여성 노예해방운동가로 현행 20달러짜리 지폐의 앞면 모델이 된 해리엇 터브먼이 걸쳤던 숄도 있고,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민권운동에 불을 붙인 로사 파크스의 드레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악명 높았던 백인우월주의 단체 ‘KKK’의 의상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무하마드 알리의 복싱 글러브, 육상 단거리 선수 칼 루이스가 신었던 운동화, 재즈 음악가 루이스 암스트롱이 불었던 트럼펫 등도 눈에 띈다.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흑인의 자리를 별도로 구분했던 버스의 좌석 표시라든지, 1905년 시카고에서 설립된 흑인신문 ‘시카고 디펜더’의 주필이 사용하던 책상도 있다. 버지니아에 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008년 대선 캠프 사무실도 그대로 옮겨졌고, 미국 각지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흑인 인권운동 관련 자료까지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의 개관 기념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는 전체 미국인의 역사와 별개의 것이 아니며 미국사의 핵심에 자리한다”고 주장했다.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의 건립은 미국이 지향하고 있는 다문화주의의 이념과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을 상징한다. 

이 국립박물관에서 미국 역사의 어둡고도 부끄러운 장면들을 숨김없이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미국인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흑인의 참혹한 역사와 그 차별의 어두운 장면들을 맨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이 불편이야말로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힘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념 연설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지금도 여전히 인종 갈등에 휩싸여 있다. 최근에는 오클라호마, 샬럿 등지에서 일어난 경찰의 흑인 총격 사건에 대한 많은 시민들의 항의 집회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 사회의 다양한 인종이 각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건전한 사회 발전과 통합을 이루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과제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동아일보>, 2016.10.4.)

원고료

글 쓰는 사람에게 원고료는 아주 민감하다. 문사로서 글은 쓰되 고료는 받지 않겠다고 말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선비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글을 쓴 대가로 고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문인들에게는 원고료라는 것이 늘 마음에 차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원고료가 처음 등장한 것은 신문학 초창기의 일이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가 신문에 연재하는 소설에 원고료를 처음 지불했다. 소설가 이광수가 1917년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하면서 한 달에 10원 정도의 고료를 받았다고 술회한 내용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정도의 액수가 요즘 화폐 가치로 어느 정도인지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단행본으로 출간된 ‘무정’ 초판본의 정가가 1원 20전이었던 사실로 미루어 본다면 대략 15만 원 안팎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1920년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도 창간호부터 자연스럽게 외부 청탁 원고의 경우 원고료를 지불했다. 동아일보는 초창기에 연재소설 회당 원고료를 1원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1920년에 창간한 ‘개벽’은 종합 잡지로서는 처음으로 원고료 지급 제도를 채택했다. 천도교 중앙회에서 발간했던 이 잡지는 대중 독자를 상대로 하는 교양지를 표방하면서 상당한 발행 부수를 자랑했는데, 원고료를 지불하면서 당대 최고의 필진을 동원할 수 있었다. 순문예지의 경우 1924년 창간된 ‘조선문단’이 ‘개벽’ 못지않은 원고료를 지불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가 방인근이 사재를 털어 시작한 이 문예지는 400자 원고지 한 장의 고료가 1원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운영 자본이 영세하여 잡지 간행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뒤에 방인근은 ‘조선문단’을 위해 시골의 땅을 모두 팔고 재산을 전부 털어 넣었지만 10년도 못 가서 결국 알거지가 되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광복 이후 한국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현대문학’은 1955년 1월에 창간된 후 월간지 체제를 유지하면서 순문학 중심의 문예지로 성장해 왔다. 벌써 창간 60주년을 넘겼으니 사람으로 치면 회갑을 치른 셈이다. 순수 문예지가 이렇게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은 외국의 경우에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현대문학’은 창간 이후 잡지사 내부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필자에게 꼬박꼬박 원고료를 제때에 지급해온 잡지로 유명하다. 

