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시전집>을 펴내며

이 책에 김소월이 쓴 모든 시 작품을 수록한다. 소월이 펴낸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작품만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스승인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素月詩抄)>>의 작품도 포함한다. 이 두 시집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이미 잡지와 신문에 발표된 작품들, 그리고 유작의 형태로 잡지 <<문학사상>>이 발굴하여 공개한 작품도 함께 싣는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김소월시전집이 이미 여럿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시 펴내는 것은 김소월 시의 텍스트를 보다 정밀하게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 정본을 제대로 확립해야 하겠다는 필자 나름의 욕심 때문이다.

내가 소월 시를 처음 읽었던 것은 중학교 시절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가 간직하고 있는 그때의 일기장에는 매일 하루 일을 정리해 적어 놓은 글 뒤에 소월 시 한 편이 덧붙여 적혀 있다. 학교 도서실에 있던 책 가운데 김소월의 시집은 내가 가장 자주 빌렸던 책이다. 매일 같이 이십 리를 걸어 학교에 다니면서 오가는 길에 큰 소리로 소월시를 외었던 생각이 난다. 뜻 모르고 그리 했지만, 그때 외웠던 시가 지금도 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몇 년 전 미국 하버드 대학의 초빙교수로 한국문학을 강의하게 되었을 때, 데이빗 맥캔 (David McCann) 교수와 함께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을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자세히 검토하였다. 맥캔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김소월 연구의 권위자이다. 이미 여러 차례 김소월 시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고, 소월시선집도 영문으로 발간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달래꽃>> 전체를 완역하여 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나는 미리 한국에서 1925년판 원전을 복사했고, 시집 출간 이전에 잡지와 신문에 발표되었던 작품들을 모두 찾아내어 시집에 수록된 것들과 일일이 대조해 두었다. 맥캔 교수는 벌써 <<진달래꽃>>의 초역을 끝낸 상태였다. 나는 맥캔 교수와 매주 화요일 오후 연구실에서 함께 만나 <<진달래꽃>>을 한 페이지씩 읽어나갔다. 예컨대 <<진달래꽃>>의 첫 번째 수록 작품인 “먼 후일”의 경우, 1920년에 <<학생계>>에 발표한 최초의 원본과 1922년 <<개벽>>에 다시 개작 발표된 텍스트를 함께 대조하였고, 맥캔 교수의 영역본도 읽어 나갔다. 맥캔 교수는 대부분의 소월 시를 줄줄 외었다. 어떤 작품은 둘이서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낭송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기존 연구서와 자료들을 검토하였고, 난해한 시어의 새로운 해석도 이루어졌다. <<진달래꽃>> 함께 읽기를 끝낸 후, 맥캔 교수의 <<진달래꽃>> 영역본은 미국 컬럼비아대학 출판부와 출간 계약을 맺게 되었으며, 나는 <<김소월시전집>>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구성하였다. 제1부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의 수록 작품을 원문대로 수록하였다. 1925년 출판 당시의 원문을 살렸고, 책의 순서대로 작품을 실었으며, 각 작품마다 잡지 신문에 발표되었던 원문을 찾아 함께 대조하여 텍스트의 개작과정을 확인하여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각 작품 마다 현대 국어 표기법에 따른 텍스트를 덧붙여놓았다. 제2부는 첫째, 김억 편 <<소월시초(素月詩抄)>>(1939)의 수록 작품, 둘째, 시집에 수록되지 못한 잡지 신문 등에 발표한 후 시집에 수록되지 못한 작품, 셋째, 한시 번역 작품, 넷째, <<문학사상>> 지에서 발굴한 소월의 미발표 작품 등으로 구성하였다. 잡지 신문의 원문 대조는 물론이고, 번역 한시의 경우는 중국 원전을 대조하여 함께 실었다. 부록으로는 그동안 소월 시의 해석에서 문제가 되곤 했던 중요 시어에 대한 해석을 첨부하였다. 기왕의 전집 가운데 필자의 해석과 다른 해석을 보여준 대목들은 이를 밝혔다.

이 책을 엮으면서 김종욱 편 <<원본 소월전집>>(홍성사, 1982), 김종욱 편, <<정본(正本) 소월전집(素月全集)>>(명상, 2005), 오하근 편 <<정본 김소월전집>>(집문당, 1995), 오하근, <<김소월시어법연구>>(집문당, 1995), 김용직 편 <<김소월전집>>(서울대출판부, 1996) 등을 함께 참조하였음을 밝힌다. 이 책들은 모두가 김소월 시의 텍스트 연구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중요 업적들이다.

