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 여섯이 펼치는 섹스 판타지를 함께 묶어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라는 테마 소설집을 내놓는다. 이 책은 지난 가을에 내놓은 남성 작가들의 이야기의 후속편에 해당한다. 바따이유는 에로티시즘을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라고 했다. 이 말을 조금 바꾸어 보면 섹스야말로 죽음까지 이어지는 삶에 해당한다. 섹스가 생의 연속성에 함께 한다는 뜻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평재의 <크로이처 소나타>은 섹스의 판타지를 음악의 선율과 소리의 감각을 통해 펼쳐낸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육체보다도 감성의 에로티시즘이 더욱 현란하다. 김이설의 붓끝은 파괴적이다. <세트 플레이>의 이야기는 육체도 정신도 섹스라는 행위 속에서 소진된다. 한유주의 <제목 따위는 생각나지 않아>에서는 덧없이 소멸하는 개체로 떠밀리고 있는 주체에 대한 환상이 인상적이다. 서사를 해체하면서 얻어내고 있는 이러한 느낌과는 달리, 김이은의 <어쩔까나>는 단단한 결구(結構)의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것이 언제나 육체의 에로티시즘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되풀이된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구경미의 <팔월의 눈>에는 존재의 고립감이 서사를 압도하지만, 환멸의 삶에도 섹스가 스며든다. 은미희의 <통증>은 극단적이다. 육체의 에로티시즘을 그림 그리기로 환치시켜 놓음으로써 섹스가 드러내는 파괴적 속성을 환유처럼 제시한다.

 

섹스는 육체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이 욕망은 파괴적이지만 존재의 가장 내밀한 구석까지도 건드리는 심정적 여운을 남긴다. 그러므로 그것은 육체를 뒤흔들어 놓는 충동을 다시 불러일으키며 열정의 불꽃으로 살아난다. 섹스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단순히 반복되거나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음탕한 욕정만을 위해서 육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힘을 육체로부터 발산하게 한다. 이 시대의 삶의 표층에 섹스가 난무하고 모든 담론의 은밀한 구석에 섹스가 흉물스럽게 도사리고 있다. 이 혼돈과 어둠의 골짜기에서 섹스의 판타지를 건강하게 끌어내는 일이야말로 이 책에 동참한 작가들과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권영민)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