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천>의 시인 유홍준은 늦가을 들녘의 바람 같다. 그의 시는 스치면서 상대방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북천>은 시인이 태어난 곳이고 살고 있는 땅이며 숱한 죽음을 보았던 곳이다.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이곳을 시인은 한 마리의 검은 까마귀가 되어 날아오른다. 그리고 유령처럼 떠돈다. 그는 삶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저편 죽음의 세계에서 여기 삶의 공간을 돌아본다. 이 특이한 시각이 유홍준의 연작시 <북천>을 낳고 있다.

북천이라는 공간은 유홍준의 시적 성소(聖所)이다. 결코 과장하지 않는 이 시인에게 성소라는 말도 부담을 줄 듯하다. 오히려 평범하게 시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편할지 모르겠다. 자기 문학을 자기 삶에서 찾는 시인도 있다. 더러는 자기 언어를 타자의 삶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유홍준 시인은 자기 문학의 정신을 북천이라는 공간에 뿌리내리고 서 있다. ’북천이 시인 유홍준을 낳았고 시인 유홍준이 다시 북천을 살리고 있다. 자기 문학의 정신적 거점을 이렇게 오롯하게 지켜내고 있는 시인은 달리 찾아보기 힘들다.

다음은 지난 20138월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권영민의 문학콘서트>에서 권영민 교수와 유홍준 시인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권영민 : 우리 처음 만나지요? ‘권영민의 문학콘서트에 나와 주시니 반갑습니다. 지난 여름 2013년도 소월시문학상의 최종심사 과정에서 모든 심사위원들이 단번에 유 시인을 대상 수상자로 천거했기 때문에 모두들 놀라기도 했지요. 우리 시대의 서정시가 빠져들기 쉬운 일상적 감상을 떨쳐버리고, 시간과 공간을 모두 초월하는 추상적 세계를 북천이란 하나의 구체적 공간 속으로 끌어들이는 상상력의 힘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유홍준: , 정말 어리둥절하고, 맞긴 맞나,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닌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언론에 발표가 날 때까지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번복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요.

소월시문학상이 어떤 상인지 잘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의 수상자들의 위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소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요 뭐. 다만 이런 생각, 아 이제 정말로 이제 시로부터 피해 갈 수가 없겠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영민 : 제가 소월시문학상 대상 선정이유서를 작성하면서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물의 존재와 부재, 생명과 죽음 등에 관련되는 본질적인 문제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통찰을 통해 인간의 삶과 그 존재 의미를 특이한 어조로 형상화하고 있다고 설명을 붙였습니다. 대상 수상작이 된 연작시 <북천>은 시적 시공간의 설정 자체가 일상적 경험과 연결되어 있지만 죽음에 관한 시인의 사유 방식이 그 폭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한국 현대시 가운데 주목되는 성과에 해당한다고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유 시인이 직접 연작시 <북천>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유홍준 : 북천은 지금 제가 생활하고 있는 구체적 공간인데요, 경남 하동에 있는 실제 행정 지명입니다. 2년 조금 넘게 그곳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그곳에 살면서 <북천> 연작을 한 30편 정도 발표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 첫 시집부터 북천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첫 시집의 제목이 된 <상가에 모인 구두들>에 보면 맨 마지막 구절이 북천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에요. 그리고 두 번 째 시집 <<나는, 웃는다>>에 실린 맨 마지막 시는 제목 자체가 <북천>이에요. 일테면 전조가 있었다는 이야기이지요.

굳이 짚어나가자면 이번 수상작 <북천> 연작 역시 그 연장선에 있을 것 같아요. 앞에 시집들에 등장하는 북천이 다 죽음과 관련이 있었거든요. 지금 생활하고 있는 북천으로 출근을 하는 즉시 저는 아, 이거구나! 운명이구나! 생각했지요. 자연스럽게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을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 보았어요. ‘북천은 그러니까 죽음은 늘 제 시의 모티브이고 추동력이고 시의 궁극이지요.

이번에 상을 받게 된 <북천> 연작 역시 그런 연장선 위에서 탄생한 것이구요.

 

권영민 : <북천> 연작에서 북천이라는 공간은 삶의 터전이지만 일상적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죽음의 시공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북천을 죽음의 거처로 단순화시키지 않고 생명의 종말과 그 새로운 탄생이라는 순환적 의미의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상작을 독자들에게 직접 낭독해 줄 수 있는지요?