이 책을 엮는 과정에서 김소월 번역 한시의 원문을 중국 원전과 일일이 대조하여 다시 번역하여 주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박희병 교수께 감사드린다. 잡지 <<배재>>의 열람을 허락하여 준 배재고등학교 자료실에도 감사드린다. 신문 잡지의 원문 조사를 도와준 서울대학교 현대문학교실의 정기인 군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소월시문학상을 주관하고 있는 문학사상사가 이 책의 출간을 맡아준 것이 더욱 기쁘다. (권영민, 2007. 1)

서평 –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

여성 작가 여섯이 펼치는 섹스 판타지를 함께 묶어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라는 테마 소설집을 내놓는다. 이 책은 지난 가을에 내놓은 남성 작가들의 이야기의 후속편에 해당한다. 바따이유는 에로티시즘을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라고 했다. 이 말을 조금 바꾸어 보면 섹스야말로 죽음까지 이어지는 삶에 해당한다. 섹스가 생의 연속성에 함께 한다는 뜻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평재의 <크로이처 소나타>은 섹스의 판타지를 음악의 선율과 소리의 감각을 통해 펼쳐낸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육체보다도 감성의 에로티시즘이 더욱 현란하다. 김이설의 붓끝은 파괴적이다. <세트 플레이>의 이야기는 육체도 정신도 섹스라는 행위 속에서 소진된다. 한유주의 <제목 따위는 생각나지 않아>에서는 덧없이 소멸하는 개체로 떠밀리고 있는 주체에 대한 환상이 인상적이다. 서사를 해체하면서 얻어내고 있는 이러한 느낌과는 달리, 김이은의 <어쩔까나>는 단단한 결구(結構)의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것이 언제나 육체의 에로티시즘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되풀이된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구경미의 <팔월의 눈>에는 존재의 고립감이 서사를 압도하지만, 환멸의 삶에도 섹스가 스며든다. 은미희의 <통증>은 극단적이다. 육체의 에로티시즘을 그림 그리기로 환치시켜 놓음으로써 섹스가 드러내는 파괴적 속성을 환유처럼 제시한다.

 

섹스는 육체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이 욕망은 파괴적이지만 존재의 가장 내밀한 구석까지도 건드리는 심정적 여운을 남긴다. 그러므로 그것은 육체를 뒤흔들어 놓는 충동을 다시 불러일으키며 열정의 불꽃으로 살아난다. 섹스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단순히 반복되거나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음탕한 욕정만을 위해서 육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힘을 육체로부터 발산하게 한다. 이 시대의 삶의 표층에 섹스가 난무하고 모든 담론의 은밀한 구석에 섹스가 흉물스럽게 도사리고 있다. 이 혼돈과 어둠의 골짜기에서 섹스의 판타지를 건강하게 끌어내는 일이야말로 이 책에 동참한 작가들과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권영민)

 

저서 소개 – <문학사와 문학비평>

 

 

 

“나는 문학비평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 대상이 되는 문학 텍스트와 조화로운 짝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에만 비평은 문학의 전체적인 모습을 균형 잡아주고 그 가치의 영역을 확정해줄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비평적 방법의 확립이다. 비평은 다양한 모습으로 무질서하게 분산되어 있는 문학작품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들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개별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결정론적 사고방식을 가장 경계한다. 문학비평은 다시 작품으로 떳떳이 돌아오고자 하는 목표에서 이루어지는 인식행위이기 때문이다.
문학사 연구는 문학비평의 궁극적인 지점에 해당한다. 문학사는 그 연구 대상이 되는 작품들에 대한 역사적 관련성과 그 시대적 위치를 규정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창작을 둘러싼 모든 사회 문화적 조건들을 검토하고 그 속에서 양식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이때 무엇보다도 다양한 문학적 사실을 놓고 이루어지는 종합에 대한 감각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본문 중

 

 

이 평론집은 개별 텍스트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종합을 통해 21세기 문학비평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1부에서는 치밀한 어원 탐사와 방언 연구를 통해 김소월, 김영랑, 이육사, 정지용 등 민족시인들이 구사한 시적 언어를 분석한다. 2부에서는 지금까지 시인으로만 알려졌던 만해 한용운의 소설 작품과 한국 여성주의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소설 박화성의 작품을 탐구한다.

