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종문화상’ 수상자로 권영민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등 4명과 1개 단체가 선정됐다고 문화체육관광부가 27일 밝혔다. 박종국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명예회장, 박혜란 ㈔여성문화네트워크 대표, 의료구호단체인 ㈔글로벌케어가 수상자에 포함됐다.

학술 부문 수상자인 권영민 석좌교수는 ‘한국현대문학사’, ‘한국 근대문학론의 쟁점’ 등 한국 근현대문학에 대한 연구.저술 활동을 통해 한국현대문학사를 체계화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예술 부문의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은 ‘심청’, ‘춘향’ 등 한국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 창작발레로 해외에 진출해 공연함으로써 국위를 선양한 공로로 선정됐다.

세종문화상은 세종대왕의 위업을 기리고 창조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국문화 진흥, 예술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공적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상으로, 1982년에 제정돼 올해로 36회째를 맞는다. 시상식은 28일 오후 3시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한국일보>, 2017.4.27,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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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역사를 자랑하는 러시아의 문학잡지가 한국현대문학을 특집으로 다뤘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오는 12월 1일과 2일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최고 권위의 외국문학 소개 잡지인 ‘이나스트란야 리테라투라’의 한국현대문학 특집호 발간 행사를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나스트란야 리테라투라’는 1955년 구 소련에서 창간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유명 문예지다. 소비에트 시절 서방 문학을 소개하는 유일한 창구역할을 했던 만큼 현재도 러시아 지식인들 사이에서 외국문학과 관련해서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로 꼽히고 있다.

‘이나스트란야 리테라투라’ 한국현대문학 특집호에는 채만식, 황순원, 이문열, 오정희, 구효서, 안도현, 김연수, 김중혁, 김애란의 소설, 시의 경우 서정주, 김승희, 정호승의 작품을 비롯해 에세이는 이어령, 김윤식, 김훈의 작품이 실렸다. 전체 해설은 문학평론가 권영민 단국대학교 명예교수와 모스크바 국립외국어대학교 마리아 솔다토바 교수가 맡았다.
(...)

(<이데일리>, 2016.11.28)

원문 :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I31&newsid=03165206612850312&DCD=A403&OutLnkCh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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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의 주인공은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이 아니라 그의 조카로 중국 여성과 결혼하게 되는 유학생 청년 송재형입니다. 저는 중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알려주려고 이 소설을 쓴 거예요. 우리에게 중국은 무척 중요합니다. 미국과 러시아, 일본도 중요하죠. 그게 우리 민족의 운명입니다. 이 강국들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평화통일과 영세중립이 바로 우리 민족이 살 길이에요.” 18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브라워 센터. 작가 조정래가 300여 청중을 앞에 두고 특유의 열정적인 어조로 말을 했다. 지난달 초에 나온 <정글만리> 영어판(Human Jungle, 브루스 풀턴·윤주찬 공역) 출간을 기념해 이 대학 동아시아연구소 한국학센터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 제2부 ‘작가와의 대담’에서 객석의 청중이 한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초빙교수로서 이날 행사를 기획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조정래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거느린 작가임에도 해외에는 비교적 덜 알려졌다”며 “<정글만리> 영어판 출간을 계기로 한국 문학의 폭과 깊이를 미국 독자들에게도 보여주고자 행사를 마련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청중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2016.11.22)

원문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715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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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등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가운데 평생 모은 문학 관련 서적 8000여 권을 미국 대학에 기증한 문학평론가가 있다. 그는 미국의 대학출판부들과 계약을 맺고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책을 펴내는 등 ‘한국 문학 전도사’로 나섰다. 주인공은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68). 최근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권 교수가 이번에 책을 기증한 곳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지난해부터 이 학교의 방문교수로서 한국 문학을 강의한 게 계기가 됐다.  

“버클리대에는 일본학과 중국학은 있지만 한국학은 없어요. 사실 미국에서 한국학 전공이 있는 대학은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시카고대 등 10여 곳에 불과해요. 전체 대학이 3000여 곳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미약하죠.” 

그는 학교 측에 한국의 위상과 한국 문학의 중요성 등을 피력했고 버클리대의 총장과 담당 학장 역시 한국학 전공 설립에 공감해 이르면 내년에 한국학 전공을 개설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공으로 개설돼도 관련 책이 부족하면 학생들이 한국을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실제로 권 교수가 지난해 이광수와 김소월 등 한국 근대 문학자들의 작품을 강의해도 현지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구하기 어려워 애를 먹었다. 

