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騎士團長殺し)’가 문단의 화제다. 얼마 전에 보도된 대로 일본에서 초판 130만 부를 찍었다는 뉴스가 놀랍기만 하다. 책 판매가 시작된 첫날 서점마다 독자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작품평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본인들이 저지른 난징 대학살에 대한 작품 속의 언급에 일본 우익분자들이 시비를 걸면서 엉뚱한 논란까지 연일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번역 소개되면서부터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1987년에 출판된 이 작품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꿈의 상실 속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애절한 사랑을 자유분방한 문체로 그려냈다. 당시 일본 평단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등장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한때 유행하는 대중적 통속소설 작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평단의 무관심에도 자기 소설에만 집중했다. 그는 이른바 ‘일본 중심주의’에 빠져들었던 일본 사회의 흐름을 외면한 채 오히려 자신의 소설에서 일본적 특성이라든지 일본의 미학이라든지 하는 요소들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글로벌 시대의 작가임을 자처했고, 일본을 넘어서서 세계의 모든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새로운 무대를 꾸준히 탐색했다.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삶의 태도와 신화적 요소를 자기 서사의 모티프로 활용하면서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 ‘양을 쫓는 모험’ 등의 문제작을 통해 독자층을 넓혀 나갔다. 그의 작품은 모두 한국에 번역 소개되어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일본 문단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고, 자신이 추구해온 소설적 이념의 실천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 출판계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몇몇 출판사가 국내 판권을 얻으려고 벌써부터 경쟁이 치열하다는 소식이다. 이른바 ‘선인세’라는 개념의 판권 계약금이 무려 2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출간되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부터 출판사들의 판권 경쟁으로 선인세가 10억 원을 넘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었다. 작년 송인서적의 부도 이후 움츠러든 출판계 상황을 놓고 본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큰 출판사들이 벌이는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경쟁에 왠지 기분이 씁쓸하고 착잡하다. 

그런데도 이런 출판사의 지나친 상업주의적 행태를 시비하기조차 힘든 것은 우리 소설 문단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단 권력이라는 기형적인 울타리가 작가들을 옥죄고 있다고 서로 헐뜯더니, 문단 내부에서 끊이지 않는 표절 시비가 독자들을 식상하게 했다. 게다가 문인들의 성폭력에 대한 논란에까지 빠져들면서 문단의 활력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문학이 기대야 하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다. 우리 출판시장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돈 자랑처럼 보이는 판권 경쟁에 거는 그 엄청난 금액의 일부라도 우리 소설을 위해 투자하는 출판계의 용기가 필요하다. 젊은 작가들이 자기 세계를 지키면서 꾸준히 글을 쓰도록 적극 지지해줘야만 우리 문단과 출판계가 모두 풍요로워질 수 있다. 우리 소설이 지닌 상상력의 힘에 기대를 걸고 있는 세계의 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 독자와 출판계가 모두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부러워하며 따라가야 하겠는가.(<동아일보>, 201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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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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