3부에서는 한국문학비평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이어령의 <저항의 문학>에 대한 메타비평을 시도한다. 또한 이문구론과 함께 조오현의 시세계와 오세영의 시세계의 변모 양상을 짚어본다. 4부에서 근대문학의 발자취를 좇으며 한국 문학사 연구의 방향을 가늠해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텍스트에 대한 정확 면밀한 해석으로 지금껏 비평계에 치열한 논쟁이 되어온 작품들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펼칠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비평가의 목표’로 제시한 ‘비평가의 자아에 대한 비전의 진실한 표현’으로 문학비평의 독자적 지위를 견고히 한다. (문학동네, 2009)

 

“나는 이 책을 문학비평의 방법과 실천을 놓고 고심하는 문학의 독자들에게 바친다. 그리고 문학비평이 하나의 새로운 ‘문화적 시학’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독자들과 함께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권영민)

 

저서 소개 – <문학의 이해>

이 책은 문학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위해 만들어진 입문서다. 문학의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문학의 속성, 문학의 양식, 문학의 경향 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 책은 문학이라는 것이 언어적 산물이면서 동시에 상상적 산물에 해당한다는 사실의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문학의 다양한 양식과 그 특질을 깊이 있게 제시하면서 그 경향과 시대적 양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민음사, 2009, 초판발행)

저서 소개 – <한국현대문학사>

  

 

이 책에서는 한국 현대문학의 역사적 전개 양상을 개화계몽시대의 문학, 일본 식민지시대의 문학, 분단시대의 문학이라는 세 개의 단계로 구분한다. <한국현대문학사 1>은 19세기 후반 개화계몽시대의 문학부터 일본 식민지 시대의 문학까지, <한국현대문학사 2>는 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의 문학을 대상으로 한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는 개화계몽시대 국어국문운동을 민족어의 재발견이라는 문화사적 명제로 내세우고자 한다. 국어국문운동이라는 사회 문화적 실천운동을 기반으로 전통적인 한문학이 붕괴되고 문학 양식이 새롭게 분화되는 과정 자체가 바로 근대문학의 기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현대문학의 전개 양상을 개화계몽시대, 일본 식민지시대, 민족분단시대라는 시대적 순서개념에 따라 각각 몇 개의 단위로 구분하여 기술한다. 문학의 역사적 전개 양상을 놓고 시간적 휴지부를 어떻게 찍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것은 하나의 논리적 가설에 속한다. 문학사 연구에서 시대구분은 문학 텍스트에 대한 심미적 해석과 역사적 이해가 동시에 필요하다. 이것은 문학 텍스트의 시대적 순서 개념과 그 문학적 본질 개념을 상대적으로 통합하는 일종의 역사적 인식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민음사, 2002, 초판발행)

저서 소개 – <작은 기쁨>

 

 

 

 

 

 

 

“이제 나는 당신에게 부끄러운 고백이 필요하다.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이렇게 봄꽃처럼 온전히 우리 자신의 모습을 서로에게 드러내었던 저이 있었는가? 스스로를 둘러 감싸고 있는 가식의 껍질을 벗어던질 용기를 제대로 가져 본 적이 있었는가? 온갖 치장으로 허물을 감추기에 급급하지는 않았는가? 그렇게 깨끗하게 몸을 던져 새로 피어날 나뭇잎에게 신록의 자리를 준비해 줄 아량이 있었는가? 우리들의 만남을 봄의 환희로 승화시킬 수 있었는가? 피어 있는 동안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자신의 생을 제대로 영위하고 있는 것인가?”

– 본문 <봄꽃> 중

 

 

