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에는 피서 여행을 가족 모두 함께 가자는 아들 내외의 의견이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도 진정되었으니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한번 나들이를 하자는 데에 아내도 동의한다. 며칠 전에 만났던 친구도 올여름 바캉스 휴가를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다. 나는 바캉스라는 말이 전혀 실감 나지 않는다. ‘꽃보다 할배’처럼 해외 배낭여행이라도 떠날까 하고 웃으며 대답하자 그 친구도 함께 크게 따라 웃었다. 하지만 나는 호들갑을 떨며 나대는 피서 여행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이제는 가보고 싶은 곳도, 가볼 만한 곳도 생각나지 않는다. 식구들은 내 어정쩡한 태도에 늘 불만이지만 ‘차라리 그럴 바에야’로 시작하는 나의 변설을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는다.

나는 올여름의 더위를 책 읽기로 이겨볼 생각이다. 오랜만에 책방을 정리하면서 여기저기 어지럽게 쌓아둔 책들을 서가에 가지런하게 꽂는다. 그리고 이 여름에 다시 한번 읽을 책들을 골라 책상 위에 쌓아 놓는다. 새로 고쳐 펴낸 대하 장편소설 ‘변경’ 열두 권이 맨 앞자리에 놓인다. 어떻게 고쳤는지 다시 꼭 읽겠다고 작가에게 한 약속을 지킬 생각이다. 무산 스님의 ‘벽암록 해제’도 다시 꺼내놓았고, 읽다가 덮어둔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도 이번 여름에는 꼭 끝내야 하겠다고 결심한다. 새로 산 신작 소설 두어 권까지 올려놓고는 내 여름나기 독서 계획에 스스로 만족한다. 집 안에 앉아 넉넉한 반바지를 입고 부채를 들고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편할 것인가? ‘서중독서(暑中讀書)’라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책과 더불어 한여름 더위를 이겨보겠다는 내 생각이 딱하다고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책방 정리한다더니 왜 책들을 책상 위에 다시 쌓아 놓았느냐며 아내가 핀잔한다. 여름 동안 다시 읽어 보려는 것들이라고 대답하니, 이 책들 이미 다 읽은 게 아니냐고 한다. 나는 그 말에 읽긴 읽었지만 하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책이란 백 번쯤 두루 읽어야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책 한 권을 백 번이나 읽어야 한다는 것은 좀 과장된 말이 아닐까 싶지만, 그래도 읽고 싶은 책을 두세 번 정도 읽는 것은 누가 말릴 일이 아니다. 이 중국의 고사에 덧붙여진 ‘독서삼여(讀書三餘)’라는 말이 있다. 책을 언제 읽는 것이 좋으냐는 물음에 대해 세 가지의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하라는 가르침이다. 여기서는 ‘첫째 겨울, 둘째 밤, 셋째는 비 올 때’를 여유로운 시간이란다. 농경생활을 하던 옛날을 생각한다면 겨울이 가장 한가로운 때일 것이고, 일을 하지 않는 밤이 여유로울 것 같다. 비가 오면 들에서 일하기 어려우니 시간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나는 시간적 여유를 이용해 책을 읽으라는 옛 가르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책이란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내어 읽어야만 하는 것이지 여유 있을 때를 찾아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내가 가끔 즐기는 카페 독서법이 있다. 겨울에 한가한 여유를 즐기는 책읽기가 아니라 한여름의 더위를 이기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쉬운 방법이다. 집 안에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더울 때 책 한 권 들고 동네 큰길가의 시원한 카페를 찾으면 된다. 구석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책을 펴들면 두어 시간 보내는 것은 일이 아니다. 자기 집 공부방처럼 탁자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커다란 책을 펼쳐놓고는 열심히 책장을 넘기는 젊은이가 보이면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카페의 홀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동네 아줌마 대여섯이 모여앉아 아파트 가격 떨어지는 이야기, 애들 학원 보내는 이야기, 남편 담배 끊었다는 자랑을 큰소리로 늘어놓다가 나이 지긋한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는 목소리를 낮춘다. 나는 그 아줌마들도 언젠가는 시집 한 권 들고 앉아 여유롭게 한여름의 독서에 동참할 것을 기대한다.

얼마 전에 만난 작은 출판사 대표의 푸념이 생각난다. ‘텔레비전은 만날 먹고 놀러 다니는 이야기만 떠들지요. 젊은이들은 모두가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누가 책을 사서 읽어야 말이지요.’ 나는 책 읽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말에 수긍하면서도 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비관론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어느 때인들 책이 위기가 아닌 때가 있었는가?

(권영민, <동아일보>, 201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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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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