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단 최고의 비평가 김윤식 교수

 

어느 시대의 문학에서도 최고의 비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고의 비평가라는 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김윤식 교수의 경우에 그렇다. 김윤식 교수 이전에는 김 교수와 같은 비평가가 우리 문단에 없었는데, 김 교수 이후에도 그와 같은 비평 작업을 감당할 만한 비평가가 나타날 것 같지 않다. 그만큼 독보적인 활동을 보여 온 김윤식 교수에게 우리 문학 최고의 비평가라는 말은 전혀 아낄 필요가 없어 보인다. 김윤식 교수가 평생을 두고 쌓아온 2백여 권에 이르는 엄청난 저술과 그 비평적 성과에 대해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김윤식 교수는 비평이란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자신의 비평 작업은 발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간단한 비유적인 진술은 김 교수 비평의 성격을 말해주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문단의 한복판에 발을 내디디고 든든하게 자신의 거점을 정한 뒤, 그 역사적 현장성을 파악하면서 작품을 논한다는 자부심이 거기에 담겨 있다. 이런 실증성과 시대성의 인식이야말로 김 교수가 남긴 모든 비평 작업에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의 방법론의 기반이기도 하다.

  비평이란 한 시대의 문학이 그 자체를 정당화할 필요가 있을 때에 긴요하게 요구된다. 김 교수는 자신의 비평적 방법을 통해 이미 이를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의 발로 쓰는 비평이란 논리적 형식보다는 실증적인 내용에 더욱 관심을 둔다. 사변적인 것보다는 실제적인 것에,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앞세운다. ‘발로 쓰는 비평은 문단의 한복판에서 이뤄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시비곡절을 안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자신의 비평을 그 대상이 되는 문학 작품과 나란히 내세우고자 한다. 이 특이한 작품과의 맞서기를 통해 그 문학을 만들어낸 수많은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작가와 더불어 삶과 문학을 생각하며 현실에 골몰한다. 그러므로 김 교수의 비평에는 언제나 살아있는 지금’ ‘여기의 문제들이 강조된다.

  김윤식 교수는 평생을 우리 소설 읽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김 교수는 비평이라는 것이 그 대상으로서의 작품이 없으면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목한다. 그리고 자신의 비평 작업과 방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모두 다시 작품으로 떳떳이 돌아오고자 하는 목표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비평의 실천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교수의 비평은 그 방법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냐를 따지기 전에 그것이 얼마나 작품의 의미에 활기를 불러일으켜 주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김윤식 교수는 문단비평과 강단비평의 간격을 없애버린 비평가다. 김 교수는 당대 문학의 과제를 전체적인 문학사의 흐름 속에서 조망하고 문학사적 사실이 지니는 문제성을 당대의 문학 현실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김 교수가 자신의 수많은 저서와 평문들에서 끈질기게 다뤄온 것은 우리 문학에서 근대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김 교수가 먼저 선택한 것이 한국 근대문학 비평의 역사적 체계화 작업이다. 김 교수가 자료를 조사 정리하고 사()적인 맥락을 세워나가면서 체계화한 한국 근대문학 비평은 우리 문학이 추구해온 문학적 근대성의 자기규정과 그 논리에 대한 해석이었음은 물론이다.

  김 교수의 비평사 연구는 문학을 다른 어떤 사상으로 대치시켜 놓기 위한 작업은 결코 아니다. 그는 문학의 위상을 그 사회 문화적 논리의 그물망을 통해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주고자 한다. 김 교수의 대표적 업적으로 손꼽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는 바로 이러한 작업의 첫 성과에 해당한다. 김 교수는 이 작업에 뒤이어 한국의 근대비평가들을 자신이 엮은 비평사의 틀 속으로 담아나간다. 방대한 규모의 비평적 전기로 그 문학적 삶의 비극성을 재구(再構)해낸 임화 연구를 비롯해 박영희, 백철, 이헌구, 최재서 등에 대한 연구에서 김 교수가 비평사의 그물망을 얼마나 촘촘하게 엮어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김윤식 교수의 소설 읽기는 작가와 비평가가 삶의 한가운데에서 서로 맞서는 작업에 해당한다. 이 맞서기 작업의 첫 대상이 이광수였음은 이광수와 그의 시대라는 저술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맞서기 작업은 승부를 결정짓는 싸움은 아니다. 서투른 독자들은 김 교수에 의한 이광수 극복을 운위(云謂)할지도 모르지만, 김 교수는 오히려 이광수를 오늘의 현실 속에 다시 세우고 그와 함께 문학과 역사를 논하며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소설을 예술이라고 믿었던 김동인의 오만한 모습도 김 교수의 어깨너머에 보이고, 관점의 중립을 소설적 미덕으로 자랑했던 염상섭도 김 교수의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천재 이상도 김 교수의 왼쪽에서 귀엣말을 주고받는다. 김 교수와 동시대를 살아온 최인훈도, 이청준도, 박완서도 그 뒤에 둘러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모든 작가에게 김 교수는 집요하게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과 소설적 아이러니의 문제를 다시 묻고 대답을 재촉한다.

