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오른 우리말 단어들

옥스퍼드영어사전에 오른 우리말 단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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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BBC 방송은 최근 ‘옥스퍼드영어사전(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이하 OED로 표시함)에 한국어 단어 26개 추가된 이유’라는 제목의 짤막한 뉴스를 내보냈다. 이 뉴스는 최근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오징어 게임’과 함께 방탄소년단의 세계적인 히트곡인 버터(Butter)나 다이나마이트(Dynamite)를 먼저 소개한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이들의 삶에 어떤 종류의 한국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BBC 방송은 지금 한국의 영향력이 OED에까지 미치고 있다면서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OED 최신판에 한국어에서 유래한 26개의 새로운 단어가 추가되었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이 뉴스는 “우리 모두는 한류의 정점을 타고 있다.” 밝힌 OED 당국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새로 추가된 한국어에서 비롯된 단어를 소개한다. 이번에 추가된 한국어 단어는 K푸드라고 지칭되는 한국 음식 가운데 ‘김밥’ ‘불고기’ ‘잡채’ 등이 있고 K필름, K드라마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오징어 게임’ ‘기생충’과 함께 BTS의 세계적 명성에 힘입은 한국 대중문화에 관한 단어가 많다. 예컨대 ‘한류’라는 단어는 물론 ‘먹방’이나 ‘만화’ 같은 말이 그것이다. 이 단어들은 대개 한류를 타고 동남아시아에 널리 확산되면서 영어의 바다에 한류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은 현재 60만 개 정도의 단어를 표제어로 등재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영어사전이다. OED 편찬부에서는 해마다 전 세계에 등장하는 새로운 영어 단어들을 소개하기 위해 ‘올해의 단어’라는 이름으로 보고서를 내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신조어는 물론 세계 각국의 언어 가운데 영어로 표기되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외래어(또는 외국어)를 선별하여 사전에 등재할 것으로 예고한다. 이 같은 작업은 시대 상황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언어 환경을 즉각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OED의 개방적 노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어 가운데 ‘김치(kimchi)’라든지 ‘한복(hanbok)’ 등과 같은 말은 벌써 이 보고서를 통해 소개된 후 사전의 표제어로 등재된 바 있다. 이번에 발표한 ‘2020년의 단어’라는 보고서는 코로나19 펜더믹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사회변화 등을 주목하면서 새로운 표제어로 사전에 올리는 1650개의 새 단어를 소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어에서 온 26개 단어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을 블로그에 올려놓고 있는데, BBC 뉴스가 이를 크게 소개하면서 화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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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홈페이지 블로그에 올린 한국어에 관한 두 편의 특별 보고는 ‘한국어에서 온 단어 소개’라는 글과 ‘대박! OED가 K-업데이트를 취하다.’라는 글이다. 새로운 표제어가 된 단어를 소개하면서 한국어 관련 글을 두 편이나 발표한 것이 특이하다. ‘한국어에서 온 단어 소개’라는 글에서는 이번에 새로 추가된 표제어 가운데 한국어에서 온 말의 성격을 개괄한다. 한국(Korea)이란 말은 17세기 영어 문헌 속에서 처음 발견된다. 하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과 관련된 단어가 표제어로 등재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부터 최근 사이의 일이다. 한국어에서 온 새로운 단어들은 ‘한류’라고 일컬어지는 한국의 대중음악,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그리고 음식과 패션 등의 확산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에서 불기 시작한 한류 형상은 소셜 미디어와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서 다양한 형태로 그 영향력을 확대했고 2010년대 이후에는 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이번 OED에 새로 등재된 한국어 단어는 대부분 한국 대중문화의 다양한 요소를 나타내는 말들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어와 영어가 특이한 형태로 결합된 ‘PC방’ ‘스킨쉽’ 같은 말도 포함되어 있다.

또 하나의 글은 그 제목을 ‘대박!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K-업데이트를 취하다.’라고 붙였다. ‘대박’이라는 한국의 최신 유행어를 직접 사용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요즘 한국의 대중문화가 국제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K스타일과 같이 모든 영역에 ‘K(한국의 약자)’라는 접두어가 붙는 말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기생충’은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와 같은 K팝 그룹은 전세계에 걸쳐 수많은 열성 팬을 보유한 글로벌 슈퍼스타이다. 한국에서 오는 뷰티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으며 한국 스타일은 이제 ‘쿨한 것’의 전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세계인들이 한류의 정점을 달리고 있으며, 이는 영화, 음악, 패션뿐만 아니라 영어 자체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한국과 관련된 단어 가운데 OED에 등재된 가장 오래된 말은 ‘Korean’이다. 1933년 처음 등재되었다. 국가명 또는 지명으로서의 ‘Korea’는 이미 17세기 초부터 영어 문헌 속에 등장했던 것인데 뒤에 다시 ‘Korea’와 ‘Korean’을 구별하여 표시하게 되었다. 수 세기가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Korean’이라는 말은 ‘K-’ 로 축약되면서 다른 단어와 결합하여 한국 및 한국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새로운 명사를 만들었다. 예를 들자면 ‘K-pop’이라는 말이 1999년 빌보드 잡지에 등장했는데 이 말은 2016년 OED에 등재되었다. ‘K-drama’라는 말도 OED에 새로 추가되었는데 동남아에 유행했던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 드라마가 큰 영향을 미쳤다. K-pop과 K-드라마의 성공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의 상승을 부채질하였다. 이제 막 OED에 등재된 ‘한류(hallyu)’라는 말은 이와 같은 한국 문화의 확산 현상을 말하는 ‘Korean wave’(한국 바람 또는 한국 물결)을 뜻한다. 2001년에 처음 등장한 이 말은 한국의 대중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자체를 지칭하는 영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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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OED 표제어로 추가된 한국어에서 온 말 가운데에는 한국 음식과 관련된 것이 많다. 각 단어와 그 개념을 보면, ‘반찬(banchan)’이라는 말은 1938년 영어 문헌에 처음 나타났으며 한국인의 식사에서 밥과 함께 곁들이는 음식이다. ‘불고기(bulgogi)’는 1958년 문헌에서 처음 확인되었는데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양념에 재운 다음 굽거나 볶은 요리다. ‘동치미(dongchimi)’는 1962년 영어 문헌에서 처음 확인되는데 무로 만든 김치의 일종이다. ‘갈비(galbi)’는 1958년 영어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소의 갈비를 토막 내어 간장, 마늘, 설탕에 재웠다가 구워내는 요리인데 때로는 식탁에서 그릴에 굽기도 한다. ‘잡채(japchae)’는 1955년에 영어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국수를 야채와 여러 재료를 섞어 함께 볶은 요리로 간장과 참기름으로 맛을 낸다. ‘김밥(kimbap)’은 1966년 영어 문헌에서 처음 확인된다. 밥과 다른 재료를 김 한 장에 싸서 한입 크기로 자른 한국 요리이다. ‘삼겹살(samgyeopsal)’이라는 말은 영어 문헌에 1993년에 처음 등장한다. 얇게 썬 삼겹살을 식탁의 그릴에서 굽도록 날 것으로 제공하는 한국 요리이다. 가장 상징적인 한국 요리로 널리 알려진 ‘김치(kimchi)’는 이미 1976년 OED에 등재되었던 것인데 1888년 영어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그 내용을 수정 보완하였다. 이번에 새로 등재한 특이한 음식 이름은 ‘치맥(chimaek)’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2012년 영어 문헌에서 볼 수 있는데 영어의 ‘치킨’과 한국어 ‘맥주’를 축약한 것이며, 프라이드치킨과 맥주를 곁들여 먹는 것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이 말은 2014년 상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한국 최고의 여배우가 등장한 이 판타지 로맨스 코미디에서 주인공은 끊임없이 ‘치맥’을 먹고 싶어 했다. 이 드라마가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치맥’이라는 한국식 프라이드치킨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한국 문화의 오래된 전통과 연관된 단어도 이번 업데이트에 포함되었다. ‘한복(hanbok)’은 1952년 영어 문헌에서 처음 확인되었는데 남성과 여성 모두 착용하는 한국의 전통 의상이다. 한국어를 기록하는 문자인 ‘한글(hangul)’도 이번에 표제어로 등재했다. 1935년 처음 영어 문헌에 등장한다. 1896년부터 영어 문헌에 등장한 바 있는 ‘시조(sijo)’는 한국 고전음악의 창곡이면서 동시에 대표적인 운문 형태이다. ‘태권도(taekwondo)’는 1962년 처음으로 영어 문헌에 등장한 말이다. 한국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무술이다. ‘만화(manhwa)’라는 한국말도 이번에 새로 등재된 말이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으면서 청중과 대화하는 동영상을 뜻하는 ‘먹방(mukbang)’은 2013년에 처음 영어 문헌에 등장했는데 이번에 새로 OED에 등재되었다.

한국의 생활문화에서 나온 말 가운데에도 OED에 새로 등재된 단어가 있다. ‘애교 (aegyo)’라는 단어는 1997년 영어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이 말은 일본어 kawaii(이쁘다) 와 비슷한 의미지만 한국 특유의 귀여움 또는 매력을 뜻한다. 2009년 영어 문헌에 처음 등장한 ‘대박(daebak)’이라는 말은 영어의 ‘fantastic!(굉장하다!)’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열광적 태도를 나타내는 감탄 어구이다. 이뿐 아니라 존경의 표현과 애정 표현의 형태로 널리 사용되는 한국어 단어도 포함되어 있다. ‘누나(noona)’라는 말은 1957년 영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데 남성 화자가 자기 누나나 나이 많은 여자 친구를 언급할 때 사용한다. ‘오빠(oppa)’는 1963년 영어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이 말은 여성 화자가 그녀의 오빠를 말하기도 하지만, 나이 많은 남자 친구 또는 남자 친구를 언급할 때 쓴다. 그리고 ‘언니(unni)’는 1997년 영어 문헌에서 처음 확인되는데 여성 화자가 언니나 나이 많은 여자 친구를 언급할 때 사용한다. 그러나 ‘오빠’와 ‘언니’라는 말은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사용될 때 새로운 의미 변화를 겪고 있다. K팝 및 K드라마의 팬덤에서 ‘언니’는 그들이 존경하는 한국 여배우 또는 가수를 언급하는 데 사용한다. 이와 반대로 ‘오빠’는 되는 매력적인 한국 남성, 특히 특히 유명한 배우 또는 가수를 말한다.