그는 한국 문학책이 국내 웬만한 도서관엔 있지만 미국에선 희귀본에 가깝다는 생각에 소장 도서를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책들은 1970년대 문학 평론을 시작할 때부터 수집한 8000여 권. 미국에 부치려 포장하니 라면 상자 100개에 육박했다. 중국에서 어렵게 수집한 광복 이후 시집도 일부 포함됐다.  

권 교수는 버클리대에 소설가 조정래와 한강 등을 잇달아 초청해 현지 연구자들에게도 한국 문학을 적극 알릴 예정이다.  

 

“우리는 영어 번역서를 내면 미국 독자들이 읽을 것으로 여기지만 그럴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와 비슷해요. 미국에서 영어로 나온 문학 책 1만5000여 종 중에서 한국 문학은 10여 종 남짓한 실정이죠.” 

그는 “한국 문학이 내부적으론 위축돼 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무대를 세계로 넓혀야 한다”며 “우선 현지 문학 연구자나 문학인들이 한국 문학을 접할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일반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문학 하는 사람이라면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나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 중국의 모옌(莫言) 등 작가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읽는 것처럼 한국 문학도 한국을 벗어난 국가에서도 문학 전문가들에게 두루 읽혀야 한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미국 명문대인 컬럼비아대 출판부와 UC출판부(버클리대 출판부)와도 계약을 맺고 한국 근현대 문학을 소개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작품명과 등장인물, 작가명 등 명칭 표기법의 표준화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 최초 문학 동인지인 ‘창조’만 해도 더 크리에이티브(The Creative), 더 크리에이션(The Creation) 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표기법이 표준화돼 있지 않으면 연구에 애를 먹을 수 있어요.”

평생을 문학평론가와 서울대 국문과 교수 등으로 지낸 그는 “한국 문학을 체계적으로 마무리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 소개 서적의 집필 기간을 2년 정도로 잡았지만 할수록 어림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영시(英詩)를 연구하는 외국인 학자가 ‘김소월 시가 기가 막히다’고 말하는 걸 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동아일보>, 2016.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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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세계 각국에 뿌리내린 한국학이 이제 줄기를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한류 열풍이 분 덕택이죠. 한국학을 타고 한국의 역사, 문화, 정치, 사회를 세계인에게 알릴 때입니다."

 

 

24일 공공외교 전문 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개최한 '세계한국학대회' 현장.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한국학 교수와 지한파 전문가들은 한국학의 위상을 높여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끌어올리는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을 대표하는 한국학 전문가인 존 덩컨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한국연구센터 소장은 주제 발표를 통해 "한국의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 덕택에 한국학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면서 "한국 대중문화와 케이팝도 한국학의 인기를 끌어올린 요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덩컨 교수는 "하지만 중국의 폭발적 경제성장으로 중국학이 급성장한 것이 한국학에 부정적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면서 "2008년 금융 위기로 미국 대학이 잇따라 예산을 감축하는 것도 한국학을 둘러싼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과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에서 보는 시각은 어떨까.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한국을 보는 시각이 매우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한국에 대한 연구,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산둥대 한국학과의 니우린제 학부장은 중국 내 한국학이 한국어 교육에 치우쳤다고 꼬집었다. 

그는 "중국에 한국학과가 많이 있지만 정치, 경제, 역사, 철학, 문화 분야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간략하게 진행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어 교육 중심의 학술 교류를 한국학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터키에서도 한국학 연구소 설립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괵셀 투르쾨주 교수는 "2017년은 한국과 터키의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한국학 연구소가 설립되면 인접 국가들과의 학술회의가 활발해져 한국학 발전에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기대했다. 

광복 70년, 세계 속의 한국과 한국학 

 

중앙아시아는 특히 고려인 동포들이 거주한다는 점에서 한국학의 역할이 더 큰 주목을 받았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인문대 백태현 교수는 "구소련 당시 강제로 이주당한 수많은 고려인이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그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 큰 호재"라면서 "한국학 전문가를 육성해 나간다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주인공은 한국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KF는 지난 24년 동안 13개국 81개 대학에 한국학 교수직 117개를 마련하는 등 세계 각국에서 한국학 연구의 기반을 확대해왔다. 