   이 책은 실증주의적 문학 연구를 통해 한국 현대문학의 지평을 넓힌 문학평론가 권영민 교수의 산문집이다. 권영민 교수는 이 책에서 사람과 문학이라는 두 테마를 넘나들며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고졸한 멋이 살아 있는 언어로 삶의 생생한 흔적을 그려낸다. 봄꽃의 연한 속살같이 무구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의 따뜻하고 소박한 삶의 풍경이 전면에 배치되면서도, 한 편에 평생 문학의 숲을 거닌 자신의 길을 되돌아보며 아직 말 못한 문학에 대한 애정을 풀어내고 있다. 그 그림 속의 풍경들은 때론 밋밋하고 너무 낯익은 풍경일 수도 있지만 소박하고 무구한 아름다움에 숨겨진 향취가 오히려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면에서, 권영민 교수의 산문은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고자 하는 봄꽃과 닮아 있다. 그것은 봄꽃의 속살 같은 권영민 교수의 자기고백이자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권영민 교수는 솔바람 부는 고향 길로 독자들을 안내하며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그 수수한 풍경은 우리네 가슴속 풍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박한 사람들 속에서 우리네 어린 시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에, 저절로 가슴 설레게 된다.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은 다름 아닌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하고 무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고추밭에 농약 치다가 불쑥 서울로 고향 친구를 찾아간 무남이네 아빠나 권 교수가 젊은 시절 한 때 연정을 품었던 박이주 선생님, 멀리 이국 타향에서 재회한 미선이 외삼촌 등. 이들의 소박한 사연은 고스란히 우리네 삶의 풍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사연의 소박함에, 또 그 삶의 진솔함에 동질감을 느끼고 저절로 가슴이 따듯해진다. 이것이 권영민 교수가 독자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자, 작은 기쁨인 것이다.

 

“나는 문학이라는 예술의 영역을 학문의 논리 속으로 끌어들이며 글을 쓴다. 문학의 상상력과 학문의 논리가 늘 서로 충돌하는 자리에 서 있는 셈이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 창조적인 미학을 생각하면서도 논리를 따지고 심미적인 내면 의식을 강조하면서도 객관성을 저울질한다. 이런 갈등 때문에 나는 글쓰기의 자유로움을 꿈꾼다. 나 자신의 글을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꿈이다. 하지만, 글쓰기가 어찌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2013년도 이상문학상 심사평 – 주제의 관념성 혹은 문화론적 상상력

2013년도 이상문학상 최종심사에 오른 작품 가운데 나는 편혜영 씨의 <밤의 마침> 천운영씨의 <엄마도 아시다시피> 그리고 김애란 씨의 <침묵의 미래>를 주목하였다. 이 작품들은 최근 우리 소설이 빠져들고 있는 일상성의 깊은 늪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욕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보여준다.

 

김애란 씨의 <침묵의 미래>는 문명 비판을 위한 일종의 우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개념의 서사를 드러내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깊은 문명적 통찰과 사색을 보여주는 관념적인 수필처럼 읽힌다. 하지만 이 소설은 서사를 극단적으로 절제하면서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생성과 그 사멸의 과정을 인간 자신의 운명처럼 그려내고 있다. 내면적인 사유의 공간을 이야기의 무대 위로 끌어올려 놓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러한 작가의 시도 자체가 가지는 새로운 의미를 주목했다.

첫째는 이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문명적 시각이다. 지구상의 어떤 종족이 자기 언어를 상실하는 과정은 자기 문화와 역사와 그 존재의 정체성 자체가 소멸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거대한 문화적 제국주의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또다른 문화의 파괴를 의미한다. 지구상의 인종들이 사용하고 있는 6500여종의 언어 가운데 그 절반 이상이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소수 민족의 언어가 소멸되어 버리는 현상은 경제 운용의 통합, 정보 통신의 발달, 국제 교류의 증대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 과정 속에서 더욱 심화된다. 열세한 민족의 언어가 문화 경제적인 흡인력에 의해 우세한 민족의 문화에 휩쓸려 버리면서 그 사회적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언어 문화 파괴 현상은 어떤 공동체가 형성해온 유형무형의 역사적 산물들이 서로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붕괴되거나 변질될 수 있다는 단순한 지배 논리로 이해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지식 정보의 소통의 편의를 위해 궁벽한 자기 언어를 버리고 가장 편리한 영어를 쓰자는 식의 극단적인 기능주의적 발상이 가끔 우리나라에서조차도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문화주의적 경향을 지속적으로 방치할 경우, 심각한 인류사적 차원의 문화적 과제들을 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둘째는 작가가 시도하고 있는 관념적인 우화의 형식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인간이 언어를 상실하는 과정을 개인의 죽음과 연결시켜 보기도 하고, 언어 자체가 삶의 현장에서 떠나 제도적으로 보호되는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주목되는 것은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몇 살일까.’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몇 명일까.’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이다. 언어 자체가 스스로 자기 존재와 그 가치를 되묻고 자기 운명에 대해 질문하게 함으로써 언어의 사멸이라는 현상이 더욱 현대 문명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본질적인 문제가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문자언어가 음성언어를 대신하는 현상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주목된다. 소리 대신에 지금은 모두가 기계적 작동을 통해 문자를 애용한다. 음성언어가 드러내는 현장성과 그 상황성이 모두 제거된 채 문자라는 기호만이 기계를 통해 전달된다. 소리의 죽음이 가져오는 침묵의 세계는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면과 접촉의 단절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을 우화적 상징을 통해 그려낸다.

