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콘#1 왜 다시 이상인가? > 사진으로 보는 문학콘서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대공연 : 가을방학  (0) 2012.05.03
사회자; 평론가  (0) 2012.05.03
초대작가 : 김연수  (0) 2012.05.03
권영민 교수  (0) 2012.05.03
문학콘서트 전경  (0) 2012.05.03
문학의 집 전경  (0) 2012.05.03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회자 : 나민애

 평론가 : 함돈균, 안서현

 

'문콘#1 왜 다시 이상인가? > 사진으로 보는 문학콘서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대공연 : 가을방학  (0) 2012.05.03
사회자; 평론가  (0) 2012.05.03
초대작가 : 김연수  (0) 2012.05.03
권영민 교수  (0) 2012.05.03
문학콘서트 전경  (0) 2012.05.03
문학의 집 전경  (0) 2012.05.03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문콘#1 왜 다시 이상인가? > 사진으로 보는 문학콘서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대공연 : 가을방학  (0) 2012.05.03
사회자; 평론가  (0) 2012.05.03
초대작가 : 김연수  (0) 2012.05.03
권영민 교수  (0) 2012.05.03
문학콘서트 전경  (0) 2012.05.03
문학의 집 전경  (0) 2012.05.03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문콘#1 왜 다시 이상인가? > 사진으로 보는 문학콘서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대공연 : 가을방학  (0) 2012.05.03
사회자; 평론가  (0) 2012.05.03
초대작가 : 김연수  (0) 2012.05.03
권영민 교수  (0) 2012.05.03
문학콘서트 전경  (0) 2012.05.03
문학의 집 전경  (0) 2012.05.03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문콘#1 왜 다시 이상인가? > 사진으로 보는 문학콘서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대공연 : 가을방학  (0) 2012.05.03
사회자; 평론가  (0) 2012.05.03
초대작가 : 김연수  (0) 2012.05.03
권영민 교수  (0) 2012.05.03
문학콘서트 전경  (0) 2012.05.03
문학의 집 전경  (0) 2012.05.03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문콘#1 왜 다시 이상인가? > 사진으로 보는 문학콘서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대공연 : 가을방학  (0) 2012.05.03
사회자; 평론가  (0) 2012.05.03
초대작가 : 김연수  (0) 2012.05.03
권영민 교수  (0) 2012.05.03
문학콘서트 전경  (0) 2012.05.03
문학의 집 전경  (0) 2012.05.03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교과서에 실린 인물이라면 우리는 흔히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생각해서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먹는다. 더구나 이상처럼 ‘박제가 된 천재’의 이미지로 남은 작가라면 더구나 그렇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상의 후배도, 또 이상의 아내도 이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상이란 사람도 내가 겪는 것과 비슷한 절망과 희망을 느꼈던,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컨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시인인 서정주만 해도 젊은 시절에 이상을 실제로 만나본 일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시오?>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 누구보다도 4,5년은 나이 손위인 이상을 앞에 두고 그 성명 밑에 선생을 붙이지 않고 이상 씨라고 부른 것은 이편은 자존심이지만, 저편은 그걸 어찌 여길까. 에라, 만일 그걸 가지고 그가 꽁한다면 별사람도 아니니 더 찾지 않으면 될 것이다. 나는 그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상은 역시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그 별사람일 수 있어서 영 거기 꽁하는 눈치는 조금도 없었다.”

