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일신보 <무정> 연재 광고(1916. 12. 29)

 

장편소설 무정은 동경 와세다 대학 학생이었던 이광수가 191711일부터 같은 해 614일까지 매일신보에 총 126회에 걸쳐 연재한 작품이다. 이듬해인 19187월 신문관(新文館)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무정은 연재 당시뿐만 아니라 단행본 출간 이후에도 인기가 많았다. 최남선의 말에 의하면 1918년 단행본 초판 발행 이후 1924년까지 이미 1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소설 무정은 한국소설사에서 근대적인 장편소설의 첫 출현이라는 점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바 있다. 이 작품은 신식 남녀의 사랑의 성취라는 연애의 서사와 여성 교육을 내세운 계몽의 서사를 교묘하게 결합시켜 식민지시대에 접어들면서 신소설이 빠져들었던 통속화의 과정을 벗어난다. 특히 서사 구성에 있어서 시간의 압축과 과거 회상의 수법을 서간 형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현함으로써 근대적 서술 기법에 성공하고 있으며, 개인의 내면 의식을 본격적으로 서사의 전면에 부각시켜 놓음으로써 근대소설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소설 무정이 그 이전 신소설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 작품의 문학사적인 가치를 규정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것이다.

 

2

소설 무정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형식은 동경 유학을 하고 돌아와 경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지식인 청년이다. 그는 개화된 집안에서 신학문에 눈을 뜬 선형에게 영어 개인 교수를 하면서 그녀와의 결합을 희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무렵에 이형식 앞에 박영채가 나타난다. 박영채는 소년 시절 형식에게 큰 도움을 준 은인 박진사의 딸이다. 형식은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은 고아로서, 박영채의 아버지 박진사의 도움을 받아 그 집에서 기거했던 적이 있다. 박진사는 형식의 사람됨을 보고, 성년이 되면 자기 딸 영채와 형식을 혼인시키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진사가 개화운동 관계로 체포되어 가세가 기울자, 형식은 그 집을 나와 영채와 헤어진다. 박진사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후, 기생으로 전락한 영채는 헤어진 형식을 다시 만나고자 사방을 수소문하게 된다. 그녀는 7년에 가까운 세월을 두고 그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형식은 뜻밖에 나타난 영채로 인해 고심에 싸이게 된다.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는 신여성 선형에 대한 호감과 기구한 삶을 살고 있는 옛 여인 영채에 대한 연민의 정을 모두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갈등의 구조가 극복되는 것은 형식의 적극적인 의지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다. 형식이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영채는 기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배 학감에게 정조를 유린당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자 한다. 그녀는 이형식에게 보내는 긴 유서를 남기고 서울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영채는 그녀가 결심한 대로 자살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평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동경 유학생 병욱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욱은 영채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며, 인간의 삶과 사랑의 참뜻을 심어준다. 영채는 병욱의 말을 듣고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병욱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그녀는 자살을 포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학문의 세계에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형식은 영채의 유서를 보고 평양에까지 영채를 찾아 나섰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결국 선형과 결혼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이형식과 선형, 영채와 병욱 등이 모두 다시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은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이다. 유학을 떠나는 이들이 모두 같은 기차를 타고 가다가 홍수를 만나자, 기차에서 내려 즉석에서 수재민 돕기 자선 음악회를 함께 열게 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각각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설 무정의 줄거리에서 관심의 초점을 이루는 것은 개인적 운명의 양상이다. 그것은 이형식과 박영채로 대별되는 두 인물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이형식의 경우, 그는 고아의 신세나 마찬가지로 세상을 떠돌았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행운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해 나가는 장면은 소설의 이야기 속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용케도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소년 시절에는 박진사의 도움으로 성장하였고, 또 다른 은인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마치고 경성학교의 교사가 될 수 있었으며, 김장로의 호의로 그의 딸과 결혼하여 다시 미국유학의 길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고아 출신인 이형식이 경성학교 영어교사로서의 신분적 상승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개화라는 사회 변동의 배경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봉건적인 구시대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로서의 문명 개화와 신교육의 의미를 강조하는 교사의 신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도 바로 그 같은 변동 사회의 한 반영에 다름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형식의 신분 상승의 과정은 지극히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그의 출신 성분도 제대로 알 수 없고, 그의 존재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가족 관계도 모두 무시되어 있다. 게다가 그가 구시대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문명 개화의 길을 선택하는 과정조차도 소설의 이야기 속에 거의 그려져 있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형식은 소설의 세계에서 제시되고 있는 사회적인 배경과는 동떨어진 개별적이고도 예외적인 인물로 취급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사고와 행동 자체가 전체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해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소설에서 이형식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갈등은 영채의 등장으로 인해 생겨난 일시적인 방황뿐이다. 그러나 그 고뇌와 갈등도 사실은 형식의 의지에 의해 해결되지 않고, 영채 스스로 이 갈등의 자리에서 물러남으로써 풀어지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이형식은 거의 무의지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소설에서의 근대적인 인물로서의 성격화의 수준 자체가 미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박영채의 경우는 이형식의 무의지적인 성격과 대별된다. 그녀는 개화운동과 관련되어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와 오빠를 위해 스스로 몸을 팔아 기생이 되었고, 이형식을 다시 만나기 위해 자신의 순결을 지키며 오랜 기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형식이 이미 다른 여성과 혼약의 단계에 이른데다가, 자신의 순결마저 잃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자 한다. 물론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그녀는 병욱의 충고를 받아,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일본 유학을 결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박영채의 변모과정은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붕괴와 개인의 몰락이라는 개화 공간의 사회적 변동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문명개화와 신교육의 가치가 모든 사회적인 요건 가운데 최선의 것으로 내세워짐으로써, 그러한 가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개화지상주의적인 요소까지 곁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박영채의 구시대의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 속에서 운명적으로 희생을 감수해야 했고, 새로운 문명개화의 이념을 붙잡게 됨으로써, 재생의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박영채의 운명의 전환 역시 병욱이라는 인물의 매개적인 역할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녀의 변모가 자기 각성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그러한 각성된 자기 인식에 근거한 어떤 구체적인 행동도 보여주지 못한다. 그녀가 택한 새로운 가치로서의 문명개화와 신교육은 가능성의 세계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이며, 작가에 의해 긍정되고 있을 뿐이다.