 

편혜영 씨의 <밤의 마침>은 개연성의 문제에 대한 소설적 재해석에 해당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성폭행범으로 지목되어 고통을 당해야 했던 한 사나이를 화자로 설정하여 피해 당사자인 소녀와의 대면하게 한다. 이러한 소설적 구도는 플롯이라는 이름으로 반복하여 문제삼아온 서사의 원리를 거부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낸다. 어떤 개연성을 말하기 위한 방식이 결코 필연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작가는 주목한다. 전통 서사의 기법에 기대고 있는 독자들은 과연 화자 자신이 가해자인가를 묻게 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질문법을 거부한다. 개연성이란 말 그대로 개연성일 뿐이다. 인간의 삶은 그러한 가능성 위에서 펼쳐지는 일상을 통해 성립된다.

 

천운영 씨의 <엄마도 아시다시피>는 ‘엄마의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과 태도를 그려낸다.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엄마의 죽음 이후 모성의 부재 공간을 메우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다소 과장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엄마의 죽음은 존재의 기반이 무너지는 듯한 엄청난 충격이 된다.

 

대상작으로 김애란 씨의 <침묵의 미래>를 선정하는 데에 적극 찬성했다. 이 작품을 관념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지 않고 우화적 형식을 빌어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는 작가적 상상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권영민)

문화의 시대

정치 혐오(嫌惡)의 정치론을 내세운 바 있는 영국의 허버트 리드는 “문화라는 것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눌러대서는 안된다. 그것은 밑에서부터 자라 올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문화의 자율성을 말할 때마다 리드가 말한 이 한 마디의 충고가 생각난다.

문화라는 것은 사실 특정 이념이나 가치에 얽매여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규정된 방향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변화하는 시대와 변화하는 인간의 삶에 다라 함께 변화하는, 살아있는 사회적 현상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인간 생활양식의 총체라고도 한다. 인간이 자신의 살메 근거하여 현실을 바라보고, 생을 영위하며, 우주만물을 대하는 일체의 행위가 문화를 형성한다고 한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것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며, 문화의 자율성이라는 것도 바로 여기서 연유되는 것이다.

요즘 경제의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크고 작은 갖가지 문화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그러나 차분하게 우리 문화의 진로를 모색해 볼 수 있는 반성적인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한류를 이야기하고 한식을 내세우는 요란스런 겉치레의 문화 행사들이 많았지만,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 문화를 내세우고 있는 요란스런 구호에 비해 오히려 문화 영역에 대한 관심과 정책적인 배려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문화부를 만들었는데, 문민정부 이후 거의 20년이 지났음에도 오히려 문화가 정치의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식의 주장이 당연히 제기되고 논의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숨겨진 또다른 문제성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는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우리 문화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은 되지 못한다. 문화를 정부가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며, 사람들의 요구와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와 요구와 행동이 모두 다르고, 그 가치 기준이 다른 것처럼, 문화의 양상도 달라지며, 그 방향도 일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인식 체계 전체를 문화의 범주 속에 넣을 수 있다면, 문화는 일종의 의미의 영역이면서도 상징적인 형식의 영역이 된다. 그리고 문화 속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가 규정되며, 문화를 통해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성립된다.

문화는 개인적인 욕구에서부터 사회적 질서에 대한 신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의 가치와 규범을 드러내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기능을 지닌다. 인간은 어느 시대에서나 그 시대의 문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오고 있다. 문화는 결국 모든 사회 현상과 불가분의 복합체이며, 그 사회의 역사적 조건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문화는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추구하여 왔다. 분열된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조작된 문화의 분열도 우리는 체험했고, 이념의 양극화 현상에 의해 빚어진 문화의 갈등도 경험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경제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에 새로운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문화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였다. 이것은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갈등이 문화적 통합을 기하지 못하고 공동체의 목표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점과도 직결된다.