이 밖에도 한국어에서 영어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변형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만들어낸 말도 있다. 예를 들어 감탄사 ‘화이팅(fighting!)’은 영어의 뜻과는 달리 ‘나가자’ ‘잘 해보자’와 같이 격려, 선동 또는 지지를 표현하는 데 사용한다. ‘피시방(pc bang)’은 1999년 영어 문헌에 등장하는데 개인용 컴퓨터를 뜻하는 영어 약자 ‘PC’에 한국어 ‘방’을 합쳐놓은 말이다. 여러 대의 컴퓨터를 설치해 놓고 유료 인터넷에 대한 액세스를 제공하는 장소이다. 대개는 게임용으로 이용된다. ‘스킨쉽(skinship)’이라는 말은 1966년 영어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이 말은 단어는 ‘skin’과 ‘kinship’이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이지만 영어에는 없는 말이다. 부모와 자식 또는 연인이나 친구 사이의 만지거나 밀접한 신체 접촉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며 애정을 표현하거나 정서적 유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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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OED의 새로운 표제어로 등재한 26개의 한국어 단어를 보면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드러난다. 내가 가장 먼저 지목하고 싶은 것은 OED가 한국어 단어를 새로운 표제어로 등재하면서 채택한 로마자 표기법이다.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는 국립 국어원에서 제정한 ‘한글 로마자 표기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현재 미국 의회도서관을 비롯하여 미국 전역의 대학 도서관에서 지키고 있는 ‘맥큔-라이샤워 로마자 표기법 (McCune-Reischauer romanization system)’을 따를 것인지가 계속 문제가 되어 왔다. 이 방법은 한국어 소리대로 로마자로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ㄱ, ㅂ, ㄷ 소리를 K, P, T로 표기하며 영어에 없는 모음 ‘-’나 ‘ㅓ’의 표기에 첨자를 쓴다. 한국 정부는 국립 국어원의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한글 로마자 표기법’은 미국에서 통하지 않는다. 미국은 자기네들이 정한 ‘맥큔-라이샤워 방법’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OED는 한국어 단어를 국립 국어원이 제정한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대로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어 단어의 추가 등재에 OED 편집자가 한국 국립 국어원 (NIKL)의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표준국어대사전’을 참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에서도 설명한 대로 OED에 한국 음식에 관한 말들이 새로운 표제어로 등재되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그동안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인데 그 성과가 OED를 통해 인정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김치’에 대해 서술 내용을 새롭게 수정하고 1888년 영어 문헌에 이 말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추가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최근 중국에서 ‘파오차이(泡菜)’가 김치의 국제표준인 것처럼 내세우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새롭게 ‘신치(辛奇)’를 쓰기로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OED의 ‘김치(kimchi)’라는 표기를 잘 지키고 이를 널리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문학의 양식 가운데 ‘시조(sijo)’라는 용어가 이번 OED의 표제어가 된 것도 반가운 일이다. 한국 전통 시가를 대표하는 ‘시조’라는 문학 양식은 세계 각국의 시와 시학을 종합 정리해 놓은 ‘프린스턴시학대사전 (The Princeton Encyclopedia of Poetry and Poetics)’에 1990년대 초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시 형식으로 소개된 바 있다. ‘시조’가 OED의 표제어로 등재된 것은 ‘시조’에 대한 이해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데이빗 맥캔 교수는 근래 ‘영어 시조(English Sijo) 짓기’에 몰두하고 있다. 단순한 개인적인 관심이나 취미활동을 넘어서서 ‘영어 시조 짓기’를 문학 교육 현장에 널리 확대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맥캔 교수는 이미 여러 권의 시집을 발간한 바 있는 시인이다. 오랫동안 한국문학을 연구하여 왔고 한국 시가를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해오면서 그가 도달한 특이한 지점이 시조를 영어로 짓는 일이라는 것이 놀랍다. 맥캔 교수는 자신이 직접 지은 영어 시조들을 모아 만든 자가본 영어 시조집을 만들기도 했다. 맥캔 교수의 영어 시조 짓기는 시작에 불과하지만 번역을 통해 한국문학을 접했던 영어권 독자들이 직접 이에 참여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정신을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이 될 것이다.

한국문화의 세계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류’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세계적 현상이 되어 확산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문화의 다양한 컨텐츠가 세계인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음을 뜻한다. 그 바탕에 한국어가 깔려 있다. 문화 콘텐츠가 그 언어와 결합하여 함께 수용되면 그것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의미 있는 문화적 파급력을 발휘한다.

 

 

 

 

 

재미 예술가 차학경의 삶과 예술

재미 예술가 차학경의 삶과 예술

 

간과되었던 사건

 

최근 미국의 뉴욕타임스(NYT)가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이 창간된 1851년 이래로 신문에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던 주목할 만한 인물의 죽음을 재조명하는 특별 시리즈 ‘간과되었던 일 Overlooked’에 소개된 내용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일찍이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당하면서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유관순 열사의 삶과 죽음을 다룬 적이 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최초로 이 사실을 공개하며 세계 무대에 나서서 일본군의 잔악상을 고발한 김학순 여사의 처절한 삶과 죽음을 새롭게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에 다루어진 인물은 1982년 젊은 나이에 연쇄 살인범에게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 예술가 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이다. 이 기사에는 ‘정체성을 탐구한 예술가이자 작가 차학경’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차학경은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로서 국내에도 그 존재가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1982년 목숨을 잃은 차학경이 생전에 추구했던 독특한 예술세계가 오늘의 문학과 개념미술의 영역에서 아시아계의 활동을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전하고 있다. 특히 지금부터 40년 전인 1982년에 <딕테 (Dictee)>와 같은 작품을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차학경은 오늘을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고 있다고 신문은 강조한다. 뉴욕타임스는 차학경의 생애를 요약하면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실험적 문체로 담아 후대 아시아계 작가와 예술가, 연구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다시 평가하고자 한다.

차학경은 1951년 부산 태생으로 11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학(UC Berkeley)에서 비교문학과 예술을 전공했고 프랑스에서 영화 제작과 이론을 공부한 후 다양한 퍼포먼스와 함께 사진과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스스로 다양하고도 특이한 퍼포먼스를 시도하여 의미 있는 작품을 남겼다. <불모의 동굴 뮤트>(1974) 는 문명의 탄생 또는 문자(한글)의 발명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행위예술이었다고 생각된다. 8분짜리 흑백영화인 <Mouth to Mouth>(1975)는 한글의 글자 모양과 입의 이미지를 결합하여 ‘표음문자’로서의 한글의 특성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Passages Paysages>(1978) 는 세 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비디오 아트로서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로 이루어진 내레이션을 통해 가족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영화 작업으로는 1979년 시도했던 장편 영화 <몽골의 하얀 먼지>이 있지만 대본과 함께 미완의 영화 일부가 남아 있다.

차학경은 자신의 예술을 위해 1980년 뉴욕으로 이주했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영화학자와 아방가르드 영화 제작자의 에세이 모음집인 <Apparatus> 를 1981년에 편집했다. 그리고 1982년 뉴욕에서 사진작가 리처드 반스와 결혼했다. 그녀의 대표작인 <딕테>는 그해 9월에 출판되었는데 뉴욕의 독립서점에서 수집한 베스트셀러 목록에 5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차학경은 <딕테>를 출간한 직후 1982년 11월 뉴욕의 한 건물 주차장에서 경비원에게 성폭행당한 뒤 목숨을 잃었다. 결혼한 지 6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작업실을 찾아갔다가 늦은 밤 백인 관리인에 의해 지하실로 끌려가 강간, 살해된 후 근처 주차장에 유기되었다.

 

딕테- ‘받아쓰기’로서의 역사

 

차학경의 예술적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그녀가 남긴 <딕테>이다. <딕테>는 작가의 삶과 역사 속 이야기를 전위적인 문체로 엮은 작품이다. 작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은 잔 다르크, 유관순 열사, 그리고 만주에서 태어나 중국과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가 서로 얽혀 있다. 주로 영어로 쓰고 있지만 한국어와 프랑스어도 번역 없이 섞여 있어 난해한 글로 꼽히기도 한다.

