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모어(母語)의 날

유네스코(UNESCO)가 벌이고 있는 여러 가지 문화운동 가운데 “국제 모어의 날( Internatinal Mother Language Day)”이라는 특별한 기념행사가 있다. 이 기념일은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네스코가 매년 2월 21일을 “국제 모어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기로 한 것은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부터이다. 이제 겨우 6년이 지난 셈이다. 유네스코에서는 이 기념일을 통해 지구상에서 점차 소멸되고 있는 소수 민족의 언어들을 보존해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전개한다. 몇 년 전에는 세계 각 지역에서 점차 소멸되고 있는 언어들의 분포를 알아보기 쉽게 그려낸 <소멸 위기에 놓인 세계 언어들의 지도>를 만들어 이를 배포한 바 있다.

유네스코의 보고에 따르면 지금 지구상의 여러 민족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대략 6,500여종이나 된다. 아시아 대륙에는 2천여종이 넘는 언어가 있고, 아프리카에도 2천에 가까운 언어가 있다. 호주를 포함한 태평양의 여러 지역에는 1300여종, 아메리카 대륙에는 950여종, 그리고 유럽 지역에는 200여종의 언어가 남아 있다. 이러한 여러 언어들 가운데 중국어(북경 표준어)와 같이 8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있고, 벵골 만의 작은 섬에 살고 있는 한 부족은 불과 수십 명이 자기 종족의 언어로 생활하고 있다. 세계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는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4억 3천여만 명으로 추산한다. 스페인어의 경우는 유럽의 본토를 포함하여 중남미 전역에 걸쳐 약 2억 3천여만 명이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이 뒤를 이어 인도 지역의 힌디어와 중동의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각각 2억에 약간 미치지 못하는 정도이다. 이 통계를 놓고 보면 세계의 5대 언어가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힌디어, 아랍어임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의 인종 가운데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이 다섯 가지의 언어권에 살고 있다. 세계의 5대 언어를 제외하고 보면, 포르투갈어, 벵골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각각 1억 6천여만 명에 이른다. 포르투갈어는 유럽의 포르투갈과 남미의 브라질 등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벵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인도의 벵골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어와 독일어가 뒤를 따르고 있는데, 각각 1억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6,500여종이나 되는 언어 가운데 절반 가까운 언어가 사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 유네스코의 진단이다. 세계 각 지역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의 언어가 사멸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다른 민족의 문화적 침략에 따른 것이다. 서구 제국의 식민지 정책에 따라 아프리카와 미주 대륙, 그리고 호주와 아시아 지역에서 그 원주민들의 고유 언어가 상당수 사멸하게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언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원주민들의 고유문화와 역사 전체의 사멸로 이어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비참함 몰락은 그 언어와 문화와 역사 전체의 소멸과 함께 이제는 그 존재 자체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근대적인 국가를 형성하는 기반으로서 ‘국어’라는 개념의 통일된 일본어를 확립하고자 노력한 바 있다. 북쪽으로는 홋카이도의 아이누족의 언어에서부터 남서쪽의 유구 열도의 유구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족의 언어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강제적인 언어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그 결과로 현대 일본어의 표준을 확립하였지만, 각각의 종족이 유지하고 있던 고유 언어가 소멸될 위기에 처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홋카이도 지역에는 자기 고유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아이누 족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 일본 정부에서는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홋카이도에 아이누 박물관을 설립한 뒤에 아이누어의 복원에 힘을 기울인다. 그 결과로 이제는 아이누어가 상당한 세력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된다. 영국에서도 18세기 후반에 이미 사어가 되어 버린 코니쉬 부족의 언어를 다시 연구 복원하여 현재 천여 명이 이 말을 제2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소수 민족의 언어가 소멸되어 버리는 현상은 경제 운용의 통합, 정보 통신의 발달, 국제 교류의 증대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 과정 속에서 더욱 심화된다. 열세한 민족의 언어가 문화 경제적인 흡인력에 의해 우세한 민족의 문화에 휩쓸려 버리면서 그 사회적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언어문화 파괴 현상은 어떤 공동체가 형성해온 유형 무형의 역사적 산물들이 서로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붕괴되거나 변질될 수 있다는 단순 논리로 이해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지식 정보의 소통의 편의를 위해 궁벽한 자기 언어를 버리고 가장 편리한 영어를 쓰자는 식의 극단적인 기능주의적 발상이 가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일본에서조차도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문화주의적 경향을 지속적으로 방치할 경우, 심각한 인류적 차원의 문제들을 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자기 종족의 고유 언어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그 문화적 기반 위에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해온 하나의 공동체가 고유 언어를 잃어버리는 것은 공동체의 문화적 기반을 모두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같은 문화의 붕괴는 그 종족의 정신적 육체적 소멸로 이어지면서 그 종족의 존재 자체를 붕괴시키는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게 됨은 물론이다. 유네스코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국제 모어의 날”을 지정하게 된 근본 취지 또한 여기에 있다. 세계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여러 종족의 고유 언어를 유지함으로써 그것을 기반으로 형성된 문화를 지속 발전하게 하여 인류 전체가 다양한 문화의 균형과 조화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유네스코만의 희망은 아닐 것이다. (2006.2,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