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천>의 시인 유홍준은 늦가을 들녘의 바람 같다. 그의 시는 스치면서 상대방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북천>은 시인이 태어난 곳이고 살고 있는 땅이며 숱한 죽음을 보았던 곳이다.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이곳을 시인은 한 마리의 검은 까마귀가 되어 날아오른다. 그리고 유령처럼 떠돈다. 그는 삶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저편 죽음의 세계에서 여기 삶의 공간을 돌아본다. 이 특이한 시각이 유홍준의 연작시 <북천>을 낳고 있다.

북천이라는 공간은 유홍준의 시적 성소(聖所)이다. 결코 과장하지 않는 이 시인에게 성소라는 말도 부담을 줄 듯하다. 오히려 평범하게 시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편할지 모르겠다. 자기 문학을 자기 삶에서 찾는 시인도 있다. 더러는 자기 언어를 타자의 삶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유홍준 시인은 자기 문학의 정신을 북천이라는 공간에 뿌리내리고 서 있다. ’북천이 시인 유홍준을 낳았고 시인 유홍준이 다시 북천을 살리고 있다. 자기 문학의 정신적 거점을 이렇게 오롯하게 지켜내고 있는 시인은 달리 찾아보기 힘들다.

다음은 지난 20138월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권영민의 문학콘서트>에서 권영민 교수와 유홍준 시인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권영민 : 우리 처음 만나지요? ‘권영민의 문학콘서트에 나와 주시니 반갑습니다. 지난 여름 2013년도 소월시문학상의 최종심사 과정에서 모든 심사위원들이 단번에 유 시인을 대상 수상자로 천거했기 때문에 모두들 놀라기도 했지요. 우리 시대의 서정시가 빠져들기 쉬운 일상적 감상을 떨쳐버리고, 시간과 공간을 모두 초월하는 추상적 세계를 북천이란 하나의 구체적 공간 속으로 끌어들이는 상상력의 힘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유홍준: , 정말 어리둥절하고, 맞긴 맞나,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닌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언론에 발표가 날 때까지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번복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요.

소월시문학상이 어떤 상인지 잘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의 수상자들의 위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소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요 뭐. 다만 이런 생각, 아 이제 정말로 이제 시로부터 피해 갈 수가 없겠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영민 : 제가 소월시문학상 대상 선정이유서를 작성하면서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물의 존재와 부재, 생명과 죽음 등에 관련되는 본질적인 문제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통찰을 통해 인간의 삶과 그 존재 의미를 특이한 어조로 형상화하고 있다고 설명을 붙였습니다. 대상 수상작이 된 연작시 <북천>은 시적 시공간의 설정 자체가 일상적 경험과 연결되어 있지만 죽음에 관한 시인의 사유 방식이 그 폭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한국 현대시 가운데 주목되는 성과에 해당한다고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유 시인이 직접 연작시 <북천>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유홍준 : 북천은 지금 제가 생활하고 있는 구체적 공간인데요, 경남 하동에 있는 실제 행정 지명입니다. 2년 조금 넘게 그곳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그곳에 살면서 <북천> 연작을 한 30편 정도 발표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 첫 시집부터 북천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첫 시집의 제목이 된 <상가에 모인 구두들>에 보면 맨 마지막 구절이 북천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에요. 그리고 두 번 째 시집 <<나는, 웃는다>>에 실린 맨 마지막 시는 제목 자체가 <북천>이에요. 일테면 전조가 있었다는 이야기이지요.

굳이 짚어나가자면 이번 수상작 <북천> 연작 역시 그 연장선에 있을 것 같아요. 앞에 시집들에 등장하는 북천이 다 죽음과 관련이 있었거든요. 지금 생활하고 있는 북천으로 출근을 하는 즉시 저는 아, 이거구나! 운명이구나! 생각했지요. 자연스럽게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을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 보았어요. ‘북천은 그러니까 죽음은 늘 제 시의 모티브이고 추동력이고 시의 궁극이지요.

이번에 상을 받게 된 <북천> 연작 역시 그런 연장선 위에서 탄생한 것이구요.

 

권영민 : <북천> 연작에서 북천이라는 공간은 삶의 터전이지만 일상적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죽음의 시공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북천을 죽음의 거처로 단순화시키지 않고 생명의 종말과 그 새로운 탄생이라는 순환적 의미의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상작을 독자들에게 직접 낭독해 줄 수 있는지요?

 

유홍준 : , 제가 경상도 사람이고 발음이 부정화하긴 한데,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이번에 소월시문학상 심사하신 분들이 뽑아주신 <북천 까마귀>를 읽어보겠습니다.

 

어제 앉은 데 오늘도 앉아 있다

지푸라기가 흩어져 있고 바람이 날아다니고

계속해서

무얼 더 먹을 게 있는지,

새카만 놈이 새카만 놈을 엎치락뒤치락 쫒아내며 쪼고 있다

전봇대는 일렬로 늘어서 있고 차들은 휑하니 지나가고

내용도 없이

나는 어제 걸었던 들길을 걸어 나간다

사랑도 없이 싸움도 없이, 까마귀야 너처럼 까만 외투를 입은 나는 오늘 하루를 보낸다

원인도 없이 내용도 없이 저 들길 끝까지 갔다가 온다

 

 

권영민 :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 같아요. 이런 작품을 쓰는 시인은 시쓰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유홍준 시인에게 시 쓰기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유홍준 : 아이구, 시 쓰기의 의미를 물으시니 좀 난감한데요, 글쎄요, 얼마 전에 포클레인 정비업을 하는 친구네 사무실에 놀러를 갔어요. 거기 고물을 주우러 다니는 친구가 하나 저처럼 놀러를 와 있었는데, 한두 번 면식이 있긴 했지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집 주인인 고향 친구가 서로 인사를 시켰는데, 저를 시인이라고 인사를 시킨 거예요. 근데 그 고물장수가 아무래도 제가 시인이 아닌 거 같다고 느꼈나 봐요. 그냥 노동자로 보였다는 거죠. 살짝 저 몰래 그 포클레인 정비업을 하는 고향친구한테 물었대요. “에이, 아니제? 노가다제?” 하고요.

글쎄요, 시 시쓰기의 의미에 관해서 저는 고상하고 크게 얘기하고 싶진 않네요. 전엔 저도 <업 위에 다시 업을 쌓는 행위><치유의 기능을 가졌다> 등 고상한 말들을 하곤 했는데 그건 뭐 아주 기본적인 것, 일반적인 거고 저는 시가 나를 먹고 살도록 해 줬다고 말하고 싶네요. 시 쓰기의 의미와는 조금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사실 시가 돈도 밥도 안 된다지만 아니에요, 제 경우에는 돈도 벌고 좋은 직장도 얻고 그렇게 해 주더라구요. 시가요.

 

권영민 : 말씀을 듣고 보니 공감이 갑니다. 제가 유홍준 시인의 시적 세계를 알아보려고 책을 뒤지다가 깜짝 놀랐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문학과는 거리가 먼 수많은 일을 해온 것으로 되어 있었거든요. 제지공장 노동자로도 일을 했고, 공사판에도 나갔더군요. 우리나라에 수천명의 시인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대학을 나와 창작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등단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잘 만들어진 시인들인 셈이지요. 그런데 유 시인의 경우는 특별히 문학을 수업한 경험이 없어 보였어요. 특이한 사람이구나, 그런데 시를 어디서 배웠나? 하고 궁금했습니다. 시에 입문하게 된 동기 또는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소개해 주실 수 있는지요?

 

유홍준 : 시를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으시는 거지요? 제 경우를 놓고 본다면 시를 배운다는 건 조금 맞지 않는 것도 같구요. 물론 디테일이나 미장센, 그런 레토릭 같은 건 배우겠지요. 그러나 시는 배우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냥 시한테 내 몸을 맡긴다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시하고 몸을 섞고 살을 섞고 사는 거지요 뭐. 그런 결정, 결단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한텐 그것이 우연한 기회에 왔어요.

저도 중학교 때 소월이나 영랑, 한하운 같은 분들을 시를 접하고 좋아했구요, 고등학교 땐 제법 조숙해져서 오규원 강은교 신대철 이런 분들의 시도 읽었단 말예요. <<문학사상>> 같은 잡지도 그때 봤지요.

그런데 이십대 때, 1980년대에 저는 문학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졌죠. 먹고 사는 문제로요, 그러다가 우연히 제가 사는 진주 지역의 문학상에 두어 번 응모를 했고, 상을 받았고,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어요. 김언희 선생님과의 만남이었죠. 6, 7년 사숙을 했어요. 선생님 댁을 들락거리며 책도 얻어다 읽고 영화도 빌려다 보고 그랬죠. 그림, 사진, 영화 등을 꽤 봤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나요, 그때가 제 문학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기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특별히 문학수업을 받지 않았다, 그건 아닌 거죠 뭐.

