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시집 [초토(焦土)의 시]

 

 

 

[초토(焦土)의 시]는 시인 구상(具常, 1919-2004)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은 195612월 대구 청구출판사에서 발간했다. 시집 형태는 B6, 48면으로 이루어진 작은 책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15편인데, 책의 제목과 동일한 하나의 연작시초토의 시로 이어져 있다.

이 시집의 표지화는 구상의 친구였던 화가 이중섭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중섭은 한국전쟁 당시 원산에서 부산으로 가족을 이끌고 피난했고 부산, 제주도, 통영 등지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1955년 자신이 꿈꾸었던 개인전을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 개최했다. 서울 전시가 끝난 후 그는 구상의 권유에 따라 대구에서 다시 개인전을 열었다. 이중섭의 대구 개인전이 열렸을 때 구상은 그의 시집 [초토의 시]의 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중섭은 구상을 위해 그 시집의 표지화를 그렸다.

이중섭이 그린 시집 [초토의 시]의 표지화는 물고기와 아이들의 형상이 다양하게 포개져 놓여 있다. 노랑색의 바탕에 선묘의 방식으로 간략하게 터치한 이 그림은 아이들의 표정도 밝고 부드럽다. 그러면서도 생동감이 넘쳐난다. 서로 얽혀 이어진 아이들과 물고기의 모습 속에 약동하는 생명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중섭은 이 표지화를 구상에게 전하고 자기 미술을 위해 더 넓은 무대를 찾아 서울로 올라왔지만 경제적 궁핍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극도의 신경쇠약에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이다가 결국 1956년 가을에 세상을 떠났다.

시집 [초토의 시]는 시인 구상의 오랜 친구이자 천재적 예술가였던 이중섭의 죽음 앞에 바치는 하나의 헌사였다. 이 시집은 이중섭의 그림으로 그 표지가 꾸며졌지만 이중섭은 이 시집의 발간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구상은 시집의 후기를 통해 당시의 심회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동안 이 강토가 초토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내 심정은 보다 더 황폐해졌습니다. 더욱이나 칠죄(七罪)의 심연 속을 꼴닥꼴닥 헤매온 나의 영혼은 그야말로 문둥입니다. 진정 서럽고 부끄럽고 아파서 차라리 미쳐나 버렸으면 하는 맘 무시로 납니다. 그래서 이미 미친 것처럼 벌득벌득 자꼬만 웃어도 봅니다. 천진하고 무구한 향우(鄕友) 중섭은 이런 때에 나 보라는 듯이 가버리는군요.

이런 나를 지원하고 그 울혈(鬱血)을 토하기엔 별무신통 시밖에 없구요. 시 세계는 사연이 필요 없고 게다가 낭만적이어서 거뜬하단 말입니다. 그러나 말이 모자라요. (중략) 도야지 꼬리만한 시 몇 편 내놓으면서 변백(辨白)과 넋두리가 길어졌나 봅니다. 그저 형()을 불러 횡수설로 통정하며...

                                                                             -구상, [초토의 시]의 후기.

 

구상이 이중섭을 그의 시적 오브제로 끌어들인 것은 시집 [초토의 시]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중섭의 죽음 앞에 바쳐진 이 시집의 작품들은 그 연작의 형식을 통해 이중섭의 삶과 그 예술혼의 빛나는 성채에 다가서고 있다. [초토의 시]는 시인 자신이 직접 체험한 한국전쟁을 정서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16편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들은 전쟁이 몰고 온 비극적 참상을 초토(焦土)로 상징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이 불타버린 소멸의 공간을 통해 비인간적인 전쟁과 그 파괴의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당시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후시의 상당 부분이 깊이 빠져들었던 절망의 언어 대신에 허무주의적 감상을 벗어나 본질적으로 인간 구원의 가능성을 천착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 연작시가 황폐한 시적 주체와 대상으로서의 현실세계를 상상력을 통해 통합하면서 보다 높은 시적 인식의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1)

      판자집 유리 딱지에

아이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춘다.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달리는

소녀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초토의 시 1

 

(2)

내 가슴 동토 위에

시베리아 찬바람이 살을 에인다.

 

말라빠져 엉켜 뒹구는 잡초의 밭

쓰레기 구덩이엔

입 벌린 깡통, 밑 나간 레이션 박스,

찢어진 성조지(星條紙), 목 떨어진 유리병,

또 한구석엔 총 맞은 삽살개 시체,

전차의 이빨 자국이 난 밭고랑엔

말라 뻐드러진 고양이의 잔해,

 

저기 비빌 온상 같은 천막 앞

피묻은 바지가랑이가 걸린

철망 안을 오가며

양기 병정이 휙휙 휘파람을 불면

김치움 같은 땅속에서

노랗고 빨갛고 파란

원색의 스카프를 걸친 계집애들이

청개구리들처럼 고개를 내민다.

 

하늘이 갑자기

입에 시커먼 거품을 물고

갈가마귀 떼들이 후다닥 날아

찌푸린 산을 넘는데

 

나의 잔등의 미칠 듯한 이 개선(疥癬)!

나의 가슴을 치밀어 오르는 이 구토(嘔吐)!

어느 누구를 향한 것이냐?

                                        ―초토의 시 3

 

앞에 인용한 초토의 시 1은 시적 화자인 의 뒤를 따르는 그림자를 시적 전경(前景)에 배치한다. 그리고 그 뒤에 몇 개의 장면들이 겹쳐진다. 이 한 폭의 그림은 시의 형식을 통해 펼쳐낸 대구 시절 시인 구상의 내면 풍경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기 시적 화자인 를 따르는 그림자가 등장한다. 이 그림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살아있는 모습의 구체적 형상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의 뒤를 따르다가 웃으며 앞장을 선 그림자는 시인 자신의 페르소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구상의 곁을 늘 따르던 친구 이중섭의 환영(幻影)으로 읽힌다. 이것은 판자집 유리 딱지에 / 아이들 얼굴이 /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라고 하는 제1연의 내용을 통해서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전란의 초토 위에서 궁핍한 삶에 쪼들리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키워낸 화가 이중섭의 두 아들 모습이 거기에 어려 있기 때문이다. 청정무구의 시심으로 자신의 그림에 열중하다 처절하게 죽어간 화가 이중섭의 예술혼을 구상이 자신의 연작시의 맨 앞 장면에 내세우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삶의 고통 속에서도 예술의 궁극적인 가치에 매달렸던 이중섭은 형체 없는 그림자로 이 시 속에 등장하고 있지만, 시인은 판자집 유리딱지에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던 아이들을 통해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연작의 형식으로 이어진 초토의 시는 앞에 인용한 (2)의 경우처럼 전란이 휩쓸고 지나간 후의 삶의 현실 자체를 사실적으로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양키 병정들에 빌붙어 살아야 하는 계집아이들이 폐허가 되어버린 삶의 터전 위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는 이 비리의 현실에 구역질을 느끼면서도 그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거리에 넘쳐나는 양갈보’, 시인과 창녀가 함께 나뒹구는 골목, 이지러진 막노동꾼의 한숨, 암흑 같은 삶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초토의 시 9와 같은 작품에서는 저기 다가오는 불장마 속에서 /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 그러나 저기 꽃잎모양 스러져 가는 / 어린 양들과 한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라고 간절하게 기구하기도 한다. 연작의 형식이 지니는 시적 긴장과 이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초토의 시전란이 남겨둔 상처를 눈앞에 두고 그 고통을 초극함으로써 구원의 세계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잘 드러낸다. 역사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궁극을 동시에 포괄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욕이 절대적 신앙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것은 시인 구상의 시세계의 견고함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자네가 간 후에도 이승은 험하기만 하이. 나의 마음도 고약만 하여지고 첫째 덧정 없어 이러다간 자네를 쉬이 따를 것도 같네만 극악무도(極惡無道)한 내가 간들 자네와 이승에서듯이 만나 즐길 겐가 하고 곰곰중일세.

