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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은 1909년 서울 태생으로 제일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 법정대학에서 수학한 바 있고, 1930년에 문단에 나와 이태준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임하게 된다. 이태준의 권유로 가담한 구인회(九人會)(1933)는 그의 예술파적 기질과 성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활동 기반이 되었다. 193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연재한 뒤에 그는 장편소설 천변풍경, 우맹(愚氓)등을 발표하면서 1930년대 소설문단의 중심에 자리한다. 1941년 장편소설 여인성장을 발표한 후에 해방을 맞이하고 있다. 1930년대 소설문단에서 가장 진보적인 모더니스트였던 그가 이념의 개방 지대에서 새로이 인식한 것은 역사 발전에 대한 전망이며, 새로운 민족 국가의 건설에 대한 욕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좌익문학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 중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을 따라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1963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12부를 집필하였고,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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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되었다. 당시 소설 삽화를 이상이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은 그 소설적 감성과 기법이 문단의 관심사로 대두될 만큼 화제를 모았다. 이 소설에는 발단과 갈등과 클라이맥스로 이루어지는 행위의 개념이 나타나 있지 않다. 주인공이 아침에 집을 나와 도시의 구석구석을 배회하다가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 동안의 행적이 소설의 내용을 이룬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이다. 주인공의 도시 배회에는 그의 손에 들려진 한 권의 노트가 동반자 노릇을 한다. 도시의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우연히 부딪치게 되는 주변세계의 사실들을 만화경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그의 소설가로서의 일이다. 또 하나의 동반자는 주인공의 의식이다. 주인공이 도시를 배회하는 것과 더불어 그의 의식도 방황을 거듭한다. 현실생활에서의 그는 무기력과 상실감에 빠져 있는 데 비해, 그의 방황하는 의식은 잃어버린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고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주목되는 것은 주인공의 하루 일과를 그리고 있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그려내고 있는 하루라는 제약된 시간은 일반적인 시간의 보편적 속성과는 관계없이 등장인물의 사적 체험 속에서 재구성된 실제적 경험의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은 비록 제한된 하루 동안이라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반복되며 순환된다. 이 순환적 시간은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을 자연스럽게 매듭지으면서 그 순환성의 특징을 강조한다. 일상은 애당초부터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 그러므로 일상의 시작과 끝은 서로 맞물려 있다. 모든 일상은 시작되는 자리에서 끝이 나고 끝이 나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나 일상의 제반사가 다 순환적으로 반복된다는 생각은 인간의 삶이 인감의 역사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하여 발전해 간다는 생각과는 그 성질이 전혀 다르다. 하루하루 되풀이 되는 일종의 일일순환day-cycle’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소설 속의 이야기를 놓고 보면 그같은 소설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지는 일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어떤 행위의 연속을 통해 구체화되고 발전하는 사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하루 동안이라는 제약된 시간은 도시적인 현대인의 삶의 전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하루가 바로 소설의 중심이며 이야기의 핵심이 된다. 하루 낮과 밤이라는 정해진 시간 속에서 온갖 경험적 요소들이 서로 뒤섞여서 자연적 객관적인 시간의 단순한 순서나 단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도회의 공간을 배회하면서 흘러간 기억들을 하루라는 시간 속에 주입시킨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하루 동안이라는 제약된 시간이 소설에서 특별한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일상적인 현실 속에서 드러내는 규범이라든지 그 지속의 과정과 서로 불일치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시간은 마치 정신이 시간을 경험하는 것처럼 지연되기도 하고 즉각적으로 이동하거나 도약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인물의 기억과 욕망이 극적으로 제시되고 외형화하여 무의식의 세계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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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이 자신의 소설 창작 방법을 고현학(考現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고현학이란 고고학과 쌍을 이룬다. ‘모더놀로지(modernology)’라고 명명한 이 새로운 방법은 현대적 생활공간과 그 풍속을 면밀히 조사 탐구하는 행위로 풀이된다. 박태원은 자신의 소설쓰기가 바로 도시인의 현대적 생활을 면밀하게 조사 탐구하는 작업이라고 규정한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 새로운 방법을 적용시킨 작품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집을 나와 배회하고 있는 공간은 경성이라는 도시이다. 그의 행적은 집을 나온 후부터 종로 거리에서 전차 안다방거리경성역 대합실다방거리술집으로 이어지며 결말에 이르러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것은 당대 최고의 백화점이었던 화신상회였고, 종로에서는 경성의 도심을 이어달리는 전차를 올라탄다. 동대문에서 을지로로 이어지는 그의 전차 타기가 이어진다. 소공동의 조선은행도 보여주고 다방에도 들어간다. 경성역 삼등대합실에서는 중학 시절 동창생이 예쁜 여자와 동행인 것을 보고 물질에 약한 여자의 허영심을 생각한다. 또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친구가 돈 때문에 매일 살인강도와 방화범인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 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동시에 느낀다. 다방을 나온 주인공은 동경에서 있었던 옛사랑을 추억하며 자신의 용기 없는 약한 기질로 인해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또 전보배달의 자동차가 큰길을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며 오랜 벗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여급이 있는 종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모두 정신병자로 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아낙이 카페 창 옆에 붙은 여급대모집에 대하여 물어오던 일을 기억하며 가난에서 오는 불행에 대하여 생각한다. 오전 2시의 종로 네거리, 구보는 제 자신의 행복보다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이제는 생활도 갖고 창작도 하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향한다.