우리 사회가 개방적인 국제 질서를 선택하고 다원화된 지식정보 사회로의 발전을 추구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발전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각성이 필요하다. 지난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겪어야 했던 모순과 갈등을 벗어나삶의 가치를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질적 향상을 꾀하기 위해서는 문화의 역동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권영민)

영어로 시조 짓기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데이빗 맥캔 교수는 요즘 ‘영어 시조(English Sijo)’에 몰두하고 있다. 단순한 개인적인 관심이나 취미활동을 넘어서서 ‘영어 시조 짓기’를 문학 교육 현장에 널리 확대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맥캔 교수는 이미 여러 권의 시집을 발간한 바 있는 시인이다. 오랫동안 한국문학을 연구하여 왔고 한국 시가들을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해오면서 그가 도달한 특이한 지점이 시조를 영어로 짓는 일이라는 것이 놀랍다. 맥캔 교수는 자신이 직접 지은 영어 시조들을 모아 만든 자가본 영어 시조집을 만들었다. 이 책이 영어 시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맥캔 교수는 시인으로서 시조라는 특이한 시적 형태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의 하버드대학 박사학위 논문이 한국 고전시가의 시적 형식 문제였다. 그는 시조에서 중시하고 있는 3장 분장의 형식을 주목한다. 시조의 기본적 형식은 3장 구성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각 장은 4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특한 율격적 규칙을 생성한다. 맥캔 교수는 이러한 형식적 특징에 근거하여 영어 시조의 틀을 창안하고 있다. 맥캔 교수가 시험하고 있는 영어 시조는 기본적으로 3장(연) 구성이며 각장 2행의 짧은 형식이다. 그는 한국어의 통사 구조가 의미 구조와 일치하도록 배열되고 있는 시조 형식의 특징을 그대로 영어에 적용한다. 그리고 여기에 시조의 독특한 율격 구조를 살려낼 수 있는 리듬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맥캔 교수는 영어 시조의 새로운 창작법이 바로 이러한 구상을 거쳐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를 널리 보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중학생들은 영어 시간에 짧은 글짓기 연습을 많이 한다. 영어 선생님은 그것을 ‘영어 하이쿠(English Haiku)’라고 부른다. ‘영어 하이쿠’는 영어 단어 몇 개를 골라 감각적인 문장 하나를 짤막하게 만드는 일에서 출발한다. 선생님들은 이 짧은 문장 짓기를 영어 단문(短文) 짓기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영어 하이쿠’라고 한다. ‘하이쿠(俳句)’는 일본 고유의 단시(短詩)로서, ‘5 • 7 • 5’의 3구로 구성되며 전체 길이가 17음절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영어 하이쿠’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영어권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외국 사람들에게 영어로 ‘하이쿠’를 짓는 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영어 하이쿠’가 널리 알려져서 미국의 중학교 교실에서도 ‘영어 하이쿠’라는 것을 가르친다.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센스있게 단어를 골라 문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다. ‘영어 하이쿠’는 지금도 인기가 많다.

 

맥캔 교수의 영어 시조 짓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문화의 세계화라는 말을 하면서도 번역 이외에 별다른 방식을 찾지 못했던 점을 놓고 본다면, 더욱 주목되는 새로운 발견이다. 영어 시조 짓기는 번역을 통해서만 한국문학을 접했던 외국의 독자들이 직접적으로 한국문학의 정신을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맥캔 교수는 영어 시조 짓기를 한국문학 교육의 현장에서 널리 확대하기 위해 올해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에 나와 영어 시조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할 예정이다. 앞으로 ‘영어 시조 (English Sijo)’라는 말이 미국의 각급 학교 영어 시간에 자연스럽게 사용될 정도로 ‘영어 시조 짓기’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한국문학의 뿌리에 해당하는 시조가 영어를 통해서 그 문학적 생명력을 더욱 인정받게 된다면 얼마나 장한 일인가? (권영민)

일본의 문학박물관

일본 사람들은 일본 문학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사랑만이 아니라 자부심도 크다. 일본의 전통적인 문학 형태인 하이쿠는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중학교 영어 시간에는 영어로 하이쿠 짓기가 유행이다. 영작문 연습에 하이쿠를 활용하도록 고안할 정도로 일본인들은 자기네 문학의 소개에 열을 올린다. 미국의 중요 도시에 자리잡고 있는 일본문화관에 가보면 영어 하이꾸 짓기 대회가 자주 열리고 있다.