 

권영민 : 좀 유별나긴 하지만 그렇게 문학의 길에 접어들었군요. 1998년 시단에 등단하셨는데, 첫 시집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2004)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어요. 그 뒤 나는, 웃는다(2006)저녁의 슬하(2011) 세 권의 시집을 내었지요? 첫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이후 자신의 시 세계에 어떤 특별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는지요?

 

유홍준 : 글쎄요, 변화를 의도한 건 없는 것 같구요. 저는, 시인이 변화를 의도 혹은 주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것도 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시가 가자는 대로 가자, 뭐 그런 생각이죠, 여전히. 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게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시를 쓰는 분들 중에도 예술가로서의 기질이 좀 더 강한 분들이 있는데, 그들은 의도하는 것 같아요. 변화를요, 다른 이름으로 하면 변화가 아니라 의도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그래도 굳이 생각해보면 말씀드린다면 제 첫 시집은 그 대상이 무엇인가를 따지기 전에 돌파하려는, 돌파해 내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시집도 역시 그렇습니다만 그 의지는 다소 약해졌구요, 직방으로 다가가려는 의도가 작동했지요. 시적 상관물에 다가가는 태도로써 직방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시집은 삶의 직접성을 생각했구요.

공통점이 있다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방식, 그것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태도는 거의 체질이 되어서 세 번째 시집 이후 그러니까 <북천> 연작들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권영민 : 유 시인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시 세계를 이렇게 설명해 주니 더욱 가깝게 느껴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유 시인이 최근 대학에 시창작 강의를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혼자서 시를 공부했던 경험과 강단에서 시를 가르치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시 창작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유홍준 : 대학의 강단에 선다고 말하는 것이 좀 쑥스럽습니다. 저는 제가 누굴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어요. 누구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하고 누가 누굴 가르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더군다나 저는 가르칠 만한 깜이 아니기도 하구요. 시를 가르쳐서 되는 거라면 참 재미없겠지요. 저 같은 사람은 시인이 안 되기도 했을 거구요.

문제는 에너진데, 아이구, 요즘 아이들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의 전부를 던지지를 못 해요. 그런 의지가 없는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 에너자이저가 돼 주는 것, 결국 그게 문창과 선생의 몫일 텐데, 그거 해 보니까 엄청 힘들더라구요. 제 시를 못 쓰기도 하겠구요. 제 시 다 쓰면서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순 없잖아요. 그게 늘 힘들고, 그래서 하기 싫고, 해선 안 되는 거다 뭐 그런 생각이 들고 그렇지요.

하여간 저는 수업 시간에 거듭해서 말하는 게 두어 가지 있는 데요, 하나는 설명하지 마라예요. 설명은 누가 해? 그건 이론가가, 교사가 하는 거다. 작가는 그러면 안 된다. 또 하는 설교하지 마라예요. 설교는 누가 해? 목사가, 스님이, 맞아, 깨달음은 문학에 있어 죽음이야, 절대로 깨닫지 마,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잘 안 되나 봐요. 우리 기성 시인들 중에도 많은 숫자가 가르치려고 들고 한 깨달음 한 것처럼 하는 데 저는 그거 옳지 않다고 봐요. 문학은 그냥 보여주는 거죠. , 봐라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 하구요.

썩은 고기를 내밀면 다들 고개를 돌리죠. 그게 저는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권영민 : 시의 내면으로 한 발짝 쯤 들어가 볼까요? 제가 읽어본 <북천> 연작 가운데 <북천 목기(木器)에 담긴 밥>이라는 시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목기에 담긴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수육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왜 수저를

왼쪽에 갖다놓는 거야

향냄새가 밴 나물, 향냄새가 밴 과일

목기에 담긴 술을 마실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떡을 뗄 때가 올 것이다

나도 알지 못하고 너도 알지 못하는

글자들이 잔뜩 새겨진 병풍 뒤에서 동태를 살필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저 과일이 먹고 싶은데

내 아이들은 자꾸

고기 위에 젓가락을 갖다 올려놓는 날이 올 것이다

두 자루의 촛불을 켜 놓고 내 아이들이 자꾸 절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부침개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유 시인의 시 속에는 삶과 죽음이 서로 얽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사자(死者)’의 입장에서 살아 있는 자들의 모습을 넘겨다본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봅니다. 저는 <북천> 연작이 주는 깊은 감응력과 함께 그 정서적 충격이 강렬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시인은 하나의 시적 공간에 이 두 가지 차원의 세계를 몰아넣고 있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궁극적으로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유홍준: 조금 복잡한 설명이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썩은 고기를 내밀면 고개를 돌린다는 말과도 상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저는 시를 하나의 프레임 속에 하나의 장면으로 제시하려는 습성이 있어요. 어떤 한 순간, 찰나의 장면을 통해 본질을 보여주려고 하는, 그것이 제 스타일이었죠. 특히나 첫 시집을 내기 전까지 저는 기의보다는 기표쪽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대부분의 시들이 기의 쪽이어서 좀 식상하기도 했구요.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이냐고 물으셨는데, 저한테 그건 공존이죠.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이론, 공부가 아니라 살아온 이력, 경험 때문이구요. 정말로 저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왔어요. 그리고 거기엔 늘 죽음이 있었죠. 몰라요, 하여간 저한텐 그게, 죽음이 자꾸 보였어요.

정신병원 보호사 일을 할 때 일을 이야기 하나 할 게요. 아직도 그 이름을 잊어먹지 않아요. 박재억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다리를 하나 약간 절었어요. 평소에 저하고 장난도 좀 치고 그랬죠. 상태가 많이 바쁘진 않았는데 약이 안 들었던지 어쨌든지 하여간 상태가 좀 안 좋아졌어요. 그래서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은 모아놓는 방으로 옮겼죠. 야근이었어요. 아침에 기상을 하고 점호를 하는데 그 방 사람은 상태가 안 좋으니까 점호가 잘 안 돼요. 그래서 머리 숫자만 헤아렸죠. 그리고 아침에 되게 바빠요. 이거 저거 할 일이 엄청나게 많은데, 식사시간이었어요. 그땐 다들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누가 박재억 씨가 안 일어난다는 거예요. 좀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 봤더니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어요. 익스파이어(expire), 죽은 거죠. 담요에 그 시신을 싸서 들어다가 안정실에 갖다놓고 나머지 환자들 밥을 먹였어요.

그래요, 죽음과 삶은 늘 한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거예요. 저희 시골집 안방 같은 공간처럼요, 태어나는 공간, 산실이고, 죽음이 치러지는 공간이죠. 그 공간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랑을 하고, 나를 낳고, 거기다 밥상을 펴고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자랐어요.

죽음과 삶은 저에게 분리해서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권영민 : ‘공존이라고 하셨지요?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일 수 있다는 말과도 통하는 듯합니다. 일종의 시적 패러독스를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하나의 역설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런 말씀은 독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오늘의 만남과 대화를 마감해야 할 시간이 되었어요. 좀 아쉽지만 유홍준 시인이 시와 독자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유 시인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유홍준 : 저는 시인들이 좀 더 독자에게 서비스를 잘 했으면 좋겠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이상한 멜랑콜리한 시를 쓰는 사람들처럼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의 몫을 좀 더 남겨두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시를 다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좋은 시인은 독자의 몫을 딱 남겨 놓는다 그렇게 생각해요. 시는, 시인이 다 쓰면 안 되죠. 독자가 완성하도록 하는 시, 독자의 몫을 남겨두는 시, 그게 좋은 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보통은 시인들이 다 쓰죠, 다 썼버리죠. 그러니까 재미가 없죠.

어느 때나 독자가 시인보다 우월해요, 그리고 똑똑해요. 시인들은 제가 똗똑하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 그렇지 않아요. 언제나 독자가 시인보다 똑똑해요. 시인은 자 봐라, 하고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설명하고 설교하고 턱도 없이 그런 짓을 하죠. 그러니까 독자가 멀어지죠. 빤한 걸 뭐, 그리고 그러면 그 반응이란 게 뭐예요, 흥 너 잘났다 그래, 그거 아닙니까.

하여간 전 제 독자가 정말 있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구요, 제가 엄청 시골에 사니까요. 다만 한 두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좋겠다, 그 생각만 합니다.

 

권영민 : 오늘 멀리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독자들은 유홍준 시인을 <북천>의 시인으로 기억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시 많이 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유홍준 :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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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金素月)의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1902년 평북 구성에서 출생했다. 오산학교 중학부, 배재고보를 거쳐 1923년 일본 도쿄 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광동대지진 직후 귀국하고 학업을 포기했다. 1920창조지에 시 낭인의 봄, ()의 우적(雨滴)등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으며, 1924년 김동인(金東仁), 김찬영(金瓚永) 등과 영대동인에 참가하기도 했다. 시집 <진달래꽃>(1925) 발간 후 고향에서 부친의 사업을 이어 광산업 등에 관여하다가 1934년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김억에 의해 시집 <소월시초>(1939)가 발간되었다.

