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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초기 문학세계를 대변하고 있는 소설 만세전1922년 잡지 신생활묘지(墓地)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다가 일본 총독부의 검열에 걸려 여러 차례 삭제되었고 잡지의 강제 폐간과 함께 연재가 중단된 바 있다. 염상섭은 이 작품을 1924시대일보만세전이라는 제목으로 개작하여 발표하였으며 1924년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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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31운동 직전 식민지 조선의 참담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소설의 이야기는 동경 유학생인 주인공(이인화, 작품속의 <>)이 아내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귀국했다가 다시 동경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경성에서 날아온 아내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학년말 시험을 도중에 그만 둔 채 귀국하게 된다. 삶의 현실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지니지 못한 채 도피적인 유학생활을 보내고 있던 그는 서울의 집에서 보내온 돈을 가지고 카페의 일본인 여급을 만나 목도리를 선물하고 짐을 챙겨 동경을 떠나게 된다. 동경에서 하관(下關)까지 기차를 타고 하관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는 동안, 주인공은 한국인을 무섭게 취조하는 일본인 형사들의 눈초리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는 배 안에서 목욕탕으로 몸을 숨긴다. 그러나 목욕탕에서 일본인들이 둘러앉아 한국인에 대한 경멸적인 언동을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보게 되자,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이상스런 반항심과 적개심을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하여 팔아넘기는 것이 돈벌이에 으뜸이라는 일본인들의 말을 통해 듣는 순간, 주인공은 소설이니 시니 하고 흥청거렸던 자신의 생활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와 불안에 사로잡힌다. 부산에 도착했을 때, 주인공은 부산 거리에 일본인들의 모습이 많아진 점에 놀란다. 해를 거듭할수록 오만해지는 일본인과 점점 위축해 들어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주인공은 기차에 오른다. 김천에서 형님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아내의 병도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울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주인공 이인화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통해 한국의 실정이 어둠에 쌓여 있음을 알게 된다. 일인 헌병에게 연행되는 젊은 한국인 청년들의 모습과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주인공은 분노에 떨며 모두가 무덤이다. 구데기가 끓는 공동묘지다라고 속으로 외쳐댄다. 서울에 도착하여 가족들을 만나게 되지만, 아내는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주인공은 장사를 지내는 동안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그는 머리를 어지럽히는 암울한 현실에서 빠져 나와 도망치듯 다시 동경으로 떠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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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만세전의 줄거리를 보면 이야기가 동경이라는 외부 세계에서 경성이라는 현실의 내부 세계로 귀환하는 여로의 과정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이 귀환의 과정 위에서 주인공의 의식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점차 사회적인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주인공의 귀환 과정은 아내가 위독하다는 사사로운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동경에서 부산을 거쳐 경성으로 돌아오는 이 과정은 일본을 통해 새로운 문명이 밀려온 길이다. 이광수의 무정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 길을 거쳐 유학에 오르고 새로운 문명 개화를 내세우며 이 길을 오간 적이 있다. 그러나 만세전의 주인공은 전혀 다르다. 그는 일본인 헌병이나 순사의 눈을 피해 움추리면서 경성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문명의 길이라고 내세워졌던 이 길이 착취의 길이며 압제의 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 길의 어디에서도 문명개화의 꿈이 피어나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오히려 삶의 고통을 등지고 모두가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것을 보고, 죽음으로 가득찬 무덤 속이라고 속으로 부르짖는다. 그는 결국 식민지 상황이 한국의 문명개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로 이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본 것은 일제의 억압 아래서 위축된 한국인의 모습과 경제적 착취로 인한 곤궁의 현장이다. 그는 식민지 지배 권력에 빌붙어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에 급급한 자기 가족들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동경에서 경성으로의 이동을 통해 드러나는 차별화된 두 개의 공간이다. 동경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있는 지배자의 공간이며 제국 일본이 자랑하는 내지(內地)의 수도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식믽지 지식인 청년으로서의 별다른 자각도 없이 일본인들의 틈에 끼어 일본인처럼 행세하면서 지내고 있다. 정자라는 카페의 여급에 대한 관심과 무기력한 유학생 생활로 채워지고 있지만, 주인공은 거기서 오히려 안락함을 느낀다. 그러나 동경을 벗어나면서 주인공은 식민지 피지배 민족의 공간인 조선으로 들어선다. 이 과정에서 되풀이 강조되는 것은 무덤 속과 같은 식민지 현실이다. 일본인들의 강압적인 지배와 끝없는 멸시로 차별화된 이 공간에서 가난한 민중들은 삶의 모든 희망을 잃고 이 땅을 떠난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의 안위와 목전의 이득에만 챙기려는 기회주의자들만이 일본 식민지 지배 권력에 빌붙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려내고 있는 이같은 두 개의 공간 속에 동경의 일본인 여급과 병석에 누운 경성의 아내를 대비시키고 있는 것도 주의깊게 살펴야 할 대목이다. 소설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무덤>같은 삶의 현실을 떨쳐버리고 도망치듯 동경으로 떠나고 만다. 식민지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보여준 이 같은 도피적 행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인공의 태도야말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청년이 지니고 있던 식민지 지배 상황에 대한 양가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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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염상섭은 개인의 발견과 현실 인식이라는 소설의 근대적인 특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는 삶의 문제를 문학의 본질과 결합시킴으로써 문학에 대한 근대적 인식의 기반을 확대시켜 놓았다. 문학에 대한 염상섭의 관심은 31운동 직후부터 이루어진 그의 비평활동과 소설 창작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개성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현실 생활의 인식 문제로 확대되었다.

염상섭은 개성의 표현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생활 현실에 근거한 문학으로 그의 관심을 구체화하였다. 그는 개성의 표현에 의해 이루어지는 문예라고 하더라도 현실 생활의 기반을 떠나서는 아무 의미도 지닐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생활에 대한 염상섭의 새로운 인식은 생활의 표현을 통해 삶의 전체적인 모습을 구현한다는 리얼리즘의 정신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추상적인 관념을 배제하고 경험세계로서의 현실과 그를 기반으로 하는 생활을 중시한다든지, 그 생활 속에서 시대정신, 사회의식을 추출한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리얼리즘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영민, 2013.7.18)

 

신혼 초기의 염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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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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