 

3

근대소설은 개인의 운명을 드러냄에 있어서 개개의 인간의 삶을 통하여 일정한 사회의 본질적 특수성을 드러내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근대소설은 사회에 대한 개인의 관계를 개인의 운명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보여준다. 사회적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이 지니는 본질적인 의미를 제시하여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개인의 운명을 빌려서 구체적으로 체현되기도 하며, 개인의 삶의 모습이 사회적 현실 속에서 전체적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근대소설로서 확립되기 위해서는 그 내재적인 요건이 갖춰져야만 한다. 경험적인 세계 속에서 개인의 삶의 양상을 전체적으로 포착해 내는 소설의 형식은, 자아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통해 개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서 성립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행동과 그 행동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모습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때에, 진기한 이야깃거리로 내용을 꾸려나갔던 서사문학의 양식이 그 설화적 속성을 벗어나 소설 형태의 성립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문학사에서 춘원 이광수의 시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아에 대한 각성과 새로운 발견이 요청된 시기이다. 그리고 민족적 자기인식과 그 주체적 확립이 가능하지 않은 식민지 상태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대부분의 작가들이 개인의 발견과 그 해방을 주장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는 자각과 각성에서 출발할 때에 민족 전체의 주체적인 자기 확립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그렇게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유교적 관습과 전통사회의 규범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이며, 숙명론적인 인생관에서 벗어나 자기 삶과 운명을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는 새로운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던 것이다.

춘원 이광수는 그의 소설 무정에서 자아의 각성과 사랑의 문제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학이 지니는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여 스스로 문학의 교시적인 기능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 현실에 근거하고 있는 자기 존재의 인식과 그 확대를 내세운 것으로서, 개인의 체험세계를 중시하는 소설의 요건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소설의 세계를 개인의 삶의 세계와 연관지어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는 모두 소설이 그 예술적 독자성을 지니고 있는 문학의 한 장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신소설의 시대에 널리 쓰였던 소설이라는 용어가 장르 개념의 한계를 벗어나 포괄적인 서사문학 양식 전반을 지시하고 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소설에 대한 인식에 중대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소설을 독자적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요구하는 원리와 규범을 모두 승인한다는 뜻이 되며, 소설에 대한 논의도 바로 그 독자적인 원리와 규범을 중심으로 전개시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구나 무정은 소설의 이야기 자체를 구조화하기 위한 서사 원리에 있어서 경험적 시간의 새로운 해석법을 제시한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시간은 주인공인 이형식이 김선형을 처음 만난 초여름에서부터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는 초가을까지의 여름 한 철로 제한되어 있다. 이 짧은 경험적 시간을 서사 내적 공간 속에 확장하기 위해 이광수는 주인공의 회상적 방식과 서간문의 형식적 틀을 활용하여 시간의 순서를 바꾸고 특정의 과거 사실을 압축하여 현재의 시간 속에 삽입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자연적 질서를 넘어서서 경험적 시간의 서사적 구조화에 성공한다. 이러한 소설 기법은 무정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임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이광수의 무정에서 볼 수 있는 근대적 주체로서의 개인의 운명에 대한 관심이나 서사 내적 시간의 새로운 해석 등이 모두 조화로운 상태에 이르러 근대소설로서의 어떤 성취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가 지향했던 <정의 만족>이 전통적인 규범과 속박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이라는 테마로 발전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소설 속에서 반성적인 자기각성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설 무정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 주체로서 영위하게 되는 삶의 총체적인 모습을 구현하는 데에는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이 있다. 다만 이 소설이 사회적 조건과 현실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의 문제성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도래할 문명개화의 시대로서 근대사회를 적극적 긍정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이 소설이 개화 공간의 말미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이를 통해 상기할 필요가 있다.