<딕테>라는 작품의 제목은 ‘받아쓰기’라는 특별한 글쓰기 방식을 의미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복합적이면서 이중적 성격이 강하다. 받아쓰기의 행위는 모든 글쓰기의 출발이면서 동시에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의 본질적 속성을 그대로 말해준다. 일반적으로 ‘받아쓰기’라는 행위에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글쓰기의 주체적 의지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말해주는 자가 언제가 우위에 있고 그것을 받아쓰는 자는 언제나 말하는 대로 ‘받아쓰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에서 글쓰기가 갖는 주체의 수동성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받아쓰기’의 행위는 인류의 역사 자체가 가지는 다양한 전승의 의미를 포함한다. 신화는 일종의 ‘받아쓰기’를 통해 후대에 전승된다. 그것은 단순한 수동적 글쓰기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행동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신화는 인간 사유의 근원적인 상징이 되는 것이며 인간의 모든 글쓰기는 결국 이 신화를 ‘받아쓰기’하는 데에서 생겨난 다양한 이야기의 변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차학경의 <딕테>는 일반 독자에 매우 낯선 양식이다.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불려지기는 하지만 소설이라는 양식이 지켜온 서사적 문법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소설이라는 양식이 아니고서는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언어 표현을 서로 뒤섞어 쓰고 있기 때문이다. <딕테>를 읽는 또는 보는 독자들은 이 작품에서 서사의 규칙이나 스토리의 전개 방식에서 얻게 되는 흥미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만큼 이 작품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서사의 문법과는 전혀 다른 전위적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 <딕테>가 보여주는 파격적 실험은 양식의 경계를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의 글쓰기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새로움’에서 그 특징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는 서술자의 언어적 진술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진(이미지)이 곁들여져 있고, 다양한 기록과 문헌, 시와 소설 등에서 인용된 타자의 텍스트가 포함된다. 그리고 언어적 진술 자체가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영어와 불어로 된 텍스트를 섞어놓기도 한다. 이 혼성의 텍스트는 자체내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면서 하나의 상호텍스트적 공간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신화의 세계에서부터 20세기 후반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된 이야기를 차학경의 스타일로 ‘받아쓰기’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딕테>에서 독자들이 당혹해 할 수밖에 없는 특징은 목소리가 다른 화자의 진술이 서로 뒤섞인 다양한 삽화가 어떤 규칙 없이 결합되고 있는 점이다. 그러므로 스토리를 지닌 어떤 내용의 서사적 연결이나 의미의 맥락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여기저기에 다양한 사진이 끼어들어 읽기를 방해한다. 사진은 그 텍스트 자체가 특징 시간에 정지된 이미지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사진 속의 이미지는 침묵이면서 동시에 침묵하는 언어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는 때로는 몽타주의 기법으로 때로는 콜라주의 파격처럼 서로 겹치는 메시지와 이미지의 착종으로 서사 공간 자체를 입체화한다.

이 작품에서 서술의 기본적인 바탕에는 자전적 요소가 작동한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인물의 생애 전체를 다룬 내용만을 담아낸 것이 아니다. 여기서 자전적이라는 것은 서술 내용이 부분적으로 어떤 인물의 전기를 기술하고 어떤 경우는 사적인 기록에 해당하는 일기를 공개하고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일부는 특정의 집단이 살아온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는 민족지로서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한다. 독자는 이 책을 한 여성의 자서전으로 읽을 수 있지만, 작가 차학경이 만들어낸 다층적인 텍스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페이지 순서대로 따라가는 단순한 독법으로는 텍스트의 미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말하자면 이 작품의 텍스트는 ‘읽는’ 방식으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텍스트에 배치된 잡종의 텍스트를 한눈으로 ‘보는’ 시각화의 방법으로 텍스트 구조를 살펴야 한다. 여기서 ‘보는’ 방식이란 이 작품의 텍스트 자체가 드러내고자 하는 지배적 인상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 작품은 ‘읽는 책’으로서의 성격만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책’으로서의 특징도 감안해야 한다. 차학경은 ‘보는 책’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딕테>의 텍스트를 시각적 구조로 입체화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거기에 담아내고자 한다. 이러한 전위적 실험은 그가 주장하고 있는 ‘받아쓰기’라는 것이 텍스트를 언어 문자의 배열로만 구성하는 일률적 방식이 아님을 보여준다. <딕테>는 텍스트 자체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문자 배열, 타이포그래피의 기법에 따른 공간의 창조, 충격적인 이미지의 파격적 배치 등을 통해 말하는 것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을 새롭게 조합하기도 한다.

차학경이 의도적으로 배치해 놓은 사진들은 말하고자 하는 모든 사실을 단순화하여 묵언(黙言)의 상태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진들은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시각화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언어적 진술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슴 터지는 고통,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절망감,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은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공간적 거리를 뛰어넘기 위한 시각적 기호이다. 그 아픔의 크기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너무 많아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학경은 이런 경우 언어적 진술을 포기하고 사진으로 대체한다. 그러므로 이 사진들은 단순한 피사체를 제시하면서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보여주고 모든 것을 전부 말해준다. 시각적 이미지로 전달되는 사진은 그 하나의 이미지가 어떤 말보다도 깊은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딕테>는 고대 희랍의 뮤즈들을 불러내어 텍스트의 내용을 구성한다. 여기에 내세워진 것이 희랍 신화 속에 등장하는 ‘클리오’ ‘칼리오페’ ‘우라니아’ ‘메포메네’ ‘에라토’ ‘일레테레’ ‘탈리아’ ‘테르프시코레’ ‘폴림니아’ 등의 여신이다. 이들은 신화 속에서 모두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창조한 위대한 문학 음악 등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만이 지닌 짤막한 이야기 대신에 인간의 위대한 예술과 그 창의성 뒤에 숨은 영감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차학경의 <딕테>는 뮤즈의 여신들을 덧씌운 역사 속의 인물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이 작품에 담긴 이야기는 희랍 신화의 뮤즈에 그 발단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서사적 구조의 시간과 공간을 역사적으로 환원하면 차학경이 태어나고 자랐던 한반도를 중심으로 그 내용이 전개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시기를 구획한다면 <딕테>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1910-1945)와 한국의 해방과 민족분단과 전쟁(1945-1953)이라는 역사적 단계를 교묘하게 짜맞추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적 저항운동으로 3.1운동을 그려내면서 거기 증언대에 유관순을 불러세운다. 일본의 강압적인 지배정책으로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빼앗기고 일본말을 받아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은 패전국이 되었고 한국은 해방을 맞이한다. 그러나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된 채 전쟁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역사의 고통은 <딕테>에서 때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또는 어머니의 탄식 속에서 재구성되고 지속적으로 받아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된다.

 

죽은 뒤에 예술가로 주목받는 차학경

 

차학경의 이름은 그녀가 비극적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후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꿈꾸며 새로운 예술을 갈망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 호명되기 시작했다. 미국 버클리대학(UC Berkeley)의 버클리미술관(BAMPFA; Berkeley Art Museum & Pacific Film Archive)에서는 1992년부터 ‘차학경 아카이브’를 별도로 설치하고 대학 시절부터 유별난 천재성을 보여주었던 이 젊은 예술가의 모든 자료와 기록을 수집 정리 보관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2001년부터 차학경 순회 전시회를 세계 가지에서 개최해 오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관 중 하나로 뉴욕에 자리잡고 있는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 지나 1993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차학경 회고전’을 개최했다. 휘트니미술관에서 한국계가 개인 전시회를 한 것은 백남준을 제외하고는 없었던 일이다. 차학경 특별전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안토니 타피에스 미술관(Fundacio Antoni Tapies)에서 열렸고 한국에서도 몇 차례 작은 규모의 개인전이 개최된 바 있다.

차학경의 <딕테>는 그녀의 10주기에 즈음하여 재판이 나왔고 버클리대학의 출판부에서 2001년에 재출판된 후부터는 영어권의 많은 대학에서 강의용 교재로 쓰일 만큼 주요 저작물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버클리대학에서 한국어를 강의했던 시인 김경년 교수에 의해 번역 소개했다. 차학경은 <딕테>를 통해 시인이자 소설가로 먼저 알려졌지만, 그 예술활동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행위예술 또는 시각예술로 확대되었다. 차학경은 한국말이라는 모국어의 세계와 단절되는 이민 체험을 통해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극심하게 겪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녀의 예술은 언어의 한계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주제화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이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글은 뉴욕타임스의 ‘Overlooked No More: Theresa Hak Kyung Cha, Artist and Author Who Explored Identity’(2022. 1. 7)와 버클리대학 미술관의 ‘차학경 아카이브’의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했다.)

 

비평집 분석과 해석(푸른사상)

목차

■ 책머리에

제1부
「총독의 소리」와 소설의 정치성
『아리아리 강강』과 ‘숨김’의 변증법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연작 기법
『미망』의 가족사적 서사 구조
『태백산맥』과 분단 상황의 인식 방법
『젊은 날의 초상』과 자기 탐색의 미학

제2부
『태평천하』의 풍자와 서술 방식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서사 공간
「동해」와 메타픽션의 방법
「만세전」을 보는 탈식민주의 시각
『무정』의 근대성 문제
「혈의 누」의 서사 구조와 식민주의 담론

제3부
「유선애상」의 분석과 해석
난해시 「가외가전」의 새로운 해석
시적 공간 ‘NOVA’의 서사적 변용
이병기와 현대시조의 운명
연작시 「오감도」와 새로운 시각의 발견
장시 「기상도」와 시적 모더니티

제4부
연작소설의 양식적 가능성
분단소설의 역사적 변화
역사소설의 시대적 성격
한국문학, 세계의 독자와 만나다 – 소설가 신경숙과의 만남
시의 대중성 혹은 기도로서의 시 – 이해인 수녀와의 만남

■ 찾아보기

책 속으로

책머리에 중에서
비평이란 문학의 의미와 지향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인식 행위에 해당한다. 비평이 문학과는 별개의 영역으로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문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비평이다. 비평의 본질과 그 방법을 놓고 본다면 문학의 예술 미학적 요건을 규정하기 위한 비평의 기능을 부인하기 어렵다. 비평이라는 말에는 예술작품의 미적 특질을 식별해내고 평가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비평은 문학을 문학의 자리에 온전하게 자리할 수 있도록 식별의 기능을 강조한다. 문학의 전체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비평의 일차적인 역할이다. 비평이 의도하는 것은 문학을 어떤 다른 사상으로 대치시켜놓는 일이 아니다. 비평은 문학이 문학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속성을 밝혀주는 작업이다. 최고의 비평은 문학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해석을 통해 확립된다.
이 책은 나의 다섯 번째 평론집이다. 책의 전체 내용을 4부로 구분하였다. 1부는 평단의 주변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소설에 대한 새로운 비평적 독후감이다. 소설적 기법과 주제의 결합이 하나의 성과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라는 판단이 이 글들에 담겨 있다. 2부는 해방 이전의 소설 가운데 문학사적 의미를 지니는 소설을 골라 작품 분석과 해석을 새롭게 시도했다. 이들 작품에 대해서는 어떤 통념이 생겨날 정도로 고정된 해석과 평가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나의 독법을 얼마나 새롭게 받아들일지 걱정이다. 3부는 한국 근대시 가운데 비평적 논란의 대상이 된 문제작들을 깊이 읽고 분석한 글이다. 텍스트의 정밀한 분석이 비평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4부는 지난 50년 동안 지켜본 소설문단의 중요 경향을 역사적으로 정리한 글이다. 말미에 수록한 두 편은 작가와 시인의 면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지만 여기 함께 공개한다.