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것들은 식민지 상황 속에서 근대화된 경성이라는 도시 공간이다. 백화점과 은행과 호텔 등으로 이어지는 고층빌딩은 근대 도시 상징이다. 도로 위로 달리는 전차와 버스와 택시와 트럭은 경성의 새로운 풍물이다. 다방과 카페에 널려있는 외국산 커피, 코코아, 립톤 티, 칼피스 등의 고급 음료와 위스키 맥주 등의 술이 유흥과 소비문화가 이미 이 경성이라는 도회에 흘러 넘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황금광시대의 물질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거나 일상에 얽매여 힘겹게 살아간다.

어떤 연구가는 박태원에 이르러서야 우리 소설이 도시적 풍물을 소설적 무대로 구체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도시적 공간이라는 소설적 장치는 박태원의 소설에서 단순한 요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도시의 확대와 각종의 새로운 직업의 등장, 도시 가정과 인간들의 행태, 물질주의적 가치관의 팽배현상, 환락과 고통의 변주- 이런 모든 것들이 1930년대 도시생활의 면모와 함께 그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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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도시적 시정(市井)의 삶에서 발견해 내고 있는 것은 인간 세태와 풍물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서사적 질문법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소설은 개별적인 국면의 제시를 통해 개체화된 인간의 모습을 투영해 봄으로써 삶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박태원이 이 소설에서 활용되고 있는 모더니즘적 기법은 소설의 형식을 치장하도록 고안된 의장이 아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인식의 방법이며, 소설의 이야기 방식을 새로이 정립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심리주의적 소설기법을 박태원이 이 소설에서 시험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식의 내면적 공간을 확대하기 위한 방법의 천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존재와 그 삶의 양상이 현실적인 공간 위에서만 의미있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식의 흐름 속에서 보다 본질적인 것으로 자리잡는다는 것이 박태원의 인식방법이다.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의도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창조의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노트 하나를 들고 소설을 쓰기위해 거리를 떠돈다.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의 소설 작업은 언뜻 보기에 메타소설의 속성도 드러낸다. 하지만 이것은 미지의 삶에 대한 탐구이며, 새로운 삶의 세계에 대한 접근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운명의 필연성에 얽매이지도 않으며, 주어진 삶의 조건이나 어떤 이념에 복종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냥 떠돌듯이 도회를 헤매면서 모두 순간마다 그의 눈에 비춰진 경성의 공간과는 다른 자신의 내면 의식을 따라간다. 독자들은 이 소설 속에서 하나의 소설이 어렴풋하게 만들어지는 과정에 동참하면서 주인공이 스스로 내보이는 작위적인 행동들을 통해 그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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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그의 친구 이상의 삽화로 유명하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모두 30회로 그 연재가 끝난다. 이 소설의 연재 내용에 따라 덧붙여진 이상의 삽화는 모두 27편이다. 82919회 연재에는 삽화가 없으며 소설의 말미에서도 29회와 30회에 삽화가 없다.

 

 

이상의 삽화는 이 소설에서 박태원이 시도하고 있는 <의식의 흐름>의 기법과 좋은 짝을 이룬다. 대개 신문 연재소설 삽화는 연재되는 소설의 이야기 가운데 드러나는 특징적인 장면이나 등장인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넣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상은 이러한 통념에서 벗어나 이른바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활용하여 소설적 장면에 맞춰 작은 화폭을 채워나간다. 이상의 삽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기법은 일종의 몽타주 또는 모자이크의 방법에 의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대상의 다양한 현상을 하나의 그림 속에 배치한다. 그러므로 그의 삽화 속에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뒤섞이고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는 특징적인 이미지들이 하나의 평면 위에 서로 겹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이상의 삽화를 보면서 다시 읽어나간다면 소설에서 그려지는 도시공간의 장면과 의식의 내면 공간이 서로 겹치는 미묘한 순간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권영민)

 

(박태원의 혼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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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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