  이 쉼 없는 대화와 맞서기를 통해 김 교수는 작가를 일떠세우고 딴전부리는 작가를 채근하며 그들과 함께 문학과 역사를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통해서 김윤식 교수가 극복하고자 한 것은 소설의 형식에 미학적 요건을 부여해온 많은 이론가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근대소설의 운명을 논하기 위해 김 교수는 게오르크 루카치의 리얼리즘론을 극복해야 했고 루시아 골드만의 숨은 신을 우리 소설 속에서 찾아야 했던 것이다.

  김윤식 교수가 세상을 떠나셨다. 김 교수의 비평 작업은 언제나 삶과 예술의 총체적 의미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 교수의 비평은 후학들에게 우리 문학사 전체의 무게만큼이나 벅차다. 하지만 이 짐을 감당해야 할 후학들은 사실 행복하다. 아무런 짐의 무게도 가늠할 수 없던 때에 비평의 논리와 방법에 홀로 매달려야 했던 김 교수의 힘든 노력에 비하면, 감당해야 할 몫을 그 무게만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김윤식 교수님! 이제 펜을 놓으시고 부디 평안히 잠드소서                                       

               

(교수신문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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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宮中) 무희(舞姬) 리진

 

지난 8월 초에 신경숙의 장편소설 󰡔리진 󰡕(2007)이 앤턴 허(Anton Hur)의 번역으로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아마존에서는 이미 이 책의 보급판을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중요 서점에도 이 책이 전시되고 있다. 책의 제목은 궁중 무희(The Court Dancer)’로 바뀌었다. 소설 󰡔리진 󰡕은 한국에서 신문에 연재되었을 때는 원제명이 푸른 눈물이었다. 신문 연재본과 한국어 단행본 그리고 영역본이 각각 그 제목을 바꾸어 달고 나온 셈이다

 

조선 말엽 궁중의 무희로 프랑스 외교관을 사랑한 리진은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은 국내의 문헌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 백년전 프랑스에서 출판된 책 가운데 조선에 온 프랑스 외교관과 궁중 무희 리진에 대한 사연이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조선의 궁중 무희 리진이 외교관을 따라 파리로 가서 우울증에 걸려 지냈다는 간단한 내용을 바탕으로 신경숙은 리진이라는 여인을 자신의 소설 속에서 살려낸다. 주인공 리진은 기울어가는 왕조의 마지막 명운을 붙잡고 섰던 왕비의 총애 속에서 궁중의 무희로 자라났다. 조선의 궁중에서 나비 같이 춤을 추던 이 아릿다운 여인은 낯선 프랑스로 건너가 물빛 드레스를 입고 파리의 거리를 거닐었다. 신경숙은 이 여인에게 모국어의 영역을 벗어나 프랑스어를 습득하게 했다. 그리고 새로 배운 프랑스어로 모파상의 작품을 낭독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에는 이 새로운 삶이 환희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언제나 무너지고 있는 조선 왕조와 그 왕조의 비극을 고스란히 품에 담고 있던 왕비만이 걱정이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허용된 각별한 운명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만이 알아낸 역사를 살아야 했고, 그 자신만의 생각으로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 자신만의 기억 속에 사랑을 담았다.

모두가 망각해버린 이 여인의 삶을 통해 작가 신경숙이 말하고자 한 것은 패망해 가는 왕조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리진은 우여곡절 끝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서구의 근대 문물을 몸으로 받아들인 그녀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녀는 결국 참극의 주인공이 된 왕비(명성황후)의 죽음의 진실을 자신의 죽음으로 알리는 길을 택한다. 소설 속에서 리진은 참혹하게 죽어갔다. 그녀가 서양을 배우기 위해 터득했던 프랑스어를 모두 자기 목구멍으로 삼켜버리듯, 독이 묻은 프랑스어 사전 한 장 한 장을 뜯어 삼켜야 했다. 그녀는 그녀가 몸소 부딪치고, 맑은 눈으로 보고, 그녀의 아름다운 입으로 말했던 새로운 세계를 다시는 이야기할 수 없게 된다. 봉건 왕조의 붕괴 과정 속에서 근대를 한 몸에 지니고 살아야 했던 리진이라는 여인의 삶에서 여성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의 불화를 함께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의 풍부한 서사성을 말해준다.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지의 서평에서는 󰡔궁중 무희󰡕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세기 후반 한 궁중 무희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프랑스 외교관의 마음을 사로잡은 리진이라는 궁중의 무희를 내세워 격동기 한국 사회의 변화를 특이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이 자기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중심으로 한국의 역사를 그 배경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고립된 조선과 선진화한 유럽 특히 프랑스의 사회 문화적 불균형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아시안 리뷰 오브 북스(Asian Review of Books)에서는 아주 긴 서평을 냈다. 맨 아시아 상을 수상한 작가 신경숙의 신작소설 󰡔궁중 무희󰡕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읽힐 수 있는 흥미롭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분야에서 서구의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는 알려 있고 익숙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그러하지 못하다. 작가 신경숙은 바로 그런 점에 착안 하여 이 격동의 시대에 한국의 궁중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여 이를 재현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문화와 한국의 풍속을 아름답게 대조해 보이는 이 소설은 한 운명적인 궁중의 무희의 생애를 통해 한국인의 삶의 우여곡절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번역자의 유창한 영어 번역이 이 소설의 정감을 끝까지 살려내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미국 국영라디오 (National Public Radio)의 북 리뷰에서는 신경숙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명으로 꼽히는 합당한 이유가 이 소설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인간의 마음의 미묘함에 대한 그녀의 깊은 이해를 이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선 왕궁의 아름다운 무희였던 리진은 프랑스로 건너가 거기서 비단 부채를 만들면서 자신에게 밀려드는 슬픔을 거기에 수놓는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소설 속에 담겨 있지만 그것은 작가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살아나고 있다고 평했다.

