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내가 일본의 메이지(明治) 대학 초청으로 잠시 동경에 머물러 있었던 때의 이야기다. 조그만 공개강좌에서 나는 한국문학에 관한 강연을 하게 되었다. 강연이 끝난 후에 청중과의 문답 시간이 주어졌다.
첫번째 질문자가 일어섰다. 그런데 그는 내 강연과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왜 서울대학교에서는 대학입시에서 일본어를 제2외국어 과목의 하나로 인정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내가 질문의 내용이 강연과 상관이 없다고 하자, 그 질문자는 집요하게 나의 대답을 요구하였다. 나는 서울대학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전제하면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임을 내세워 두 가지 사실을 언급하였다.
첫째, 한국인들에게 일본어는, 한국어가 일본인들에게 그러하듯이 하나의 외국어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대학에서 배우는 제2외국어는 학문의 필요에 의해 배우는 ‘학문과 과학의 언어’이어야 하는데, 일본어는 학문과 과학의 언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학생들이 배우는 일본어는 학문과 과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용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구태여 대학 입시에서 그 능력을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언급했던 것이다.
둘째, 서울대학교의 입시제도는 서울대학교가 대학의 여러 가지 요건을 감안하여 정하는 것임을 말하였다.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될 대학생을 선발하는 것이므로, 대학 입시의 시험 과목을 서울대학교 밖에서 시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였다. 동경 대학이 어떤 과목을 입시 과목으로 내세우건 한국 사람들은 아무 상관없다고 덧붙였던 것이다.
요즈음도 가끔 서울대학교에서 왜 일본어를 정식 교과목으로 교육시키지 않는가에 대해 물어오는 분들이 있다. 서울대학교가 세상 물정도 모르고 일본어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타적 태도를 고루하게 지키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힐난조로 묻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에서는 오래전부터 일본어를 실용언어 중심의 별도 강좌로 개설하여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학에서의 모든 강좌는 교육의 목적에 맞게 개설되는 것이며, 그래야만 그 효율적인 교육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