 

깜짝 추위에 요새 며칠 감기로 누웠는데 망우리(忘憂里) 무덤 속의 자네 뼈다귀들도 달달거리거지나 않나 애가 달지만 이건 나의 괜스런 걱정이겠지. 어쨌든가 봄이 오면 잔디도 입히고 꽃이라도 가꾸어 줌세.

 

밖에 나가면 만나는 친구들마다 어두운 얼굴들이고 이석(利錫)이만은 당가를 들겠다고 벌쭉이지만 그도 너무나 억차서 그래보는 거겠지. 몸도 몸이려니와 마음이 추워서들 불 대신 술로 난로를 삼자니 거진 매일도릴세.

 

자네는 이제 모든 게 아무렇지도 않아 참 좋겠네. 어디 현몽(顯夢)이라도 하여 저승 소식 알려 줄 수 없나. 자네랑 나랑 친하지 않았나 왜.

                                                                                                ―초토의 시 14

 

앞에 인용한 초토의 시 14를 보면, 시인 구상이 시적 화자가 되어 죽어간 친구 이중섭을 직접 호명하고 있는 장면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편은 연작시의 다른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시적 어조를 활용한다. 시적 화자는 망자가 된 이중섭의 바로 곁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어지러운 삶의 현실 속으로 다시 불러내면서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는 진솔한 대화를 이어간다. ‘자네가 간 후에도 이승은 험하기만 하이.’로 시작되는 이 고백적 어투에는 슬픔과 회한이 짙게 묻어난다. 이중섭을 먼저 떠나보낸 후 시적 화자는 나의 마음도 고약만 하여지고 첫째 덧정 없어 이러다간 자네를 쉬이 따를 것도 같네라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자기 심정의 쓸쓸함을 표한다. 물론 봄이 되면 망우리 공동묘지의 무덤 위에 잔디를 입히고 꽃이라도 가꾸겠노라는 위로의 말도 전하지만 냉혹한 일상의 현실을 견디어 내기가 억차서 마음이 추워서 불 대신 술로 난로를 삼고있다며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한 마디의 대답도 듣지 못한 채 자네는 이제 모든 게 아무렇지도 않아 참 좋겠네.’ 라고 망자를 위로한다.

이중섭의 그림으로 표지가 꾸며진 시집 [초토의 시]는 이중섭이 죽은 뒤에야 발간되었다. 이중섭은 이 시집의 출간을 보지 못하였지만 구상은 이중섭의 죽음 앞에 하나의 비통한 헌사처럼 이 책을 바쳐야만 했다. 이 시집의 후기를 통해 시인 구상은 연작시초토의 시초토가 된 강토황폐한 시인의 심정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빚어낸 울혈에 해당한다고 말하고 있다. 구상은 이 연작시편을 펴내면서 대구에서의 긴 피난생활을 마감한다. 대구의 작은 출판사였던 청구문화사에서 펴낸 시집 [초토의 시]는 시인 구상에게 있어서 비극적인 전쟁체험과 곤궁했던 피난시절의 기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화가 이중섭이 서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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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집 [진달래꽃](1925)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1925년 매문사(賣文社)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김소월이 생전에 간행한 유일한 시집이다. 한국 최초의 창작시집으로는 1923년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출간한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를 손꼽을 수 있다. 1924년에는 주요한의 [아름다운 새벽], 조명희의 [봄 잔디밧 위에], 박종화의 [흑방비곡], 변영로의 [조선의 마음], 노자영의 [처녀의 화환] 등이 나왔다. 김소월의 [진달래꽃]도 그 연대로 따진다면 초창기에 출간된 창작시집에 해당한다.

[진달래꽃]을 출간한 매문사는 김소월의 스승이기도 했던 시인 김억이 운영한 작은 출판사다. 김억은 19259월 자신의 제2시집 [봄의 노래]를 이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매문사의 [진달래꽃]은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 총판본이 널리 알려져 있다. 겉표지에 표제가 진달내꽃이라는 도안글씨로 표시되어 있으며 진달래꽃과 바위산이 채색화로 그려져 있는 양장본이다. 본문은 모두 234면이며 판형은 국판 크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국반판(菊半版)이다. 시집의 서문이나 발문이 없으며, 본문에 총 127편의 시를 16부로 구분하여 실었다. 1님에게<먼 후일> · <풀따기> 10, 2봄밤<봄밤> · <꿈꾼 그 옛날> 4, 3두 사람<두 사람> · <못잊어>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8, 4무주공산(無主空山)’<> · <맘 켱기는 날> 8, 5한때 한해<어버이> · <잊었던 맘> 16, 6반달<가을 아침> · <가을 저녁에> 3, 7귀뚜라미<> · <님과 벗> 19, 8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 <황촉불> 9, 9여름의 달밤<여름의 달밤> · <오는 봄> 3, 10바리운 몸<우리집> · <바리운 몸> 9, 11고독에<비난수하는 마음> · <초혼> 5, 12여수(旅愁)’, <여수> 1 · 2 2, 13진달래꽃<진달래꽃> · <접동새> · <산유화> 15, 14꽃 촉불 켜는 밤<꽃 촉불 켜는 밤>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10, 15금잔디, <금잔디> · <엄마야 누나야> 5, 16부에는 <닭은 꼬꾸요> 1편 등이다.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김소월의 시는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 근대시의 성립과 함께 문제시되었던 새로운 시 형식의 추구를 염두에 둘 경우, 김소월의 시는 분명 시적 형식의 독창성을 확립하고 있다. 그는 서구시의 형식을 번안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한국 근대시의 형식에 새로운 독자적인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시적 형식은 전통적인 민요의 율조와 토속적인 언어 감각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토착어를 민요적 리듬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김소월의 시는, 바로 그러한 언어의 특성에 기초하여 민족의 정서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시집 [진달래꽃]은 중앙서림(中央書林) 총판본이 또 하나 있다. 이 책은 표제가 진달내으로 표시되어 있다. 본문의 면수와 판형, 그리고 본문 조판 방식이나 인쇄 활자 크기가 한성도서주식회사 총판본과 똑같다. 판권지의 출판사항을 살펴보아도 표제와 총판매소만 서로 다를 뿐 모든 사항이 서로 일치한다. 그러나 당시 매문사에서 왜 이렇게 겉표지의 장정을 완전히 다르게 하여 한 권의 시집을 똑같은 시기에 출판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문화재청에서는 2011225일 시집 [진달래꽃]의 한성도서 총판본과 중앙서림 총판본 가운데 보존상태가 양호한 4책을 최초의 근대문화재로 지정 등록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1951년 숭문사에서 발간한 시집 [진달래꽃]이 일모 정한모 문고에 보존되어 있다. 이 책은 해방 이후 나온 김소월의 시집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증보판의 하나이며 기존 시집에 누락되었던 작품들을 대거 발굴 수록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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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한국근대문학연표 2018.10.13 03:26 |

1919

 

[중요 사항]

 

1.18 파리강회회의 열림 ( - 6.28)

2. 1 김동인, 전영택, 주요한, 김억 등 문예동인지 󰡔창조󰡕 창간. (1921.5.20 통권 9호로 종간)

2. 8 동경유학생 6백여명, 동경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조선청년독립단 명의로 독립선언서를 발표. (28독립선언).

2.10 동경유학생 중심의 순예술잡지 󰡔삼광󰡕 창간(1920.4.15. 3호로 종간)

3. 1 재경 민족대표 33(4인 불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

3. 2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 창립대회 열림. (- 3.6)

4.11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국호, 관제 제정, 국무원 선출.

11. 5 예술잡지 󰡔녹성󰡕, 동경에서 창간. 1호로 종간.