일본인들은 일본 문학 자료를 잘 보관하고 있다. 일본 동경의 일본 근대문학관은 일본 근대문학의 모든 자료를 한자리에 보존 정리하여 놓은 유명한 문학 박물관이다. 이 근대문학관이 발족한 것은 동경 올림픽 직전인 1963년이다. 일본 근대문학관이 1967년 본관 개관에 이르기까지 힘을 기울인 일은 자료의 수집과 정리 작업이었다. 자료 수집에 가장 커다란 도움을 준 것은 수많은 문학관계 도서를 출판한 유서깊은 출판사들이었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이 근대문학관에 4만여권의 도서와 잡지를 기증하였고, 일본의 유명한 문인들이 이에 호응하였다. 작고한 문인들의 경우는 그 유족들이 장서와 유고 유품들을 이곳에 무상으로 기증하였고, 현역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들을 이 근대문학관계 자료실에 기증하여, 근대문학관계 자료의 수집 정리 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일본근대문학관은 그 설립 목적 자체가 근대문학관계 자료 일체를 수집 정리한다는 데에 있었기 때문에, 자료수집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와 같은 취지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근대문학 또는 현대문학 관계 자료를 중심으로 예술 전반, 인문사회과학 연구분야의 관련자료가 모두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도서, 잡지, 신문 등의 일반 자료는 물론이고 문학관계 원고, 서간, 필묵, 일기, 노트, 유품 등의 특수자료까지 포함하여 일본근대문학관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는 모두 90만점이 넘는다.

일본 근대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요자료 가운데에는 아쿠다가와라든지 가와바다 야스나리 등의 개인문고가 유명하며, 많은 특수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특히 일본에서 간행된 문학예술관계 잡지 및 동인지는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다. 이들 자료는 일본 근대문학관이 운영지침으로 내세우고 있는 보존제일주의 원칙에 따라 매우 엄격하게 정리 보존되고 있는데, 미정리된 특수자료 이외의 모든 자료는 항상 일반에게 공개 열람할 수 있게 하고, 복사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일본 근대문학관의 자료 보관정리 가운데에서 가장 주목되고 있는 작업은 근대문학 잡지의 복각판 간행작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근대문학관계 자료 가운데 일제 식민지시대에 발간되었던 「창조」, 「조선문단」, 「문장」, 「인문평론」 등의 중요 잡지의 영인본이 간행되어 연구자들에게도 보급된 적이 있지만, 대부분이 영세한 출판업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인본의 상태가 좋지 않고, 중간에 빠졌거나 자료를 찾지 못한 결본을 채워 넣지 않아 제대로 완간본을 내지 못한 예가 적지 않다. 일본근대문학관은 「문예시대(文藝時代)」, 「문예전선(文藝戰線)」, 「프롤레타리아문학(プロレタリア文學)」, 「근대문학(近代文學)」 등의 중요잡지들의 결호를 찾아내고 원본의 상태와 거의 비슷하게 복각본을 제작 보급하여 군소 도서관들이 모두 이 잡지들의 복각본을 소장할 수 있게 하였다.

1963년 일본근대문학관의 창립기념 <근대문학전(近代文學展)>은 일본근대문학사와 실증적인 자료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유명한 전시회였고, 1982년 창립 20주년 기념의 <근대문학전>도 역시 문학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전시회로 성대하게 개최된 바 있다. 이 전시홀과는 별도로 만들어진 특별전시실은 노벨문학상으로 유명한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다. 이 기념관은 매년 4-5월과 10-11월 사이에 일반인에게 유료로 개방하고 있다.

일본 요꼬하마 근교에도 유명한 가나가와 현(神奈川縣) 근대문학관이 있다. 1982년에 개관한 이 근대문학관은 모든 운영 경비를 지방 자치단체인 현(縣)에서 부담하고 있다. 가나가와 현은 이른바 예향으로서 일본의 유명문인들이 주로 기거했던 곳이다.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생애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지냈고, 일본근대문학사의 중요 인물들 가운데 이 지방에 연고가 깊은 사람들이 많다. 가나가와 현에서는 자기 고장의 특성을 살려서 이러한 문학인들의 자료를 폭넓게 수집‧정리하고 일본근대문학관계 자료를 한데 모아 보존‧정리‧열람할 수 있도록 근대문학관을 설립하였다.

이 근대문학관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것은 최신식의 문학관 건물과 그 내부시설이다. 지하 3층 지상 2층의 근대문학관은 연건평 5,400m2나 되는 대규모 건축으로 지진을 대비한 특수설계와 화재방지시설 등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재 수장하고 있는 자료 55만점을 보존하기 위해 전동식 서가를 완비하고 있으며, 특수자료의 보존을 위한 자료실은 별도의 목조서가와 보존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근대문학관은 넓은 원형의 전시실이 인상적이다. 전시자료는 유명 문인들의 자필원고와 서간, 그리고 유물이 주종을 이룬다. 영상자료관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어서 문학관계 자료의 입체적인 관람이 가능하다.