본문 중에서
이청준의 장편소설 가운데 『아리아리 강강』은 평단의 주목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소문의 벽」, 『당신들의 천국』, 「살아 있는 늪」, 『자유의 문』 등으로 이어지는 이청준의 소설 세계와 맞닿아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소설적 기법을 통해 존재의 ‘드러냄’과 ‘숨김’의 방법에 대한 특이한 인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서사 기법에 대한 논의가 이청준의 소설에 대한 새로운 조망의 시각을 열어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청준의 소설이 던져준 신선한 충격은 때로는 소설적 소재의 탐구에서, 때로는 소설적 기법의 실험을 통해 그 문학적 감동을 더해왔음이 사실이다. 그는 삶의 현실에서 문제시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건들을 진지하게 추구하고자 하는 철저한 작가 의식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어떤 고정적인 틀이나 특정의 이념에 묶어두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하나하나가 각기 나름의 성격과 문제를 나누어 갖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이청준 소설에 대한 어떤 유형화가 가능하지 않음을 말해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그의 소설은 꾸준한 자기 성찰과 삶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문제적 인식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소설적 새로움을 제시한다. 그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은 그가 삶의 충동을 새로운 방법으로 포괄하고자 하는 소설적 문법의 발견에서 비롯된다. (21~22쪽)

정지용의 시 「유선애상(流線哀傷)」은 ‘구인회’의 기관지였던 『시와 소설』(1936. 3)에 발표된 작품이다. 박태원의 단편소설 「방란장 주인」을 비롯하여 이상의 시 「가외가전」 등이 여기에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새로운 기법을 통해 문학적 모더니티의 문제에 대한 도전과 극복을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들이 한국 근대문학 가운데 가장 난해한 작품들로 손꼽히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선애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섬세한 언어 감각과 특이한 비유적 표현이다. 특히 시적 대상에 대한 고정 관념을 모두 해체하여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는 감각과 기법이 특이하다. 이 작품은 절제된 감정을 기반으로 언어적 소묘를 통해 시적 대상을 그려낸다. 이 작품에 동원하고 있는 시어들은 상태와 동작을 동시에 드러내는 형용동사가 많다. 그러나 이 언어들은 시적 대상에 대한 개개의 디테일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지배적인 인상을 포착한다. 이를 위해 시적 화자는 스스로 위치와 관점을 바꾸면서 움직이는 시적 대상을 묘사해낸다. 이러한 묘사 방법을 동적(動的) 관점형(觀點型)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동시적 표상으로 그려내기 불가능한 대상을 상관적인 연속적 표상으로 변용하여 시적 형상성을 부여하는 데에 기능적이다. 그러나 시적 대상에 대한 묘사적 표현 자체가 하나의 서사를 구축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러한 서사의 진행 과정을 놓치는 경우 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되기도 한다.
(217~218쪽) 닫기

출판사 서평

인간 사상을 표현하는 매개이자 한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인 문학은 비평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비평은 문학작품의 텍스트를 분석하여 그 존재 의미를 묻고, 문학사의 흐름과 역사와의 관련성을 파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문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비평이며, 문학의 예술미학적 가치를 규정하기 위해서 비평을 필요로 한다. 최고의 비평은 문학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해석으로 확립된다는 관점 하에, 권영민 교수가 지금까지 일구어온 문학론을 바탕으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제시함으로써 한국문학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시도한다. 텍스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정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서 더 나아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향한 방향성을 짚는다.
1부는 평단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소설들에 대한 비평적 독후감이다. 이청준의 장편소설 『아리아리 강강』,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연작 기법, 박완서의 『미망』 등 서사 기법과 주제의 결합이 부각된 작품들이 대상이 되었다. 2부에서는 『태평천하』 『무정』 등 해방 이전의 소설 중에서도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 작품에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여 분석과 해석을 시도했다. 3부에는 「유선애상」 「가외가전」 등 난해시를 비롯하여 비평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한국 근대시를 깊이 있게 분석한 글을 실었다. 텍스트의 정밀한 분석이 비평의 핵심이자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4부에서는 분단소설, 역사소설 등 한국문단의 중요 경향을 정리하여 문학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았고, 소설가 신경숙과 시인 이해인 수녀와의 대담을 함께 수록했다. 닫기

이상연구

실험과 전위의 상징, 신화가 된 독창성,
한국문학사상 최대의 스캔들이자
이질적 세계를 융합한 21세기형 지식인!
우리에게 이상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평론가 권영민의 이상 연구 총결산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 이상

희대의 천재 예술가 이상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의 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새삼스러운 질문은 그의 죽음 이후 8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상 문학이 여전히 문제적인 상태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양식적 영역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의 글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채 그 경계를 넘나들며 텍스트의 상호 연관성에 의해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고 있다. 밀실처럼 닫혀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 자체의 지향을 보여 주며 지도처럼 존재하는 이상의 문학은 출발과 도착을 보여 주는 과정 자체를 거부한다. 밀실과 지도의 공존. 자신은 열리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을 읽는 독자들만을 열어젖히는 이 ‘난해의 문학’은 한국문학에 있어 영원한 미지, 곧 현대성의 상징이다.

인간 이상에서 작가 이상에 이르기까지, 텍스트에서 그림에 이르기까지, 이상 문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자료를 집대성한 『이상 연구』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상 연구』는 이상 문학에 대한 권영민 평론가의 오랜 연구 작업의 총결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권영민 평론가는 『이상 전집』 『이상 문학의 비밀 13』 『오감도의 탄생』 『이상 문학 대사전』 『이상 텍스트 연구』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탄생』 등 이상 연구에 있어 가장 중추인 역할을 하며 이상 읽기의 저변을 넓혀 왔다. 이번 연구서는 절판된 『이상 텍스트 연구』를 대폭 수정하고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보완해 ‘비평적 전기’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 준다.

원전의 불확정성, 작품 해석의 자의성, 이상 개인의 신비화된 삶…… 스캔들로서의 이상이 아닌 이상 문학의 실체에 다다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특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상 연구』는 이상 문학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베일을 벗기고 이상의 삶의 행적과 그 문학적 실천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이상을 바라보는 가장 종합적인 시선을 제공할 것이다.

이어령 선생님 영전에

이어령 선생님!

한밤중 미국에서 선생님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지난 초겨울 인사드렸을 때 살아서 다시 볼 날이 얼마나 될지 하시던 말씀이 가슴을 찌릅니다. 이렇게 멀리에서 엎드려 선생님을 그리며 애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이 벌써 오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언제나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들려주시던 말씀을 따라 뒤에서 그 뜻을 새기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강조하셨던 저항과 비판의 언어는 날카로운 화살처럼 제 머리를 꿰뚫었고, 선생님이 보여주신 자유와 실천의 태도는 반드시 지켜야 할 삶의 도리였기에 더욱 힘든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제시하신 텍스트와 언어, 기호와 상징, 신화와 구조 등의 개념은 문학을 대하는 모든 이에게 하나의 신조처럼 새겨야 할 방법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는 예지의 힘을 모두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문단에 나서서 불모의 땅에 새로운 터전을 일구어내는 화전민처럼 고군분투하셨습니다. 이념적 잣대에 휘둘리던 문학을 위해 저항의 정신을 내세웠고 어떤 경우에라도 문학의 언어는 자유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문단의 고정된 가치와 우상을 파괴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으셨습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과 삶의 현장을 섬세하게 살피고 그 속에서 슬기로움과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문화의 이름으로 그 가치를 빛내는 일에 앞장선 것도 선생님이었습니다.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주의 같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다가오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보여주셨던 것도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때로는 엄청난 시빗거리가 되기도 하였지만, 항상 선생님은 문화 현장의 한복판에 서서 그 개념과 가치의 정당함을 지켜내셨습니다.

선생님의 곁에는 창조적 열정과 신념에 차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선생님의 넓고 깊은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들을 두루 받아들이셨으며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냉철하게 살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비평가로서 텍스트의 분석에는 냉정해야 하지만 우리 삶과 현실을 따스하게 보살펴야 한다는 점도 일깨워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지켜오신 언어와 창조의 힘, 문화와 자유의 가치 그리고 상생과 생명의 의미를 저희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 이제 저희는 시대의 큰 스승을 잃었습니다. 선생님이 앞장서서 걱정하시고 챙기셨던 문학과 언어, 문화와 현실에 관한 모든 과제는 이제 저희가 나누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되었습니다. 이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저희는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합니다. 이 아픔을 견디기 위해 선생님의 모습과 그 큰 뜻을 다시 헤아립니다. 선생님이 지켜오신 문화주의의 신념과 자유주의의 태도를 저희도 뒤따를 수 있도록 힘을 다하겠습니다.

이어령 선생님!

이제는 컴퓨터도 꺼놓으시고 책도 덮어두고 편안히 잠드소서.

후학 권영민은 다시 절하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BTS 그리고 뜨거운 ‘한류’의 현장

BTS 그리고 뜨거운 ‘한류’의 현장

 

1

지난해에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BTS에 관한 강의가 개설되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화제가 된 바 있다. 한국의 언론이 크게 보도했고 미국에서도 교민들 사이에 관심이 크게 일었었다. 내가 만났던 교민 가운데 이 강의 이야기를 직접 내게 물었던 분들도 있다. 지난해 봄 학기에 버클리대학에 개설되었던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 방탄소년단”(Next Generation Leaders: BTS)이라는 강좌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버클리대학은 매학기 다양한 강좌와 교육 프로그램을 폭넓게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디칼’(DECAL)이라는 약자로 흔히 표기하는 ‘민주적 교육 프로그램’(Democratic Education at Cal)이다. 이 프로그램은 버클리대학 학생들이 직접 개설하고 스스로 참여하여 지식을 공유하는 열린 강좌이다. 물론 지도교수도 정해져 있지만 지도교수가 직접 강의를 이끌어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과정을 학생들 스스로 설계하고 직접 운영한다. 강좌 내용과 관련되는 모든 자료들을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여 조사하고 그 내용을 분담하여 보고하고 토론한다. 과목당 일정 기준에 의해 2학점을 자율적으로 부여하는데 A, B, C와 같은 평점을 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성격의 강좌가 매 학기 150 강좌 이상 운영되고 있으며 강좌마다 대개 30명 안팎의 학생들이 참가하고 있다.