 

 

[소설]

 

윤백남 몽금 매일신보 19.1.1

김동인 약한 자의 슬픔 창조 1~2 19.2~3

전영택 혜선의 사 창조 1 19.2

김환 신비의 막 창조 1 19.2

전영택 천치?천재? 창조 2 19.3

부춘산인 설중매 매일신보 19.5.29~8.31

최형렬 불ᄒᆡᆼᄒᆞᆫᄉᆡᆼ명(매신문단삼등) 매일신보 19.7.7

남태희 인정(매신문단가작) 매일신보 19.7.7

장재문 녹음이 무르녹을 ᄯᅢ(매신문단삼등) 매일신보 19.7.14

이익상 낙오자(매신문단가작) 매일신보 19.7.14

조영만 허영(매신문단삼등) 매일신보 19.8.11

난파생 허영 매일신보 19.9.3~11.18

백설원 박명 매일신보 19.11.19~20.1.25

전영택 운명 창조 3 19.12

김동인 마음이 여튼 자여 창조 3~6 19.12~20.5

 

[소설집]

 

김교제 쌍봉쟁화 보문관 19.1.17

김이태 강상루 대창서원 19.1.25

미상 미인계 덕흥서림 19.11.18

최찬식 능라도 유일서관 19

 

[희곡]

 

유지영 이상적 결혼 삼광 1-2 19.2,12.

극웅 황혼 창조 1 19.2

추광생 월광의 곡 삼광 2 19.12

 

[평론]

 

김동인 소설에 대한 조선 사람의 사상을 학지광 17-18 19.1-8

안서생 시형의 음률과 호흡 조선문예 3 19.2

주요한 일본근대시초 창조 1 19.2

전영택 시인 ᄭᅬ테 창조 2 19.3

최승만 르네쌍스 창조 2 19.3

극웅 식자 계급의 각성을 요함 학지광 18 19.8

최승만 인격형성의 삼 요소 학지광 18 19.8

일성 겉 개화? 속 개화? 학지광 18 19.8

상아탑 조선시단의 발족점과 자유시 매일신보 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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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화사집(花蛇集)

 

 

화사집(花蛇集)은 시인 서정주의 첫 시집이다. 1941년 남만서고(南蠻書庫)에서 간행되었다. 이 시집을 간행한 남만서고는 시인 오장환(吳章煥)이 운영하던 작은 출판사다. 오장환은 시 동인지 <시인부락>에서 서정주와 함께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자기 출판사에서 서정주의 첫 시집을 간행하면서 이른바 특제본(特製本)과 병제본(竝製本)이라는 이름으로 장정을 달리한 두 가지 형태의 시집을 내놓았다. 이 시집의 내제지(內題紙)를 펼쳐 보면, ‘100부 한정 발행, 1~15번은 저자 기증본, 16~50번은 특제본, 51~90번은 병제본, 91~100번은 인행자(발행인) 기증본이라고 구분하여 두고 해당 책이 그 중 번이라는 표시도 했다. 시집의 판형은 특제본의 경우 변형 A5, 전체 76면이다.

화사집의 특제본은 전통적인 황갈색 능화문(菱花紋)의 표지로 장정한 양장본인데, 비매품인 저자 기증본의 경우 책의 표지에 시인 정지용이 추사의 필체를 본떠 궁발거사(窮髮居士) 화사집(花蛇集)’이라고 직접 써넣었다. 판매용 특제본은 조선시대 전통 서적의 형태를 본떠 흰색 한지에 세로쓰기의 붉은 한자 붓글씨로 시집(詩集) 화사(花蛇) 서정주(徐廷柱)’라고 써서 표지 위에 붙였다. 당시 판매 가격은 6원이었다.

병제본은 일종의 보급판인 셈인데 반양장의 회색 표지에 시집(詩集) 화사집(花蛇集) 서정주(徐廷柱) ()’라고 가로쓰기 한자로 인쇄하여 제자(題字)를 표시했다. 본문의 편집 체제나 인쇄 방식은 특제본이나 병제본이나 그대로 일치하지만, 병제본은 인쇄용지와 장정을 달리했기 때문에 판매 가격을 180전으로 매겼다. 최근 비단으로 표지를 싸고 책등에 붉은색 실로 화사집이라는 한자를 수() 놓은 호화장정본이 나와 화제가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치장한 책은 아마도 특제본에 누군가 손을 대어 호사스럽게 표지를 바꾸고 특별히 보관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화사집에는 시인 서정주의 초기 시 24편이 모두 5부로 나뉘어 수록되었으며, 김상원(金相瑗)의 발문이 붙어 있다. 1자화상(自畫像)’에는 같은 제목의 시 1, 2화사에는 화사·문둥이·대낮·입마춤·가시내8, 3노래에는 수대동시(水帶洞詩)··서름의 강()·()·부흥이7, 4지귀도시(地歸島詩)’에는 정오(正午)의 언덕에서·고을나(高乙那)의 딸·웅계(雄鷄) ()·웅계 하4, 5()’에는 바다·()·서풍부(西風賦)·부활4편이 각각 실려 있다. 서정주가 1935년부터 1940년 사이에 동인지 <시인부락>을 비롯하여 여러 잡지와 신문에 발표했던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화사집의 시들은 관능미와 생명력에 대한 강렬한 찬사가 돋보인다. 초기 시의 경향을 잘 드러내어 주는 표제작 화사이라는 자연물과 순네라는 처녀를 대비적으로 등장시킨다. 기독교의 성서에 등장하는 은 인간을 유혹하여 욕망의 구렁으로 빠지게 만든 벌로 땅을 기어 다니면서 살게 되었다는 점에서 관능적인 유혹과 동시에 원죄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을 돌팔매를 하면서 따라가는 것은 뱀에 대한 혐오와 함께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유혹을 동시에 말해준다. 에덴동산의 뱀과 이브를 연상하게 하는 이 시의 장면을 보면 작품 자체가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정주의 초기 시는 본연의 생명과 욕망, 관능의 미를 추구하고 있지만 그 정서의 근저에 서러움을 동반하고 있다. 자화상에서 시적 화자가 애비는 종이었다.’ 라고 언명하고 있는 것은 시인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 숨겨진 본래적인 모습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비롯되는 서러움은 현실적인 삶이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개인의 슬픔이나 분노와는 다르다. 이것은 시인 서정주가 발견한 인간이 본래적으로 갖고 있는 정서의 원형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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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정신적 지주로 영원히 남게 된 최인훈 선생의 소설

 

 

1

 

최인훈 선생께서 세상을 뜨셨다.

한국문단의 큰 어른을 이제는 다시 뵈올 수 없게 되었다.

 

최인훈 선생은 1959년 단편소설 GREY 구락부 전말기(1959)로 등단했다. 이 작품은 스토리의 전개가 모호하고 작품의 전편을 통하여 작가 특유의 관념이 짙게 배어나고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자신의 내부세계에서 사물과 사상을 의식적으로 조작한다. 그들은 행동이 없고 관조만 있는 자기응시의 인간들이다. 철저한 무위를 행동강령으로 삼고 있는 회색의 집단을 통해 작가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우울과 방황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GREY 구락부 전말기는 관념소설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최인훈 문학의 원점에 해당한다. 이 작품에서 부조되고 있는 관념이 역사의식과 현실감각을 확보하면서 광장(1961), 구운몽(1962), 크리스마스 캐럴(1963), 회색인(1964), 총독의 소리(1967),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69) 등으로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인훈 선생의 소설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작가 자신이 그의 소설을 통해 다양한 기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최인훈 선생의 소설은 허구적 자아의 형상과 경험적 자아로서의 작가가 특이하게 대치함으로써 아이러니의 국면을 연출하게 되고, 그러한 상황적 아이러니가 작가의 정치적 입장과 태도를 암시하게 된다. 특히 그의 소설적 공간이 분단 상황이라는 정치적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있는 점은 이러한 특성을 암시해 주는 근거가 된다고 할 것이다. 그는 분단 상황과 거기서 빚어진 정치 현실의 문제성을 특이한 알레고리와 패러디의 방식을 통해 소설적으로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 그의 정치적 상상력은 삶의 현실과 모든 국면이 정치적인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최인훈 선생은 민족 분단이라는 당대 현실의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정치적인 것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분단 상황에서 야기된 이데올로기의 편향성과 반공 반일 노선의 이율배반적 속성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하나의 새로운 알레고리를 창안하고 있다.