김소월의 작품 활동을 보면 그는 당대 문단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소월은 스승인 김억의 도움으로 동아일보 개벽 등에 작품을 발표하였고, 동인지 창조에도 시를 발표하였지만 창조의 동인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1923년 동경상과대학에 입학하였지만 대지진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한 그는 다시 동경으로 건너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서 문단활동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고향인 평안북도 구성으로 내려가서는 집안의 사업을 도왔다. 1924년 문학동인지영대에 이름을 올렸지만 편집에 직접 관여하지도 않았다.

김소월의 부음이 서울에 전해진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사흘 뒤였다. 당시 조선일보는 (1934. 12. 27) 청년시인 소월 김정식씨가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24일 아침 뇌일혈로 급작스럽게 별세하였다고 보도하였고, 동아일보(1934. 12. 27)는 시인 김소월이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西山)면 평지(坪地)동 자택에서 24일 오전 8시에 돌연 별세하였는데 그가 최근까지 무슨 저술에 착수 중이었다고 전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김소월의 죽음은 그 뒤 자살로 알려지면서 더욱 큰 충격을 던졌다. 그가 다량의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는 주장은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 주장은 정확한 근거 없이 수많은 논저에서 반복되었다. 그런데 최근 그 유족 가운데 한분의 증언에 의하면 김소월이 고향에서 심한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밝혔다. 고통이 더해지면 하는 수 없이 아편을 조금씩 복용하여 그 통증을 잊고자 하였다. 소월의 죽음은 바로 이 관절염의 고통을 잊고자 과량으로 복용한 아편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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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은 한국 근대시의 전개 과정에서 시 정신과 시적 형식의 조화를 통해 한국적인 서정시의 정형을 확립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손꼽을 수 있다. 근대시의 성립과 함께 문제시되었던 새로운 시 형식의 추구를 염두에 둘 경우, 김소월의 시는 분명 시적 형식의 독창성을 확립하고 있다. 그는 서구시의 형식을 번안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한국 근대시의 형식에 새로운 독자적인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시적 형식은 전통적인 민요의 율조와 토속적인 언어 감각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250여 편을 넘는 작품들은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균제된 시적 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모든 작품들이 그 자체의 형식을 통해 완결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 간결하면서 절제된 형식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그의 시들은 율조의 흐름에 무리가 없으며, 내적인 호흡의 자유로움을 구현하고 있다.

김소월의 시는 3음보 형식의 리듬을 구현한다. 김소월의 시를 낭송하게 되면 각각의 시행 안에서 대개 3-4음절로 구성되어 있는 어절(마디)3번씩 반복되는 특징을 드러낸다. 이 하나하나의 마디를 음보라고 할 수 있다. ‘산에는 / 꽃 피네 / 꽃이 피네에서처럼 하나의 시행 안에 3-4음절로 구성되는 3개의 음보가 배치되어 시간적으로 동일하게 반복된다. 3음절로 이루어진 음보이든 4음절로 이루어진 음보이든 그것이 하나의 시행 안에서 실현될 때에는 그 시간적 길이가 동일하다. 그리고 동일한 시간량을 지닌 음보가 하나의 시행 안에서 규칙적으로 배열되면서 율격의 패턴이 결정된다. 전통 시가인 시조나 가사의 경우는 네 개의 음보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4음보격의 율격을 유지했다. 그런데 김소월은 하나의 시행에 세 개의 음보를 규칙적으로 배열하면서 3음보격의 시적 율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민요의 율격적 패턴의 시적 수용에 해당한다.

김소월은 3음보격의 율격을 통해 한국어의 시적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 그는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언어, 즉 고유어를 그대로 시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심지어는, 관서지방의 방언까지도 그의 시에서 훌륭한 시어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언어를 전통적인 율조의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김소월의 시는, 바로 그러한 언어의 특성에 기초하여 민족의 정서를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험의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고유어는 정감의 깊이를 들어내어 보여줄 수 있으며, 짙은 호소력도 지닌다. 그의 시적 언어의 토착성이라는 것은 그 언어를 바탕으로 생활하고 있는 민중의 정서가 언어와 밀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김소월의 시에는 추상적인 개념어가 거의 없으며, 구체적인 정황이나 동태를 드러내는 토착어가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있다. 그의 시가 실감의 정서를 깊이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언어적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특히 그의 시의 율조는 민중의 호흡과 같이하면서 유장한 가락에 빠져들지 않고 오히려 간결하면서도 가벼운 음악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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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은 그의 대부분의 시에서 서정시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는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그려내기보다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 속으로 자연을 끌어들여 그 정조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에서 즐겨 다루어지고 있는 자연은 서정적 자아의 내면 공간으로 바뀌고 있으며, 개별적인 정서의 실체로 기능하고 있다.

김소월이 그의 시에서 즐겨 노래하고 있는 대상은 사랑하는 이거나, 떠나온 고향이다. 모두가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임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심정은 어떤 면에서 자못 퇴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다시 만나기 어렵고, 다시 찾기 힘든 그리움의 대상을 끈질기게 추구하면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낭만적이기도 하다. 물론, 김소월의 시에 볼 수 있는 슬픔의 미학은 슬픔의 근원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의 결여를 들어 무의지적 측면이 비판되기도 한다. 그의 시적 지향 자체가 지나치게 회고적이고 퇴영적이라는 지적도 타당성을 갖는다. 그렇지만, 그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정한의 세계가 좌절과 절망에 빠진 31운동 이후의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한다면, 그 비극적인 상황 인식 자체가 현실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寧邊藥山

진달내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거름거름

노힌그꽃

삽분히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아니 눈물흘니우리다

 

진달내꽃

 

이 작품 속에 설정되어 있는 시적 정황은 <나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임><말없이 고이 보내드리는 나> 사이의 내면 공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서정적 자아는 떠나가는 임에 대한 원망 대신에, 오히려 자신의 변함이 없는 사랑을 드러내고자 한다. 여기서 자기 사랑의 표상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봄이 되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것이 진달래꽃이기 때문에, 진달래꽃은 한국인들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그 느낌도 자연스럽다. 이 시의 표현대로 <영변의 약산>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은 바로 우리네의 곁에 있으며, 일상의 체험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 같은 체험의 진실성에 근거하여 자기 정서를 표현하고, 그 표현에서 새로운 감응력을 끌어내고자 한다.

봄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진달래꽃은 이 시에서 더 이상 평범한 자연물이 아니다. <영변의 약산>에 피는 진달래꽃은 그 자체로 거기 있지 않다.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아름다운 사랑의 의미로 채색되어, 화사하게 피어나는 분홍빛의 사랑으로 시 속에 자리하고 있다.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한 아름의 진달래꽃은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기도 하고,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장면에서 슬픔의 눈물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떠나는 임 앞에서 진달래꽃을 통해 자기 자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상황적 아이러니에 해당된다. 이 시에서 이별의 슬픔이 내면화하고 그 대신에 사랑의 진실이 자리잡게 되는 것은 이러한 시적 형상화의 과정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김소월의 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는 삶의 희망과 환희보다는 고통과 슬픔이 중심을 이룬다. 이것은 시인의 개인적인 정서적 취향과도 관계되는 것이지만, 식민지 상황에서 한국 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슬픔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소월은 한국 민족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으며, 그 노래 자체가 고통스런 삶에 하나의 위안이 되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나는 꿈꾸엿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즈란히

벌가의 하로일을 다맛추고

夕陽에 마을로 도라오는 꿈,

즐거히, 꿈가운데.

 

그러나 집일흔 내몸이어,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보섭대일 땅이 잇엇드면!

이처럼 떠도르랴, 아츰에점을손에

새라새롭은 歎息을 어드면서.

 

이랴, 南北이랴,

내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希望의반짝임은, 별빗치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나라, 가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엇지면 황송한이心情! 날로 나날이 내압패는

자츳가느른길이 니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거름, 또한거름. 보이는비탈엔

온새벽 동무들 저저혼자……山耕을김매이는.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대일 땅이 있었더면

 

꿈과 현실의 엄청난 이율배반을 술회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현실은 상실의 고통으로 가득하다. 시적 주체로서의 서정적 자아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상황을 제시한다. 하나는 꿈이며 다른 하나는 현실이다. 꿈속의 상황은 벌판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제시되고 있다. 물론, 현실 속에서는 이와 다르다. 서정적 자아는 집도 잃고 땅도 잃어버린 상태에서 농사지을 수도 없다. 오직 아침저녁으로 탄식 속에 떠돌 뿐이다. 조국 상실의 아픔과 그 속에서의 삶의 고통은 거의 절망적인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극명하게 제시되고 있는 문제의 현실 속에서도, 서정적 자아는 좌절하지 않는다. 산비탈의 가파른 밭을 매는 사람처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것을 결심하고 있다. 황폐한 현실 속에서 자기 의지를 다져보고 있는 셈이다.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저새요

네몸에는 털잇고 깃치잇지

 

밧테는 밧곡석

논에 물베

눌하게 닉어서 숙으러젓네

 

楚山 지난 狄蝓嶺

넘어선다

짐실은저나귀는 너왜넘늬?