KF는 특히 26개국 연구소 111곳을 대상으로 한국 관련 정책 연구를 지원하고, 차세대 지한파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 중이다.

KF 관계자는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내외 한국학자가 한자리에 모여 미래를 조망해보고자 한다"면서 "아울러 이들 학자가 국내 학계와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해 장차 한국의 외교적 자산이 되도록 한다는 구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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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계급문학 운동의 역사적 전개 양상을 분석한 연구서가 출간됐다.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서울대 명예교수)가 일제강점기의 계급문학 운동이 민족 사회 운동과 어떠한 조직적 연관성을 지니고 전개됐는가를 탈(脫)식민주의적 관점에서 검토한 ‘한국계급문학운동연구’(서울대 출판문화원·사진)를 최근 출간했다.

권 교수는 책에서 “계급문학 운동은 문학의 성쇠와 그 운명이 사회적 현실과 직결된다고 하는 소박한 ‘경향성의 문학’에서부터 출발했다”며 “이는 민족운동의 사상적 기반의 하나가 됐던 사회주의 이념과 결합하면서 계급투쟁 의식을 강조하는 행동 실천의 문학으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계급문학 운동가들이 계급투쟁의 효과를 문학을 통해 직간접으로 보여 주면서 독자에게 현실 투쟁에 자신이 참여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작업했다는 것이다.

책은 계급문학 운동의 실천적 주체였던 조선프로예맹에 주목한다. 1925년 8월 조선프로예맹의 준비 모임에 가담한 문인의 신상과 조직 강령, 규약 등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권 교수는 “계급문학 운동은 식민지 상황에 대응한 문학예술의 조직적인 탈식민 운동”이라며 “문학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그 기능에 대한 적극적 확대, 실천이 계급문학 운동이 획득한 성과중 하나”라고 평가했다.(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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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감도 발표 80주년… 권영민 교수 ‘이상의 집’서 특별강연

천재 시인 이상(李箱)이 25세에 쓴 절절한 러브레터를 22일 최초로 공개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가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의 미발표작은 1936년 발표된 연작시 ‘역단(易斷)’과 ‘위독(危篤)’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국내 이상 연구의 권위자인 권 교수는 24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열리는 특별강연에서 이상이 1935년 고 최정희 작가에게 쓴 러브레터와 함께 문학계의 오랜 관심을 끌어온 오감도 미발표작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24일은 오감도가 세상에 나온 지 꼭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21일 만난 권 교수는 “오랜 연구 끝에 1936년 가톨릭청년, 조선일보에 발표된 연작시 ‘역단’ 5수와 ‘위독’ 12수 등 17수가 오감도의 미발표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상은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15번에 걸쳐 오감도 연작시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했다. 본래 30여 수를 지어놨지만 “시가 너무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거센 항의로 중간에 연재를 그만두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따라 끝내 빛을 보지 못한 미발표작 10여 수가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오감도는 우리나라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이상이 스스로 ‘조선의 악의 꽃’이라고 부를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 이 연작시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수학 기호와 도형을 중간에 넣는 등 파격적 작품이었다.

권 교수가 최근에 펴낸 ‘오감도의 탄생’(태학사)에 따르면 역단과 위독은 모두 한자를 병용하고 띄어쓰기를 무시한 산문체로 오감도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자신을 그리는 등 소재도 오감도와 긴밀히 연결된다.

권 교수는 “오감도 연작의 경우 시마다 별도 제목 없이 숫자를 붙여 구별했지만 역단과 위독은 연작 전체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개별 시의 제목이기도 했다”며 “역단과 위독이 큰 틀에서 오감도의 일부로 묶여 있었다가 별도로 발표하면서 제목을 나중에 붙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오감도의 미발표작을 찾아 나선 건 17년 전인 1997년. 이상과 함께 ‘구인회’ 멤버였던 소설가 박태원의 회고록에서 오감도 미발표작이 있다는 내용을 읽은 뒤였다. 회고록에는 이상이 오감도 연재 중단 직후 “왜 (나를)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뒤떨어지고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중략) 2000점에서 30점을 고르는 데 땀을 흘렸다”고 언급한 사실이 적혀 있다.

오감도와 역단, 위독을 하나로 놓고 보면 이상의 시 주제가 거시적인 관점에서 점차 자기 내부로 바뀌게 됨을 알 수 있다. 권 교수는 “오감도 4호부터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는데 위독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얘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상은 일본에서 숨을 거두기 한 해 전인 1936년 10월 위독을 발표한다.