 

2

 

최인훈 선생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주목되고 있는 작품이 광장(1961)이다. 이 소설은 한국의 민족분단을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젊은 철학도이다. 그가 해방 공간의 혼란 속에서 감행하게 되는 가치 선택을 위한 지적 모험이 이 소설의 참주제와 연결된다. 주인공은 서울에서 공부하며 이상을 키워나가지만, 아버지가 북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임이 판명되면서 경찰의 혹독한 취조를 받게 된다. 자신의 삶과는 무관하게 관념적 상태에서만 의식하고 있던 남북의 분단과 이념적 갈등이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 대두되어 주인공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게 된다. 그는 남한 사회가 자유당 정권의 부조리와 사회적 부패로 혼란에 빠져 있으며, 개인적으로 누리는 행복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사회 풍조로 인하여 진정한 공동체의 삶을 이룰 수 없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냉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던 참다운 삶의 광장을 찾아 배편으로 북한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주인공은 북한에서도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공식적인 명령과 그에 대한 복종만이 있을 뿐임을 알게 된다. 그가 그리던 진정한 삶의 광장은 북에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작품의 주인공은 남과 북을 놓고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자신이 꿈꾸었던 이념을 선택하고자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인간의 삶의 참다운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러한 허무주의적 사고로 인하여 주인공은 이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남과 북을 모두 버리고 제3국을 선택한다. 물론 이 같은 선택은 자기 주체에 의해 삶의 가치를 확립할 수없는 시대적인 강요로 이루어진 선택이라는 점에서 비극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가 꿈꾸는 진정한 삶의 광장이 소설 속에서 바다갈매기의 심상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시대의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북쪽의 사회구조가 갖고 있는 폐쇄성과 집단의식의 강제성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남쪽의 사회적 불균형과 방일한 개인주의를 비판한다. 제삼자적인 입장에서 볼 때 남과 북 어느 쪽도 진정한 인간의 삶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이에서 비롯된다. 이 소설은 결말에서 주인공의 자살을 암시함으로써 이념선택의 기로에서 개인의 정신적 지향의 한계를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적 구도를 통해 완강하게 고정되고 있는 분단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장편소설광장의 연장선상에서 대비적으로 그려낸 소설적 개성은 회색인(1964)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이 소설은 광장과는 달리 행위와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의 구성보다는 주인공 내적 독백과 관념적 사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작품의 배경은 4·19혁명 직전의 한국사회이며, 자유당 정권의 몰락을 기점으로 새롭게 변화하기 시작하는 한국 정치사의 분기점을 시간의 축으로 삼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북한에 두고 월남한 독고 준이라는 지식인 청년이다. 자기 존재의 의미와 그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독고 준은 남한 사회를 뒤덮고 있는 분단 상황의 고통과 편향된 이데올로기의 틀 안에서 현실의 삶에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 채 방황한다. 회색인의 주인공은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소극적이며 회의적이다. 특히 월남해서 살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이와 같은 인물의 설정은 남과 북의 현실을 모두 거부한 채 제3국으로의 도피를 택했던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의 경우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때때로 떠오르는 북한 땅 고향에서의 유년시절을 뿌리치지 못한다. 월남한 아버지로 인해 어린 나이에도 주변으로부터 감시의 대상이 되었던 그는 자신이 서 있는 남한의 현실 속에서도 언제나 소외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뿌리 뽑힌 존재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서 독고 준이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태도는 자신의 운명적인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사색을 통해 어느 정도 방향성을 드러낸다. 행동과 실천보다 깊은 고뇌와 지적인 사색을 통해 문제의 궁극을 찾아가고자 하는 이런 태도는 작가 최인훈 선생이 창안해낸 하나의 관념적 인간형의 존재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3

 

최인훈 선생이 자신의 소설쓰기에서 관념소설로서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 발전시키면서 새롭게 발견한 형태가 연작소설 총독의 소리(1967)이다. 총독의 소리는 여러 편의 편의 작품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연작의 형식에서 중시하고 있는 연작성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서사의 기본요소가 되는 행위구조가 결여되어 있어서 일관된 흐름이나 발전을 보여주는 잘 짜인 하나의 이야기 형태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가상적인 인물로서 총독의 존재만이 설정되어 있고, 그의 모습은 일련의 연설 형태가 되어 버린 담화의 내용 속에 감춰져 있을 뿐이다. 주동적인 인물이 벌이는 행위가 없으므로 사건도 없고, 사건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뒷받침해 주는 배경도 상정할 수 없다. 오직 담화의 상황 자체만이 작품 내적인 구조를 지탱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상황성의 반복만이 연작으로서의 성격을 규정해 주고 있다.

총독의 소리는 독특한 어조로 이어지는 담화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담화는 화자(話者)와 청자(聽者)가 있고, 담화의 내용을 이루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메시지의 내적 상황과 외부적인 국면을 설정하기 마련이다. 연작소설 총독의 소리에서 각 작품 형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담화의 형식은 그 자체가 다분히 사회적인 성격을 띤다. 누구의 담화이며, 누구를 대상으로 하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독특한 담화 공간을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담화의 형식은 화자와 청자 사이의 일련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그 용법과 의미가 규정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언어형식 자체가 가상된 현실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담화 공간으로서의 상황 설정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화자의 존재는 담화의 목소리 속에 감춰져 있는 총독이다. 한국 내에 비밀조직인 조선총독부 지하부가 있고, 이 비밀단체가 비밀방송을 통해 총독의 담화 내용을 내보내는 것으로 상황이 설정되어 있다. 해방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조선총독부 지하부라는 조직의 존재를 내세운 것 자체가 다분히 풍자적인 것이지만, 총독의 담화내용이 역설적으로 한국의 현실 정치와 연관된 여러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의도적인 고안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활용하고 있는 담호의 방식이 청자의 입장을 거의 무제한적인 불특정 다수의 청중으로 삼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작품의 성패가 바로 그 청중들의 반응에 의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허구적 장치는 작가 자신이 현실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정치적 이념과 태도를 위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사적 고안이다. 우선 작품 내적인 상황 설정에서 중시되는 조선총독부 지하부와 총독의 존재 설정에서부터 그 정치적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일본은 한국 근대사의 왜곡된 전개를 획책한 제국주의의 부정적인 표상이다. 조선총독부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그 책임자인 총독도 마찬가지 존재였음은 물론이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존재를 한일관계가 타결된 1960년대 후반 한국의 정치 현실 속에 가상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허구적인 장치를 통해 현실정치의 모순을 폭로하고 희화화하고 있으며, 현실의 문제성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1960년대 후반의 한국 정치 상황을 뒤집어보고 있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는 귀축 영미(鬼畜英美)’로 대변되고 있는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 ‘러시아로 지칭되고 있는 국제공산주의의 야욕, 그리고 조선총독부의 존재를 다시 재현시킨 일본의 성장 등을 국제적인 역학관계로 설정한다. 이 가운데에서 논의의 중심에는 물론 분단 한국의 현실이 가로놓여 있다.