문예지의 원고료가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1980년대 초에 원로 작가들이 들려준 원고료의 기준이 흥미롭다. 소설가 정한숙 선생은 200자 원고지 한 장의 고료로 해당 잡지 한 권의 정가 정도라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전광용 선생은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하여 좌중을 웃겼다. 적어도 비어홀에서 파는 맥주 한 병 값보다는 많아야 한다는 것이 그분의 주장이었다. 원고료라면 적은 액수라도 좋지만 많을수록 더 좋다는 것은 시인 정한모 선생의 의견이었다. 

요즘 문단에서 문예지의 원고료 문제가 심심치 않게 화제에 오른다. 한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예술의 창작 기반 확대라는 목표로 매년 중요 문예지를 선정하여 일정액의 원고료를 잡지사에 지원해 왔다. 그런데 이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이런저런 말썽이 끊이지 않자 제도 자체를 없애버렸다. 예술위원회 측에서는 더 직접적으로 문인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지원 제도를 만들고자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 하지만 원고료 지원 제도가 없어지면서 글을 쓰는 문인들에게 지급되던 원고료가 그만큼 줄어들게 되었다. 원고료 지원에 의존했던 잡지사들의 형편도 더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새로 시행되는 이른바 ‘김영란법’에서 원고료가 규제 항목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점도 이래저래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쥐꼬리만 한 원고료 수입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문인이 우리나라에서 몇이나 되겠는가.  

옛날부터 내려오던 ‘문(文)은 궁야(窮也)’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동아일보>, 2016.9.10.) 

투명한 윤리사회로 가는 길

‘김영란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세간의 화젯거리다.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법 제정의 취지와는 달리 자영업자들이 그 영업에 큰 지장을 받게 될 것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고, 과수 농가나 축산 농가들이 그 산물의 판매에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정한 ‘청탁문화’가 빚어내는 각종 비리에 우리가 얼마나 무감각해져 있는지를 그대로 말해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이 법의 제도적 정착과 함께 그 법 정신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연초에 국제투명성기구에서 국가별 청렴도를 분석하여 부패인식지수(CPI)를 발표한 적이 있다. 2015년 전체 조사 대상 168개국 중에서 우리나라는 37위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최하위권에 속한다. 남미의 칠레가 23위이고 동유럽권의 폴란드가 30위에 올라 있는 것을 보면, 경제 발전과 그 국가적 위상에 비해 우리나라의 국가 청렴도가 얼마나 낮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부패인식지수가 낮은 것은 부정한 청탁과 대가를 바라는 뒷거래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권력을 휘둘렀던 시대에는 권력자들이 앞장서서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다. 그러면서 국가와 민족을 들먹이면서 정의와 부정부패의 척결을 내세웠고 시민들을 향해 언제나 자기네를 믿고 따르라고 강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모든 정보가 개방되기 시작했고, 금융실명제가 정착되면서 검은돈의 거래도 상당 부분 차단되었다. 관공서의 각종 업무에서 이른바 ‘급행료’라는 것도 많이 줄었고 길거리의 교통 위반 차량에서 돈을 뜯어내던 교통경찰의 횡포와 비리도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은 더 이상 권력의 부정과 비리를 용서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자기 권리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물론 힘이 있는 자들 가운데에는 그 힘으로 교묘하게 부정한 일을 꾸미고 검은돈을 끌어들여 자기 뱃속을 채우려고 한다. 돈 많은 자들은 그 돈의 위력을 내세워 권력을 유혹하고 부정을 저지르면서 돈의 힘으로 그 거짓을 덮으려고 한다. 근래의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힘이 있는 자는 그 힘으로 돈을 주무르고 돈 가진 자는 그 돈으로 힘을 끌어들여 부정과 비리를 감추려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도 여전히 거짓으로 뒷돈을 챙기고 검찰의 요직에 오른 자도 그 권세로 돈을 끌어 모으는 데에 혈안이다. 그리고 모두가 거짓말로 사실을 얼버무리려고 한다. 