 

옷과 밥과 자유

 

이 시에서 시적 주제는 두 가지의 상반된 상황 속에 제시되고 있는 시적 대상을 통해 대비적으로 드러난다. <>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있는 존재이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마음대로 날 수 있고, 먹고자 하는 곡식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몸에는 털도 있고 깃이 있으니, 옷가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공중을 날며 자유롭게 생활하는 새와는 달리, 적유령 넘어가는 짐 실은 나귀의 행색은 처량하다. <짐실은 나귀>는 자유로운 새와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시적 표상이다. 이것은 궁핍과 부자유와 고통의 삶을 의미한다. 이 같은 삶의 모습은 식민지시대를 살았던 민족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시인은 <짐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라는 절약된 진술을 통하여 함축적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현실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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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시가 포괄하고 있는 정서의 폭과 깊이는 서정시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경지에 맞닿아 있다. 흔히 정한(情恨)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소월 시의 정서적 특질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민족적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가로놓여 있다. 김소월이 그의 시에서 즐겨 노래하고 있는 대상은 <가신 님>이거나, <떠나온 고향>이다. 모두가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임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심정은 어떤 면에서 자못 퇴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다시 만나기 어렵고, 다시 찾기 힘든 그리움의 대상을 끈질기게 추구하면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낭만적이기도 하다. 물론 김소월의 시에 볼 수 있는 슬픔의 미학은 슬픔의 근원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의 결여를 들어 무의지적 측면이 비판되기도 한다. 그의 시적 지향 자체가 지나치게 회고적이고 퇴영적이라는 지적도 타당성을 갖는다. 그렇지만 그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정한의 세계가 좌절과 절망에 빠진 31운동 이후의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한다면, 그 비극적인 상황 인식 자체가 현실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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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은 1909년 서울 태생으로 제일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 법정대학에서 수학한 바 있고, 1930년에 문단에 나와 이태준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임하게 된다. 이태준의 권유로 가담한 구인회(九人會)(1933)는 그의 예술파적 기질과 성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활동 기반이 되었다. 193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연재한 뒤에 그는 장편소설 천변풍경, 우맹(愚氓)등을 발표하면서 1930년대 소설문단의 중심에 자리한다. 1941년 장편소설 여인성장을 발표한 후에 해방을 맞이하고 있다. 1930년대 소설문단에서 가장 진보적인 모더니스트였던 그가 이념의 개방 지대에서 새로이 인식한 것은 역사 발전에 대한 전망이며, 새로운 민족 국가의 건설에 대한 욕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좌익문학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 중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을 따라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1963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12부를 집필하였고,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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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되었다. 당시 소설 삽화를 이상이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은 그 소설적 감성과 기법이 문단의 관심사로 대두될 만큼 화제를 모았다. 이 소설에는 발단과 갈등과 클라이맥스로 이루어지는 행위의 개념이 나타나 있지 않다. 주인공이 아침에 집을 나와 도시의 구석구석을 배회하다가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 동안의 행적이 소설의 내용을 이룬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이다. 주인공의 도시 배회에는 그의 손에 들려진 한 권의 노트가 동반자 노릇을 한다. 도시의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우연히 부딪치게 되는 주변세계의 사실들을 만화경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그의 소설가로서의 일이다. 또 하나의 동반자는 주인공의 의식이다. 주인공이 도시를 배회하는 것과 더불어 그의 의식도 방황을 거듭한다. 현실생활에서의 그는 무기력과 상실감에 빠져 있는 데 비해, 그의 방황하는 의식은 잃어버린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고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주목되는 것은 주인공의 하루 일과를 그리고 있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그려내고 있는 하루라는 제약된 시간은 일반적인 시간의 보편적 속성과는 관계없이 등장인물의 사적 체험 속에서 재구성된 실제적 경험의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은 비록 제한된 하루 동안이라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반복되며 순환된다. 이 순환적 시간은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을 자연스럽게 매듭지으면서 그 순환성의 특징을 강조한다. 일상은 애당초부터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 그러므로 일상의 시작과 끝은 서로 맞물려 있다. 모든 일상은 시작되는 자리에서 끝이 나고 끝이 나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나 일상의 제반사가 다 순환적으로 반복된다는 생각은 인간의 삶이 인감의 역사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하여 발전해 간다는 생각과는 그 성질이 전혀 다르다. 하루하루 되풀이 되는 일종의 일일순환day-cycle’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소설 속의 이야기를 놓고 보면 그같은 소설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지는 일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어떤 행위의 연속을 통해 구체화되고 발전하는 사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하루 동안이라는 제약된 시간은 도시적인 현대인의 삶의 전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하루가 바로 소설의 중심이며 이야기의 핵심이 된다. 하루 낮과 밤이라는 정해진 시간 속에서 온갖 경험적 요소들이 서로 뒤섞여서 자연적 객관적인 시간의 단순한 순서나 단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도회의 공간을 배회하면서 흘러간 기억들을 하루라는 시간 속에 주입시킨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하루 동안이라는 제약된 시간이 소설에서 특별한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일상적인 현실 속에서 드러내는 규범이라든지 그 지속의 과정과 서로 불일치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시간은 마치 정신이 시간을 경험하는 것처럼 지연되기도 하고 즉각적으로 이동하거나 도약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인물의 기억과 욕망이 극적으로 제시되고 외형화하여 무의식의 세계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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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이 자신의 소설 창작 방법을 고현학(考現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고현학이란 고고학과 쌍을 이룬다. ‘모더놀로지(modernology)’라고 명명한 이 새로운 방법은 현대적 생활공간과 그 풍속을 면밀히 조사 탐구하는 행위로 풀이된다. 박태원은 자신의 소설쓰기가 바로 도시인의 현대적 생활을 면밀하게 조사 탐구하는 작업이라고 규정한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 새로운 방법을 적용시킨 작품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집을 나와 배회하고 있는 공간은 경성이라는 도시이다. 그의 행적은 집을 나온 후부터 종로 거리에서 전차 안다방거리경성역 대합실다방거리술집으로 이어지며 결말에 이르러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것은 당대 최고의 백화점이었던 화신상회였고, 종로에서는 경성의 도심을 이어달리는 전차를 올라탄다. 동대문에서 을지로로 이어지는 그의 전차 타기가 이어진다. 소공동의 조선은행도 보여주고 다방에도 들어간다. 경성역 삼등대합실에서는 중학 시절 동창생이 예쁜 여자와 동행인 것을 보고 물질에 약한 여자의 허영심을 생각한다. 또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친구가 돈 때문에 매일 살인강도와 방화범인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 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동시에 느낀다. 다방을 나온 주인공은 동경에서 있었던 옛사랑을 추억하며 자신의 용기 없는 약한 기질로 인해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또 전보배달의 자동차가 큰길을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며 오랜 벗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여급이 있는 종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모두 정신병자로 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아낙이 카페 창 옆에 붙은 여급대모집에 대하여 물어오던 일을 기억하며 가난에서 오는 불행에 대하여 생각한다. 오전 2시의 종로 네거리, 구보는 제 자신의 행복보다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이제는 생활도 갖고 창작도 하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향한다.

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것들은 식민지 상황 속에서 근대화된 경성이라는 도시 공간이다. 백화점과 은행과 호텔 등으로 이어지는 고층빌딩은 근대 도시 상징이다. 도로 위로 달리는 전차와 버스와 택시와 트럭은 경성의 새로운 풍물이다. 다방과 카페에 널려있는 외국산 커피, 코코아, 립톤 티, 칼피스 등의 고급 음료와 위스키 맥주 등의 술이 유흥과 소비문화가 이미 이 경성이라는 도회에 흘러 넘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황금광시대의 물질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거나 일상에 얽매여 힘겹게 살아간다.