이곳 근대문학관 설치되어 있는 특별자료실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개인 기념관이다.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의 설립에 기여한 문인들의 저서와 소장도서, 그리고 저서 유품 등을 생존시의 모습대로 비치하여 진열해 놓고 있다. 원형의 탁자 위에 펜과 필통이 놓여 있고 한두 권의 책이 펼쳐 있다. 아직도 채워지지 않고 있는 몇개의 기념관은 앞으로 이 기념관에 모셔질 후대 문인들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우리나라에도 지방자치단체들이 여기저기 문학관이니 박물관을 꾸미고 있다. 강원도 봉평은 소설가 이효석을 기념하는 이효석문학관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경북 경주에 건립한 동리목월문학관은 불국사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충북 옥천에는 시인 정지용의 <향수>의 정취를 살려 정지용문학관이 서 있고, 강원도 인제의 백담사 계곡에는 한용운을 기리는 만해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전북 부안에는 서정주의 시작활동을 기념하는 미당시문학관이 들어섰으며, 강원도 원주는 박경리의 <토지>와 함께 토지문학관이 유명하다. 근래에는 전남 벌교에 조정래의 태백산맥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전북 김제에는 이미 아리랑문학관도 세워졌다. 서울에는 한국현대문학관이 있고 영인문학관이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도 문학박물관이나 특정 문인의 문학활동을 기리기 위한 문학관이 점차 늘고 있다.

이 문학관들은 매년 각종의 문화행사를 독자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지역 문화 축제의 중심지로 자기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주민 생활과 직결되는 여러 가지 문화 프로그램의 개발로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도 높이고 생활 자체의 문화적 향상도 꾀하고 있다. 물론 이들 가운데에는 문학관의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한 채 그 유지와 운영을 걱정하는 곳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도의 시행 이후 문화의 지역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국 각 지역에 이러한 문학 기념관들이 들어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한국문학의 전모를 훑어볼 수 있는 체계화된 종합 문학박물관이 없다. 우리 문학의 오랜 전통과 그 정신적인 가치를 생각한다면, 이런 문학박물관 하나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러시아,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은 국가에서 건립 운영하는 문학박물관이 적지 않다. 일본의 경우에는 도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1960년대 후반부터 문학 관련 자료를 대대적으로 수합하고 1970년대 초기에 도쿄에 국립 일본근대문학관을 건립하였다. 여기에 가면 일본 근대문학의 중요 자료를 대부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전문 연구자들이 이곳을 즐겨 이용한다. 해마다 계절에 맞춰 이루어지는 각종 전시회 강연회 등은 수많은 문학애호가들의 참여로 성황을 이룬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국립 문학박물관은 고사하고, 문학 관련 자료들을 한 자리에 모아둔 자료관이나 도서관도 변변한 것이 없다. 한국 최대의 국립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조차도 제대로 문학 자료를 갖추어 놓지 못하고 있으며, 규모가 크다고 하는 서울대학교 도서관도 엉성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문학의 긴 역사에 비해 그 자료를 수집하여 보존하는 일이 이처럼 초라한 것을 어디에 비기기도 부끄럽다. 개화 이후의 근대문학 관계 자료에만 한정하더라도 일본 식민지 시대에 간행된 초간본 소설집이나 시집이 모두 한 자리에 온전하게 보관된 곳이 없다. 문학작품을 많이 수록한 중요 잡지도 낙질된 것을 메우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1920년대에 발간했던 <신민> <조선지광> <비판> 등과 같은 잡지는 상당기간 동안 속간된 것들인데 그 전모를 전혀 알 길이 없다. 신문의 경우는 그 보존 상태가 더욱 형편없다. 개화 초기의 신문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었던 「제국신문」은 전체가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 못한 데다 남아있는 것도 현재의 보관 상태로는 거의 열람이 불가능하다.

한국문학의 모든 관련 자료를 수집 정리 보존 연구할 수 있는 문학박물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국의 경제 규모나 문화적 위상으로 볼 때 거기에 어울리는 문학박물관이나 자료관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문학의 정신과 그 전통을 제대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기반의 조성을 위해서도 종합문학 박물관이 필요하다. 우리 언어로 만들어낸 가장 소중한 정신이 문학 속에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