서울 을지로 4가 쪽으로 가는 구석진 뒷골목에 살던 이상을 만나러 갔을 때의 일을 두고 쓴 글이다. 해가 중천에 떠 있도록 잠을 자느라 부스스해진 머리로 후배들을 맞은 이상 앞에서 ‘선생’이라고 불러야만 하나, 부르지 말아야만 하나,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며 이상 씨라고 부른 일을 두고 쓴 글이다. 그 날 서정주와 함께 이상을 찾아갔던 시인 오장환이 내놓은 습작시를 보고 이상이 괜찮다고 말한 걸 두고 역시 같이 찾아간 함형수가 “야, 이 자식아. 자기 시를 남한테 내놓는 것도 작작해야지 그게 뭐야? 이상이가 좋다고 맞장단 친 게 본심인 줄 알아? 그건 동이라는 거야. 자식이 너는 왜 눈치도 그리도 없니?”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어쩐지 그런 일이 내 어린 시절에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알쏭달쏭하다. 이런 일화들을 보면 이상이나 서정주나, 또 혹은 북으로 넘어간 오장환이나 나와 비슷한 사람 같아서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이상을 천재로 만든 사람들은 그보다는 어린 세대들로 해방 뒤에야 대학생이 된 이어령과 임종국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식민지 시대의 훌륭한 선배 문인들은 한국전쟁 탓에 모두 월북하거나 납북됐고, 남쪽에 남은 문인들 역시 낭만적인 문인이라고는 일컫기 힘들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상대적으로 정치에 오염이 덜 된 근대문인을 찾다가 보니 요절한 이상이 ‘박제가 된 천재’로 재발견된 측면이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이상 신화가 자리 잡으면서 이상은 우리의 현실에서 멀어져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작가가 돼 버렸다. 말하자면 도쿄에서 폐결핵으로 죽어가면서도 레몬 향기를 맡고 싶었던 천재쯤으로 요약되는 셈이다. 거기에다가 <오감도> 연작 같은 난해시나 총독부 기수 경력, 금홍이 등을 비롯한 작부와의 동거 생활 등이 천재의 중요한 증거물로 제시됐다.

하지만 한 인간의 삶이 한 가지 증거물로만 채워진다면 그것만큼 재미없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침에 눈을 뜨면 나의 심사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데, 만약 이상이 서정주도 만나본 일이 있는 실존인물이라면 그도 나의 심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상과 동시대 인물로서 이상이 죽을 당시에 도쿄에 함께 있으며 이런 저런 잡일을 도맡은 바 있었던 김소운 같은 경우에는 이미 1937년 이상이 죽을 당시, 경성 부민관(지금의 서울시의회 자리에 있던 건물)에서 열린 이상 추도식을 보자마자 실제의 이상은 사라지고 이제 전설의 이상만 남게 됐다고 씁쓸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가 들려주는 이상에 대한 기억들, 예컨대 카페를 사고 팔면서 큰 돈을 챙겼더라 등의 회고는 그런 씁쓸함의 결과물이자, 이상을 천재로 만드려는 시도에 대한 동시대인의 저항이라고도 볼 수 있으리라.

이상을 천재로 보지 않고 실제 생활인으로 본다고 해서 이상의 작품이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제 생활인으로 이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상에 대한 좀더 명확한 시선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이상은 <육친(肉親)의 장(章)>이라는 글을 세 번 썼다. 그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육친의 장’은 이상이 죽고 난 뒤인 1939년 2월호 <<조광>>이라는 잡지에 실렸다. 그 글을 보면 아버지는 ‘크리스트에 혹사(酷似, 엄청나게 비슷한)한 남루한 사나이로’로, 어머니는 ‘근육과 골편과 약소(若少)한 입방(立方)의 혈청과의 원가상환을 청구하는 여인’으로 묘사했다. “날 왜 태어나게 했느냐?”는 절규가 가득하니 가히 절망에 빠진 천재의 목소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시에서 이상은 아버지를 암살하고 어머니로부터는 도망가겠다고 아우성친다. 이런 시들을 보면 이상은 ‘박제된 천재’가 분명하다.