 

유홍준 : , 제가 경상도 사람이고 발음이 부정화하긴 한데,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이번에 소월시문학상 심사하신 분들이 뽑아주신 <북천 까마귀>를 읽어보겠습니다.

 

어제 앉은 데 오늘도 앉아 있다

지푸라기가 흩어져 있고 바람이 날아다니고

계속해서

무얼 더 먹을 게 있는지,

새카만 놈이 새카만 놈을 엎치락뒤치락 쫒아내며 쪼고 있다

전봇대는 일렬로 늘어서 있고 차들은 휑하니 지나가고

내용도 없이

나는 어제 걸었던 들길을 걸어 나간다

사랑도 없이 싸움도 없이, 까마귀야 너처럼 까만 외투를 입은 나는 오늘 하루를 보낸다

원인도 없이 내용도 없이 저 들길 끝까지 갔다가 온다

 

 

권영민 :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 같아요. 이런 작품을 쓰는 시인은 시쓰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유홍준 시인에게 시 쓰기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유홍준 : 아이구, 시 쓰기의 의미를 물으시니 좀 난감한데요, 글쎄요, 얼마 전에 포클레인 정비업을 하는 친구네 사무실에 놀러를 갔어요. 거기 고물을 주우러 다니는 친구가 하나 저처럼 놀러를 와 있었는데, 한두 번 면식이 있긴 했지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집 주인인 고향 친구가 서로 인사를 시켰는데, 저를 시인이라고 인사를 시킨 거예요. 근데 그 고물장수가 아무래도 제가 시인이 아닌 거 같다고 느꼈나 봐요. 그냥 노동자로 보였다는 거죠. 살짝 저 몰래 그 포클레인 정비업을 하는 고향친구한테 물었대요. “에이, 아니제? 노가다제?” 하고요.

글쎄요, 시 시쓰기의 의미에 관해서 저는 고상하고 크게 얘기하고 싶진 않네요. 전엔 저도 <업 위에 다시 업을 쌓는 행위><치유의 기능을 가졌다> 등 고상한 말들을 하곤 했는데 그건 뭐 아주 기본적인 것, 일반적인 거고 저는 시가 나를 먹고 살도록 해 줬다고 말하고 싶네요. 시 쓰기의 의미와는 조금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사실 시가 돈도 밥도 안 된다지만 아니에요, 제 경우에는 돈도 벌고 좋은 직장도 얻고 그렇게 해 주더라구요. 시가요.

 

권영민 : 말씀을 듣고 보니 공감이 갑니다. 제가 유홍준 시인의 시적 세계를 알아보려고 책을 뒤지다가 깜짝 놀랐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문학과는 거리가 먼 수많은 일을 해온 것으로 되어 있었거든요. 제지공장 노동자로도 일을 했고, 공사판에도 나갔더군요. 우리나라에 수천명의 시인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대학을 나와 창작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등단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잘 만들어진 시인들인 셈이지요. 그런데 유 시인의 경우는 특별히 문학을 수업한 경험이 없어 보였어요. 특이한 사람이구나, 그런데 시를 어디서 배웠나? 하고 궁금했습니다. 시에 입문하게 된 동기 또는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소개해 주실 수 있는지요?

 

유홍준 : 시를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으시는 거지요? 제 경우를 놓고 본다면 시를 배운다는 건 조금 맞지 않는 것도 같구요. 물론 디테일이나 미장센, 그런 레토릭 같은 건 배우겠지요. 그러나 시는 배우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냥 시한테 내 몸을 맡긴다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시하고 몸을 섞고 살을 섞고 사는 거지요 뭐. 그런 결정, 결단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한텐 그것이 우연한 기회에 왔어요.

저도 중학교 때 소월이나 영랑, 한하운 같은 분들을 시를 접하고 좋아했구요, 고등학교 땐 제법 조숙해져서 오규원 강은교 신대철 이런 분들의 시도 읽었단 말예요. <<문학사상>> 같은 잡지도 그때 봤지요.

그런데 이십대 때, 1980년대에 저는 문학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졌죠. 먹고 사는 문제로요, 그러다가 우연히 제가 사는 진주 지역의 문학상에 두어 번 응모를 했고, 상을 받았고,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어요. 김언희 선생님과의 만남이었죠. 6, 7년 사숙을 했어요. 선생님 댁을 들락거리며 책도 얻어다 읽고 영화도 빌려다 보고 그랬죠. 그림, 사진, 영화 등을 꽤 봤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나요, 그때가 제 문학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기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특별히 문학수업을 받지 않았다, 그건 아닌 거죠 뭐.

