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한복판에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이 지난달에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은 국립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열아홉 번째 박물관으로 국립자연사박물관, 국립항공우주박물관 등이 자리 잡고 있는 워싱턴 내셔널 몰 안에 위치해 있다.

이 박물관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노예 상태로 미국에 강제 이주당한 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을 거쳐 미국 시민으로서 당당한 지위를 누리게 되기까지의 역사를 기록 보존하고 전시 교육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흑인이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억압당했는지, 어떻게 인종 차별의 고통을 극복해 왔는지 연구하고 이와 관련된 기록과 유물을 정리 전시하면서 흑인 문화가 미국 사회의 역사와 문화에 끼친 영향을 함께 보여주게 된다.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의 건립 문제는 1980년대 흑인 인권운동가 출신 존 루이스 하원의원이 관련 법안을 의회에 상정하면서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무려 15년 동안 의회 안에서 발이 묶여 있다가 2003년에야 비로소 의회를 통과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서명에 의해 박물관 설립의 단계적 실행이 가능해지자 오프라 윈프리, 마이클 조던 등 유명 흑인 인사들과 수많은 기업, 사회단체들이 거액을 기부하면서 사업에 속도가 붙었고, 준비팀에서는 전국 15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개최한 ‘앤티크 로드쇼’를 통해 전시 자료를 폭넓게 수집했다. 

이 박물관에서 수집 전시하고 있는 자료는 무려 4만여 점이나 된다. 초기 흑인 노예들의 생활용품들에서부터 흑인들의 사회 문화 예술 활동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다. 여성 노예해방운동가로 현행 20달러짜리 지폐의 앞면 모델이 된 해리엇 터브먼이 걸쳤던 숄도 있고,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민권운동에 불을 붙인 로사 파크스의 드레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악명 높았던 백인우월주의 단체 ‘KKK’의 의상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무하마드 알리의 복싱 글러브, 육상 단거리 선수 칼 루이스가 신었던 운동화, 재즈 음악가 루이스 암스트롱이 불었던 트럼펫 등도 눈에 띈다.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흑인의 자리를 별도로 구분했던 버스의 좌석 표시라든지, 1905년 시카고에서 설립된 흑인신문 ‘시카고 디펜더’의 주필이 사용하던 책상도 있다. 버지니아에 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008년 대선 캠프 사무실도 그대로 옮겨졌고, 미국 각지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흑인 인권운동 관련 자료까지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의 개관 기념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는 전체 미국인의 역사와 별개의 것이 아니며 미국사의 핵심에 자리한다”고 주장했다.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의 건립은 미국이 지향하고 있는 다문화주의의 이념과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을 상징한다. 

이 국립박물관에서 미국 역사의 어둡고도 부끄러운 장면들을 숨김없이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미국인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흑인의 참혹한 역사와 그 차별의 어두운 장면들을 맨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이 불편이야말로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힘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념 연설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지금도 여전히 인종 갈등에 휩싸여 있다. 최근에는 오클라호마, 샬럿 등지에서 일어난 경찰의 흑인 총격 사건에 대한 많은 시민들의 항의 집회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 사회의 다양한 인종이 각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건전한 사회 발전과 통합을 이루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과제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동아일보>, 201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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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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