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고 즐겁고 좋은 날

 

내가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여름방학을 맞아 일시 귀국을 준비하던 중에 하인즈 교수가 연락을 해 왔다. 미국 뉴욕주립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하인즈 펜클(Heinz Insu Fenkl) 교수는 무산 조오현의 시조에 빠져 있었다. <절간 이야기>의 번역 작업이 마무리 되고 있는데 원저자인 조오현 스님의 서문을 꼭 실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하인즈 교수는 불교에 깊은 조예를 지니고 있으며 동양 사상이나 철학에도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고 있다. 그가 조오현 스님의 시조를 읽고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우선 전 세계 시인들 가운데 선시(禪詩)를 직접 쓰고 있는 현역 시인으로 무산 스님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스님의 선시는 그 의미가 아주 깊은데도 쉽게 이해된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스님의 단시조 가운데 선정(禪定)의 세계를 그려낸 단시조 108편을 골라 번역하여 <For Nirvana (적멸을 위하여)>(컬럼비아대학 출판부)를 발간했다. 그리고 다시 두 권의 번역 작품집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 하나가 <절간 이야기>의 영역본이고 다른 하나는 스님의 <연시조집>이다.

하인즈 교수는 내가 방학에 한국에 나가게 되면 한번 스님께 부탁을 올려달라고 말했다. 나는 미국 출발 전 날 백담사 무금선원에 연락을 취했다. 지난해 식도암 수술을 받은 후 스님은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그대로 절간에 머물러 계셨다. 나는 한국에 도착하면 선원으로 큰스님을 찾아뵙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내가 백담사를 찾은 것은 지난 524일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난 뒤였다. 시자(侍者)가 나를 스님 계신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스님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많이 야위신 모습이었지만 그 카랑카랑하신 음성은 여전하였다. 큰스님은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박사님은 언제까지 버클리 대학에서 가르치실 것인가요?’

당초에 약속이 2020년까지입니다. 그런데 내년까지만 하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나는 일년이라도 빨리 돌아와 큰스님 호쾌하신 선문답을 곁에서 자주 듣고 싶다고 했다. 스님은 그렇게 약속을 바꾸어도 되는 일인가를 내게 물으셨다. 그리고 큰 소리로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했다.

박사님 돌아오실 때까지는 살아 있을 겁니다. 의사도 한 3년은 문제없다고 하였으니.’

나는 큰스님의 음성으로는 앞으로 10년도 걱정이 없어 보이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인즈 교수가 부탁한 영역 <절간 이야기>의 서문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큰스님은 손을 내저었다.

그 책에 무슨 서문이 필요가 있나요? 그냥 엮어내라고 하세요.’

나는 그 말씀에 더는 책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자리를 뜨려하자 큰스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꼭 내 서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반갑게 하고 대답을 드리니 큰스님은 <절간 이야기> 가운데 일곱 번째 것을 서문으로 쓰라고 하셨다. 나는 그 일곱 번째 이야기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나는 부분대로 하겠다고 인사를 드린 후 방을 나왔다.

내가 거처를 나오니 시자가 나를 따라오면서 큰스님이 오늘 아주 즐거우신 모습이라고 귀띔을 했다. 그리고는 걱정스럽게 내게 말했다.

벌써 석달 가까이 조석공양을 거의 못하시지요. 겨우 미음 조금 넘기시는데 요즘은 그것도 힘들어 하십니다.’

그러면서 큰스님 암 수술하신 부위의 식도가 거의 막혀서 음식을 삼키실 수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곡차(막걸리)로 입을 추기실 뿐이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외부에서 식도로 관을 삽입해야 한다는데 큰스님은 그런 의사의 처치를 듣지 않으신다고 했다. 아무래도 큰스님이 걱정이라는 것이다.

나는 하룻밤 백담사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저녁 공양 끝나신 후에 잠깐 다시 큰스님을 뵈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시자가 정해주는 방에 들어와 가방을 풀고 노트북을 꺼냈다. 컴퓨터에 보관되어 있는 파일 가운데 내가 엮었던 큰스님의 시전집 <적멸을 위하여>(문학사상사)를 열었다. 거기서 <절간 이야기>의 일곱 번째 이야기를 찾았다. 그것은 기쁘고 즐겁고 좋은 날이라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임제스님의 법제자 관계(灌溪)스님은 임종하던 날 시자와 한가롭게 차를 마시며

앉아서 죽는 것도(좌탈坐脫) 진기할 것이 없고, 서서 죽는 것도(입망立亡) 신통치 않고, 거꾸로 서서 죽는 것도(도화到化) 그리 썩 감심(感心)이 안되니. 옳지! 나는 이렇게 가야겠다.”

하고 일어나 마당에 가서 잠시 서 있다가 한 발짝, 두 발짝, , , 다섯, 여섯, 일곱 발짝까지 걸음을 떼어놓더니 그냥 그 자리에서 걸어가던 모양 그대로 죽었답니다.

이 일화를 우리 절 늙은 부목처사에게 했더니 부목처사는 뻐드렁니를 다 내어놓고

살아보니 이 세상에서 제일로 기쁘고 즐겁고 좋은 날은 아무래도 죽는 날이 될 것 같니더.”

하고 빙시레 웃는 것이었습니다. - 절간 이야기7

  

나는 이 이야기를 몇 번이나 읽고 나서 방을 나왔다. 그리고 시자를 찾았다. 큰스님을 뵈어야겠다고 했더니 내일 아침에 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날 밤 밤잠을 설치면서 설악 백담의 계곡 물소리를 들었다. 큰스님은 스스로 떠나실 날짜를 가늠하셨던 것일까? 다음날 아침 큰스님은 기운을 차리지 못하셨다. 나에게 서울로 올라가라고만 하셨다. 밖에 병원의 응급차가 도착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한국 현대문단에서 선시조의 개척자가 되었던 무산 조오현 대종사는 2018526일 열반에 드셨다. 큰스님은 기쁘고 즐겁고 좋은 날을 그렇게 스스로 택하셨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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