버클리대학의 학생들이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라는 주제로 한국의 유명한 아이돌그룹 BTS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직접 교과 내용을 설계하여 운영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고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동년배의 미국 대학생들에게 BTS의 음악과 그 활동이 새로운 문화적 흐름의 어떤 징후로 읽혀지고 있음을 말한다. BTS의 음악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기획사에 의해 잘 다듬어져 세상에 내놓은 ‘문화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21세기 초반 세계 문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뮤지션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BTS는 멋진 의상, 유명 음악인들이 만들어주는 자유로운 음악,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터득한 현란한 몸짓, 그리고 전 세계 같은 또래들이 보내주는 환호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 새로운 음악인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가지게 된 셈이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도 BTS의 음악에 열광한다. 이미 BTS의 뮤직 비디오 가운데 8억뷰를 돌파한 ‘DNA’가 유명하지만 ‘불 타 오르네 (파이어)’ ‘페이크 러브’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보이 위드 러브)’ 등이 모두 6억뷰를 넘어선 바 있다. 최근에 공개한 ‘마이크 드롭’ 리믹스 뮤직비디오도 단 순간에 유튜브 조회 수 6억뷰를 기록했다고 한다. BTS의 뮤직비디오는 독특하고 강렬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그룹 전체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거기에 가미된 세련된 영상미가 매력을 발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빌보드의 각종 차트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BTS의 음악은 이제 21세기의 비틀즈로 세계의 음악팬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내가 미국에서 실감했던 것도 BTS의 인기이다. 미국의 대중적인 서점 체인인 ‘반스 앤드 노블’은 지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의 세일기간에 서점을 찾는 손님들을 잡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준비했다.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각종 캐릭터와 장난감들이 온통 매장 안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점 한복판에 만들어 놓은 특별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BTS다. ‘K-POP’이라는 붉은 글씨가 네온사인처럼 반짝이는 이 특별 코너에는 BTS 멤버들의 사진과 음반 그리고 각종 캐릭터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장식되어 있다. 학교를 파한 뒤에 서점에 들른 이웃 고등학교 학생들이 줄을 지어 BTS의 특별 코너를 둘러싸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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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류’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런 이야기라면 지난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기생충’이 다시 생각난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버클리대학 캠퍼스를 벗어나 도로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감상했다. 늦가을부터 상영되기 시작한 이 영화는 지금도 미국의 영화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이 북미 지역에서도 각종 영화상을 휩쓸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진가를 다시 확인해 볼 수 있다. 시카고 영화비평가협회로부터 작품상을 비롯하여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등 4개 부분을 받았고 최근 샌프란시스코 영화비평가협회로부터도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받기도 했다. 미국의 영화전문가들은 ‘기생충’이 높은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갖췄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평판과 인기에 힘입어 ‘기생충’은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상인 골든글로브에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등 3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고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세계 영화의 꽃으로 주목받는 아카데미에서도 한국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을 받았다. K-드라마에 이어 이제 K-필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K-뷰티라는 말도 생겨났다. 미국의 대형 약국 체인점인 CVS에 들어가면 입구에 설치된 ‘K-BEAUTY’ 특별 코너를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유행하며 널리 팔리고 있는 화장품류가 전시되어 있는데,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마스크 팩이다. K-푸드에도 관심이 크다. 웬만한 슈퍼마켓에는 한국에서 직수입되는 ‘김치’와 ‘김’과 ‘라면’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간다. 한때는 그 특유의 냄새와 맛 때문에 혐오 식품처럼 취급되었던 김치가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의 식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뉴욕이나 LA의 한인 타운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식당에서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메뉴는 순두부찌개, 돌솥비빔밥, 해장국 등이다. 매운 맛에 입맛을 들인 사람들이 떡볶이를 간식으로 즐기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특이한 문화현상은 ‘한류’의 확산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어쩌면 이것은 전 세계에서 애용되고 있는 한국산 자동차와 각종 가전제품들의 인기와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한국산 자동차를 타고 날마다 직장에 출근하는 미국 중산층 직장인의 집안을 보면 대개 거실 한복판에 한국산 대형 평판 텔레비전이 놓여 있다. 주방에 비치된 냉장고도 한국에서 수출한 고급 대형 냉장고가 비치되어 있고 세탁기기와 건조기도 모두 한국산이다. 손에는 한국산 휴대전화를 들고 다닌다. 미국인들의 일상에 그만큼 한국이 가까이 접근해 있으며, 다문화사회를 표방하고 있는 미국에서 한류가 그 나름의 중요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TV드라마나 대중음악에서 시작된 대중문화의 해외 유통과 소비가 작은 한류의 출발이었다면, 이제는 음식이나 패션, 그리고 생활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적 현상은 특정한 분야나 지역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한때의 유행이 아니다. 전 지구적인 현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확산의 속도가 빠르고 그 폭과 영향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한류의 저변에 세계어로 자리잡은 한국어와 한글의 보급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자랑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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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류’는 코리안 웨이브(Korean Wave)라는 말로 통한다. 하지만 이 말보다는 K-팝이라는 말이 한류를 대표한다. 한국의 대중음악, TV드라마, 영화, 컴퓨터게임 등의 문화상품이 일본 중국 그리고 동남아 등지의 해외로 전파되어 널리 소비되는 현상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초기에는 한류라는 특이한 문화 현상을 태평양 건너 동남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특수한 문화 소비 형태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떤 교수는 아예 한류라는 말 자체를 부인하려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한류 현상은 전 세계에서 여기저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화상품의 가장 큰 소비시장을 거느리고 있는 미국에서도 한류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맥도널드 햄버거는 전 세계에서 팔린다. 스타박스 커피숍이 각국의 중요 도시에 늘어서 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내는 영화가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미국의 팝 가수 비욘세의 노래에 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이런 일은 미국인들에게 너무도 당연하며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산 김치와 라면이 미국의 슈퍼마켓에 즐비하고 한국의 연안 바다에서 나오는 김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맥주 안주로 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기이하고 새롭다. 더구나 팝의 본고장에서 K팝 그룹 BTS가 누리는 인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아무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섣부르게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BTS의 열기를 두고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지칭하는 ‘한류현상’이라고 말한다면 이제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이른바 ‘문화상품’의 대중적 소비와 그 흐름을 놓고 볼 때 문화의 세계화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의 대중은 그들이 선호하는 대중음악으로 BTS의 뮤직비디오를 즐기며 모두 하나가 된 지구를 떠올릴 것이 분명하다. 유튜브라는 특이한 매체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BTS의 전신자(傳信者)로서의 자신들의 존재와 역할을 강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BTS를 하나의 잘 기획된 ‘문화상품’이라고 한다면 이 특이한 현상은 결국 세계화라는 물결에 의해 하나로 통합된 거대한 문화시장의 역동성을 그대로 말해주는 셈이다.

그렇지만 BTS는 일시적으로 소비되는 ‘문화상품’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러한 주장은 BTS의 등장과 그 역할과 대중적 인기를 경제 논리에 의해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한다. BTS를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본다면 BTS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음악과 춤에 대한 열광적 환호는 금방 시들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언제 어디서든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다시 되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BTS가 21세기 문화의 새로운 흐름 속에 음악적 정체성을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이 앞장서서 추구하고 대중이 뒤에서 지지하며 따를 수 있는 새로운 음악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비틀스가 자신들의 음악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의 청년문화를 주도했던 것처럼 BTS는 자기 음악에 집중하면서 자기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열어가야 한다. 전 지구상에서 BTS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윤리, 자신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예술과 미학에 자기 색깔의 음악의 옷을 입힐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의 인기는 허망하게 바로 사라진다. BTS가 잘 팔리는 ‘문화상품’으로 지금의 대중적 인기에 만족할 것인지 새로운 음악,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위대한 뮤지션으로 커나갈 것인지는 이제 BTS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스마트폰에 매달린 사람들