신경숙은 지난 2011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로 세계문학의 무대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I’ll Be Right There󰡕(2014)󰡔외딴 방 (The Girl Who Wrote Loneliness󰡕(2015)을 영어로 번역 출판하면서 그 문학의 고뇌와 깊이를 자랑하게 되었다. 이번에 나온 󰡔리진 (The Court Dancer)󰡕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뛰어넘는 신경숙의 소설적 상상력의 폭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일 것으로 생각된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후 몇 년을 칩거하고 있는 그녀가 다시 독자들 앞에 멋진 소설을 가지고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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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올해는 없다

 

 

올해 가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발표한 성명을 보면, 한림원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신 내년에 수상자를 2명 선정하겠다고 한다. 해마다 노벨문학상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는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수상자를 내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면서 대중의 신뢰 회복을 언급하고 있는 스웨덴 한림원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도 궁금하다.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다고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외신들이 전하는 뒷이야기가 흥미롭다. 노벨문학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은 모두 18명이다. 그 가운데 카타리나 프로텐손이라는 여성 회원이 있다. 그녀의 남편은 스웨덴 최고의 사진작가로 유명한 장클로드 아르노다. 이들 부부는 스웨덴 문화 예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저명인사로 손꼽힌다. 그런데 사진작가 장클로드 아르노가 지난해 11월 이른바 미투 파문에 휩쓸렸다. 18명의 여성들이 장클로드 아르노에게 지난 10여 년간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던 것이다.

장클로드 아르노의 성폭행이 여러 피해자들에 의해 폭로되자 스웨덴 문화 예술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스웨덴 문화 예술계에서는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한림원 종신회원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은 자기 남편을 두둔했고, 한림원 자체에서도 이 사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사태가 더욱 커지자 스웨덴 한림원에서 세 사람의 다른 종신회원들이 프로스텐손의 태도를 문제삼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종신회원직 해임을 한림원 사무국에 정식으로 요구한다. 게다가 프로스텐손이 노벨상 수상자를 사전에 유출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그러나 한림원에서는 이 요구가 부당하다면서 모두 무시해 버린다. 이렇게 문제가 뒤엉키게 되자 해당 종신회원들이 사무국의 처사에 반발하여 한림원을 집단 사직하기에 이르게 된다.

한림원 내부의 갈등이 바깥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여성 성폭행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비난도 거세게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스웨덴 한림원의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 그리고 결국 프로스텐손도 사퇴하게 된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 금년도 노벨문학상의 심사 중단(?)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벨재단에서도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내년으로 연기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에 대해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을 시상하는 기관으로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조치들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대로 올해 10월에는 서점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사실이다.

 

 

노벨문학상은 1901년부터 시행되었는데 모두 110명의 저명한 문인들이 이 상을 받았다. 수상자를 결정하지 못한 것은 1914, 1918, 1935, 모두 세 번이다. 당시 노벨재단의 공식 성명은 마땅한 수상자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이던 1940년부터 4년 동안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오랫동안 그 권위를 지켜온 노벨문학상이 대상작을 선정하고 시상하는 기관의 내부 문제로 수상작을 내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노벨문학상의 큰 상처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내년에 두 사람의 수상자를 낸다고 하니 내년의 노벨문학상에 호기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물망에 올랐던 문인들도 새로운 가능성에 기대를 가져봄 직하다. 일본의 문학 애호가들이 벌써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흥분하고 있다는 토막소식도 전해진다. 우리나라 작가 가운데에도 그렇게 거론될 만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노벨문학상은 세계문학의 꽃이다. 물론 그 자체가 문학의 최고 가치나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는 아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된다는 것은 세계문학의 무대에서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작품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야 한다. 물론 세계 각국의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서 모든 독자에게 호감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작품이 적어도 20여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힌다면 그 문학인은 자신의 문학작품으로 세계의 무대에 서 있게 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중요 작품 서너 편 정도가 이미 세계 각국의 독자들에게 읽히면서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런 작가는 스스로 자신을 노벨문학상의 후보자로 올려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운데 우크라이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프랑스 작가 패트릭 모디아노,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등은 이미 그들의 대표작들이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판되어 꾸준히 읽혀 왔다. 한국어로 번역 소개될 정도라면 당연히 세계적인 작가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노벨문학상은 매년 생존해 있는 작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그 수상작을 선정한다. 수상작을 발표하면서 심사 과정이나 후보자들에 대해 어떤 정보도 내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수상자로 선정된 사람 이외에 누가 후보에 올랐는지 어떤 심사과정을 거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수상자가 발표 된 후 50년간 심사 내용에 대한 모든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노벨재단의 문서보관소에 1967년까지의 노벨문학상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가 모두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다. 물론 그 문서들 속에서 한국문학 작품에 대한 기록은 하나도 없다. 1967년까지는 단 한 번도 한국문학 작품이 심사대상에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일본문학의 경우 1958년에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작가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1886-1965)와 시인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順三郎, 1894-1982)가 후보로 추천된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은 1960년에도 후보군에 포함되었다. 카와바타 야스나리는 1961, 1963년 연속으로 그 이름이 후보군에 오른다. 1963년에는 소설 금각사(金閣寺)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새롭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해 미사마 유키오는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의 나이가 40이 되기도 전의 이야기다. 미시마 유키오는 1965년에도 설국(雪國)을 쓴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와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된다. 1967년에도 두 사람이 동시에 후보에 올랐다. 그러다가 1968년 카와바타 야스나리가 후보에 오른지 8년만에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자살함으로써 후보군에서 벗어났다.

