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라는 희대의 국정 농단 사건을 담당한 변호인들이 검찰의 조사 내용을 ‘소설 같은 이야기’라면서 부정하고 있다. 검찰 조사 내용이 모두 근거 없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며, 법리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혐의 내용을 부인하고 있다. 소설 연구에 일생을 걸어온 나 같은 연구가가 듣기에 어이가 없다. 꽤나 높은 학식과 교양을 지닌 것처럼 행세했을 사람들이 아무 데나 소설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이 불만이다. 소설에 대한 인식이 겨우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소설은 어떤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다. 작가는 일련의 사건들을 배열하여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소설을 꾸며낸 이야기라고 한다. 소설 속 이야기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은 어떤 행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장소와 시간을 실제처럼 그려내는 일이 필요하다. 소설의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에 근거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만 그려내지는 않는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소설의 세계를 흔히 허구라고 하는데, 그것은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가공의 현실을 지적하는 말이다. 물론 허구라는 것도 실재성을 토대로 성립된다. 

‘최순실 게이트’야말로 거짓된 정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권력과 사욕이 치정(癡情)처럼 뒤엉켜 있다. 정치는 민주적 제도와 법적 질서를 통해서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우리 국민이 험난했던 민주화 과정을 통해 확립해 놓은 법적 제도와 질서를 권력이 자기 욕심대로 다시 짓밟아 버린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멸시다. 국가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거창한 정책이 권력 뒤에 숨겨진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데 동원되었다는 것은 국가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모두 ‘최순실 게이트’가 너무나 부끄럽고 그 내막에 대해 치욕감마저 느낀다. 하지만 거짓된 정권을 혐오하면서도 바로잡아야 할 정치를 위해 촛불을 들고 있다. 권력이 멋대로 국가 질서를 무너뜨렸는데 그것을 비호하는 사람들은 그 권력을 위해 구차한 법리를 따지고 옹색하게 법치를 내세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다.

거짓말은 진실을 말하기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다. 거짓말은 거짓으로 꾸며진 것이므로 그 거짓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반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거짓말도 그 긴 꼬리에 단서가 잡힌다. 거짓말은 진실을 통해 거짓의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며 그 위선(僞善)의 가면으로 인해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결코 허황된 거짓말이 아니다. ‘소설처럼 재미있다’든지, ‘소설 같은 일’이라든지, ‘소설에서나 가능하다’든지 하는 말은 소설이라는 양식 자체가 그만큼 인간의 삶에 밀착돼 있음을 의미한다.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 속에 삶을 바라보는 진지한 자세와 그 진실을 담아낸다. 소설이 허구이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소설은 전혀 터무니없이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서사 기법에 따르는 일정한 짜임새를 갖는다.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 등을 얼마나 짜임새 있게 꾸며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이야기 형식으로 바꿔 놓는다. 소설 속 이야기는 개인의 삶과 사회적 가치 사이의 조화로운 통합을 지향한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자기 운명의 궁극적인 지점까지 살아가야 하는 인물을 창조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현실 속에서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지향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의 인물이 평범한 개인이면서도 문제적 성격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설 같은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것을 뜻한다. 소설이라는 말을 함부로 폄하하지 말라. 소설은 거짓말이 아니다. (<동아일보>, 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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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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