작품 내적인 구조로 볼 때, 총독의 소리는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 총독의 담화로 꾸며져 있으므로, 표면적인 일본의 입장을 중심으로 그 내용이 채워진다. 물론 이러한 상황 설정 자체가 하나의 역설이지만, 한일회담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의 확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설득력 있는 고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입장이라는 가정된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경쟁관계에 놓여 있는 미국이나 소련에 대한 언급이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결국 작가 최인훈 선생은 이같은 당대의 정치적 현실에 대해 신식민주의의 도래를 우려하고 있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 추진하고 있는 근대화 운동이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적 인식 아래에서, 그는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의 확대를 비판하는 총독의 소리를 다시쓰고 있는 것이다. 총독의 소리는 결국 그 문학적 성과를 작가 자신의 정치적 상상력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텍스트가 지니고 있는 형식적 요건이나 미학적인 요건이 모두 정치적 효과를 위한 고안으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속성은 비역사적 추상화의 방법을 뜻하는 관념이라는 용어만으로는 규정하기 힘들다. 오히려 당대 현실 속에서 이 작품에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의 지향이 갖는 정치적인 효과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지목해야 할 것은 총독의 소리가 빚어내는 새로운 정치 담론의 공간이 1960년대 후반기의 상황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이념의 광장으로 든든하게 자리잡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지니고 있는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태도가 엄숙주의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응할 만한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총독의 소리는 시대상황의 위기를 지적하는 다급한 목소리의 문학으로 기록되고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이 신식민주의의 도래에 대응할 만한 단단한 이념의 틀을 제대로 정치적 상상력 안에서 구체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것은 당대 정치의 이념적 고정성과 폐쇄성에서 기인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최인훈 선생이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서사장르 대신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옛날 옛적에 훠이훠이(1976), 달아 달아 밝은 달아(1978) 등의 극 양식을 새롭게 시험한 것은 관념의 늪에 빠져든 자신의 문학세계를 전환시켜 보고자 했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최인훈 선생의 작가적 고뇌는 그 정치적 상상력의 폭과 깊이보다 더 아득하였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생은 떠나셨지만 한국문학의 정신적 지주로 최인훈 문학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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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의 격조 혹은 파격 

 

1

 

최남선이 1920년대 중반에 주창했던 시조부흥은 가람 이병기를 통해 비로소 현대시조의 새로운 탄생이라는 실질적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병기에 의해 시조의 시적 혁신과 그 창작이 가능해졌고 시조에 대한 이론적 탐구와 그 시학의 원리가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이병기는 시조란 무엇인가(1926), 시조와 그 연구(1928), 시조 원류론(1929) 등을 통해 시조문학의 본령을 깊이 있게 논의하였고, 시조는 혁신하자(1932)와 같은 글에서 시조를 하나의 시 형식으로 새롭게 인식하면서 이념적인 도그마에서 벗어나 시조 창작의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그의 창작 시조집 󰡔가람시조집󰡕(1939)은 현대시조의 가장 주목되는 성과로 손꼽히고 있다.

이병기의 시조론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시조의 시적 형식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시조의 시적 형식 문제는 오늘의 현대시조가 왜 시조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시조는 그것이 창곡으로 가창되었던 시대에도 3장의 음악적 형식에 묶여 있었고, 시로서 읽혀지면서도 시적 형식으로서의 3장 분장의 형식을 고수하고 있다. 시조가 지니고 있는 시적 특성은 이 불변의 3장 형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시조에 대한 시학적 해명 또한 이러한 시적 형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조의 형식은 정형인 것과 고전적인 것이다. 하나 고전도 고전 나름이요 정형도 정형 나름이지 반듯이 정형이라고 하여 고전을 덮어놓고 다 버려야 할 것은 아니다. 시조는 정형이며 고전적이면서도 꼭 있어야 할 까닭은, 도리어 그 정형과 그 고전적에 있다. 한문이나 영어와 같은 외국의 문학을 맛보는 우리로서, 그래도 조선어문학의 맛을 보자면 무엇이 있나. 한시(漢詩)나 영시(英詩)처럼 발달은 못되었다 하드라도, 적어도 조선말로써 조선말답게 적은 것이며 조선말로서의 목숨과 넋이 있는 것 아닌가. 그리하여 조선말에 쓰인 전형과 궤범(軌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것을 보고 일일이 그대로 모방을 하거나 인용을 하거나 할 건 아니라도 거기에서 무슨 전통이나 암시를 얻을 것 아닌가. 이것이 과연 우리들과는 남다른 깊은 관계가 있는 바이다.

-이병기, 시조는 혁신하자(1932)

 

앞의 글에서 이병기는 시조의 시적 형식을 정형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에서 찾고 있다. 시조라는 시 형식의 본질적인 특성은 3장의 구성 원리에서 찾아진다. 초장, 중장, 종장으로 구분되던 고시조의 형식은 엄격하게 음악적 형식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시조는 이와 다르다. 현대시조는 음악적인 형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시적 구성 원리로서의 3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미 고정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형식에 따라 3장이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 시적 형식으로서 3장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조의 3장 분장 형식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어떤 제약을 가하기 위한 외형적인 틀이 아니다. 그것이 만일 말하고자하는 것에 대해 한계를 정하고 제약을 가하는 일종의 형식적 규제 장치라면, 그것은 단조로운 행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고도의 미의식을 구현하는 시적 형식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병기가 시조의 시적 속성을 규정해 주는 요소로서 그 정형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에서 찾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시조는 고정적 형식의 균제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이 형식적 특징은 가람 시조가 추구하고 있는 시정신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시조가 추구하고 있는 시적 기품과 격조가 거기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조가 하나의 문학적 형식으로 다시 창조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지녀온 외형의 균제라는 형식적 특성만을 고집하면서 시인의 개인적인 시 의식이라든지 새로운 시대감각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조가 지녀왔던 특유의 기품이나 형태적 전아성을 포기한다면 시조는 결국 파괴되고 만다. 시조는 이러한 두 가지의 조건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그 시적 가능성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병기가 주목하고 있는 점도 바로 여기 있다.

 

2

 

이병기의 시조는 연작형식의 시적 정착이라는 양식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병기의 연작시조는 단형의 평시조를 중첩시켜 시적 의미를 확대시켜 놓고자 하는 형식적 실험의 소산이다. 이것은 시조의 단형적 형태가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와 상통한다. 이미 연시조의 형태는 조선시대 이퇴계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이나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와 같은 작품을 통해 그 시적 가능성을 입증받았던 형식이다. 최남선이 개화 계몽 시대에 새로운 시작의 실험을 행하면서 연시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시적 형식에 대한 배려보다는 그 형식에 담아내고자 하는 내용의 풍부성을 감당할 수 있는 시적 형식의 추구에 더 큰 관심이 있었던 때문으로 이해된다.

 

다시 옮겨심어 분에 두고 보는 파초(芭蕉)

설레는 눈보라는 창문을 치건마는

제먼저 봄인 양하고 새움 돋아 나온다

 

청동(靑銅) 화로 하나 앞에다 놓아 두고

파초(芭蕉)를 돌아보다 가만히 누웠더니

꿈에도 따듯한 내 고향을 헤매이고 말았다

 

-파초(芭蕉)

 

이병기의 연시조 파초는 파초 가꾸기의 일상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 작품에서는 파초의 널따란 잎을 볼 수 없다. 겨울나기를 위해 잎과 줄기를 잘라내고 대궁만 남겨 뿌리를 화분에 심어두었기 때문이다. 파초는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잎이 타원형으로 크게 자란다. 그 잎의 싱그러움을 사랑하여 예전부터 관상용으로 많이 가꾼다. 옛 그림에도 파초도(芭蕉圖)’가 많다. 원래 중국 남방 지역 온난한 땅에서 자라는 다년초로 우리나라로 옮겨진 귀화식물(歸化植物)’이다. 겨울 추위를 지낼 수 없기 때문에 밖에 그대로 두면 뿌리가 얼어 죽는다. 그러므로 늦가을에 이를 캐내어 화분에 심어 실내로 옮겨 놓아야 한다. 파초 1연에서 초장인 다시 옮겨 심어 분에 두고 보는 파초는 파초의 겨울나기를 요약적으로 제시한다. 늦가을까지 넓고 푸른 잎을 자랑하던 파초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줄기와 잎이 모든 잘린 채 화분에 옮겨 심은 상태로 실내에 놓여 있다. 중장에서는 바깥의 눈보라를 보여준다.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찬 겨울의 험한 날씨를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종장에서 시적 분위기가 전환된다. ‘제 먼저 봄인 양하고 새움 돋아나온다.’ 시조의 격식(3.5.4.3)을 지키면서 표현의 변화를 살린다. 놀랍게도 실내에 들여다 놓은 파초의 대궁에서 새 움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파초의 넓은 잎이 자랑하는 기품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 작은 새싹을 통해 생명이 움트고 있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재를 발견하고 거기에 새로운 감각을 부여하는 솜씨가 놀랍다. 2연으로 이어지는 시상의 흐름도 흥미롭다. 바깥의 추운 날씨를 다시 강조하는 뜻으로 청동화로가 등장한다. 시적 화자는 파초 화분을 살피다가 화로 옆에 누워 잠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 종장에서 파초와 시적 화자가 그대로 하나가 되어 따뜻한 고향을 헤매게 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이병기의 파초는 연작시조라는 시조의 형태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긴장과 이완, 통합과 균형의 미를 자랑한다. 작품의 전체적인 짜임새를 연작의 기법이라는 차원에서 좀더 세밀하게 분석해 보면, 시적 주제의 형상화 과정이 예사롭지 않은 긴장을 내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연작의 형식은 시조의 특성으로 자리잡은 형태적인 요소로서 단형시조의 시적 확대를 의미한다. 시조가 담아야 하는 시적 의미 내용이 그만큼 다양하고 포괄적인 것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외형적으로 각각 독립된 두 편의 평시조를 병렬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텍스트의 구조 자체가 통합된 하나의 작품을 위해 견고하게 짜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조에서 연작을 통한 형식적인 확장에 전체적인 균형을 부여하며 시적 긴장을 이끌어 가는 것은 형식적 고안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시적 주제의 응축과 그 확산의 과정을 전체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내적인 질서에 의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형식적인 실험을 통해 개방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연시조 형식의 창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3