 

4

 

이광수의 문필 활동은 한국문학이 서구적 개념의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과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 상황 속에서 다양한 방면에 걸쳐 전개되고 있다. 문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일본 유학을 통해 확대된 것이며, 그의 문학 활동이 근대문학의 성립 과정에 주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광수는 자아에 대한 각성과 자기발견을 내세우면서 문학의 독자적인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문학이 개인적인 정서에 기초하여 성립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고, 문학을 구시대의 윤리적 속박과 모든 관념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광수의 태도는 문학의 근대적인 인식과 개인의 발견이라는 명제로 요약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광수는 문학에서 개인적 정서의 문제를 중시하면서도, 그것이 근거해야 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의 존재 문제와 그 개인이 근거하는 현실 사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문학적인 관심과 태도는 분명히 그가 서 있던 1910년대 한국의 현실에서 볼 때, 그 이전의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과 태도 자체가 한국적인 문학 현실에 대한 자각과 비판에 의해 구체화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그것은 일본을 통해 얻어들은 서구 문학에 대한 지식의 단편들을 모아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31운동 직후 여러 방면에서 민족 사회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자, 문학의 경우에도 식민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관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새로운 문학적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광수는 새로운 문화운동의 선도자로서 문학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문예라는 것이 신문화 건설의 선구임을 전제하고,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이상을 선전할 수 있는 문예의 사회적 기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문학의 독자적 가치를 강조했던 초기의 입장과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면서, <생을 위한 예술>을 내세웠고, 신문화의 선구가 되는 문학은 마땅히 민족을 위한 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광수는 문학과 예술의 발전을 통한 새로운 민족 정신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민족의 현실이 정치적인 측면에서 투쟁과 살육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면에서 의식주의 기본 조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임을 전제하면서, 이러한 상태에 놓여 있는 민족을 구출하기 위해 <인생의 예술화>, <인생의 도덕화>라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인생의 도덕화 또는 예술화의 방법을 <개인의 주관적 개조>라고 천명하면서, 그 방향을 도덕적 개조와 예술적 개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도덕적 개조는 개인이 지니고 있는 허위, 증오, 분노, 시기 등의 감정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도덕적 수양을 통해 개인의 열등 감정을 억제한다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불행이 주관적인 심리의 평정을 잃은 상태라고 규정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적인 측면의 변혁이 인생의 개조에는 별다른 의미를 지닐 수 없으며, 오직 도덕적 개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광수가 생각하고 있는 예술적 개조는 자연과 인생에 대한 심미적 태도와 연관되는 것이다. 그는 자연과 인생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보고, 자기 자신도 예술의 감상자로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자연미에 대한 감각을 키우며 자기 수양을 거친다면, 어떤 직업도 예술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예술을 통해 생활의 활기를 불어넣어 정신 생활을 부활시키는 길만이 민족을 행복의 생활로 이끄는 방법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광수의 이러한 주장은 그 뒤에 한국인의 민족성 자체에 대한 개조를 요구(민족개조론)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는 한국 민족의 비극적인 현실과 식민지 상황이 모두 민족성의 쇠퇴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민족성의 개조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믿게 된다. 그는 한국인들의 민족성을 개인적인 심정적 기질과 혼동하여 그 역사성의 의미를 몰각하고 있으며, 민족성이라는 것이 개인의 도덕적 근본에 의해 좌우된다는 소박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국 민족이 지니고 있는 허위, 나태, 비겁, 이기심, 비사회성 등을 버려야 한다는 내용으로 요약되는 그의 민족 개조론은, 결국 인간의 예술적 도덕적 개조를 확대 부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개인의 도덕적 수양에서부터 전 민족의 도덕적 개조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비정치적 사회운동을 내세우면서 계몽 운동가로서의 자기 변신을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회계몽론자로서 이광수의 당대 현실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심정적이며 패배주의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한국 민족의 삶의 고통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의한 자본주의적 착취로 인한 것임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원인을 민족의 도덕적 심성의 타락에서 찾고 있다. 물론, 그는 민족의 심성이 본래는 도덕적으로 선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고,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성을 무시한 채, 민족의식을 윤리적인 차원에서 논의하는 태도 자체가 그릇된 출발임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활과 직업을 예술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생활의 예술화>라는 막연한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그가 민족의 역사적 모순을 해결할 만한 실천적인 지표를 제대로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계몽론이 이상주의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광수의 이 같은 문학적 태도의 변모는 결과적으로 이중적인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근대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이광수를 생각할 경우, 그의 근대적인 면모는 예술론자로서의 이광수를 통해 부각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실천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허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판단은 이광수 자신이 드러내고 있는 문학에 대한 근대적 인식의 불철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한국 사회 자체가 그 같은 문학론을 감당하기 힘든 근대성 미달의 수준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과도 연관되는 것이다. 그는 도래해야 할 새로운 시대로서의 근대를 긍정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계몽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본다면, 이광수가 서 있던 자리는 여전히 혼란스런 개화계몽시대의 연장선상임을 알 수 있다. (권영민, 2013.7.11)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