<육친(肉親)의 장(章)>에 실린 이런 섬뜩한 내용은 1936년 10월 <<조선일보>>에 발표한 시 <문벌>, <육친> 등에서 다시 발견된다. 살아 생전 이상은 방대한 분량의 시작 노트를 만들어놓고 발표할 때마다 그 노트를 참조했었다. 그렇다면 이상이 죽은 뒤, 발표된 <육친의 장>은 거친 의미의 습작품이랄 수 있고, 이 습작품이 다듬어져서 <문벌>과 <육친>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1936년 10월 무렵, <육친의 장>을 고쳐서 <문벌>과 <육친>을 작성하는 이상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 당시 이상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저주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시에는 ‘내게 그만한 금전이 있을까. 나는 소설을 써야 서푼도 안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상이 소설을 써서 원고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지주회시>를 발표한 1936년 6월 이후의 일들이니까, 우리는 이상이 <육친의 장>을 <문벌>과 <육친>으로 고쳐 쓴 시기가 1936년 6월부터 1936년 10월 사이의 어느 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1936년 6월 이후에 이상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과연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저주하고 가족을 원수처럼 여기고 있었을까? 1936년 6월, 이상은 신흥사에서 변동림과 결혼했고, 그의 남동생 김운경은 직장에 취직했다. 8월 2일, 여동생 김옥희는 K라는 남자와 만주로 떠나버리고 옥희 걱정에 안절부절하던 이상은 도쿄서 온 친구들과 해질 무렵부터 술집으로 가 그 전 날 개막된 베를린올림픽 보도를 들으며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자신을 무척 따르던 여동생이었던지라 큰오빠로서 이상은 그래도 자신에게만은 말하고 갔으면 좋지 않았겠느냐며 아쉬워했다. 그 해 9월 30일은 추석이었는데, 그 날 이상은 미아리행 버스를 타고 큰아버지의 무덤에 성묘 갔다. 어린 시절에 큰집에 양자를 갔던 이상이었던지라 큰아버지는 그에게 아버지와 같았다. 이 때의 일들은 <추등잡필(秋燈雜筆)>, <동생 옥희 보아라> 등의 글에 남아 있다. 이들 글에는 ‘우리 삼남매는 모조리 어버이 공경할 줄 모르는 불효자식들이다’, ‘근래 이 삼촌이 지금껏 살아 계셨던들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적이 많아서 중년에 억울히 가신 삼촌을 한번 추억해 보고도 싶고 한 마음에서 나는 미아리행 버스를 타고 나갔던 것이다’등의 구절이 나온다.

그런데 어째 좀 이상하지 않은가? 수필에 쓴 글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 차 있는데, 같은 시기에 신문에 발표하려고 시작노트에서 옮겨 쓴 시들에서는 가족을 저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1936년 6월에서 10월 사이 이상은 아버지, 어머니, 백부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쓰는 동시에 그들을 공경하고 추억해야 한다는 글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은 역시 의식이 둘로 분열된 천재였던 것일까? 이상을 천재로 만들려는 사람들에게는 가족을 사랑하는 이상은 불필요했기 때문에 역시 지금까지는 가족을 저주하는 이상 쪽에게 손을 들어주는 경향이 많았다. 그래서 이상 연구자들은 시에 등장하는 모조기독을 아버지로, 추악하고 심술궂은 여인을 어머니로, 묘혈에 계신 백골을 백부로 추정해왔다. 하지만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밝혀졌다. 또다른 ‘육친의 장’이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1956년 <<이상전집>>을 펴내려고 자료를 모으던 임종국은 이상의 어머니가 보관하던 사진첩을 넘기다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뭔가가 밀봉된 흔적이었다. “이게 뭔지 뜯어봤습니까?”라고 임종국이 묻자, 어머니와 동생 옥희는 그런 게 있었는가는 표정으로 사진첩을 들여다봤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뭔가 다른 게 보였다. 임종국은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밀봉된 페이지를 뜯어냈다. 그 안에는 <척각(隻脚)>을 비롯한 9편의 미발표 일문 시가 들어 있었다. 개작한 뒤, 1937년 2월 15일 모종의 목적 때문에 한꺼번에 정서한 시들로 그 중 한 편이 바로 <육친의 장>이었다.

나는24세. 어머니는바로이낫새에나를낳은것이다. 성세바스티앙과같이아름다운동생․로오자룩셈부르크의목상을닮은막내누이․어머니는우리들삼인에게잉태분만의고락을말해주었다. 나는삼인을대표하여―드디어―

어머니우린좀더형제가있었음싶었답니다

―드디어어머니는동생버금으로잉태하자육개월로서유산한전말을고했다.