 

이병기의 시조에서 발견하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시조의 형태적 고정성을 벗어나기 위해 파격을 추구했던 사설시조에 대한 실험이다. 시조의 장르 변화 과정에서 볼 때, 평시조의 극복 양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사설시조의 형태적 특성이 이병기의 시조에 와서도 발전적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되는 현상이다. 모든 예술의 형태는 그 독자적인 생명력을 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시대적 위상에 조응하기 마련이다. 사설시조의 등장은 조선 후기 서민의식의 성장과 새로운 미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사설시조에서 볼 수 있는 고정적인 율격 파괴와 산문화 경향은 조선 후기 사회 서민층의 미의식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게 보통이다. 사설시조는 비교적 고정적인 율격을 지켜 나가려고 하는 부분(초장, 그리고 종장의 첫머리)과 고정적인 율격을 파괴하고자 하는 부분(중장, 그리고 종장의 첫머리를 제외한 부분)이 서로 결합되면서 형식상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설시조의 특성에 이병기는 어떤 방식으로 현대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는지 다음의 두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1)

 

해만 설핏하면 우는 풀벌레 그 밤을 다하도록 울고 운다

가까이 멀리 예서제서 쌍져 울다 외로 울다 연달아 울다 뚝 그쳤다 다시 운다 그 소리 단조하고 같은 양 해도 자세 들으면 이놈의 소리 저놈의 소리 다 다르구나

남몰래 겨우는 시름 누워도 잠 아니 올 때 이런 소리도 없었은들 내 또한 어이하리

-풀벌레

 

(2)

 

날마다 날마다 해만 어슬어슬 지면 종로판에서 싸구려 싸구려 소리 나누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갓쓴 이 벙거지쓴 이 쪽진 이 깎은 이 어중이 떠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기정기 흥성스럽게 오락가락한다 높드란 간판 달은 납작한 기와집 퀘퀘히 쌓인 먼지 속에 묵은 갓망건 족두리 청홍실붙이 어릿가게 여중가리 양화 왜화붙이 썩은 비웃 쩌른 굴비 무른 굴비 무른 과일 시든 푸성귀붙이 십전 이십전 싸구려 싸구려 부르나니 밤이 깊도록 목이 메이도록 저 남산 골목에 우뚝우뚝 솟은 새 집들을 보라 몇해 전 조고마한 가게들 아니더냐 어찌하여 밤마다 싸구려 소리만 외치느냐

그나마 찬바람만 나면 군밤 장사로 옮기려 하느냐

- 야시(夜市)

 

앞에 인용한 이병기의 풀벌레 야시전형적인 사설시조의 형태를 보여준다. 풀벌레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면 시적 텍스트에서 이미 초장, 중장, 종장을 명확하게 구분해 놓고 있다. 초장은 날이 저물고 울기 시작하는 풀벌레 소리를 시상의 발단으로 제시한다. ‘해만 설핏하면이라는 말은 해가 저물녘에 사방이 어둑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밤이 다하도록 그치지 않는다. 사방이 소란스럽다면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을 리 없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상의 흐름을 도와주는 시간적 배경과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는 셈이다. 중장은 가까이 멀리에서부터 다 다르구나까지에 해당한다. 중장에서 사설시조의 서술성의 묘미를 최대한 살려낸다. 시적 진술에는 대조, 열거, 반복, 지속, 영탄의 방법이 모두 동원된다. 풀벌레 소리를 때로는 설명하고 때로는 묘사하면서 의 그 특징적 인상을 잡아내어 다채롭게 들려준다. 풀벌레 소리의 거리감과 그것이 들려오는 장소(가까이 멀리 예서제서)를 먼저 헤아리고 그 소리의 특징(쌍져 울다 외로 울다 연달아 울다 뚝 그쳤다 다시 운다)을 가늠한다. 저절로 음악적 가락이 살아난다. 이 과정에서 밤의 고요와 적막이 깨진다. 풀벌레들이 들려주는 합창의 한가운데에 시적 화자가 들어서 있다. 이 작품의 시적 주제가 암시되는 부분은 종장이다. ‘남몰래 / 겨우는 시름에서 3음절과 5음절의 음수를 지킴으로써 시상의 전환이 이 부분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시적 화자는 밤에 홀로 자리에 누워있다. 자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고달픈 세상살이에 혼자서 시름이 없지 않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에 들지 못한다. 밤의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것이 바로 풀벌레 소리다. 화자의 마음속의 시름도 그 소리만큼 많을 것인데 바깥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화자의 시름에 더해지고 어지러운 머리에 가득해진다. 세상의 온갖 잡사(雜事)의 시름이 풀벌레 소리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풀벌레 소리를 시조의 시적 형식에 담아 사설조로 풀어낸다. 이 파격의 사설이 하나의 시적 풍경을 만들어내고 실감의 정서를 자아낸다. 이병기가 아니고서는 흉내내기 어려운 시적 실험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야시는 일상적 생활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전통적인 사설시조가 보여주었던 풍자와 야유와 해학의 장면과 그 느낌까지도 그대로 살려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서울 장안의 명물이 된 야시장의 풍물 속에 일제 강점기의 삶의 현실과 그 모순에 대한 풍자와 조소까지 곁들여 놓고 있기 때문이다. 초장은 날마다 날마다 해만 어슬어슬 지면 종로 판에서 싸구려 싸구려 소리 나누나가 된다. 평시조의 초장에 요구되는 3.4.3.4라는 음수율의 고정된 격식에 약간의 파격을 가하고 있다. 야시장의 시공간적 배경을 그려내면서 싸구려라는 장사치들의 목청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중장은 시장에 구경 나온 사람들과 장사꾼들의 행색, 그리고 가게에 늘려 잇는 물건들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사설시조에서 사설을 개방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부분이 중장이다. 여기서 사설시조의 열거와 반복, 대조와 비교, 해학과 비판이 살아나야 한다. 먼저 시장거리의 사람들의 행색이다. 갓 쓴 사람과 벙거지를 쓴 사람, 머리에 쪽을 진 아녀자와 머리를 단발한 사람, 이런 저런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오고간다. 앞뒤 구절을 서로 짝 짓고 맞세워 자연스럽게 리듬이 생기도 가락이 살아난다. 야시장에서 물건을 가게는 궁색하기 그지없다. 납작한 기와집에 간판만 높다랗게 달았다. 진열해 놓은 물건이라고는 먼지 쌓인 묵은 갓망건 족두리처럼 이제 한 시절 지나버린 것들이거나 청홍실붙이 어릿가게 여중가리 양화 왜화붙이처럼 싸구려 잡화들이다. ‘청홍실붙이 어릿가게는 여성들이 바느질이나 수놓기에 필요한 색실이나 바느질 도구들을 파는 가게이다. ‘여중가리 양화 왜화붙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동사니들인데, 물 건너온 양화(洋貨), 서양 물건들과 일본에서 들어온 자잘한 왜화(倭貨)붙이가 대부분이다. 식료품들도 진열되어 있다. ‘썩은 비웃 쩌른 굴비 무른 굴비 무른 과일 시든 푸성귀붙이가 대부분이다. 생선이라고는 다 상해가는 청어와 절인 굴비뿐이고 과일과 풍성귀는 이미 무르고 시들었다. 그래도 장사꾼들은 싸구려를 외친다. 이 작품의 종장은 저 남산 골목에 우뚝 우뚝 솟은 새 집들을 보라 몇 해 전 조고마한 가게들 아니더냐 어찌하여 밤마다 싸구려 소리만 외치느냐 그나마 찬바람만 나면 군밤 장사로 옮기려 하느냐라는 시적 화자의 말로 끝맺는다. 종장의 첫 구절 저 남산 / 골목에 우뚝‘3.5’의 음수를 고정하는 사설시조의 형식적 틀을 그대로 지켜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첫 구절에서 시상의 전환이 가능해지고 시적 주제의 결말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저 남산 골목 우뚝우뚝 솟은 집1920년대 서울의 주거지역과 상권의 형성을 알아보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 강점 후 서울의 남산 기슭은 모두 일본인들이 차지한다. 남산에 신사(神社)를 짓고 후암동 일대에는 일본 군대의 주둔지(지금의 미군기지)로 삼았으며, 남산 북쪽 기슭은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단장했다. 일본 총독이 사는 관저도 거기에 세웠으며 현재의 명동 충무로 일대를 일본인 상업지역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이 골짜기에 우뚝 우뚝 솟은 집이 꼴사납게 보였을 것은 분명하다. ‘어찌하여 밤마다 싸구려 소리만 외치느냐라는 시적 화자의 말 속에는 같은 서울 장안이면서 번창하는 일본인들 구역과 여전히 가난에 찌들어 있는 우리네의 모습을 대조하면서 이 모순의 현실을 비아냥대는 조소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제 찬바람이 나면 이 초라하고도 궁색스런 야시장도 문을 닫는다. 당시 신문 보도를 보면 4월부터 10월까지만 야시장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장사꾼들이 일터를 잃게 된다. 그러니 찬바람만 나면 군밤장사로 옮기려느냐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찬바람 부는 길거리로 내몰려 군밤장사로 살아야 하는 궁핍한 삶의 현실을 확인하는 셈이다.