 

권영민 : 좀 유별나긴 하지만 그렇게 문학의 길에 접어들었군요. 1998년 시단에 등단하셨는데, 첫 시집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2004)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어요. 그 뒤 나는, 웃는다(2006)저녁의 슬하(2011) 세 권의 시집을 내었지요? 첫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이후 자신의 시 세계에 어떤 특별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는지요?

 

유홍준 : 글쎄요, 변화를 의도한 건 없는 것 같구요. 저는, 시인이 변화를 의도 혹은 주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것도 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시가 가자는 대로 가자, 뭐 그런 생각이죠, 여전히. 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게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시를 쓰는 분들 중에도 예술가로서의 기질이 좀 더 강한 분들이 있는데, 그들은 의도하는 것 같아요. 변화를요, 다른 이름으로 하면 변화가 아니라 의도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그래도 굳이 생각해보면 말씀드린다면 제 첫 시집은 그 대상이 무엇인가를 따지기 전에 돌파하려는, 돌파해 내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시집도 역시 그렇습니다만 그 의지는 다소 약해졌구요, 직방으로 다가가려는 의도가 작동했지요. 시적 상관물에 다가가는 태도로써 직방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시집은 삶의 직접성을 생각했구요.

공통점이 있다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방식, 그것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태도는 거의 체질이 되어서 세 번째 시집 이후 그러니까 <북천> 연작들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권영민 : 유 시인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시 세계를 이렇게 설명해 주니 더욱 가깝게 느껴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유 시인이 최근 대학에 시창작 강의를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혼자서 시를 공부했던 경험과 강단에서 시를 가르치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시 창작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유홍준 : 대학의 강단에 선다고 말하는 것이 좀 쑥스럽습니다. 저는 제가 누굴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어요. 누구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하고 누가 누굴 가르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더군다나 저는 가르칠 만한 깜이 아니기도 하구요. 시를 가르쳐서 되는 거라면 참 재미없겠지요. 저 같은 사람은 시인이 안 되기도 했을 거구요.

문제는 에너진데, 아이구, 요즘 아이들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의 전부를 던지지를 못 해요. 그런 의지가 없는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 에너자이저가 돼 주는 것, 결국 그게 문창과 선생의 몫일 텐데, 그거 해 보니까 엄청 힘들더라구요. 제 시를 못 쓰기도 하겠구요. 제 시 다 쓰면서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순 없잖아요. 그게 늘 힘들고, 그래서 하기 싫고, 해선 안 되는 거다 뭐 그런 생각이 들고 그렇지요.

하여간 저는 수업 시간에 거듭해서 말하는 게 두어 가지 있는 데요, 하나는 설명하지 마라예요. 설명은 누가 해? 그건 이론가가, 교사가 하는 거다. 작가는 그러면 안 된다. 또 하는 설교하지 마라예요. 설교는 누가 해? 목사가, 스님이, 맞아, 깨달음은 문학에 있어 죽음이야, 절대로 깨닫지 마,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잘 안 되나 봐요. 우리 기성 시인들 중에도 많은 숫자가 가르치려고 들고 한 깨달음 한 것처럼 하는 데 저는 그거 옳지 않다고 봐요. 문학은 그냥 보여주는 거죠. , 봐라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 하구요.

썩은 고기를 내밀면 다들 고개를 돌리죠. 그게 저는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권영민 : 시의 내면으로 한 발짝 쯤 들어가 볼까요? 제가 읽어본 <북천> 연작 가운데 <북천 목기(木器)에 담긴 밥>이라는 시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목기에 담긴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수육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왜 수저를

왼쪽에 갖다놓는 거야

향냄새가 밴 나물, 향냄새가 밴 과일

목기에 담긴 술을 마실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떡을 뗄 때가 올 것이다

나도 알지 못하고 너도 알지 못하는

글자들이 잔뜩 새겨진 병풍 뒤에서 동태를 살필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저 과일이 먹고 싶은데