어떤 연구가는 박태원에 이르러서야 우리 소설이 도시적 풍물을 소설적 무대로 구체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도시적 공간이라는 소설적 장치는 박태원의 소설에서 단순한 요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도시의 확대와 각종의 새로운 직업의 등장, 도시 가정과 인간들의 행태, 물질주의적 가치관의 팽배현상, 환락과 고통의 변주- 이런 모든 것들이 1930년대 도시생활의 면모와 함께 그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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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도시적 시정(市井)의 삶에서 발견해 내고 있는 것은 인간 세태와 풍물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서사적 질문법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소설은 개별적인 국면의 제시를 통해 개체화된 인간의 모습을 투영해 봄으로써 삶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박태원이 이 소설에서 활용되고 있는 모더니즘적 기법은 소설의 형식을 치장하도록 고안된 의장이 아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인식의 방법이며, 소설의 이야기 방식을 새로이 정립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심리주의적 소설기법을 박태원이 이 소설에서 시험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식의 내면적 공간을 확대하기 위한 방법의 천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존재와 그 삶의 양상이 현실적인 공간 위에서만 의미있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식의 흐름 속에서 보다 본질적인 것으로 자리잡는다는 것이 박태원의 인식방법이다.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의도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창조의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노트 하나를 들고 소설을 쓰기위해 거리를 떠돈다.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의 소설 작업은 언뜻 보기에 메타소설의 속성도 드러낸다. 하지만 이것은 미지의 삶에 대한 탐구이며, 새로운 삶의 세계에 대한 접근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운명의 필연성에 얽매이지도 않으며, 주어진 삶의 조건이나 어떤 이념에 복종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냥 떠돌듯이 도회를 헤매면서 모두 순간마다 그의 눈에 비춰진 경성의 공간과는 다른 자신의 내면 의식을 따라간다. 독자들은 이 소설 속에서 하나의 소설이 어렴풋하게 만들어지는 과정에 동참하면서 주인공이 스스로 내보이는 작위적인 행동들을 통해 그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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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그의 친구 이상의 삽화로 유명하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모두 30회로 그 연재가 끝난다. 이 소설의 연재 내용에 따라 덧붙여진 이상의 삽화는 모두 27편이다. 82919회 연재에는 삽화가 없으며 소설의 말미에서도 29회와 30회에 삽화가 없다.

 

 

이상의 삽화는 이 소설에서 박태원이 시도하고 있는 <의식의 흐름>의 기법과 좋은 짝을 이룬다. 대개 신문 연재소설 삽화는 연재되는 소설의 이야기 가운데 드러나는 특징적인 장면이나 등장인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넣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상은 이러한 통념에서 벗어나 이른바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활용하여 소설적 장면에 맞춰 작은 화폭을 채워나간다. 이상의 삽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기법은 일종의 몽타주 또는 모자이크의 방법에 의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대상의 다양한 현상을 하나의 그림 속에 배치한다. 그러므로 그의 삽화 속에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뒤섞이고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는 특징적인 이미지들이 하나의 평면 위에 서로 겹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이상의 삽화를 보면서 다시 읽어나간다면 소설에서 그려지는 도시공간의 장면과 의식의 내면 공간이 서로 겹치는 미묘한 순간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권영민)

 

(박태원의 혼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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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초기 문학세계를 대변하고 있는 소설 만세전1922년 잡지 신생활묘지(墓地)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다가 일본 총독부의 검열에 걸려 여러 차례 삭제되었고 잡지의 강제 폐간과 함께 연재가 중단된 바 있다. 염상섭은 이 작품을 1924시대일보만세전이라는 제목으로 개작하여 발표하였으며 1924년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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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31운동 직전 식민지 조선의 참담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소설의 이야기는 동경 유학생인 주인공(이인화, 작품속의 <>)이 아내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귀국했다가 다시 동경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경성에서 날아온 아내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학년말 시험을 도중에 그만 둔 채 귀국하게 된다. 삶의 현실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지니지 못한 채 도피적인 유학생활을 보내고 있던 그는 서울의 집에서 보내온 돈을 가지고 카페의 일본인 여급을 만나 목도리를 선물하고 짐을 챙겨 동경을 떠나게 된다. 동경에서 하관(下關)까지 기차를 타고 하관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는 동안, 주인공은 한국인을 무섭게 취조하는 일본인 형사들의 눈초리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는 배 안에서 목욕탕으로 몸을 숨긴다. 그러나 목욕탕에서 일본인들이 둘러앉아 한국인에 대한 경멸적인 언동을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보게 되자,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이상스런 반항심과 적개심을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하여 팔아넘기는 것이 돈벌이에 으뜸이라는 일본인들의 말을 통해 듣는 순간, 주인공은 소설이니 시니 하고 흥청거렸던 자신의 생활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와 불안에 사로잡힌다. 부산에 도착했을 때, 주인공은 부산 거리에 일본인들의 모습이 많아진 점에 놀란다. 해를 거듭할수록 오만해지는 일본인과 점점 위축해 들어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주인공은 기차에 오른다. 김천에서 형님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아내의 병도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울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주인공 이인화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통해 한국의 실정이 어둠에 쌓여 있음을 알게 된다. 일인 헌병에게 연행되는 젊은 한국인 청년들의 모습과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주인공은 분노에 떨며 모두가 무덤이다. 구데기가 끓는 공동묘지다라고 속으로 외쳐댄다. 서울에 도착하여 가족들을 만나게 되지만, 아내는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주인공은 장사를 지내는 동안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그는 머리를 어지럽히는 암울한 현실에서 빠져 나와 도망치듯 다시 동경으로 떠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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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만세전의 줄거리를 보면 이야기가 동경이라는 외부 세계에서 경성이라는 현실의 내부 세계로 귀환하는 여로의 과정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이 귀환의 과정 위에서 주인공의 의식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점차 사회적인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주인공의 귀환 과정은 아내가 위독하다는 사사로운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동경에서 부산을 거쳐 경성으로 돌아오는 이 과정은 일본을 통해 새로운 문명이 밀려온 길이다. 이광수의 무정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 길을 거쳐 유학에 오르고 새로운 문명 개화를 내세우며 이 길을 오간 적이 있다. 그러나 만세전의 주인공은 전혀 다르다. 그는 일본인 헌병이나 순사의 눈을 피해 움추리면서 경성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문명의 길이라고 내세워졌던 이 길이 착취의 길이며 압제의 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 길의 어디에서도 문명개화의 꿈이 피어나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오히려 삶의 고통을 등지고 모두가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것을 보고, 죽음으로 가득찬 무덤 속이라고 속으로 부르짖는다. 그는 결국 식민지 상황이 한국의 문명개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로 이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본 것은 일제의 억압 아래서 위축된 한국인의 모습과 경제적 착취로 인한 곤궁의 현장이다. 그는 식민지 지배 권력에 빌붙어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에 급급한 자기 가족들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동경에서 경성으로의 이동을 통해 드러나는 차별화된 두 개의 공간이다. 동경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있는 지배자의 공간이며 제국 일본이 자랑하는 내지(內地)의 수도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식믽지 지식인 청년으로서의 별다른 자각도 없이 일본인들의 틈에 끼어 일본인처럼 행세하면서 지내고 있다. 정자라는 카페의 여급에 대한 관심과 무기력한 유학생 생활로 채워지고 있지만, 주인공은 거기서 오히려 안락함을 느낀다. 그러나 동경을 벗어나면서 주인공은 식민지 피지배 민족의 공간인 조선으로 들어선다. 이 과정에서 되풀이 강조되는 것은 무덤 속과 같은 식민지 현실이다. 일본인들의 강압적인 지배와 끝없는 멸시로 차별화된 이 공간에서 가난한 민중들은 삶의 모든 희망을 잃고 이 땅을 떠난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의 안위와 목전의 이득에만 챙기려는 기회주의자들만이 일본 식민지 지배 권력에 빌붙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려내고 있는 이같은 두 개의 공간 속에 동경의 일본인 여급과 병석에 누운 경성의 아내를 대비시키고 있는 것도 주의깊게 살펴야 할 대목이다. 소설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무덤>같은 삶의 현실을 떨쳐버리고 도망치듯 동경으로 떠나고 만다. 식민지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보여준 이 같은 도피적 행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인공의 태도야말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청년이 지니고 있던 식민지 지배 상황에 대한 양가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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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염상섭은 개인의 발견과 현실 인식이라는 소설의 근대적인 특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는 삶의 문제를 문학의 본질과 결합시킴으로써 문학에 대한 근대적 인식의 기반을 확대시켜 놓았다. 문학에 대한 염상섭의 관심은 31운동 직후부터 이루어진 그의 비평활동과 소설 창작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개성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현실 생활의 인식 문제로 확대되었다.