권 교수는 “서양 학자들이 이상의 시와 소설을 접하고 그의 문학적 상상력에 감탄했다”며 “이상은 식민지 한국 근대문학의 후진성을 극복한 작가”라고 강조했다. 이상 문학의 세계화를 꿈꾸는 권 교수는 28일 미국으로 출국해 1년간 버클리대에서 한국 문학을 강의할 계획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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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러브레터의 마지막 세 번째 장. 편지 끝 부분에 ‘李箱’(이상)이라는 한자 서명이 보인다.


“볼따구니까지… 진정 네가 좋아 까닭없이 눈물 나려고해 죽을뻔”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중략) ‘정희’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이상의 러브레터 중 일부)

눈을 다시 떴을 때에 거기 ‘정희’는 없다. 물론 여덟시가 지난 뒤였다. 정희는 그리 갔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終生)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終生記)는 끝나지 않는다.(이상의 소설 ‘종생기’)

최정희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의 러브레터가 처음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그의 소설 ‘종생기’에 등장하는 ‘정희’가 연서(戀書)의 주인공인 최정희 작가(1912∼1990)를 모델로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상의 친필 편지는 동료 작가 김기림과 안회남, 동생들에게 쓴 편지 10편만 알려져 있을 뿐 러브레터가 공개된 건 처음이다. 이상 연구의 권위자로 편지를 직접 분석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는 △편지의 글씨체가 영인문학관에 보관된 이상의 친필 유고와 일치하고 △편지 끝 부분에 ‘李箱(이상)’이라는 한자로 사인이 돼 있는 데다 △최정희가 생전에 “이상에게서 편지를 여러 통 받았지만 모두 찢어버렸다”고 말한 점을 들어 이상의 편지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편지 본문에 시골생활 등이 언급된 걸 감안할 때 이상이 25세이던 1935년 12월에 편지를 쓴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최정희는 23세의 젊은 이혼녀로 잡지사 삼천리에서 만난 시인 파인(巴人) 김동환(1901∼?)과 사귀고 있었다. 그는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연극무대에 섰고, 이후 귀국해 조선일보와 삼천리 기자로 활동했다. 이미 시인 백석에게도 러브레터를 받는 등 젊은 시절 빼어난 외모와 지성으로 청년 문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최정희가 이상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의 사랑은 비극으로 치달았다. 이상은 이 편지를 쓰고 2년 뒤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일본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러브레터는 열정적이면서도 애잔하다. 최정희가 끝내 자신의 구애를 외면하자 이상은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라고 썼다. 이어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하게 있을 줄을 안다”며 “이제 내 마음도 무한히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라고 실연의 아픔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상은 편지에서 최정희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끝내 감추지 못했다. 차마 전달하지 못한 이전의 편지글을 소개한다면서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는 솔직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상
편지를 건넬 당시 이상은 연작시 ‘오감도’를 발표한 직후로 문단에서 한창 이름을 알릴 때였다. 그러나 직접 운영한 제비다방이 경영난 끝에 문을 닫고, 연인 금홍과도 이별하는 등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의 편지에는 오랜 정신적 좌절에서 벗어나 ‘당신(최정희)을 위해’ 다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다. 권 교수는 “이상이 사실상 폐인 생활을 접고 잠시나마 글쓰기에 다시 나설 수 있었던 건 최정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이상의 단편소설 ‘종생기’가 최정희를 모티브로 한 작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소설 속 여주인공인 정희(貞姬)가 최정희와 이름이 같고, 가족을 위해 일하는 직장여성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소설에선 현실과 정반대로 정희가 주인공 ‘이상 선생’을 사랑하고 러브레터를 보낸 것으로 묘사돼 있다는 점이다. 소설 속 정희는 다른 남성과 동시에 사귀는 등 이중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권 교수는 “이번 연서의 발견으로 ‘종생기’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돼 문학사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24일 이상 관련 문학행사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오감도 80주년 기념 특별강연’을 갖고 이상의 러브레터를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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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이 미국 서부지역에 해외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다. 단국대 국제문예창작센터가 올여름부터 LA문학아카데미를 여는 데 이어 UC버클리에서는 가을부터 한국문학을 중심으로 한 한국학 비중을 확대한다.