내 아이들은 자꾸

고기 위에 젓가락을 갖다 올려놓는 날이 올 것이다

두 자루의 촛불을 켜 놓고 내 아이들이 자꾸 절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부침개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유 시인의 시 속에는 삶과 죽음이 서로 얽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사자(死者)’의 입장에서 살아 있는 자들의 모습을 넘겨다본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봅니다. 저는 <북천> 연작이 주는 깊은 감응력과 함께 그 정서적 충격이 강렬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시인은 하나의 시적 공간에 이 두 가지 차원의 세계를 몰아넣고 있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궁극적으로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유홍준: 조금 복잡한 설명이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썩은 고기를 내밀면 고개를 돌린다는 말과도 상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저는 시를 하나의 프레임 속에 하나의 장면으로 제시하려는 습성이 있어요. 어떤 한 순간, 찰나의 장면을 통해 본질을 보여주려고 하는, 그것이 제 스타일이었죠. 특히나 첫 시집을 내기 전까지 저는 기의보다는 기표쪽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대부분의 시들이 기의 쪽이어서 좀 식상하기도 했구요.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이냐고 물으셨는데, 저한테 그건 공존이죠.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이론, 공부가 아니라 살아온 이력, 경험 때문이구요. 정말로 저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왔어요. 그리고 거기엔 늘 죽음이 있었죠. 몰라요, 하여간 저한텐 그게, 죽음이 자꾸 보였어요.

정신병원 보호사 일을 할 때 일을 이야기 하나 할 게요. 아직도 그 이름을 잊어먹지 않아요. 박재억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다리를 하나 약간 절었어요. 평소에 저하고 장난도 좀 치고 그랬죠. 상태가 많이 바쁘진 않았는데 약이 안 들었던지 어쨌든지 하여간 상태가 좀 안 좋아졌어요. 그래서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은 모아놓는 방으로 옮겼죠. 야근이었어요. 아침에 기상을 하고 점호를 하는데 그 방 사람은 상태가 안 좋으니까 점호가 잘 안 돼요. 그래서 머리 숫자만 헤아렸죠. 그리고 아침에 되게 바빠요. 이거 저거 할 일이 엄청나게 많은데, 식사시간이었어요. 그땐 다들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누가 박재억 씨가 안 일어난다는 거예요. 좀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 봤더니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어요. 익스파이어(expire), 죽은 거죠. 담요에 그 시신을 싸서 들어다가 안정실에 갖다놓고 나머지 환자들 밥을 먹였어요.

그래요, 죽음과 삶은 늘 한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거예요. 저희 시골집 안방 같은 공간처럼요, 태어나는 공간, 산실이고, 죽음이 치러지는 공간이죠. 그 공간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랑을 하고, 나를 낳고, 거기다 밥상을 펴고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자랐어요.

죽음과 삶은 저에게 분리해서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권영민 : ‘공존이라고 하셨지요?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일 수 있다는 말과도 통하는 듯합니다. 일종의 시적 패러독스를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하나의 역설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런 말씀은 독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오늘의 만남과 대화를 마감해야 할 시간이 되었어요. 좀 아쉽지만 유홍준 시인이 시와 독자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유 시인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유홍준 : 저는 시인들이 좀 더 독자에게 서비스를 잘 했으면 좋겠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이상한 멜랑콜리한 시를 쓰는 사람들처럼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의 몫을 좀 더 남겨두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시를 다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좋은 시인은 독자의 몫을 딱 남겨 놓는다 그렇게 생각해요. 시는, 시인이 다 쓰면 안 되죠. 독자가 완성하도록 하는 시, 독자의 몫을 남겨두는 시, 그게 좋은 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보통은 시인들이 다 쓰죠, 다 썼버리죠. 그러니까 재미가 없죠.

어느 때나 독자가 시인보다 우월해요, 그리고 똑똑해요. 시인들은 제가 똗똑하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 그렇지 않아요. 언제나 독자가 시인보다 똑똑해요. 시인은 자 봐라, 하고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설명하고 설교하고 턱도 없이 그런 짓을 하죠. 그러니까 독자가 멀어지죠. 빤한 걸 뭐, 그리고 그러면 그 반응이란 게 뭐예요, 흥 너 잘났다 그래, 그거 아닙니까.

하여간 전 제 독자가 정말 있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구요, 제가 엄청 시골에 사니까요. 다만 한 두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좋겠다, 그 생각만 합니다.

 

권영민 : 오늘 멀리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독자들은 유홍준 시인을 <북천>의 시인으로 기억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시 많이 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유홍준 :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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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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