노벨문학상의 수상자를 보면 110명의 수상자 가운데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1927년 수상)도 있고, 영국의 철학자 러셀(1950년 수상)도 끼어 있다. 소설가가 절반이 넘고 시인 가운데 수상자는 34명이다. 그런데 수상 시인들의 면면을 보면 대개가 서구 언어권에 속해 있다. 소설의 경우에는 비서구 언어권의 작가도 여럿이 수상자가 되었는데 시인이 번역을 통해 노벨문학상의 수상자가 된 예는 없다. 인도의 시인 타골은 1913년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는데 그는 영어와 벵골어로 시를 썼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는 소설 정글북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키플링(J. Rudyard Kipling, 1865-1936)이다. 그는 1907년에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얻었다. 그의 나이 42세 때였다. 노벨문학상의 수상자들이 평균적으로 60대 중반에 상을 받았다는 통계도 있는데, 키플링의 수상은 약관의 나이에 이루어낸 업적임을 알 수 있다.

노벨문학상은 시상식에서 수상자 이외의 후보자들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는다. 누가 그 해에 후보자로 부각되었는지도 밝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잡음도 없어지고 모든 관심이 수상자에게만 집중되는 것이다. 매년 노벨문학상 발표 시기에 임박하여 외신을 타고 들어오는 후보자는 영국의 도박사들이 선정한 몇몇 문인들의 명단에 불과하다. 전 세계 문학 독자들이 좋아하는 문인의 이름이 그 명단에 오르내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박사들이 점치는 사람 가운데 수상자가 된 경우는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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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은 연간 800만 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곳에 한국관이 개관된 것은 2007년 6월의 일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개별 국가 전시실로는 처음으로 한국관이 개설되었으니, 당시 한국 문화계에 커다란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중요 언론에서는 한국관이 영구 전시실로 운영될 것이라면서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아시아 문화연구 프로그램 중 하나로 ‘한국 문화유산 프로젝트(Korean Heritage Project)’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물관 측에 이 사업을 지원하기로 약속하면서 한국관 개관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국국제교류재단이 125만 달러를 지원했고, 3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한국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한국관에는 한국의 역사와 생활을 주제로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한국의 전통 도예’ ‘조상 숭배’ ‘한국의 전통 혼례’ ‘한글은 한국 문화의 자랑’ ‘국경을 넘은 저편의 한국’ ‘한국의 현대 미술’ 등 총 7개의 주제로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한국 전통 옹기장인 정윤석 씨의 옹기, 도예가 방철주 씨가 만든 청자 항아리,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의 한국 전통 혼례복, 변시지 화백의 그림 등도 이곳에 전시되었다.

한국관 개관 행사에 권 여사는 세계인이 좋아하는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개별 국가로는 처음으로 한국이 독립적인 전시공간을 갖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는 축하 메시지도 보냈다. 한국관은 그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미국인과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알리는 작은 창구의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 한국관이 올해 하반기에 폐관된다는 소식이다. 개관 당시 10년간의 전시 기간을 약정했기 때문에 올해로 그 계약이 만료된다는 것이다. 스미스소니언 측에서는 이미 2년 전부터 한국관의 폐관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국내에서는 여기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사이에 한국관의 폐관을 기정사실화하는 박물관 측의 발표가 있었다. 더구나 한국관의 지속적 운영을 위한 재계약을 논의하는 것조차 이미 늦어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교민 사회에서는 한국 문화를 제대로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사라지게 된 것을 모두 아쉬워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관의 상설 운영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한 한국의 정책 당국을 비판하는 여론도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는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내세울 때마다 민족 문화의 찬란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데에는 우리 모두가 소견도 좁고 역량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즘은 ‘한류’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케이팝’을 이야기하고 한국의 드라마를 띄우는 데에 열중이다. 한국의 생활문화 가운데 음식이라든지 패션에 대한 감각은 이미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보편화되고 있다. 매체의 확장과 멀티미디어의 발전에 힘입어 대중적 취향을 강조하는 한국 문화의 지구적 확산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한국관 폐관을 놓고 보면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정책의 틀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문화의 세계화는 문화 상품의 소비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것은 문화 산업의 상업적 논리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문화는 이질적인 외국 문화와 만나면서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면서 조금씩 그 위상을 높이고 영향력도 키워가게 된다. 여기에는 문화의 양식적 특성과 그 정신에 대한 고급한 취향과 선택의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문화가 세계 문화 속에서 조화롭게 그 위상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문화 산업에 중점을 두었던 한류의 확산 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한국 문화가 세계 문화와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는 여러 단계와 요소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조직해 연계하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한국관이 이대로 폐관되고 만다면, 이제 겨우 그 가치를 알리기 시작한 한국 문화가 세계를 향한 중요한 창구 하나를 그대로 잃게 되는 셈이다.(<동아일보>, 2017.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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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李箱)은 1937년 4월 17일 일본 도쿄(東京)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죽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80년이 되었다. 김기림은 이 불행한 천재 시인의 죽음을 보고 ‘주피터 추방’이라며 슬퍼했다. 그리고 이상의 새로운 예술을 올림포스 최고의 신 주피터의 이름으로 다시 호명하고자 했다.