스마트 폰에 매달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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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는 승객들이 대부분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들여다보고 있다. 동영상 화면을 재미있어 하면서 보는 사람, 뉴스를 보는 사람, 만화 화면을 펼쳐보는 사람,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람…… 모두가 그 작은 화면에 열중이다. 책을 펼쳐 들고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길거리에서도 공원의 산책길에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도 이 새로운 환경의 변화와 매체의 특성을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책이 안 팔린다고 야단이다. 서점에 내놓은 책 가운데 그나마 팔리는 것은 자기개발서이거나 취업 준비용이 많다는 것이다. 유명 작가의 신간 소설도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니 출판업계가 모두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독서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출판계와 서적시장이 불황이란다. 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책 대신 스마트 폰을 들고 작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세상이 이렇게 바뀐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 소비 지출액은 250만원을 조금 넘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이 통계자료에서 가구당 오락·문화 부문 지출이 월평균 19만2000원이라고 한다. 전년보다 거의 10% 증가했단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에서는 이 자료에 근거하여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월 평균 도서 구매 비용이 4960원이라는 흥미로운 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가구당으로 따지면 월평균 도서 구매비가 명목액 기준으로 1만2000원 정도이지만, 2006년 이래 역대 최저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수치를 두고 가구당 한 달에 책 한 권 정도를 구매하고 있다는 뜻으로 간단하게 넘겨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들의 학습용 참고서 구매를 제외하고 본다면, 집에서 책을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고급 커피숍에서 지불하는 커피 한 잔 값 정도에 불과한 액수가 한 달에 책을 사는 데에 쓰는 돈이라고 말하면 좀더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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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을 꺼내면, 요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책 타령이냐고 핀잔을 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달에 책 한 권도 제대로 사지 않는 것을 빠듯한 살림살이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니다.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가 13만4000원이었다는 통계가 바로 뒤에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집에서 매달 지출하는 여행비용을 비롯하여 영화 구경이나 공연 관람, 서적 구입 등 문화 오락비에 버금갈 정도로 통신비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놀랍다. 네 식구가 함께 사는 집이라면 1인당 3만 5천원 가까이 통신비를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식구마다 모두 자기 휴대전화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물론 책 대신 스마트 폰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스마트 폰을 누르면 찾을 수가 있으니 구태여 돈을 써서 책을 사고 답답하게 책장을 또 넘겨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핑계를 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스마트 폰의 사용 내역을 들여다보면 그런 말에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책 읽기를 말하면 독서는 자기 취미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대학 입시에 매달려 지겹게 책과 씨름했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 취업 준비로 다시 손에 잡은 것이 각종 시험 준비서 뿐이었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직장으로 얻어 생활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은 아예 책을 펼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주어진 업무에 시달리고 반복되는 모임에 지쳐 돌아오면 집에 들어와 책장을 넘길 틈도 없다. 자녀들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는데 집안 살림에 쫓기면서 주부들이 언제 혼자서 책을 들고 읽어볼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바쁘고 여유가 없고 한가하게 책장을 넘길 틈이 없다. 그러니 여간 결심이 아니고서는 서점이라도 한번 들러 책 한 권 사들고 오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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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책 읽기가 개인의 취향이나 관심과 연관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데에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따질 일은 더욱 아니다. 책 읽기는 교양인의 생활이어야 한다. 책 읽기는 자기 집중을 필요로 한다. 텔레비전의 화면이나 스마트 폰 속의 동영상은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이지만 책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그 내용을 따라간다. 책 읽기는 사고의 집중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해와 비판, 분석과 성찰의 힘을 키워준다. 그러므로 책 읽기는 생활 속에서 필수의 영역이지 개인적 취향에 따르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책 읽기를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늘 곁에 책을 펼쳐놓아야 한다. 자신이 직접 서점에 가서 서가에 진열된 책들을 훑어보고 읽고 싶은 책을 골라보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를 정하는 일에서부터 직접 책을 사는 데까지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낼 일은 아니다. 우선 자기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을 잘 생각하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야 한다. 책은 혼자서 읽을 수 있지만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함께 꾸준히 읽어갈 동료가 있다면 훨씬 좋다. 집안 식구들끼리라든지 직장 동료들이든지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책을 읽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문화 활동이 어디 있겠는가? 책 읽기는 습관화하기 전까지는 생활 속에 터잡기 어렵다. 일상의 모든 일들이 책 읽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책 읽기를 시작하면 큰 부담 없이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다. 책 읽기가 고상한 취미에서 고급한 문화 활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평생 책을 끼고 살아왔다. 나의 책 읽기는 내 문학 공부의 출발이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책 읽기가 일종의 직업이 되면 때로는 짜증나고 힘이 든다. 텍스트를 가운데 두고 작가와 맞서야 하는 일이 늘 피곤하다. 그러므로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즐겁고 편한 책 읽기를 권한다. 되도록이면 한 달에 한 권씩 새로 나온 시집을 사서 읽으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집 한 권을 사서 읽어보는 일이라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큰 부담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작은 시집 한 권이지만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정채(精彩)의 언어’가 거기에 담겨 있다. 온통 더럽혀진 언어의 흙탕물 속에서 벗어나 정제된 언어 표현의 묘미를 오롯하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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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의 일이다. 집집마다 거실의 장식장을 걷어내고 그것을 서가로 바꾸자는 운동이 일어났었다. 생활 속에서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안이었다. 그때는 상당한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파트의 거실 벽에 책장을 세우고 책을 가지런히 꽂아둔 집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운동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다시 커다란 TV가 벽면을 장식하고 근사한 도자기나 사진틀로 가득 찬 새로운 장식장이 서가를 다시 퇴출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거실에 서가를’이라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은 호응에도 불구하고 왜 생활 속의 책 읽기로 발전하지 못하고 말았는지 모르겠다. 책 읽기를 생활 속에 정착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삶은 스스로를 황폐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사고력과 판단력을 키우지 않으면 삶의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 사라진다. 인간이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에만 매달리게 되면 결국은 모두가 야만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스마트 폰에만 매달린 채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도 책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첨단의 문명시대를 살아가는 참다운 태도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감각적 자극에만 길들여지는 스마트 폰 시대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세계어로서의 한국어

‘세계어’로서의 한국어

 

미국의 현대언어협회(MLA)가 최근 조사 보고한 미국 대학의 외국어 강좌와 수강생 숫자가 흥미롭다. 그동안 대학에서 가장 많이 가르쳤던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등 유럽 지역 언어의 수강생이 크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어의 경우 2009년도에 86만여 명이 수강하여 최고치를 보였지만 지난 10년 동안 점차 줄어들어서 2016년도에는 71만여 명이 되었다. 프랑스어도 20만 명을 넘던 수강생이 같은 기간 동안 17만 명으로 줄었다. 동양의 언어 가운데 일본어는 2009년도에 최고 7만 2천여 명이었던 것이 2016년에 6만 8천명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중국어의 경우도 2013년도에 최고 6만 1천여 명에서 5만 3천여 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한국어의 경우 지속적으로 강좌 수가 늘어나고 수강생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2002년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 수강생은 5천 2백여 명이었데 2016년도의 통계를 보면 1만 4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거의 3배 정도 증가했다. 외국어 수강생 수가 이렇게 큰 증가 추세를 보여주는 경우는 한국어가 유일하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미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의 대학에서는 한국어가 가장 규모가 큰 외국어 강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러시아, 프랑스, 캐나다, 영국 등지의 여러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 교육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으며, 동구권의 헝가리,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지에서는 한국어가 인기 있는 외국어로 손꼽힌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도의 경우도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가 늘어나고 있으며 아프리카 지역의 이집트에서도 한국어 교육이 시작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의 코스타리카, 멕시코, 칠레, 브라질 등지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이 이렇게 확대되고 있는 현상을 보면 한국 문화의 세계적 위상이 몰라볼 정도로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물론 여기에는 ‘K 팝’이니 ‘K 드라마’니 하는 ‘한류’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어 교육의 세계적 확산은 한국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전파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사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은 그 방법과 내용을 체계화한 이론적 기반이 여전히 허약하다.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 교육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학마다 제도와 여건에 따라 그 내용과 수준이 큰 차이를 드러낸다. 교재 내용과 그 구성도 서로 다르고 교육 방법도 제각각이다. 교재가 풍부하지 않으니 교육 내용도 부실한 경우가 많고, 교육 단계별 수준이 고르지 못하게 되니 그 정도를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 방법과 내용을 새롭게 개발하고 교과 과정을 체계적으로 구성해야만 한다. 각국의 실정에 맞춰 교과 내용을 조정하고 그 수준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평가 방법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일은 한국어 교육 전문가들이 앞장서야 하는 것이지만 교육 당국에서도 이를 위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도 보편적이고도 체계적인 언어 문자의 규범에 따라 한국어와 한글을 다듬어 나가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글이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글의 모든 글자의 표준 글꼴을 제대로 정하고 그 정확한 발음 방법을 따르기 쉽게 정해야 한다. 항상 논란이 되고 있는 일이지만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방식도 보다 합리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한글 맞춤법이나 국어 표준어의 규정 등에도 미비한 점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언어와 문자의 사용에서 그 규범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면 이를 국제적으로 확산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인데 한국어는 결코 작은 언어가 아니다. 세계 언어 인구의 분포로 볼 때 한국어는 그 크기가 열다섯 번째 정도로 손꼽힌다. 정확한 수치를 따지기는 쉽지 않지만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보다 언어 인구가 조금 많고 터키어와는 비슷하다. 7천 5백만이 넘는 인구가 한반도를 비롯하여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한국어를 사용한다. 더구나 세계 각국의 여러 대학에서 해마다 수십만 명의 대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도 활발한 교역을 통해 국제 무역 규모가 이미 최상위권에 올라서 있다.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외국인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일이다.

한국어는 더 이상 우리 민족만의 언어가 아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배우고 있는 ‘세계어’의 하나이다.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한국어의 힘과 그 문화적 위상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석의 ‘칠월 백중’ 혹은 풍속시

‘칠월 백중’ 혹은 풍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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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백중(七月 百中)’. 백종(百種) 혹은 백중(百衆)이라고도 했고 중원(中元)이라고도 칭했다. 음력 7월 보름 명절을 말한다. 예전의 세시풍속을 보면 음력에 따라 24절기로 나뉘어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백중도 아주 중요한 세시풍속의 하나였다. 농경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 공동체에서 관습적으로 이어온 의식과 놀이 가운데 하나가 ‘백중놀이’이다. 하지만 지금은 ‘백중’이라는 말조차 들어보기 어렵다. 백중 장터니 백중 놀이니 하는 것도 모두 사라져버린 옛 풍속이 되고 말았다.

