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은 1937년 4월 17일 일본 도쿄(東京)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죽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80년이 되었다. 김기림은 이 불행한 천재 시인의 죽음을 보고 ‘주피터 추방’이라며 슬퍼했다. 그리고 이상의 새로운 예술을 올림포스 최고의 신 주피터의 이름으로 다시 호명하고자 했다.

이상은 연작시 ‘오감도’를 쓰고 소설 ‘날개’를 발표한 후 도쿄로의 탈출을 꿈꾸었다.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는 현해탄(대한해협)의 높은 파도를 넘어 일본으로부터 밀려들어 오는 새로운 문명이 하나의 희망일 수밖에 없었다. 이광수가 문단의 ‘춘원(春園) 시대’를 열게 된 곳도 도쿄였고, 임화가 무산계급에게 국가가 없다는 신념을 키웠던 곳도 도쿄였다. 

이상은 1936년 늦가을 도쿄로 건너갔고 반년 정도 거기서 머물렀다. 그가 도쿄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 있다. 도쿄에서의 그의 죽음 또한 그 문학의 마지막 장면을 정리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의문점들을 안고 있다. 

이상은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그는 김기림에게 자신의 도쿄 도착 소식을 전하는 편지에서 ‘기어코 동경(東京) 왔소. 와보니 실망이오. 실로 동경이라는 데는 치사스런 데로구려!’라고 적었다. 이상이 도쿄의 첫인상을 ‘치사스런 데’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1930년대 동양 최고의 도시였던 도쿄를 돌아보면서 식민지 조선의 초라한 시인 이상은 ‘어디를 가도 구미가 당기는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것은 도쿄의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표피적인 서구의 악취(惡臭)’ 때문이었다. 서구 문명의 껍데기를 겨우 흉내 내면서 그것으로 진짜 행세를 하는 꼴이 구역질이 난다고 꼬집기도 했다. 도쿄라는 도시의 비속성(卑俗性)에 대한 이상의 비판적 태도를 본다면, 그의 도쿄 생활은 여기서 이미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상은 제국의 수도 도쿄가 자신이 꿈꾸었던 현대정신의 중심지가 아님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는 서구 문명의 세계를 치사하게도 흉내 내고 있던 도쿄의 ‘모조(模造)된 현대’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도쿄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재구성하거나 해체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도회의 산책자가 되어 도쿄의 번화가를 거닐면서, 화려한 긴자(銀座)의 거리를 두고 ‘한 개의 그냥 허영 독본(虛榮讀本)’이라고 적었고, ‘낮의 긴자’는 ‘밤의 긴자의 해골’이라서 너무 추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현대와 세기말의 허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도쿄라는 대도시에 대해 비아냥대었다. 하나의 거울에 또 다른 하나의 거울을 비춰 보듯이 이상이 발견한 이 도쿄의 이미지는 문명의 화려한 꽃이 아니라 그 어슴푸레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상은 새봄이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계획대로 귀국할 수 없었다. 그는 일본 고등계 형사의 취체(取締)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서로 끌려갔다. ‘거동 수상자’라는 이유로 경찰에 검거된 그는 도쿄의 늦겨울 한 달을 차디찬 경찰서 유치장에서 견뎌야 했다. 이 불행한 영혼은 그 육신과 함께 거기서 무참하게도 허물어졌다. 그리고 결국은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상은 스물여덟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주피터 승천하는 날 예의(禮儀) 없는 사막에는/마리아의 찬양대도 분향도 없었다./길 잃은 별들이 유목민(遊牧民)처럼/허망한 바람을 숨쉬며 떠 댕겼다./허나 노아의 홍수보다 더 진한 밤도/어둠을 뚫고 타는 두 눈동자를 끝내 감기지 못했다.’ 김기림은 이상의 죽음을 보면서 ‘주피터 너는 세기(世紀)의 아픈 상처였다’고 목을 놓아 울었다. 그는 이상의 짧은 생애를 시대고의 희생이라면서 안타까워했다. 

김기림이 이상에게 부여한 ‘주피터’라는 이 새로운 이름은 그 예술적 재능에 충분하게 값했다. ‘주피터’라는 이름 그대로 이상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이 되었다!

(<동아일보>, 2017.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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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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