야시는 일제 강점기 서울 종로에 개설된 야시장의 풍물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결코 시장거리의 흥성스런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적 화자가 야시장의 초라한 행인들과 보잘 것 없고 궁색스런 가게의 물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것을 장사꾼의 목이 메도록 외치는 소리 그대로 싸구려라고 옮겨 놓는다. 실제로 이 작품 속에 그려진 야시장에는 생동감이 없고 삶의 활력이 보이지는 않는다. 값나가는 물건이라는 것이 있을 턱이 없는 허름한 가게에는 보잘 것 없는 잡화들만 늘어놓고 있다. 썩은 청어, 무른 굴비는 전혀 신선할 리가 없고, 무른 과일, 시든 푸성귀는 초라한 삶의 모습과 그대로 일치한다. 이 초라한 야시장의 풍경을 더욱 초라하게 하는 것이 남산 골짝의 높이 솟은 새 집들이다. 서울 장안에서 남산골과 종로통이 부자와 빈자의 공간으로 구획되는 것은 우리네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식민지 현실이 만들어낸 삶의 모순구조가 서울 장안을 그런 식으로 편 갈랐던 것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노리고 있는 것은 그런 현실의 음울(陰鬱)이 아닐까 생각된다.

 

4

이병기는 현대시조의 시적 형식에 감각성이라는 고도의 미의식을 부여함으로써 현대시조가 추구하는 시적 모더니티를 온전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병기의 시조는 전아한 기품을 자랑하고 있지만, 기실은 단조로움에 빠져들기 쉬운 시적 진술에 특유의 감각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병기는 시조를 통해 우리말의 음절량과 그 이음새에서 나타나는 말의 마디를 자연스럽게 변형시키면서 율격을 지켜나간다. 이것은 시조의 시적 형식이 어떤 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주는 요건이 된다. 난초와 같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절제된 감정과 언어의 감각을 이병기 시조의 미학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1

 

한 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 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볕이 발 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 난초 1. 2. 3. 4

난초는 흔히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일컫는다. 그 고결한 자태와 향취가 빼어난 학식과 인품을 갖추고 있는 군자에 비유된다는 뜻이다. 정지용이나 김영랑도 난초를 노래했고, 신석정의 시에도 난초가 등장하는 것이 많다. 하지만 난초의 시인이라면 누구나 이병기를 손꼽는다. 평생을 시조 사랑으로 살았던 이병기는 그 곁에 늘 난초를 두고 아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했다는 고서 몇 권과 술 한 병, 그리고 난초 두서너 분이면 삼공(三公)이 부럽지 않다.’는 말에서 그가 얼마나 난초를 좋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병기는 난초의 고절한 기품에만 만족한 것이 아니다. 그는 난초에 섬세한 감각을 불어넣는다. 그가 그리는 난초는 군자니 고절이니 하여 관념화되어 버린 난초가 아니다. 이병기는 자연 속에서 호흡하고 꽃을 피우고 바람에 꺾이고 꽃이 떨어지는 살아 있는 난초를 찾아낸다. 그의 시조 속에서 난초는 살아 움직인다.

앞에 인용한 난초 1부터 난초 4를 보면 난초의 새로 꽃이 피어나고 새 잎이 자라다가 바람에 꺾이기도 하고 그윽한 향기를 흩어내는 모습 난초를 곁에 두고 아끼는 시적 화자의 심경을 함께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난초 1은 평시조의 형태로 난초의 개화를 간략하게 그려낸다.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라는 짤막한 구절에서 난초가 자라나 꽃을 피우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적당한 그늘과 바람이 난초를 키우는 것이다. 난초 2는 전체 2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연에서는 난초의 새 잎이 바람에 꺾이는 모습을 그려낸다. 차마 눈을 뜨고는 그 모습을 보기 힘들 정도로 난초의 모습이 애잔하다. 여기서 난초는 고결함이라든지 지조라든지 하는 관념과는 아무 상관없는 하나의 힘없는 풀꽃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난초에 깃들인 작은 생명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바람이 그 연한 새 잎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바람에 연한 새 잎이 꺾이는 모양에서 인생을 발견하다. 모진 바람과 힘없는 난초는 세파(世波)와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그 모습이 한없이 안쓰럽다. 눈을 뜨고 볼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2연에서는 난초의 향기를 그려낸다. 난초는 새 잎이 꺾인 채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는다. 그 향기에 취하여 잠시도 그 곁을 떠나기 어렵다. 난초 3는 비가 오는 날 다시 한 대 꽃이 피어나면서 향기를 전하여 우울한 시적 화자의 마음을 달래준다. 난초와 친화하는 자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난초를 향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이다.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라는 구절은 이미 시적 화자와 난초가 서로 하나로 동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난초 41연에서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라는 표현은 섬세한 언어 감각이 이루어낸 절묘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초장에서는 시각적 요소와 촉각적 요소를 결합했고, 중장은 자짓빛 대공하얀 꽃의 색채 감각이 선명하게 대조된다. 종장에서 이슬구슬의 비유는 더욱 정교하게 이미지를 배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감각적 묘사를 통해 난초는 그 섬세하게 피어나는 꽃임에도 전통적으로 덧씌워져 있던 가치와 이념의 외피를 완전히 벗어난다. 난초는 이렇게 연약하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향기롭고 기품 있는 꽃으로 다시 태어난다. 2연에서는 바로 이러한 난초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그 정결한 모습을 그려놓고 있다. 이처럼 이병기는 시조의 시적 형식에 감각성이라는 고도의 미의식을 부여하고 있는데, 연시조 난초가 바로 그 구체적인 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시조는 그 형식적 특성 때문에 전통적으로 지켜온 전아한 기품만 가지고서는 시적 모더니티를 온전하게 구현하기 어렵다. 이병기는 고정된 시조의 시적 형식과 그 진술 방법에 특유의 감각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우리말의 음절량과 그 이음새에서 나타나는 말의 마디를 자연스럽게 변형시키면서 율격을 살려낸다. 이것은 시조의 시적 형식이 어떤 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주는 요건이 된다. 난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절제된 감정과 언어의 감각을 이병기 시조의 미학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5