염상섭은 개성의 표현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생활 현실에 근거한 문학으로 그의 관심을 구체화하였다. 그는 개성의 표현에 의해 이루어지는 문예라고 하더라도 현실 생활의 기반을 떠나서는 아무 의미도 지닐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생활에 대한 염상섭의 새로운 인식은 생활의 표현을 통해 삶의 전체적인 모습을 구현한다는 리얼리즘의 정신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추상적인 관념을 배제하고 경험세계로서의 현실과 그를 기반으로 하는 생활을 중시한다든지, 그 생활 속에서 시대정신, 사회의식을 추출한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리얼리즘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영민, 2013.7.18)

 

신혼 초기의 염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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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무정> 연재 광고(1916. 12. 29)

 

장편소설 무정은 동경 와세다 대학 학생이었던 이광수가 191711일부터 같은 해 614일까지 매일신보에 총 126회에 걸쳐 연재한 작품이다. 이듬해인 19187월 신문관(新文館)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무정은 연재 당시뿐만 아니라 단행본 출간 이후에도 인기가 많았다. 최남선의 말에 의하면 1918년 단행본 초판 발행 이후 1924년까지 이미 1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소설 무정은 한국소설사에서 근대적인 장편소설의 첫 출현이라는 점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바 있다. 이 작품은 신식 남녀의 사랑의 성취라는 연애의 서사와 여성 교육을 내세운 계몽의 서사를 교묘하게 결합시켜 식민지시대에 접어들면서 신소설이 빠져들었던 통속화의 과정을 벗어난다. 특히 서사 구성에 있어서 시간의 압축과 과거 회상의 수법을 서간 형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현함으로써 근대적 서술 기법에 성공하고 있으며, 개인의 내면 의식을 본격적으로 서사의 전면에 부각시켜 놓음으로써 근대소설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소설 무정이 그 이전 신소설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 작품의 문학사적인 가치를 규정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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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정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형식은 동경 유학을 하고 돌아와 경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지식인 청년이다. 그는 개화된 집안에서 신학문에 눈을 뜬 선형에게 영어 개인 교수를 하면서 그녀와의 결합을 희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무렵에 이형식 앞에 박영채가 나타난다. 박영채는 소년 시절 형식에게 큰 도움을 준 은인 박진사의 딸이다. 형식은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은 고아로서, 박영채의 아버지 박진사의 도움을 받아 그 집에서 기거했던 적이 있다. 박진사는 형식의 사람됨을 보고, 성년이 되면 자기 딸 영채와 형식을 혼인시키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진사가 개화운동 관계로 체포되어 가세가 기울자, 형식은 그 집을 나와 영채와 헤어진다. 박진사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후, 기생으로 전락한 영채는 헤어진 형식을 다시 만나고자 사방을 수소문하게 된다. 그녀는 7년에 가까운 세월을 두고 그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형식은 뜻밖에 나타난 영채로 인해 고심에 싸이게 된다.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는 신여성 선형에 대한 호감과 기구한 삶을 살고 있는 옛 여인 영채에 대한 연민의 정을 모두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갈등의 구조가 극복되는 것은 형식의 적극적인 의지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다. 형식이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영채는 기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배 학감에게 정조를 유린당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자 한다. 그녀는 이형식에게 보내는 긴 유서를 남기고 서울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영채는 그녀가 결심한 대로 자살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평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동경 유학생 병욱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욱은 영채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며, 인간의 삶과 사랑의 참뜻을 심어준다. 영채는 병욱의 말을 듣고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병욱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그녀는 자살을 포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학문의 세계에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형식은 영채의 유서를 보고 평양에까지 영채를 찾아 나섰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결국 선형과 결혼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이형식과 선형, 영채와 병욱 등이 모두 다시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은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이다. 유학을 떠나는 이들이 모두 같은 기차를 타고 가다가 홍수를 만나자, 기차에서 내려 즉석에서 수재민 돕기 자선 음악회를 함께 열게 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각각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설 무정의 줄거리에서 관심의 초점을 이루는 것은 개인적 운명의 양상이다. 그것은 이형식과 박영채로 대별되는 두 인물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이형식의 경우, 그는 고아의 신세나 마찬가지로 세상을 떠돌았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행운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해 나가는 장면은 소설의 이야기 속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용케도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소년 시절에는 박진사의 도움으로 성장하였고, 또 다른 은인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마치고 경성학교의 교사가 될 수 있었으며, 김장로의 호의로 그의 딸과 결혼하여 다시 미국유학의 길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고아 출신인 이형식이 경성학교 영어교사로서의 신분적 상승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개화라는 사회 변동의 배경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봉건적인 구시대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로서의 문명 개화와 신교육의 의미를 강조하는 교사의 신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도 바로 그 같은 변동 사회의 한 반영에 다름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형식의 신분 상승의 과정은 지극히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그의 출신 성분도 제대로 알 수 없고, 그의 존재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가족 관계도 모두 무시되어 있다. 게다가 그가 구시대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문명 개화의 길을 선택하는 과정조차도 소설의 이야기 속에 거의 그려져 있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형식은 소설의 세계에서 제시되고 있는 사회적인 배경과는 동떨어진 개별적이고도 예외적인 인물로 취급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사고와 행동 자체가 전체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해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소설에서 이형식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갈등은 영채의 등장으로 인해 생겨난 일시적인 방황뿐이다. 그러나 그 고뇌와 갈등도 사실은 형식의 의지에 의해 해결되지 않고, 영채 스스로 이 갈등의 자리에서 물러남으로써 풀어지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이형식은 거의 무의지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소설에서의 근대적인 인물로서의 성격화의 수준 자체가 미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박영채의 경우는 이형식의 무의지적인 성격과 대별된다. 그녀는 개화운동과 관련되어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와 오빠를 위해 스스로 몸을 팔아 기생이 되었고, 이형식을 다시 만나기 위해 자신의 순결을 지키며 오랜 기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형식이 이미 다른 여성과 혼약의 단계에 이른데다가, 자신의 순결마저 잃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자 한다. 물론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그녀는 병욱의 충고를 받아,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일본 유학을 결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박영채의 변모과정은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붕괴와 개인의 몰락이라는 개화 공간의 사회적 변동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문명개화와 신교육의 가치가 모든 사회적인 요건 가운데 최선의 것으로 내세워짐으로써, 그러한 가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개화지상주의적인 요소까지 곁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박영채의 구시대의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 속에서 운명적으로 희생을 감수해야 했고, 새로운 문명개화의 이념을 붙잡게 됨으로써, 재생의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박영채의 운명의 전환 역시 병욱이라는 인물의 매개적인 역할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녀의 변모가 자기 각성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그러한 각성된 자기 인식에 근거한 어떤 구체적인 행동도 보여주지 못한다. 그녀가 택한 새로운 가치로서의 문명개화와 신교육은 가능성의 세계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이며, 작가에 의해 긍정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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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소설은 개인의 운명을 드러냄에 있어서 개개의 인간의 삶을 통하여 일정한 사회의 본질적 특수성을 드러내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근대소설은 사회에 대한 개인의 관계를 개인의 운명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보여준다. 사회적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이 지니는 본질적인 의미를 제시하여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개인의 운명을 빌려서 구체적으로 체현되기도 하며, 개인의 삶의 모습이 사회적 현실 속에서 전체적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근대소설로서 확립되기 위해서는 그 내재적인 요건이 갖춰져야만 한다. 경험적인 세계 속에서 개인의 삶의 양상을 전체적으로 포착해 내는 소설의 형식은, 자아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통해 개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서 성립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행동과 그 행동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모습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때에, 진기한 이야깃거리로 내용을 꾸려나갔던 서사문학의 양식이 그 설화적 속성을 벗어나 소설 형태의 성립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문학사에서 춘원 이광수의 시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아에 대한 각성과 새로운 발견이 요청된 시기이다. 그리고 민족적 자기인식과 그 주체적 확립이 가능하지 않은 식민지 상태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대부분의 작가들이 개인의 발견과 그 해방을 주장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는 자각과 각성에서 출발할 때에 민족 전체의 주체적인 자기 확립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그렇게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유교적 관습과 전통사회의 규범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이며, 숙명론적인 인생관에서 벗어나 자기 삶과 운명을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는 새로운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던 것이다.