 

하지만 권력은 그 돈 때문에 거짓의 꼬리가 잡히고 돈은 권력과의 끈이 잘리면 맥을 쓰지 못한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한국의 권력층과 돈을 가진 자들이 돈과 힘 때문에 부정하게 서로 엮이는 한심스러운 일들이 자꾸 생겨난다. 국가 청렴도가 꼴찌 수준이라는 것을 모든 시민이 수치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는 지금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목전에 두고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발전만으로 선진국으로의 진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제 발전의 기반 위에서 국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사회 각 부문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의 행복지수도 올라간다. 

‘김영란법’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우리 생활에서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부정한 뒷거래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각 부문의 활동도 경쟁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발전하면서, 국가 사회 전체의 청렴도가 그만큼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법 제도의 정착과 공정한 시행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수준 높은 선진 윤리사회로 이끌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동아일보>, 2016.8.16.)

 

커피 한잔

‘커피 한잔하실래요?’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첫인사를 ‘커피 한잔’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말을 큰 부담 없이 받아들인다. 커피야말로 편한 만남의 시작이요, 가벼운 대화의 출발이다. 예전에는 사내들끼리 만나면 대개가 ‘막걸리 한잔’ 또는 ‘소주 한잔’하자는 말로 시작했다. 서로 서먹서먹하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어 ‘한 대 하실래요?’ 하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커피 한잔’은 누구든지 서로 만날 때 하는 인사말처럼 편하다.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쉽게 던질 수 있는 말이 ‘커피 한잔’이다. 

이른 아침 지하철역에서 출근길에 바쁜 사람들이 빠져나온다. 역 근처에 문을 연 작은 커피가게 앞에 젊은 여성이 서 있다. 커피 한 잔과 베이글 한 개를 작은 봉지에 담아들고 잰걸음으로 골목길로 접어든다. 어떤 젊은이는 아예 가게 앞에서 샌드위치를 입에 넣고 커피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점잖게 생긴 중년신사도 가게 안으로 들어와 빵 한 개와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바쁜 도시인들의 아침 식사가 이렇게 간단하게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다. 점심시간이 되면 번잡한 도시의 빌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다시 각자의 사무실로 들어서는 모습도 재미있다. 대부분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있다. 당연히 식사 후에는 커피 한 잔을 마셔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녁 무렵의 카페는 왁자지껄하고 사방이 소란스럽다.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사람들 앞에 커피잔이 놓여 있다. 커피잔 앞에서는 모두가 들떠 있고 신이 나고 진지해지기도 한다. 커피는 이렇게 다채로운 일상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풍경을 커피 향에 어울리는 색깔로 채워 놓는다. 

커피는 아침에 마실 때 그 향미가 제격이다. 나른한 오후에도 커피 한 잔의 매혹을 물리치기 어렵다. 커피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보고 마실 때 가장 달콤하지만, 혼자 다방 구석에 무료하게 앉아 있을 때도 탁자 위의 커피가 그리 씁쓸하지는 않다. 바쁜 사무실에서 일에 쫓기다가도 커피 한 잔이면 머리가 개운해진다. 까다로운 상사와 함께하는 회의 자리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커피다. 편의점 한 귀퉁이도 커피 한 잔을 즐기는 데에는 충분하고, 버스 정류장이나 기차역에서도 커피 한 잔이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왁자지껄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즐기는 것은 옆자리를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 전혀 불편할 리가 없다. 

일상의 커피 혹은 커피의 일상을 말한다면, 커피를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들은 거부 반응을 표할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커피를 즐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피는 이제 우리 생활에서 단순한 기호품은 아니다. 커피의 종류도 가지가지로 많아진 데다가 커피를 즐기는 방식도 사뭇 서로 달라지고 있다. 커피가 사람들의 생활 관습도 바꾸어 놓고 있으며 일하는 태도까지도 변화시킨다. 요즘 모두가 불경기라고 야단이지만 전국에 걸쳐 커피숍이 가장 많이 늘어나고 있단다. 변두리 작은 동네 골목에도 한두 해 사이에 새로 생긴 커피숍들이 성업 중이다. 커피를 만들고 시중드는 바리스타 교육에 퇴직한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성황이란 뉴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네 커피값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다. 도심의 유명한 커피 체인점에서 파는 커피 한 잔이 설렁탕 한 그릇 값에 이를 지경이니, 이건 커피의 허영이다. 이렇게 비싼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다면 이제는 커피의 경제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 왜 우리가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내면서 커피를 계속 마셔야만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일상의 커피란 말은 주머니 사정이 맞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만 고급한 커피의 문화라는 것도 제대로 자리 잡을 것이 아닌가. 그럴 때는 이런 인사도 마음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다. 