그녀석은사내댔는데올해는19(어머니의한숨)

삼인은서로들알지못하는형제의환영을그려보았다. 이만큼이나컸지―하고형용하는어머니의팔목과주먹은수척하여있다. 두번씩이나객혈을한내가냉청(冷淸)을극(極)하고있는가족을위하여빨리아내를맞아야겠다고초조하는마음이었다. 나는24세. 나도어머니가나를낳으시드키무엇인가를낳아야겠다고생각하는것이었다.

이 시를 읽으면 맏이였던 이상이 어느날 동생들을 대표해 “어머니, 우린 좀더 형제가 있었으면 싶었답니다”라고 말하는 광경이 떠오른다. 그 말에 어머니는 사내아이를 가졌다가 유산한 일을 들려준다. 세 남매는 살아 있었다면 열아홉 살이었을 그 남동생을 생각하며 아련한 기분에 젖는다. 그리고 이상은 이렇게 생각한다. 폐병에 걸려 두 번이나 피를 토해낸 내가 이 쓸쓸한 가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루 빨리 아내를 맞이하는 일이라고. 자신도 결혼해 가족들에게 아기를 낳아야겠다고. 이건 아름다운 가족이야기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리라.

 

문학이란 글을 쓴 사람에게 감정이입해야만 한다. 그가 우리가 무관한 천재라면 우리가 어찌 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가 기인이라면 우리가 어찌 아버지를 모조기독이라는 부르는 그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문학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결국 인간을 이해하게 된다. 교과서를 들여다볼 때도 우리는 인간을 들여다봐야지 못 보던 것을 보던게 된다. 이상을 천재라고 말하면 간단한 일이고, 그의 시를 난해시라고 일컬으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겠지만, 인간을 이해할 방법은 없다. 우리가 이상을 천재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내야만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화창한 봄날 아름다운 남산 기슭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권영민입니다. 여러분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아시는 분 한번 손을 들어주세요. 무슨 날인가요? 잘 알고 계셨군요. 오늘은 이상이 일본에서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1937년 4월 17일이었습니다. 오늘 <<이상과 다시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문학콘서트, 이 새로운 만남의 자리에서 모두 함께 이상의 삶과 문학에 관한 관심을 서로 나누고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길 기대합니다.

제가 지난 2월 말에 32년간 봉직했던 서울대학교를 퇴직하고 <권영민의 문학콘서트>를 열겠다고 말했더니 저를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 성원을 보내주셨어요. 첫 번째 콘서트의 주제를 <이상과 다시 만나다>로 정했다고 하자, 이런저런 격려와 충고의 메일도 보내주셨지요.

먼저 이상이라는 인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지요. 여러분도 다 아시겠지만,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입니다.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보성고보를 거쳐 1926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했고, 1929년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특채되었습니다. 그는 화가를 꿈꾸던 청년이었습니다. 일본인 건축기술자들이 결성한 조선건축회의 정회원이 되었는데, 1929년 조선건축회지《조선과건축》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었던 일도 있고,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유화 <자상>이 입선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1930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장편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고, 1931년 7월《조선과건축》에 일본어 시〈이상한 가역반응〉등을 발표하면서 문학적 글쓰기에도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폐결핵으로 총독부 가사를 사직한 후 요양지에서 기생 금홍이를 만나면서 그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이상은 금홍이를 서울로 데려와 동거생활을 하면서 1933년 여름에 다방 <제비>를 개업했지요.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7월부터 8월까지 시〈오감도〉을 연재하다가 독자들의 비난으로 중단했어요. 김기림, 이태준, 정지용 등이 중심이었던 ‘구인회’에 가담하였고 1936년 창문사에서 구인회 동인지《시와소설》을 편집하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화제작인 소설〈날개〉등을 발표했습니다. 1936년 늦가을 새로운 예술을 꿈꾸면서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지만, 1937년 일본 경찰에 의해 거동수상자로 검거되어 구금당했다가 병세 악화로 풀려나 동경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했으나 4월 17일 사망했습니다. 그날이 75년 전 바로 오늘입니다.