춘원 이광수는 그의 소설 무정에서 자아의 각성과 사랑의 문제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학이 지니는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여 스스로 문학의 교시적인 기능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 현실에 근거하고 있는 자기 존재의 인식과 그 확대를 내세운 것으로서, 개인의 체험세계를 중시하는 소설의 요건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소설의 세계를 개인의 삶의 세계와 연관지어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는 모두 소설이 그 예술적 독자성을 지니고 있는 문학의 한 장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신소설의 시대에 널리 쓰였던 소설이라는 용어가 장르 개념의 한계를 벗어나 포괄적인 서사문학 양식 전반을 지시하고 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소설에 대한 인식에 중대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소설을 독자적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요구하는 원리와 규범을 모두 승인한다는 뜻이 되며, 소설에 대한 논의도 바로 그 독자적인 원리와 규범을 중심으로 전개시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구나 무정은 소설의 이야기 자체를 구조화하기 위한 서사 원리에 있어서 경험적 시간의 새로운 해석법을 제시한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시간은 주인공인 이형식이 김선형을 처음 만난 초여름에서부터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는 초가을까지의 여름 한 철로 제한되어 있다. 이 짧은 경험적 시간을 서사 내적 공간 속에 확장하기 위해 이광수는 주인공의 회상적 방식과 서간문의 형식적 틀을 활용하여 시간의 순서를 바꾸고 특정의 과거 사실을 압축하여 현재의 시간 속에 삽입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자연적 질서를 넘어서서 경험적 시간의 서사적 구조화에 성공한다. 이러한 소설 기법은 무정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임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이광수의 무정에서 볼 수 있는 근대적 주체로서의 개인의 운명에 대한 관심이나 서사 내적 시간의 새로운 해석 등이 모두 조화로운 상태에 이르러 근대소설로서의 어떤 성취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가 지향했던 <정의 만족>이 전통적인 규범과 속박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이라는 테마로 발전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소설 속에서 반성적인 자기각성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설 무정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 주체로서 영위하게 되는 삶의 총체적인 모습을 구현하는 데에는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이 있다. 다만 이 소설이 사회적 조건과 현실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의 문제성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도래할 문명개화의 시대로서 근대사회를 적극적 긍정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이 소설이 개화 공간의 말미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이를 통해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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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문필 활동은 한국문학이 서구적 개념의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과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 상황 속에서 다양한 방면에 걸쳐 전개되고 있다. 문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일본 유학을 통해 확대된 것이며, 그의 문학 활동이 근대문학의 성립 과정에 주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광수는 자아에 대한 각성과 자기발견을 내세우면서 문학의 독자적인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문학이 개인적인 정서에 기초하여 성립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고, 문학을 구시대의 윤리적 속박과 모든 관념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광수의 태도는 문학의 근대적인 인식과 개인의 발견이라는 명제로 요약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광수는 문학에서 개인적 정서의 문제를 중시하면서도, 그것이 근거해야 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의 존재 문제와 그 개인이 근거하는 현실 사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문학적인 관심과 태도는 분명히 그가 서 있던 1910년대 한국의 현실에서 볼 때, 그 이전의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과 태도 자체가 한국적인 문학 현실에 대한 자각과 비판에 의해 구체화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그것은 일본을 통해 얻어들은 서구 문학에 대한 지식의 단편들을 모아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31운동 직후 여러 방면에서 민족 사회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자, 문학의 경우에도 식민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관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새로운 문학적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광수는 새로운 문화운동의 선도자로서 문학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문예라는 것이 신문화 건설의 선구임을 전제하고,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이상을 선전할 수 있는 문예의 사회적 기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문학의 독자적 가치를 강조했던 초기의 입장과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면서, <생을 위한 예술>을 내세웠고, 신문화의 선구가 되는 문학은 마땅히 민족을 위한 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광수는 문학과 예술의 발전을 통한 새로운 민족 정신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민족의 현실이 정치적인 측면에서 투쟁과 살육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면에서 의식주의 기본 조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임을 전제하면서, 이러한 상태에 놓여 있는 민족을 구출하기 위해 <인생의 예술화>, <인생의 도덕화>라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인생의 도덕화 또는 예술화의 방법을 <개인의 주관적 개조>라고 천명하면서, 그 방향을 도덕적 개조와 예술적 개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도덕적 개조는 개인이 지니고 있는 허위, 증오, 분노, 시기 등의 감정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도덕적 수양을 통해 개인의 열등 감정을 억제한다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불행이 주관적인 심리의 평정을 잃은 상태라고 규정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적인 측면의 변혁이 인생의 개조에는 별다른 의미를 지닐 수 없으며, 오직 도덕적 개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광수가 생각하고 있는 예술적 개조는 자연과 인생에 대한 심미적 태도와 연관되는 것이다. 그는 자연과 인생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보고, 자기 자신도 예술의 감상자로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자연미에 대한 감각을 키우며 자기 수양을 거친다면, 어떤 직업도 예술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예술을 통해 생활의 활기를 불어넣어 정신 생활을 부활시키는 길만이 민족을 행복의 생활로 이끄는 방법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광수의 이러한 주장은 그 뒤에 한국인의 민족성 자체에 대한 개조를 요구(민족개조론)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는 한국 민족의 비극적인 현실과 식민지 상황이 모두 민족성의 쇠퇴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민족성의 개조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믿게 된다. 그는 한국인들의 민족성을 개인적인 심정적 기질과 혼동하여 그 역사성의 의미를 몰각하고 있으며, 민족성이라는 것이 개인의 도덕적 근본에 의해 좌우된다는 소박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국 민족이 지니고 있는 허위, 나태, 비겁, 이기심, 비사회성 등을 버려야 한다는 내용으로 요약되는 그의 민족 개조론은, 결국 인간의 예술적 도덕적 개조를 확대 부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개인의 도덕적 수양에서부터 전 민족의 도덕적 개조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비정치적 사회운동을 내세우면서 계몽 운동가로서의 자기 변신을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회계몽론자로서 이광수의 당대 현실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심정적이며 패배주의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한국 민족의 삶의 고통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의한 자본주의적 착취로 인한 것임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원인을 민족의 도덕적 심성의 타락에서 찾고 있다. 물론, 그는 민족의 심성이 본래는 도덕적으로 선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고,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성을 무시한 채, 민족의식을 윤리적인 차원에서 논의하는 태도 자체가 그릇된 출발임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활과 직업을 예술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생활의 예술화>라는 막연한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그가 민족의 역사적 모순을 해결할 만한 실천적인 지표를 제대로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계몽론이 이상주의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광수의 이 같은 문학적 태도의 변모는 결과적으로 이중적인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근대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이광수를 생각할 경우, 그의 근대적인 면모는 예술론자로서의 이광수를 통해 부각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실천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허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판단은 이광수 자신이 드러내고 있는 문학에 대한 근대적 인식의 불철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한국 사회 자체가 그 같은 문학론을 감당하기 힘든 근대성 미달의 수준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과도 연관되는 것이다. 그는 도래해야 할 새로운 시대로서의 근대를 긍정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계몽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본다면, 이광수가 서 있던 자리는 여전히 혼란스런 개화계몽시대의 연장선상임을 알 수 있다. (권영민, 20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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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세계의 독자와 만나다.

이 짤막한 메시지는 곧바로 한국문학, 세계의 독자와 만나다.’ 라고 고쳐 써도 좋다. 신경숙이라는 작가 한 사람과 한국문학을 등치로 놓아도 된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 반발할 독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경숙 신드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지금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읽힌다. 그리고 한국문학이 담아내는 특이한 목소리에 모두가 환호한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엄마를 부탁해는 현재 40여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수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한국문학이 아직도 세계문학의 변방에 놓여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놓고 본다면 이것은 단순한 기록의 의미를 넘어선다. 영역본이 나온 지 일년만에 세계 각국에 다시 번역 소개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신경숙, 세계의 독자와 만나다.’ 라는 메시지는 과장이 아니다.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가 지구의 모든 땅 위를 줄지어 달린다. 한국에서 만든 휴대전화를 세계 각국의 소비자들이 그들의 손 안에 들고 다닌다. 한국에서 만든 텔레비전이 세계 각국의 많은 가정에 골고루 놓여 있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의 노래와 드라마와 영화에 환호한다. 세계 각국의 유명 대학이 한국어 교육에 열을 올린다. 이러한 뉴스에 우리는 모두가 우쭐한다. 하지만 한국문인 가운데 누구도 세계 각국의 독자들이 그 이름을 기억할 만한 인물은 아직 없다. 세계의 독자들은 한국문학에 대해 얼음처럼 냉담하다. 이들은 구태여 한국문학 작품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을 통해 읽어야 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그 관심과 취향과 문화적 수준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낯선 독자들을 한국문학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과제는 여전히 한국문단의 가장 큰 이슈이다.

 

2

올해 권영민의 문학콘서트는 작가 신경숙과 함께 그 막을 올린다.

신경숙은 글로벌시대의 한국문학의 위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로 대담의 화제를 내놓았다. 신경숙은 자신이 이제 막 세계라는 무대에 올라선 신인 배우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문학에 언제나 당당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준다.

권 선생님께서도 제 의견에 동의해 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말에는 처음부터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문학은 그냥 문학일 뿐이지 않을까, 한국문학, 일본문학, 프랑스문학, 남미문학... 이런 식으로 지역과 언어의 장벽을 처음부터 쌓아두는 것이 옳은 일일까 싶은 게 평소의 제 생각입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말 속에는 한국에서 한국어로 쓴 작품 자체를 한국문학으로만 한정하는 마음이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요. 저는 작가가 자기 언어로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세계문학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해요. 다만 소통을 위해 번역과 출판이라는 문제가 과제로 남아있는 거지요.”