이상은 연작시 ‘오감도’를 쓰고 소설 ‘날개’를 발표한 후 도쿄로의 탈출을 꿈꾸었다.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는 현해탄(대한해협)의 높은 파도를 넘어 일본으로부터 밀려들어 오는 새로운 문명이 하나의 희망일 수밖에 없었다. 이광수가 문단의 ‘춘원(春園) 시대’를 열게 된 곳도 도쿄였고, 임화가 무산계급에게 국가가 없다는 신념을 키웠던 곳도 도쿄였다. 

이상은 1936년 늦가을 도쿄로 건너갔고 반년 정도 거기서 머물렀다. 그가 도쿄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 있다. 도쿄에서의 그의 죽음 또한 그 문학의 마지막 장면을 정리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의문점들을 안고 있다. 

이상은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그는 김기림에게 자신의 도쿄 도착 소식을 전하는 편지에서 ‘기어코 동경(東京) 왔소. 와보니 실망이오. 실로 동경이라는 데는 치사스런 데로구려!’라고 적었다. 이상이 도쿄의 첫인상을 ‘치사스런 데’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1930년대 동양 최고의 도시였던 도쿄를 돌아보면서 식민지 조선의 초라한 시인 이상은 ‘어디를 가도 구미가 당기는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것은 도쿄의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표피적인 서구의 악취(惡臭)’ 때문이었다. 서구 문명의 껍데기를 겨우 흉내 내면서 그것으로 진짜 행세를 하는 꼴이 구역질이 난다고 꼬집기도 했다. 도쿄라는 도시의 비속성(卑俗性)에 대한 이상의 비판적 태도를 본다면, 그의 도쿄 생활은 여기서 이미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상은 제국의 수도 도쿄가 자신이 꿈꾸었던 현대정신의 중심지가 아님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는 서구 문명의 세계를 치사하게도 흉내 내고 있던 도쿄의 ‘모조(模造)된 현대’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도쿄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재구성하거나 해체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도회의 산책자가 되어 도쿄의 번화가를 거닐면서, 화려한 긴자(銀座)의 거리를 두고 ‘한 개의 그냥 허영 독본(虛榮讀本)’이라고 적었고, ‘낮의 긴자’는 ‘밤의 긴자의 해골’이라서 너무 추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현대와 세기말의 허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도쿄라는 대도시에 대해 비아냥대었다. 하나의 거울에 또 다른 하나의 거울을 비춰 보듯이 이상이 발견한 이 도쿄의 이미지는 문명의 화려한 꽃이 아니라 그 어슴푸레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상은 새봄이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계획대로 귀국할 수 없었다. 그는 일본 고등계 형사의 취체(取締)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서로 끌려갔다. ‘거동 수상자’라는 이유로 경찰에 검거된 그는 도쿄의 늦겨울 한 달을 차디찬 경찰서 유치장에서 견뎌야 했다. 이 불행한 영혼은 그 육신과 함께 거기서 무참하게도 허물어졌다. 그리고 결국은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상은 스물여덟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주피터 승천하는 날 예의(禮儀) 없는 사막에는/마리아의 찬양대도 분향도 없었다./길 잃은 별들이 유목민(遊牧民)처럼/허망한 바람을 숨쉬며 떠 댕겼다./허나 노아의 홍수보다 더 진한 밤도/어둠을 뚫고 타는 두 눈동자를 끝내 감기지 못했다.’ 김기림은 이상의 죽음을 보면서 ‘주피터 너는 세기(世紀)의 아픈 상처였다’고 목을 놓아 울었다. 그는 이상의 짧은 생애를 시대고의 희생이라면서 안타까워했다. 

김기림이 이상에게 부여한 ‘주피터’라는 이 새로운 이름은 그 예술적 재능에 충분하게 값했다. ‘주피터’라는 이름 그대로 이상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이 되었다!