이상의 짧은 생애는 삶의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는 극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그의 개인적인 행적과 문단 활동, 특히 그의 문단 진출 과정, 특이한 행적과 여성 편력, 결핵과 동경에서의 죽음 등은 모두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서술되기보다는 풍문처럼 떠도는 이야기 속에서 과장되거나 왜곡되었습니다. 더구나 이상의 문학 텍스트 자체도 이러한 삶의 특징과 결부되어 잘못 해석된 경우가 허다하지요. 기왕의 연구자들이 그런 식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자명해졌을 문학 텍스트마저도 엉뚱한 설명이 더해지고 해석이 과장되면서 더욱 애매모호한 상태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알고 계신 대로 이상의 문학에 대해서는 그가 남겨놓은 문학 작품의 양보다 훨씬 많은 여러 가지 주석이 붙어 있습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도 그가 살았던 짧은 삶보다 훨씬 이채로운 해설이 따라 붙습니다. 그는 희대의 천재가 되기도 하고, 전위적인 실험주의자가 되기도 했어요. 그가 철저하게 19세기를 거부한 반전통주의자였다고 지목하는 사람도 있고, 그의 문학이 1920년대 이후 일본에서 일어났던 신감각파 시운동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평가 절하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상이 만들어낸 시와 소설을 보고 당대의 지식층 독자들이 보여주었던 경악의 표정과 거기서 비롯된 파문은 적지 않았지요. 그러나 당시 사회 현실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답니다. 이상이라는 한 개인이 보여준 문단의 기행(奇行)이나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상 문학은 그 실험성과 전위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실천적 기능을 당대의 현실 속에서 발휘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그가 죽은 뒤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비평적 담론을 가능하게 하고 그 해석을 둘러싼 논쟁을 가열시켰습니다.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이 공상의 명제는 모든 인간에게 하나의 꿈이었지만, 이 꿈은 비행기라는 발명품의 힘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시인 이상의 경우도 이같은 꿈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꿈은 하늘을 날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는 하늘에 높이 떠 있는 까마귀처럼 지상의 인간을 내려다 볼 수 있기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높이 공중의 비행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땅을 내려다볼 수 있는 시선과 각도를 꿈꾸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상의 시 <오감도>는 바로 이 꿈의 시적 형상에 해당합니다. 이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대표적인 난해시로 손꼽히고 있지만, 인간의 삶의 세계와 사물을 보는 시각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인간은 땅위에 발을 디디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높이에 맞게 들어오는 사물을 쉽게 감지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만을 사물의 실재적 양상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늘을 나는 새의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 본 풍경을 가상해 본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발상법이지요. 이것은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예비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상의 시 <오감도>는 시적 진술의 주체가 가마귀가 되는 것을 전제합니다. 하늘에 높이 떠 있는 가마귀의 불안한 시선과 각도로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이지요. 이 새로운 시각은 모든 사물이 하늘 높이 날고 있는 가마귀의 눈(또는 시선)에 집중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가마귀의 위치에서 가질 수 있는 시선의 높이와 그 각도로 인하여 지상의 모든 사물의 새로운 형태와 그 지형도가 드러나지요. 그리고 그 위치와 거리가 새롭게 감지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선과 각도를 가진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지를 전체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시선과 각도를 가진다는 것을 말하지요. 그리고 이것은 사물의 세계를 그보다 높은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됨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둘러싼 문화적 조건과 그 변화에 일찍 눈을 떴던 인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을 두면서 근대 회화의 기본적 원리를 터득하였고,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재학하는 동안 근대적 기술 문명을 주도해온 물리학과 기하학 등에 관한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되었지요. 그리고 새로운 예술 형태로 주목되기 시작한 영화에 유별난 취미를 키웠습니다. 문명과 예술의 모든 영역에 대한 이상의 폭넓은 관심과 지식은 그가 남긴 문학의 구석구석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상이 시와 소설의 창작 활동을 전개하면서 가장 주목했던 것은 모든 사물의 존재를 규정하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물을 새롭게 보는 각도의 문제에 대해 집요한 관심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이 시간의 문제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인식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기 전에는 시간의 불가역성(不可逆性) 또는 비가역성을 의심하는 경우가 없었지요.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절대적인 주체와 그 존재의 기반이 되는 시간의 의미를 상대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에 회의를 야기하였습니다. 이상은 시간에 대한 아인슈타인적 해석에 근거한 일종의 존재론적 회의를 그의 시를 통해 형상화하였던 것입니다.