이병기는 현대시조가 연작성에만 안주함으로써 시적 형식의 압축미를 얻지 못한 채 기교와 수사에 얽매인 산문으로 기울고 있는 점을 문제삼아 시조의 격조를 강조한 바 있다. 이병기가 내세운 격조문제는 현대시조가 도달해야 하는 궁극의 지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조에서의 격조는 그 작자 자기의 감정으로 흘러나오는 리듬에서 생기며, 동시에 그 작품의 내용 의미와 조화되는 것이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딴 것이 되어버린다. 공교롭다 하여도 죽은 기교일 뿐이다. 그러므로 격조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시적 상상력의 감각성을 의미한다. ‘격조는 시조라는 단형의 시 형식에 동원되는 모든 단어에 생기를 넣어주며 사고와 감정의 기저에까지 침투하는 감각을 말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물론 언어와 그 의미를 통해서 작용하지만 시조의 경우 전통적 의식과 가장 현대화된 정신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병기는 격조를 내세움으로서 현대시조의 문학적 성격을 미학적 차원에서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병기의 현대시조가 시조로서의 기품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시적 감각을 살려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병기의 현대시조는 시조의 부흥이 아니라 새로운 시적 형식과 감각의 발견에 해당한다. 이것은 시조라는 형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하나의 주제를 발견하고 그 주제에 적합한 새로운 시적 형식과 언어와 감각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서 우리는 발견이라는 말이 이 모든 과정 또는 수사적 방법을 지칭하는 데에 가장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발견으로서의 형식과 감각은 고정된 틀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적 형식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시적 대상을 새로운 언어로 사고하는 방법이며 과정이다. 이병기의 시조에서 확인되는 시적 형식과 그 감각은 일상어의 시적 활용이라는 점에서 현대시조의 새로운 탄생과 직결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체의 관념어를 배제하고 감각적인 일상어만으로 이루어진 이병기의 시조는 시적 언어의 감각적 구현에 있어서 현대시조가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궁극의 지점에 도달해 있는 셈이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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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宮中) 무희(舞姬) 리진

 

지난 8월 초에 신경숙의 장편소설 󰡔리진 󰡕(2007)이 앤턴 허(Anton Hur)의 번역으로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아마존에서는 이미 이 책의 보급판을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중요 서점에도 이 책이 전시되고 있다. 책의 제목은 궁중 무희(The Court Dancer)’로 바뀌었다. 소설 󰡔리진 󰡕은 한국에서 신문에 연재되었을 때는 원제명이 푸른 눈물이었다. 신문 연재본과 한국어 단행본 그리고 영역본이 각각 그 제목을 바꾸어 달고 나온 셈이다

 

조선 말엽 궁중의 무희로 프랑스 외교관을 사랑한 리진은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은 국내의 문헌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 백년전 프랑스에서 출판된 책 가운데 조선에 온 프랑스 외교관과 궁중 무희 리진에 대한 사연이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조선의 궁중 무희 리진이 외교관을 따라 파리로 가서 우울증에 걸려 지냈다는 간단한 내용을 바탕으로 신경숙은 리진이라는 여인을 자신의 소설 속에서 살려낸다. 주인공 리진은 기울어가는 왕조의 마지막 명운을 붙잡고 섰던 왕비의 총애 속에서 궁중의 무희로 자라났다. 조선의 궁중에서 나비 같이 춤을 추던 이 아릿다운 여인은 낯선 프랑스로 건너가 물빛 드레스를 입고 파리의 거리를 거닐었다. 신경숙은 이 여인에게 모국어의 영역을 벗어나 프랑스어를 습득하게 했다. 그리고 새로 배운 프랑스어로 모파상의 작품을 낭독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에는 이 새로운 삶이 환희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언제나 무너지고 있는 조선 왕조와 그 왕조의 비극을 고스란히 품에 담고 있던 왕비만이 걱정이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허용된 각별한 운명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만이 알아낸 역사를 살아야 했고, 그 자신만의 생각으로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 자신만의 기억 속에 사랑을 담았다.

모두가 망각해버린 이 여인의 삶을 통해 작가 신경숙이 말하고자 한 것은 패망해 가는 왕조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리진은 우여곡절 끝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서구의 근대 문물을 몸으로 받아들인 그녀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녀는 결국 참극의 주인공이 된 왕비(명성황후)의 죽음의 진실을 자신의 죽음으로 알리는 길을 택한다. 소설 속에서 리진은 참혹하게 죽어갔다. 그녀가 서양을 배우기 위해 터득했던 프랑스어를 모두 자기 목구멍으로 삼켜버리듯, 독이 묻은 프랑스어 사전 한 장 한 장을 뜯어 삼켜야 했다. 그녀는 그녀가 몸소 부딪치고, 맑은 눈으로 보고, 그녀의 아름다운 입으로 말했던 새로운 세계를 다시는 이야기할 수 없게 된다. 봉건 왕조의 붕괴 과정 속에서 근대를 한 몸에 지니고 살아야 했던 리진이라는 여인의 삶에서 여성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의 불화를 함께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의 풍부한 서사성을 말해준다.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지의 서평에서는 󰡔궁중 무희󰡕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세기 후반 한 궁중 무희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프랑스 외교관의 마음을 사로잡은 리진이라는 궁중의 무희를 내세워 격동기 한국 사회의 변화를 특이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이 자기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중심으로 한국의 역사를 그 배경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고립된 조선과 선진화한 유럽 특히 프랑스의 사회 문화적 불균형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아시안 리뷰 오브 북스(Asian Review of Books)에서는 아주 긴 서평을 냈다. 맨 아시아 상을 수상한 작가 신경숙의 신작소설 󰡔궁중 무희󰡕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읽힐 수 있는 흥미롭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분야에서 서구의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는 알려 있고 익숙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그러하지 못하다. 작가 신경숙은 바로 그런 점에 착안 하여 이 격동의 시대에 한국의 궁중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여 이를 재현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문화와 한국의 풍속을 아름답게 대조해 보이는 이 소설은 한 운명적인 궁중의 무희의 생애를 통해 한국인의 삶의 우여곡절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번역자의 유창한 영어 번역이 이 소설의 정감을 끝까지 살려내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미국 국영라디오 (National Public Radio)의 북 리뷰에서는 신경숙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명으로 꼽히는 합당한 이유가 이 소설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인간의 마음의 미묘함에 대한 그녀의 깊은 이해를 이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선 왕궁의 아름다운 무희였던 리진은 프랑스로 건너가 거기서 비단 부채를 만들면서 자신에게 밀려드는 슬픔을 거기에 수놓는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소설 속에 담겨 있지만 그것은 작가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살아나고 있다고 평했다.

신경숙은 지난 2011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로 세계문학의 무대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I’ll Be Right There󰡕(2014)󰡔외딴 방 (The Girl Who Wrote Loneliness󰡕(2015)을 영어로 번역 출판하면서 그 문학의 고뇌와 깊이를 자랑하게 되었다. 이번에 나온 󰡔리진 (The Court Dancer)󰡕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뛰어넘는 신경숙의 소설적 상상력의 폭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일 것으로 생각된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후 몇 년을 칩거하고 있는 그녀가 다시 독자들 앞에 멋진 소설을 가지고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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