백중은 불가(佛家)의 우란분회(盂蘭盆會), 또는 우란분재(盂蘭盆齋)라고 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불경 가운데『우란분경(盂蘭盆經)』이라는 경전이 있다. 이 경전은 부처님의 수제자인 목건련(目犍連)의 덕을 기리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의 믿음으로 열린 혜안(慧眼)을 얻게 되었다. 그는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가 극락으로 가지 못하고 아귀보(餓鬼報)를 받아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목련은 자신의 신통력을 발휘하여 어머니를 아귀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업(業)이 두터워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할 수가 없었다. 목련은 부처님께 어머니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줄 것을 간청하였다. 부처님은 수행승들이 하안거를 마치는 자자일(自恣日)에 해당하는 음력 7월 15일에 부처님과 승려에게 백 가지의 음식과 다섯 가지의 과일 등을 정성스럽게 공양을 올리면 비원(悲願)을 이루는 것은 물론 돌아가신 어머니도 천계(天界)의 복락을 누리게 된다고 하였다. 이 가르침을 받은 목련은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들어 실천함으로써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원하였다. 이것이 우란분재의 시초다. 이 특이한 불교 의식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부터 전래하였고 고려시대의 경우에는 실제의 의례 내용을 소개하는 문헌 자료도 많이 남아 있다. 오늘날에도 불가의 우란분회는 음력 7월 15일에 갖은 음식과 과일을 마련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조상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의식으로 거행된다.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을 공양하여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과 비슷하게 우란분절에는 백등(白燈)을 밝혀 죽은 조상을 추모한다. 이러한 의식이 민가에도 전해져 칠월 보름날을 ‘망혼일(亡魂日)’이라고 하여 조상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네가 알고 있는 칠월 백중은 불가의 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백중은 세시풍속으로 반복되면서 널리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농촌생활에서는 봄에 모내기를 끝낸 후에는 여름철이 되기까지 밭과 논의 김매기에 가장 바쁘게 지낸다. 그런데 음력 7월 보름 무렵이면 세 벌 김매기가 다 끝나고 지독한 무더위가 시작된다. 농사꾼들이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에 해당된다. 더위를 피하면서 곧 돌아올 가을을 기다리는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이 때를 맞춰 생겨난 것이 ‘백중’이라는 속절(俗節)이다. 농사꾼들은 이날을 ‘호미씻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된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즐기면서 더위에 시달린 심신을 달래고 힘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농사를 크게 짓는 집에서는 백중날이 되면 일꾼들에게 용돈(백중돈)을 주고 즐겁게 쉴 수 있도록 하였다. 머슴들과 일꾼들은 이날 특별히 장만한 아침상을 받고 새 옷에 돈까지 얻게 되었다. 심지어는 머슴을 소에 태우거나 가마를 태워 흥겨운 하루를 보내도록 했다. 주인댁으로부터 받은 백중돈을 가지고 일꾼들은 장터에 나가 물건을 사거나 놀이를 즐겼다. 이날에 맞춰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 한복판에는 특별히 ‘백중장’이 열려 장사꾼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장터에는 풍악이 울리고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하였고 여러 놀이판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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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이 쓴 작품 가운데 「칠월 백중」이라는 흥미로운 시가 있다. 해방 직후인 1948년 잡지 《문장》에 발표된 작품이다. 당시 백석은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 정착해 있었다. 이 작품은 그가 서울의 친구들에게 보낸 원고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칠월 백중날에 볼 수 있는 고향의 풍속을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을 통해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일종의 ‘풍속시’ 또는 ‘풍물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의 내용을 보면 백중날 약물터에 크게 장터가 열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머슴이나 일꾼들이 백중날을 즐기는 모습보다는 약물터에서 열린 백중 장터를 구경하러 가는 것은 새악시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백중날 약물터에 열린 장터 구경을 나가는 새악시들의 옷차림과 발걸음이 가볍다. 이들은 고개를 넘고 넘어 약물터 백중 장터에 모여든 사람들의 흥겨운 모습과 함께 어울린다. 백중날 약물터라는 하나의 구체적인 시적 공간 속으로 모든 관심이 집중되면서 시적 감흥도 고조된다. 이 정서적 고양 상태에서 ‘백중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 모두가 후줄근하게 젖지만, 오히려 마음은 붕가집(친정) 갈 생각으로 들떠 있다. 한여름 보름 정도를 친정에 가서 지내다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언어적 표현 가운데에는 생소한 평안도 방언이 다수 활용되고 있다. 자기 지역의 방언을 그대로 시적 언어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시인 자신이 토착적인 방언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언의 활용을 통해 시의 내용에서 일상적 경험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마을에서는 세 벌 김을 다 매고 들에서

개장 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

백중날에는 새악시들이

생모시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

쇠주푀적삼 항라적삼의 자지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한끝나게 상나들이옷을 있는 대로 다 내 입고

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들어서

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뚜룩하니 해 꽂고

네날백이 따배기신을 맨발에 바꿔 신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 길에는

건들건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랜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도에 바늘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재일치듯 하였는데

붕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

깨죽이며 문주며 섶가락 앞에 송구떡을 사서 권하거니 먹거니 하고

그러다는 백중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

호주를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에 가는 것이다

붕가집을 가면서도 칠월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

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

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시원만 하다고 생각한다

 

백석의 시 「칠월 백중」은 소박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농민들의 삶의 모습이 토속적 어휘를 통해 감각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시는 다채로운 시적 심상을 활용하여 시적 공간을 감각적으로 확장하면서 그 속에 고향이라는 원초적인 체험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해 놓는다. 이러한 시의 방법은 한국의 근대시가 감각적으로 섬세해지고 정서적으로 깊이를 가지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의 텍스트는 전체 26행으로 이어지면서 연의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 시적 화자가 전체적인 시상의 흐름 속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대상은 ‘새악시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새악시’는 동네 처녀들이 아니다. 마을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는 새 색시들을 말한다. 칠월 백중날 새악시들이 한껏 모양을 내고는 약물터로 나가는 모습과 장터를 이루며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이 흥겹게 그려진다.

시의 텍스트는 시적 의미의 전개 과정으로 볼 때 모두 다섯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시적 진술 자체를 자세히 검토해보면 ‘…..하는데’ 라는 연결 어미로 이어진 부분이 각 단락을 경계를 자연스럽게 표시한다. 첫 단락은 1행에서부터 3행까지로 이어진다. 힘든 농사일을 견디기 위해 ‘개장 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칠월 백중(百中), 음력 7월 보름날이 된다. 여기서 ‘개장 취념’이란 개장국(지금은 보신탕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을 끓여 먹기 위해 몇몇이 그 비용을 나누어 내는 일을 말한다. ‘취념’은 추렴(出斂)에서 온 말이다.마을에서 논에 모내기를 한 후 세 벌 김을 다 매고 나면 백중날이 된다. 지방에 따라 풍습이 다르지만 바쁜 농사일을 하루 쉬면서 사람들이 함께 여러 가지 음식을 해 나누어 먹으면서 즐기는 것이 보통이다.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짓는 집에서는 머슴들에게 새 옷을 해 입히고 용돈을 나누어 주고 하루 잘 쉬며 놀도록 해준다. 시의 텍스트에서는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라고 서술하고 있다.

둘째 단락은 4행부터 11행까지 백중날 새악시들이 한껏 멋을 내어 나들이옷을 차려 입고 약물터로 놀러 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칠월 백중이라는 세시풍속의 내용과 함께 여성들의 복식까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여기서도 11행은 ‘약물터로 가는데’라고 끝이 난다. 백중날 약물터에 놀이를 나가는 새악시들의 옷치레부터 수선스럽게 묘사된다. 무릎 아래에 닿을 정도로 껑충하게 짧은 치마에 자줏빛 옷고름이 길게 느러진 적삼을 입고 있다. 그런데 그 치마는 ‘천진푀 치마’라고 한다. 중국 천진(天津)에서 생산된 고급 베(천진포)로 만든 치마를 말한다. 새악시들이 입고 있는 적삼은 ‘쇠주푀 적삼’이다. 이것도 중국 소주(蘇州) 지방에서 생산된 고급 베(소주포)로 만든 적삼을 가리킨다. 중국과 물산 교류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새로 댕기를 드렸고 발에는 네날백이 따배기신(짚신)을 새로 내어 맨발에 신고 있다. 치마와 적삼, 댕기 머리에 따배기신을 묘사한 부분은 서로 대구(對句) 형식으로 이어진다. 새악시들이 평상시에 입는 치마는 그 길이가 발등으로 내려올 정도로 짧은 ‘물팩치기’(치마의 단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짧은 치마)이다. 한 여름 나들이옷이니 치마의 길이가 짧다. 버선도 신지 않은 맨발에 따배기신을 신은 모습이 더욱 가볍게 느껴진다. 당시 농촌의 젊은 여성들의 차림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셋째 단락은 12행부터 18행까지로 이어진다. 약물터로 가는 과정을 묘사한 대목이다. 무더운 날씨이지만 들길에 가끔 시원한 바람도 불어온다. 노리개를 붙이고 허리에는 주머니를 찼는데, 그 속에 돈이 들어 있다. 고개를 넘어 약물터에 도달한다. 넷째 단락은 19행부터 22행까지 이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약물터의 광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오랜만에 친정집 식구들도 만난다. 여기 등장하는 ‘붕가집’이라는 말은 평안도 방언이다. 흔히 ‘가까운 친척집’을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보면 이 말은 친척집이 아니라 ‘친정집’을 뜻한다. ‘친가’ 또는 ‘본댁’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시집온 후 오랜만의 나들이에서 친정집 식구들을 만났으니 서로 반가울 뿐이다. 함께 음식도 사먹으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중에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린다. 소나기에 옷이 후줄근하게 젖었지만 마음은 즐겁다. ‘호주를하니’라는 말은 비에 젖어 옷이 후줄근하게 되어버린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 시는 ‘새악시’가 친정집에 가는 장면으로 시상을 마감하고 있다. 농삿일이 좀 한가로워졌기 때문에 시집살이에서 벗어난 새악시는 친정에 갈 수 있게 된다. 친정에서 보름 가까이 지내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비에 젖은 옷이 오히려 시원하다고 여긴다. 이 마지막 단락의 서설 내용을 보면 시에 등장하는 ‘새악시’라는 말이 처녀애가 아니라 갓 시집온 새아씨임을 알 수 있다. ‘붕가집’이라는 말을 친척집, 친구네집, 등으로 해석한 경우도 있지만 마지막 단락의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으로 가면서도 중요한 농삿일들이 끝났으니 평안하게 ‘집살이’를 할 것이라는 설명을 보면 ‘봉가집’이 친정집 곧 본가집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적 대상에 대한 묘사의 감각성과 사실성이다. 이 같은 기법은 다양하게 선택된 제재 속에서 민중의 진솔한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기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시에서는 각각의 시행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듯한 서술적 효과를 드러내도록 잇달아 있다.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진술의 묘사적 설명 방법은 시적 이미지들을 공간적으로 병치시키면서 동시에 그 공간 자체를 한 폭의 이야기로 꾸며낸다. 이 시가 이야기조의 서술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공간의 이동과 시간의 경과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면서 시적 대상을 그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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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공간은 대체로 고향의 토속적인 풍물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고향이라는 공간과 갖가지 풍물에 대한 체험이 그만큼 시인의 의식 속에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뜻한다. 시적 공간으로서의 고향은 어린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과거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회고 취향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현실 속에서 절실하게 추구되고 있는 삶의 의미가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백석은 고향의 풍물과 토속적인 인간미를 그의 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면서 현실의 삶 가운데 훼손된 인간적 가치와 그 회복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백석의 본명은 기행(夔行)이다. 평북 정주 태생으로 1929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조선일보 신년 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된 후 조선일보사가 후원하는 장학금을 받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경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대학 영어사범과에서 수학했다. 1934년 대학을 졸업한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입사하였으며 1935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발간하게 된 월간 종합잡지 《조광(朝光)》의 창간 작업에 참여하였다.