(<동아일보>, 2017.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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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騎士團長殺し)’가 문단의 화제다. 얼마 전에 보도된 대로 일본에서 초판 130만 부를 찍었다는 뉴스가 놀랍기만 하다. 책 판매가 시작된 첫날 서점마다 독자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작품평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본인들이 저지른 난징 대학살에 대한 작품 속의 언급에 일본 우익분자들이 시비를 걸면서 엉뚱한 논란까지 연일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번역 소개되면서부터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1987년에 출판된 이 작품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꿈의 상실 속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애절한 사랑을 자유분방한 문체로 그려냈다. 당시 일본 평단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등장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한때 유행하는 대중적 통속소설 작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평단의 무관심에도 자기 소설에만 집중했다. 그는 이른바 ‘일본 중심주의’에 빠져들었던 일본 사회의 흐름을 외면한 채 오히려 자신의 소설에서 일본적 특성이라든지 일본의 미학이라든지 하는 요소들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글로벌 시대의 작가임을 자처했고, 일본을 넘어서서 세계의 모든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새로운 무대를 꾸준히 탐색했다.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삶의 태도와 신화적 요소를 자기 서사의 모티프로 활용하면서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 ‘양을 쫓는 모험’ 등의 문제작을 통해 독자층을 넓혀 나갔다. 그의 작품은 모두 한국에 번역 소개되어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일본 문단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고, 자신이 추구해온 소설적 이념의 실천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 출판계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몇몇 출판사가 국내 판권을 얻으려고 벌써부터 경쟁이 치열하다는 소식이다. 이른바 ‘선인세’라는 개념의 판권 계약금이 무려 2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출간되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부터 출판사들의 판권 경쟁으로 선인세가 10억 원을 넘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었다. 작년 송인서적의 부도 이후 움츠러든 출판계 상황을 놓고 본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큰 출판사들이 벌이는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경쟁에 왠지 기분이 씁쓸하고 착잡하다. 

그런데도 이런 출판사의 지나친 상업주의적 행태를 시비하기조차 힘든 것은 우리 소설 문단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단 권력이라는 기형적인 울타리가 작가들을 옥죄고 있다고 서로 헐뜯더니, 문단 내부에서 끊이지 않는 표절 시비가 독자들을 식상하게 했다. 게다가 문인들의 성폭력에 대한 논란에까지 빠져들면서 문단의 활력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문학이 기대야 하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다. 우리 출판시장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돈 자랑처럼 보이는 판권 경쟁에 거는 그 엄청난 금액의 일부라도 우리 소설을 위해 투자하는 출판계의 용기가 필요하다. 젊은 작가들이 자기 세계를 지키면서 꾸준히 글을 쓰도록 적극 지지해줘야만 우리 문단과 출판계가 모두 풍요로워질 수 있다. 우리 소설이 지닌 상상력의 힘에 기대를 걸고 있는 세계의 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 독자와 출판계가 모두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부러워하며 따라가야 하겠는가.(<동아일보>, 201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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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정치

문학칼럼 2017.02.15 04:47 |

‘사내는 우비와 거짓말을 갖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속담이다. 갑작스러운 곤란에 부닥쳤을 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편이 남자에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거짓말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이런 속담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다. 거짓말은 남을 속이려고 일부러 지어낸 것이니 당연히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도 남자한테 거짓말 하나쯤 있어도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아무리 처세가 중요해도 거짓까지 용납해서야 될 일인가.

기독교 십계명에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다. 진리이신 하나님은 거짓이 없다. 거짓말은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가 마귀의 속성으로 간주된다. 부처님의 도리에도 거짓은 용납하지 않으며, 공자의 말씀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남을 속이는 말은 모두 허언이며, 그것이 곧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의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윤리학에서도 거짓말에 대한 판단은 대개 엄격하다.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거짓말은 사실과 다른 허위 진술이라는 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죄로 취급한다. 말을 바르게 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책무다. 거짓말을 하려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꾸며서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남을 속이기 위해 먼저 자신을 속여야 하는 것이 거짓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의 꾸중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도 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도 거짓말을 꾸민다. 어른이 되어서도 거짓말을 자주 한다. 남녀 간의 연애에서 사랑을 구걸할 경우 쉽게 거짓말을 동원한다. 친구들 사이에 실없는 거짓말로 농을 걸 때도 많다. 경쟁이 치열한 입사시험을 보면서 면접관 앞에서 누구보다 잘 보이기 위해 자기 능력을 과장하여 말하기도 한다. 이런 거짓말은 남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것은 아니므로 그 진위를 따질 필요가 없이 대개 그대로 넘어간다. 그렇지만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해악을 저지르는 거짓말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거짓말이 가장 크게 판을 치는 곳이 정치다. 정치라는 한자의 ‘정(政)’은 ‘바르게 다스리다’라는 뜻을 갖는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권력을 잡으면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는’ 데에만 골몰하지 ‘바르게’ 하려 들지 않는다. 거짓말로 시작한 정치는 권력의 힘에 맛들이면서 더욱 교만해지기 마련이다. 자기 허물은 모두 거짓으로 감추고, 자신이 저질러 놓은 비리와 부정을 일절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는 것은 정치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다. 스스로 불리해지면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도 하는데, 요란하게 은퇴했던 정치인치고 다시 정치판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틈에 머리를 내밀고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면서 나댄다.