(...) 한편 UC버클리 동아시아어문화학과에서는 8월 말 개강하는 새 학기부터 한국학이 주전공으로 승격된다. 동아시아어문화학과에는 한국학, 중국학, 일본학 코스가 있는데 한국학은 중국학, 일본학과는 달리 부전공으로만 인정돼왔다. 한국학이 주전공으로 승격됨에 따라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가 정교수 자격으로 UC버클리에 부임해 1년간 머물 예정이다. 그동안 한국학 코스에는 조교수 한 명만 있었다.

아울러 UC버클리 부설 한국학센터는 가을부터 한국문학 관련 프로그램을 크게 확대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0월 한국학센터에 300만달러를 기부하면서 충분한 예산이 확보됐다. 올가을에는 최근 미국에서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영문판을 출간한 신경숙 작가의 작품 세계를 주제로 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권 교수는 “이를 시작으로 강의와 심포지엄 등 UC버클리의 한국문학 관련 프로그램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172109465&code=9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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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은 1972년 창간됐다. 당대의 ‘까칠한’ 비평가로 활약했던 이어령(80)이 만든 잡지다. 그해 10월호부터 발행되기 시작했다. 이어령은 당대 문단의 주류였던 조연현 김동리 서정주 등을 비판하며 자신만의 분명한 문학관으로 한국문학의 토양을 바꾸는 데 기여한 비평가였다. 문예계간지 ‘창작과비평’(1966)과 ‘문학과지성’(1970) 창간에 이어, 시대정신을 아우르던 ‘사상계’가 폐간(1970년5월)된 공백기에 나와 문학과 사상까지 아우르는 차별성을 표방했다. 기존 월간 문예지로는 1955년 창간돼 한국문단을 상징하던 ‘현대문학’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문학사상’은 이어령의 분방하고 자유로운 특질을 대변하듯 상대적으로 한국문학에만 올인하던 ‘현대문학’과 차별성을 띠며 해외 작가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보다 넓은 외연을 확보하는 강점을 보였다. 이 잡지가 이후 42년 동안 한 번의 결호를 제외하곤 줄기차게 달려와 이번 6월호로 500호를 기록했다. ‘현대문학’과 더불어 한국 문학 혹은 문단의 반세기를 쉼없이 기록하고 견인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기에 모자람은 없다.

“주간 자리를 제안받고 이어령 선생을 찾았더니 두 가지를 당부하더군요. 문단 어느 파벌에도 얽매이지 말고 중심에 가만히 있으라는 것과 금방 그만둘 것 같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선생이 10여년간 주간으로 재직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잡지에 투영했듯이 저 또한 색깔을 만들라는 주문이었는데, 그 빛깔이라는 게 어느 쪽에도 휩싸이지 않는 자유로운 중심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어령이 ‘문학사상’을 현재 발행인 임홍빈에게 넘긴 것은 1985년 무렵이었다. 이후 이 잡지의 주간은 1988년부터 두어 번 짧은 공백기를 빼고는 본격적으로 현재까지 가장 오래 이 잡지의 조타수 역할을 해 온 권영민(66·단국대 석좌교수)이 맡았다. 문예지의 ‘주간’이란 그 잡지의 방향을 정하는 선장 같은 역할이다. 이후 20년 가까이 ‘문학사상’ 편집 주간 위치에 있었으니 그를 만나 이 잡지의 족적을 더듬고,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정년퇴임한 학자의 삶을 통해 한국문학을 엿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문학 작품이 독자로부터 외면받으면 안 됩니다. 일차로 당대 독자들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합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선정할 때 가장 고려했던 사항은 아, 이 사람이 받을 만하겠구나 싶은 독자의 기대와, 어? 이 사람이 받았네, 싶은 작가들을 적절하게 배려하는 일이었습니다. 일년 내내 발표되는 작품을 모두 따라 읽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발표작들을 읽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연말이면 독자와 전문가들이 추천한 후보작을 놓고 제가 기대한 작품을 비교하며 심사위원들과 신중하게 머리를 맞댔지요.”

‘문학사상’의 상징인 ‘이상문학상’을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상업성과 화제성에 연연한다는 일각의 비판에도 이 상이 한국 독자들에게 상징적인 문학상으로 각인된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1977년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이 첫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래 이청준 서영은 한승원 신경숙 윤대녕 정미경 등 한국문단의 내로라할 작가들이 이 상의 수혜자였다. 권영민이 기억하는 특별한 수상작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김훈의 ‘화장’이다. 이문열 수상작은 그해 30만부가 넘게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화장’은 단편도 그리 많이 발표하지 않은 작가에게 상을 준다는 비판에도 결과적으로 한국문학에 새로운 분위기를 마련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이 상과 함께 그해 가장 뛰어난 시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소월시 문학상’과 ‘김환태평론문학상’도 이 잡지가 후광으로 거느리는 한국 문단의 상징적인 상들이다.