나는 신경숙의 이 말에 그만 깜짝 놀랐다. 작가는 자기 언어로 글을 쓰지만 그것을 민족어의 틀 속에 가두어두고 보는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작가와 작품은 언제나 세계문학의 영역에 속한다! 이것은 작가 신경숙의 당돌한 구상(?)처럼 보이지만 거역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구도 어떤 분야에서도 이 명제는 글로벌시대인 오늘날에는 이다. 시골의 농부가 소 몇 마리를 키우면서도 수입 쇠고기를 걱정하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딸기를 따면서 땀 흘리는 농부도 필리핀산 바나나 가격을 따진다. 어촌의 굴 양식장 주인도 일본 동경의 굴 가격을 계산하지 않는가? 시대가 이미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러니 작가라고 자기 언어의 감옥 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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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2011년 미국에서 영역판 PLEASE LOOK AFTER MOM이 출간된 직후 나온 여러 언론의 반응들 가운데 나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소개되었던 피코 아이어(PICO IYER)라는 컬럼니스트의 글 <뿌리 뽑힌 세계에서 길을 잃다>를 떠올렸다. 이 글에서 피코 아이어는 이렇게 적었다. ‘어쩌면 어떤 미국인 독자들은 신경숙의 소설을 펼쳐들고는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일종의 고뇌의 원인이며 이단 행위처럼 그려지고 있는 데 놀랄지도 모른다. 어떤 다른 이들은 이 책을 읽고 난 후 우리가 과거를 떠나 우리 자신의 삶을 세워나가는 것에 얼마나 많은 성패가 달려있는지를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지구 전체를 가로질러 가장 거대하게 나타나고 있는 분열은 이슬람과 서양 간의, 혹은 중국과 미합중국 사이의 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한 나라 내부의, 심지어 한 가족 내부의, 과거와 미래의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열이다. 자수성가를 자랑삼는 미국인들과 효를 중시하는 전통주의자들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과거를 돌아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이러한 현실을 통렬한 주제의식으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날카로운 도전으로 제시했다. (미국/WSJ/110328)’ 물론 이와 다른 견해도 많았지만 나는 이 소설의 각별한 소재 가운데 그 주제의식의 보편성을 잘 지적한 리뷰라고 생각한다. 나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 내용을 예로 들면서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작가 신경숙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었다.

작품에 어떤 운명이 있다면 이 작품은 운을 아주 좋게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작품이 출간되자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고, 한국과 미국 에이전시가 작품을 영어로 알리고 싶어 했지요. 제가 에이전시의 요구를 받아들이자, 영어 번역과 영어권 출판사와의 계약이 걸림돌 없이 바로바로 이어졌습니다. 이 책을 영어로 출판한 영어권 에디터가 이 소설 자체를 매우 좋아했던 것도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왜 이 작품에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엄마라는 존재의 보편성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집을 떠나 노마드적인 삶을 살아가는 지금의 현대인이 되는 동안 우리도 모르게 상실한 것들을 이 소설 속에서 만난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 항상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엄마라는 사람을 갑자기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야기 속의 가족들 모습에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도 합니다.”

신경숙이 엄마를 부탁해의 성공을 작품 자체의 행운으로 돌린 것은 작가로서의 겸손이다. 이 작품은 작가로서의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두고 있었던 주제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작품을 쓰는 동안에도 오직 작품의 완성 그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처음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작품을 무사히 끝까지 이끌고 나갈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에 벅차서 다른 생각을 할 틈이라는 게 없었지요. 책을 출간할 준비를 하면서야 한숨을 돌렸으니까요. 기대라든가 예상보다는 힘겹게 묵은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책이 나오자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이어이어 발생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버렸어요. 책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닌 느낌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어에 갇혀있던 작품이 경계를 허물고 모국어라는 울타리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까요. 영역본이 미국에서 출판된 뒤로 뜻밖의 여행을 많이 하면서 세계 각국의 독자들을 만나고 다양한 삶의 모습들과 대면하게 된 것이 제게는 큰 의미를 던져주었어요. 하지만 저는 사실 해외에선 신진작가에 불과해서 늘 긴장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지요.”

내가 알고 있는 미국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책임자인 마이클 로버트 씨는 1년 동안 미국에서 출판되는 문학 작품이 12천여 종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3%에 해당하는 350여 종이 번역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3% 중에서 15%에 지나지 않는 50여 종 정도만이 아시아권 언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저서라고 했다. 미국 독자들은 이처럼 매우 작은 열쇠구멍을 통해서 세계의 나머지 지역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50여 종의 책 가운데 엄마를 부탁해가 포함되어 있다면 이것은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4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지난 3월 맨아시아문학상(Man Asian Literary Prize)의 수상작으로 지명되었다.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The Man Booker Prize)을 후원하는 투자회사 맨 그룹이 아시아 작가들을 대상으로 2007년에 제정한 이 상은 첫 번째 수상작으로 중국인 쟝롱의 소설 <Wolf Totem>을 지명한 바 있다. 한국 작가 가운데 신경숙이 처음으로 이 상을 받은 것은 아시아적 가치와 세계의 대화를 의도하는 이 상의 취지에도 잘 부합된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안(가디언 / 120316)엄마를 부탁해가 무라카미(Murakami)와 고시(Ghosh)를 제치고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고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한국 내에도 엄청난 독자층이 생겨나 있고, 인도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의 경우는 인도를 대표하는 현역 작가이다. 이같은 쟁쟁한 경쟁자들 속에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를 들고 우뚝 섰다. 심사위원회에서는 이 소설을 두고 한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의 전통과 근대성에 대한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인 초상이라고 평했다.

신경숙은 세계의 무대에서 숱한 독자들과 만나면서 자신의 작품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자신의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의 독자들은 작품의 배경이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익숙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들을 외국의 독자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발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작품을 읽는 접근법이 나라마다 달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을 두고 전통과 현대의 대립으로 보는 외국의 독자들이 있었고, ‘엄마라는 상징을 잃고 방황하는 가족들을 통해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외국 평론가도 있었어요.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서술 기법과 관련되는 문제였어요. 실종된 엄마만 제외하고는 모두 2인칭 3인칭을 사용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나 하는 질문을 어느 나라에서나 들었으니까요. 그런 질문을 받고 저는 실종된 엄마만 일인칭으로 함으로써 진실로 실종된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으려고 했다고 대답했지요. ‘엄마에게만 라는 일인칭을 사용하게 된 의도는 분명해요. 나는 이 작품을 쓰면서 이미 엄마로서 일생을 살아낸 사람, 지금 엄마로 살고 있는 사람, 혹은 앞으로 엄마가 될 사람들에게 바치는 하나의 헌사가 되길 바랐으니까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지금도 지구상의 어떤 미지의 언어로 옮겨지는 중이다. 이 소설의 서두에 배치된 엄마의 실종은 부재의 공간에서 그 존재의 당위를 인정해야 하는 하나의 아이러니로 독자들을 끌어간다. 작가 신경숙은 지하철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실종된 엄마의 흔적을 추적한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은 기억의 주체들이 각자 자신의 목소리에 의존하지만, 엄마는 부재의 공간에 던져져 현실 속에서 어디론가 사라짐으로써 드디어 가족 속에서 그 존재 가치를 부각시킨다. 엄마의 부재와 존재의 역설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허망한 아이러니를 작가 신경숙은 이야기하는 자보는 자의 목소리와 시각을 교묘하게 중첩시켜 긴장감 있게 형상화한다. 이 소설의 독자들은 그 속에서 자신의 맥빠진 목소리를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시선에 그만 흠찔 놀라기도 한다. 엄마는 언제나 있지만 늘 없고, 늘 없지만 언제나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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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세계의 독자와 만나다.

나는 신경숙이라는 한 사람의 작가를 통해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명제의 핵심에 어떤 식으로든지 다가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제는 한국문학이 폭넓게 해외에 소개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이 문제는 한국문학의 수용 공간의 확대라는 차원에서만 논의할 성질은 아니다. 한국적 특수성의 개념으로부터 한국문학을 인류적 보편성의 개념으로 해방시키는 본질적인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문학 작품의 해외 소개는 한국 상품의 소비시장의 해외 확대와도 같은 경제 논리로 해결할 수 없다. 문학은 상품의 소비와는 달리 문화의 전파와 수용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가격과 품질과 패션에 의해 좌우되는 상품 소비시장의 원리와는 전혀 다른 요건들에 의해 지배된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한국문학이 이질적인 외국문학 속에 들어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화해로운 만남을 이루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문학적인 기법과 주제에 대한 독자들의 고급한 취향의 문제에 의해 그 성패가 좌우된다. 바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이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권영민, 20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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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권영민의 문학콘서트는 두 달에 걸쳐 매주 목요일 방송대학 TV 스튜디오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7월 4일에는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작가 신경숙씨를 모시고 신경숙 선생님의 유년기와 습작시기, 그리고 <엄마를 부탁해>와 신작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비롯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흥미롭고 뜻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또한 초대가수 '시와'의 음악과 함께 무척이나 감미로운 음악의 선율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2013년 문학콘서트는 9월부터 방송대학 TV(OUN)에서 방송될 예정입니다.

 

 

 

 

 

 

 

왼쪽부터 가수 '시와', 신경숙 작가, 권영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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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문학콘서트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7~8월에 걸쳐 펼쳐집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가신청은 <이곳>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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