올해는 큰 선거를 치러야 한다.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꾸며내고 거짓 선동을 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불과 4년 전 선거 때 정치인들이 내세웠던 거짓말을 착한 국민은 어느새 대부분 잊어버렸다. 대학생들을 향해 모두가 ‘반값 등록금’을 외쳤는데 정치인들의 그 허언을 누구도 다시 따지는 사람이 없다. 선거 때마다 생색을 냈던 ‘반값 아파트’는 또 얼마나 서민들에게 황당한 거짓말이었는가. 일자리 몇십만 개를 만들겠다고 듣기 좋게 주장하지만 저들이 국민 앞에서 무슨 거짓을 다시 꾸밀지 알 수가 없다. 

거짓말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는 정치판에 거짓말이 난무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정치인의 거짓말에 둔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에서의 거짓 선동과 거짓 공약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의 거짓말에 너그러운 국민의 의식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동아일보>, 17.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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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한 달 후에 백악관을 떠난다. 지난 8년간 그는 지구촌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온 세계의 대통령이었다. 많은 언론들이 퇴임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경쟁 중이다.  

최근 미국의 대중잡지가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게 되는 대통령 부부를 인터뷰한 내용을 표지 기사로 크게 내놓았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그동안 정치적 부침은 있었지만 우리가 시작했던 때에 비해 지금 미국이 훨씬 더 나아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 할 일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아내인 미셸 여사와 함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미국 어린이들이 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계속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갈 긴 새로운 여정의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으로 멋진 대답이다. 우리의 대통령은 아니지만 퇴임하는 모습이 이렇게 당당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못내 부럽다.  

오바마 대통령의 퇴임이 가까워지면서 화제가 된 것이 ‘마이티 덕(mighty duck)’이라는 말이다. 미국의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 이 말은 ‘강한 오리’라는 뜻을 지니지만, 사실은 ‘레임 덕’이라는 말과 반대되는 새로운 용어다. 퇴임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를 빗대어 만들어낸 것이다.  

대개의 경우 임기 말이 되면 대통령은 힘을 잃는다. 정책의 집행도 제대로 되지 않고 언론에서도 곧 물러날 대통령의 주장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는 여전하고 지지율도 60%에 가깝다. 이러한 국민적 지지에 힘입어 임기 막바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 정치를 옭아매고 있던 쿠바와의 단절을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여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고 미국인들을 열광시켰다.  

오바마는 대통령 후보 시절 미국의 새로운 ‘변화(change)’를 정치적 슬로건으로 내세웠고,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고 침체에 빠져 있던 미국 사회를 흔들었다. 그의 열정적인 연설과 신념에 찬 정책들은 흑인뿐 아니라 백인들에게서도 폭넓은 지지를 얻어냈으며, 48세의 젊은 나이에 미국 역사상 첫 흑인(혼혈) 대통령이 되었다.  

오바마는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이 내세우고 있는 정책을 위해 언제나 스스로 앞장서서 의회를 설득하고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예리한 판단력의 소유자였고 노련한 연설가였지만 자기주장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는 미국 대외정책의 큰 방향을 바꾼 이라크 전쟁을 종식시킨 후 미국의 교육 개혁, 총기 규제, 오바마 케어로 지칭되는 건강보험 개혁 등 굵직한 국가 과제를 추진하면서 이를 반대하는 야당 지도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매주 일요일 열리는 주례 연설을 통해 국민에게 당면 과제를 설명하면서 이해를 구했고 기자회견을 통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장면들이 그대로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미국의 국민은 자연스럽게 대통령의 정책에 새로운 관심을 갖고 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위기에 몰릴 때마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면서 자신의 정책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경우 자신이 직접 나설 정도로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했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성공적인 리더십이 대화와 소통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한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대화와 소통으로 모두와 함께하고자 노력했던 열정적인 지도자가 복잡한 세계 정치의 무대에서 물러난다. 그의 소탈한 인품과 분명한 행보와 품격 있는 연설을 세계인들은 모두 그리워할 것이다. 오바마와 같은 젊고 활기찬 지도자를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아일보>,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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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라는 희대의 국정 농단 사건을 담당한 변호인들이 검찰의 조사 내용을 ‘소설 같은 이야기’라면서 부정하고 있다. 검찰 조사 내용이 모두 근거 없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며, 법리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혐의 내용을 부인하고 있다. 소설 연구에 일생을 걸어온 나 같은 연구가가 듣기에 어이가 없다. 꽤나 높은 학식과 교양을 지닌 것처럼 행세했을 사람들이 아무 데나 소설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이 불만이다. 소설에 대한 인식이 겨우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소설은 어떤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다. 작가는 일련의 사건들을 배열하여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소설을 꾸며낸 이야기라고 한다. 소설 속 이야기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은 어떤 행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장소와 시간을 실제처럼 그려내는 일이 필요하다. 소설의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에 근거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만 그려내지는 않는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소설의 세계를 흔히 허구라고 하는데, 그것은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가공의 현실을 지적하는 말이다. 물론 허구라는 것도 실재성을 토대로 성립된다. 