1935년 8월 30일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한 후 본격적인 시 창작 활동을 시작하면서 「주막」, 「여우난골족」 등의 시를 잇달아 발표하였다. 1936년 자가본으로 시집 󰡔사슴󰡕을 한정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시집에 수록한 작품들은 대체로 시인의 고향인 평안도 지역의 풍습을 소재로 하여 소박한 민중의 삶과 거기에 깃들여 있는 토속적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이 해에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8년까지 함흥에서 생활하는 동안 「고야」, 「남행시초(연작)」, 「함주시초」, 「바다」 등을 발표하였으며, 교직을 사임하고 경성으로 돌아온 뒤 「산중음(연작)」, 「석양」, 「고향」,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을 남겼다. 1940년 만주 옮겨가서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의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942년 만주 안둥[安東] 세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목구」, 「북방에서」 「귀농」,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을 발표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백석은 고향인 평안도 정주로 돌아왔다. 1947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이 무렵 시 「적막강산」,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등이「칠월 백중」과 함께 친구인 소설가 허준의 주선으로 서울 문단에 소개됨으로써 그의 건재함이 널리 알려졌다. 1949년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을 번역 출간한 후부터 소련 문학의 번역 작업에 몰두하였다.

한국전쟁 뒤에도 백석의 활동이 이어진다. 1956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편집위원을 맡았으며, 1957년 동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정현웅의 삽화를 넣어 간행하였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의 국영협동조합에서 일하면서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199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두진 그리고 꽃과 항구

마산 항구의 벚꽃

 

벚꽃의 계절이다. 이제는 전국 각지에 손꼽을 만한 벚꽃의 절경이 수도 없이 많다. 군항제(軍港祭)로 유명한 진해의 벚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여의도 뚝방길에 늘어선 벚꽃, 경주 보문단지 가는 길을 덮은 하얀 꽃 터널, 그리고 익산에서 군산항으로 가는 국도변 하얀 벚꽃의 대행진 등은 내가 보았던 벚꽃의 절경으로 오래 기억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는 경상남도 마산(馬山)의 벚꽃이 유명했단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들에 의해 일찍 개항된 항구였던 터라서 벚꽃이 많았다고 적혀 있다. 신마산 주변의 천변에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이 장관을 이루었고 밤 벚꽃놀이가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시의 이름조차 사라진 곳이 마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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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산의 벚꽃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던 사연은 따로 있다. 시인 박두진 선생의 시 「꽃과 항구(港口)」 때문이다. 이 시는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나도 이 시가 어느 잡지에 처음 발표되었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시는 1962년에 펴낸 시집 󰡔거미와 성좌(星座)󰡕에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숨겨진 기막힌 사연을 눈여겨 챙겨본 사람도 별로 없다.

나무는 철을 따라
가지마다 난만히 꽃을 피워 흩날리고,

인간은 영혼의 뿌리 깊이
눌리면 타오르는 자유의 불꽃을 간직한다.

꽃은 그 뿌리에 근원하여
한 철 바람에 향기로이 나부끼고,

자유는 피와 생명에 뿌리하여
영혼의 밑바닥 꺼지지 않는 근원에서 죽지 않고 탄다.

꽃잎. 꽃잎. 봄 되어 하늘에 구름처럼 일더니,
그 바다, 꽃그늘에 항구는 졸고 있더니,

자유여!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여!
피안개에 그므는 아름다운 항구여!

그 소녀와 소년들과 젊은 속에 맥 뛰는
불의와 강압과 총칼 앞에 맞서는

살아서 누리려는 자유에의 비원이
죽음. 생명을 짓누르는 공포보다 강하고나.

피는 꽃보다 값지고,
자유에의 불꽃은 죽음보다 강하고나.

 

이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꽃’ ‘피’ ‘불꽃’이라는 시어는 아주 강렬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함축된 의미도 폭이 넓고 깊다. 시의 텍스트를 따라 읽어 보면 시적 배경으로 ‘항구’가 등장하고 그 항구에 꽃이 피어난다. 그런데 그 항구와 꽃이 예사로운 꽃 이야기가 아니다.

1연에서 ‘꽃’은 철에 따라 나무에서 피어난다.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그 꽃에 열매가 맺힌다. 그래서 그 생명이 여기저기 퍼지고 다시 살아난다. 이 순연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2연은 시적 화자의 시선이 인간에게로 옮겨진다. 1연의 나무에서 사람 쪽으로 그 대상이 바뀐 것이다. 사람은 마음 속 깊이 인간으로서의 본능처럼 누군가에게 억눌리면 속으로부터 타오르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다. 억압에 저항하고 이에 맞서고자하는 항거의 정신은 인간의 본능이다. 결국 1, 2연은 서로 좋은 뜻으로 그 의미가 대응한다.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처럼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유의 불꽃이 타오르게 된다. 3, 4연도 비슷한 의미의 대응이 이루어진다. 나무의 꽃이 그 뿌리에 근원을 두고 피어나 한 철을 향기롭게 나부끼듯이 자유라는 것도 피와 생명에 뿌리를 두고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그런데 5연부터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5연에서 항구에 구름처럼 꽃이 피어났고 그 꽃그늘에 항구가 졸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적 배경으로 꽃이 피는 평화로운 항구가 등장한다. 그리고 뒤이어 6연은 ‘자유여!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여! / 피안개에 그므는 아름다운 항구여!’ 라는 구절에서 시적 의미의 대응이 완전히 무너진다. 자유가 불꽃으로 살아나지 못한 채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가 되고 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름처럼 피어나 향기롭게 나부끼던 항구의 꽃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피안개에 덮여 사그라진 것이다. 7연에서는 ‘소년과 소녀’들이 젊은이들과 함께 불의와 강압과 총칼 앞에 맞서고 8연은 살아서 누리고자 하는 자유에의 비원이 생명을 짓누르는 공포보다 더욱 강함을 설명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불의에 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9연에서 ‘피는 꽃보다 값지고 / 자유에의 불꽃은 죽음보다 강하고나’ 라고 시상을 매듭짓는다. ‘피’와 ‘꽃’이 서로 대조되는 가운데 ‘자유에의 불꽃’이 ‘죽음’과 대비된다. 자유를 위한 열망과 그 희생의 의미가 얼마나 거룩하고 강렬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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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두진이 이 시에서 그려내고 있는 꽃 피는 항구는 1960년 4월 마산(馬山)의 풍경이다. ‘진해군항제’ 이전에는 마산항 일대의 봄 벚꽃이 유명했다니 시인의 눈길을 끌 만하다. 그런데 이 화려한 벚꽃의 항구 도시에 피안개가 어린다. 1960년 봄의 일이다. 당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독재 권력의 장기 집권을 위해 3. 15선거에 엄청난 부정을 획책한다. 부통령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선거 부정이 전국적으로 자행된 것이다. 마산 지역도 부정 선거가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항거하여 선거 당일인 3월 15일 마산에서 대규모 항쟁이 일어났는데, 주로 고등학교 남녀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게 된다. 그때 집회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김주열 군은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을 앞둔 학생이었다. 그는 실종된 지 거의 한달 뒤에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닷속에 던져졌다가 주검으로 떠올랐다. 진압 경찰이 최루탄에 맞은 김주열의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4월 11일 김주열 군이 처참한 주검이 바다위로 떠오르자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떨며 분노했고 이를 계기로 항의 시위가 전국으로 격렬하게 확대된다. 우리 민족의 민주와 자유를 향한 열망이 크게 꽃을 피운 4·19 학생혁명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두진은 이 시에서 마산이라는 지명 대신에 항구라고 적었고, 김주열 군의 죽음을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라고 빗대어 설명했다. 그리고 항구의 하늘을 가리는 아름다운 꽃 이야기를 시의 전반부에 펼쳐냄으로써 엄혹했던 고통의 시대를 밀어낸 거룩한 항쟁을 민주와 자유의 꽃의 축제로 형상화하고 있다. ‘자유에의 불꽃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시인의 선언은 자유 민주의 신념을 지켜내기 위한 김주열 군의 희생과 함께 4월 혁명 정신의 고귀함을 강조한 말이다. 김주열은 박두진의 시를 통해 혁명의 불꽃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도 4월의 마산에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하얀 벚꽃이 아름다울까? 그런데 그 꽃을 보며 김주열이라는 아름다운 불꽃을 기억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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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첨언하고 싶다. . 문화재청은 금년도에 “4·19 혁명 60돌을 맞아 ‘혁명 문화유산’ 7건을 민주화 문화유산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한다”고 밝힌바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것은 위의 〈부산일보〉 김주열 열사 사진을 비롯한 4월 학생혁명 관련 기록물들이다. 1960년 4월 12일 〈부산일보〉에 특종 게재된 김주열 열사의 사진은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