이상의 문학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발견입니다. 그는 사물을 본다는 것이 단순히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의 외적 형상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어요. 그것은 사물을 관찰하는 과정과 함께 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관찰자로서의 주체까지도 포함하는 여러 개의 장(場)을 함께 파악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상은 사물에 대한 물질적 감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사물의 전체적인 형태와 중량감, 그 윤곽과 색채, 그리고 그 내적 속성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특이한 시선과 각도를 찾아내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상의 학업의 과정 자체와 연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가 공업학교의 건축과에서 수학하면서 익힌 모든 지식은 20세기 기술 문명시대를 결정한 여러 가지 기초적인 과학이론이었으니까요. 이상은 그의 문학에서 물리학, 광학, 구조 역학, 기하학 등 기계문명시대를 이끌어온 새로운 과학 이론을 특징적인 이미지들로 바꾸어 작품의 주제와 연결시키고 이를 새롭게 형상화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기술 문명의 세계를 놓고, 그것의 정체를 포착하면서 동시에 거기 대응하는 주체의 변화까지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그림을 상상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상 그려낸 새로운 문학 세계입니다. 이상의 문학은 그러므로 1920년대까지 한국에서 유행하던 서정시의 시적 진술법이라든지 소설의 사실적 서사 기법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시는 낭만주의 시처럼 읊조릴 수가 없고, 그의 소설은 리얼리즘적 관점을 통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모호하고 그 의미가 애매합니다. 그는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부르주아 계급의 삶을 전체적으로 묘사하고 그 전망을 노래했던 기존의 문학적 방식과는 달리, 사물에 대한 보다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접근법을 채택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주체의 시각을 새롭게 변형시키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이상은 모든 근대적인 것에 대해 회의하고 그 가치를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자아의 절대성과 이성에 대한 신뢰를 중시하는 근대적인 가치 체계를 놓고 볼 때, 주체의 의미까지도 부정하는 이상 문학은 한국문학에서 커다란 충격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충격은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양식에 대한 반동을 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상은 그의 문학을 통해 사물의 존재와 그 절대성을 강조하면서도 부분이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의 기법과 양식을 찾고자 하였고, 전체보다는 단절되어 있는 부분과 부서진 조각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구속이 없는 자유는 질서에 대한 충동의 우위를 내세웠으며, 그의 초현실적 감각은 인간의 상상력을 해방시켰습니다. 아마도 이런 요소들이 오늘날까지도 이상 문학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요인일 것입니다. 이상은 외관의 무의미성을 강조하면서 상상력의 하부 구조를 열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단 한 사람의 예술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문학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어떤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하고자 욕심부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근대사회에서의 인간 존재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그 가치를 놓고 심각하게 질문하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에 숨겨져 있던 현상과 본질의 대립, 부분과 전체의 부조화를 문제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상 문학의 전위성을 적극 긍정합니다. 이상 문학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한다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새로운 시각’을 통해 이상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학이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문학이 오늘의 현실에서 여전히 문제적이라면 그것은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만 숨겨진 구석도 보게 됩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뒷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뒤집어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면의 새로움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아, 저기 이상 선생도 오셨군요. 꽃구경 삼아서요? 좋습니다. 한 말씀하시지요. 아, 제발 그만 두라고 손사래를 치시네요. 저보고 대신 그냥 말씀하라는군요. 이렇게 말입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라!

모든 사물은 다른 각도에서 볼 때만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이상 문학이 오늘의 현실에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이 문학콘서트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라!

고맙습니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바비(기타.코러스), 계피(보컬)

언니네 이발관의 초대 기타리스트이자 현 줄리아 하트, 바비빌의 리드 보컬인 정바비와,

브로콜리너마저의 메인 보컬리스트였던 계피가 만든 어쿠스틱 팝튜오.

www.autumnvacation.net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