“한국문학이 완전히 특수한 한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건 한국문학이 변방에 자리 잡은 외톨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한국문학은 서구문학의 모방이자 이식이고 끊임없이 뒤따라가야 하는 후진적 문학이라고 말하는 것도 짧은 생각입니다. 우리에게는 1930년대 서구와 같은 반열에서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한 이상이란 문인이 있었습니다. 김유정 박태원 정지용 같은 이상 주변의 문인들도 당대에 같은 반열에서 한국문학의 출중한 한 시대를 받쳐주었던 이들입니다. 이상은 한국문학의 후진성을 단박에 극복한 인물이었지만 우리는 그동안 개인사에 얽매여 문단의 에피스드나 일화 정도로 취급했던 거지요.”

국문학자이자 평론가로서 권영민의 삶은 ‘문학사상’ 주간이라는 문학 현장의 ‘기획자’ 역할과 함께 달리 기록해두어야 할 대목이다. 요절한 천재시인이자 작가인 이상(1910∼1937)은 ‘오감도’ 같은 난해한 작품들 탓에 역설적으로 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각광받았지만, 여전히 이상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해독하기 어려운 편이다. 애초 이어령이 이상을 연구해 책까지 펴낼 정도로 깊이 관여했고 권영민은 자신이 감히 그 뒤를 잊지 못하리라 처음에는 생각했다고 했다. 1997년 이상 타계 60주년 행사로 수학자와 디자인 전문가까지 동원해 대대적으로 이상 연구결과 심포지엄을 기획하고 책으로 펴낸 이래, 이상을 파고드는 대표적인 국문학자의 길을 걸어갔다. 2007년 동경대 객원교수로 가서는 1년 동안 일본 대학생들과 함께 이상이 일본어로 쓴 시를 함께 번역하고 토론하면서 이상의 정수에 다가갔다.

동경대 학생들과 더불어 이상의 시를 토론하고 번역하는 일 같은 글로벌 한국문학 체험은 권영민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덕성여대 교수에서 출발해 단국대를 거쳐 1981년 이래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정년퇴임하기까지 미국 하버드대학과 버클리대학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해외 각국 한국문학 전공자들을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으로 불러들여 가르치는 일을 해왔다. 해외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치고 그에게 신세를 지지 않은 이들이 드물다. 권영민은 올여름 다시 버클리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기 위해 출국한다. 이 대학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 전공을 마이너 코스로 진행하다가 이번에 메이저로 격상시키기 위해 그를 초청했다고 한다.

버클리로 출국하기 앞서 다음달 서울 ‘이상의 집’에서 ‘오감도’ 발표 80주년 기념으로 많은 문인들을 모아 ‘문학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그는 2012년 서울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할 때 그동안 자신의 글쓰기가 전문 연구자들과 학생들 중심이었다는 걸 통렬하게 반성하면서 대중의 인문학 외면 사태가 자신에게도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반성을 토대로 문인들을 모아 ‘문학콘서트’를 진행했거니와, 이번 행사는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향한 학자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기 앞서 치르는 의식과도 같다.

“‘문학사상’이 이어령 선생 이후 이 자리까지 온 건 그동안 나를 포함한 문단인들의 의견을 수렴해준 발행인의 역할이 큽니다. 많은 매체들이 득세하면서 이제 잡지의 시대는 저무는 것 같지만 인간의 지적 욕망이 남아 있는 한 책이란 사라질 수 없으니 잡지 또한 여전히 생명을 보살펴야 할 우리 시대의 소중한 유산이지요.”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감동적이다. 늘 ‘비판적 조력자’인 아내 김옥수(62) 씨와 함께 걸으면서 하루 일어났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오래 된 행복이라고 그는 답했다. 권영민은 ‘문학사상’ 500호 권두언에 “이 자리는 한국의 문학인들이 만든 자리이며 독자 여러분이 함께 키우고 지켜온 곳”이라면서 “우리 문학의 열린 광장이 될 것을 다짐한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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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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