‘최순실 게이트’야말로 거짓된 정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권력과 사욕이 치정(癡情)처럼 뒤엉켜 있다. 정치는 민주적 제도와 법적 질서를 통해서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우리 국민이 험난했던 민주화 과정을 통해 확립해 놓은 법적 제도와 질서를 권력이 자기 욕심대로 다시 짓밟아 버린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멸시다. 국가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거창한 정책이 권력 뒤에 숨겨진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데 동원되었다는 것은 국가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모두 ‘최순실 게이트’가 너무나 부끄럽고 그 내막에 대해 치욕감마저 느낀다. 하지만 거짓된 정권을 혐오하면서도 바로잡아야 할 정치를 위해 촛불을 들고 있다. 권력이 멋대로 국가 질서를 무너뜨렸는데 그것을 비호하는 사람들은 그 권력을 위해 구차한 법리를 따지고 옹색하게 법치를 내세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다.

거짓말은 진실을 말하기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다. 거짓말은 거짓으로 꾸며진 것이므로 그 거짓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반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거짓말도 그 긴 꼬리에 단서가 잡힌다. 거짓말은 진실을 통해 거짓의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며 그 위선(僞善)의 가면으로 인해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결코 허황된 거짓말이 아니다. ‘소설처럼 재미있다’든지, ‘소설 같은 일’이라든지, ‘소설에서나 가능하다’든지 하는 말은 소설이라는 양식 자체가 그만큼 인간의 삶에 밀착돼 있음을 의미한다.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 속에 삶을 바라보는 진지한 자세와 그 진실을 담아낸다. 소설이 허구이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소설은 전혀 터무니없이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서사 기법에 따르는 일정한 짜임새를 갖는다.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 등을 얼마나 짜임새 있게 꾸며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이야기 형식으로 바꿔 놓는다. 소설 속 이야기는 개인의 삶과 사회적 가치 사이의 조화로운 통합을 지향한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자기 운명의 궁극적인 지점까지 살아가야 하는 인물을 창조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현실 속에서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지향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의 인물이 평범한 개인이면서도 문제적 성격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설 같은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것을 뜻한다. 소설이라는 말을 함부로 폄하하지 말라. 소설은 거짓말이 아니다. (<동아일보>, 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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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 CNN이 한국에서 한창 유행하는 ‘먹방(mukbang)’이라는 방송 형태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내보냈다. ‘먹방’은 음식을 먹으면서 방송을 하거나 먹는 모습을 그대로 방송하는 것을 말한다. 2010년을 전후하여 한국에서 시작된 이 특이한 방송 형태가 세계 각국으로 널리 퍼져 유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는 것이 흥미의 초점이었는데, 지금은 일종의 사회적 소통 방식이 되어 세계인의 폭넓은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 CNN의 진단이다.

‘먹방’이라는 말은 ‘먹는 방송’을 줄여 만든 신조어(新造語)다. 한국에서 ‘먹방’이라는 형태가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은 ‘아프리카TV’를 비롯한 몇몇 인터넷 방송에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방송 출연자가 직접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대로 방송으로 내보내게 된 것이 그 시초다. 음식을 먹으면서 시청자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방송계에 널리 확산되었다. 지금은 인터넷 방송만이 아니라 여러 방송사의 중요 TV 프로그램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먹방 스타’가 등장할 정도로 이 방송 프로그램의 대중적 인기와 그 위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먹방’에 대한 외국 언론의 관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이코노미스트’라든지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2014년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먹방’의 실태를 취재한 적이 있다. 이들 언론은 한국에서 ‘먹는 방송’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경기 침체에 따른 한국 사회의 불안 심리와 젊은 세대의 욕구 불만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CNN의 보도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CNN은 한국에서 왜 ‘먹방’이 유행하는가를 취재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먹방’의 형태가 왜 전 세계로 확산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자기가 혼자 음식을 먹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CNN은 ‘먹방’의 형태를 일종의 새로운 ‘사회적 식사법(social eating)’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먹방’이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특이한 소통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유대 관계도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보도에서 흥미로운 것은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각종 미디어의 동영상을 모두 ‘먹방’이라는 한국말로 직접 지시하면서 범주화하고 있는 점이다. 이제 갓 만들어진 ‘먹방’이라는 한국말을 세계인의 일상적인 삶의 트렌드를 설명하는 최신 유행어로 격상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먹방’은 그것을 즐기는 대중과 영상물의 내용 사이의 거리를 없애면서 더욱 가깝게 개인적 체험의 영역으로 파고든다. 어떤 영상물에서는 한 여성이 푸짐하게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고 혼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영상물은 두 사람이 함께 마주 보고 앉아 준비한 음식을 나누면서 하루 일과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사적(私的)인 순간을 놓고 일반 대중은 구경꾼이 되어 그 장면을 보고 즐긴다. 바쁜 일상에 쫓겨 누군가와 함께 식당을 찾아 즐겁게 식사하기가 어려워진 현대인이 이런 유형의 영상물을 서로 공유하면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누려온 것이 음식에 관한 다양한 문화와 풍습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것이 먹거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음식에 대한 관심이 일차적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먹방’의 시대는 다양한 먹거리와 식습관 등으로 관심이 확대되면서 당분간 지속될 걸로 보인다. 특정 음식에 대한 편견도 모두 없애고 서로 다른 음식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혀줄 수 있을 것이다. 기왕이면 ‘먹방’이라는 한국말이 맛있는 우리네 먹거리를 세계인들에게 흥미롭게 보여줄 수 있는 ‘먹방’과 함께 널리 전파되기를 기대한다. (<동아일보>, 201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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