‘커피 한잔 드실래요?’ 

(<동아일보>, 16.7.30.)

한국문학의 전도사 권영민 석좌교수(<동아일보>, 2016.8.26.)

‘채식주의자’ 등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가운데 평생 모은 문학 관련 서적 8000여 권을 미국 대학에 기증한 문학평론가가 있다. 그는 미국의 대학출판부들과 계약을 맺고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책을 펴내는 등 ‘한국 문학 전도사’로 나섰다. 주인공은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68). 최근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권 교수가 이번에 책을 기증한 곳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지난해부터 이 학교의 방문교수로서 한국 문학을 강의한 게 계기가 됐다.  

“버클리대에는 일본학과 중국학은 있지만 한국학은 없어요. 사실 미국에서 한국학 전공이 있는 대학은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시카고대 등 10여 곳에 불과해요. 전체 대학이 3000여 곳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미약하죠.” 

그는 학교 측에 한국의 위상과 한국 문학의 중요성 등을 피력했고 버클리대의 총장과 담당 학장 역시 한국학 전공 설립에 공감해 이르면 내년에 한국학 전공을 개설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공으로 개설돼도 관련 책이 부족하면 학생들이 한국을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실제로 권 교수가 지난해 이광수와 김소월 등 한국 근대 문학자들의 작품을 강의해도 현지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구하기 어려워 애를 먹었다. 

그는 한국 문학책이 국내 웬만한 도서관엔 있지만 미국에선 희귀본에 가깝다는 생각에 소장 도서를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책들은 1970년대 문학 평론을 시작할 때부터 수집한 8000여 권. 미국에 부치려 포장하니 라면 상자 100개에 육박했다. 중국에서 어렵게 수집한 광복 이후 시집도 일부 포함됐다.  

권 교수는 버클리대에 소설가 조정래와 한강 등을 잇달아 초청해 현지 연구자들에게도 한국 문학을 적극 알릴 예정이다.  

 

“우리는 영어 번역서를 내면 미국 독자들이 읽을 것으로 여기지만 그럴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와 비슷해요. 미국에서 영어로 나온 문학 책 1만5000여 종 중에서 한국 문학은 10여 종 남짓한 실정이죠.” 

그는 “한국 문학이 내부적으론 위축돼 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무대를 세계로 넓혀야 한다”며 “우선 현지 문학 연구자나 문학인들이 한국 문학을 접할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일반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문학 하는 사람이라면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나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 중국의 모옌(莫言) 등 작가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읽는 것처럼 한국 문학도 한국을 벗어난 국가에서도 문학 전문가들에게 두루 읽혀야 한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미국 명문대인 컬럼비아대 출판부와 UC출판부(버클리대 출판부)와도 계약을 맺고 한국 근현대 문학을 소개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작품명과 등장인물, 작가명 등 명칭 표기법의 표준화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 최초 문학 동인지인 ‘창조’만 해도 더 크리에이티브(The Creative), 더 크리에이션(The Creation) 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표기법이 표준화돼 있지 않으면 연구에 애를 먹을 수 있어요.”

평생을 문학평론가와 서울대 국문과 교수 등으로 지낸 그는 “한국 문학을 체계적으로 마무리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 소개 서적의 집필 기간을 2년 정도로 잡았지만 할수록 어림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영시(英詩)를 연구하는 외국인 학자가 ‘김소월 시가 기가 막히다’고 말하는 걸 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동아일보>, 2016.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