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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고승이었던 휴정이나 유정 등은 많은 선시(禪詩)를 남겼지만 시조 한 수도 짓지 않았다. 정병욱 교수가 펴낸 <시조문학대사전>을 보면 조선시대 수백 명의 시조 작가 가운데 승려 시조 시인이 한 사람도 없다. 개화 이후 만해 한용운이 시조를 썼지만 그의 시집 님의 침묵속에는 시조가 한 편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무산 조오현 큰스님의 시적 출발이 시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무산 스님은 운명적으로 시조를 끌어안고 선의 다양한 화두(話頭)와 대면해 왔다. <무산 심우도> 자체가 보여주는 종교적인 경지는 말할 것도 없고, <무자화> <무설설> 등에서 보여주는 역설의 언어는 그 자체가 곧 선의 화두이면서 그 언어적 해체에 해당한다. 무산 스님은 시조의 시적 형식을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요건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무산 스님의 초기 시조는 완결된 형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절제의 미를 강조한다. 시적 정서의 충동을 극심하게 경험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이러한 시조는 감정의 절제를 가르친다. 무산 스님이 굳이 시조를 택한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조의 언어를 선()의 화두로 끌어올려 선시조(禪時調)’의 경지를 개척한 큰스님이 아닌가?

무산 스님은 시조의 3장 형식에 집착하면서도 그 내적 역동성을 주목한다. 시조 3장의 형식은 시조의 시적 형식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것이다. 시조가 추구할 수 있는 시적 형식의 완결의 미는 시조만이 지닐 수 있는 독특한 가치이다. 그러나 시조는 그 형식의 완결성을 넘어서서 도달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미적 가치에 대한 자기규정을 필요로 한다. 무산 시조는 우선 말을 다스리는 법도를 보여준다. 스님의 시조는 불필요한 언어를 최대한 제거하고, 오직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언어만을 선택하여 다듬어낸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과정 속에서 감정의 충일 상태가 가다듬어지고 정서의 충동이 절제된다. 물론 무산 시조에서 중시되고 있는 절제의 언어는 언어에 대한 구속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시조의 언어는 구속에 의해 압축되는 것이 아니라 시조의 시적 형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절제되는 것이다. 절제 속에 드러나는 자유로움이 시조의 언어가 갖고 있는 묘미이다.

무산 스님은 시조라는 형식 자체를 선의 경지로 끌어들이면서도 그것을 거기에 묶어두지 않는다. 스님은 시조의 고정적인 틀을 넘어서면서 그 형식의 해체와 새로운 시형의 창조를 보여준다. 여러 가지 목소리를 하나의 시적 정황 속으로 끌어들이며 그 속에서 시적 긴장을 만들어 내는 스님의 새로운 시조 형식은 달리 이야기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시조 형식은 시조가 자랑해온 균제(均齊)의 미를 넘어서면서 더 넓고 더 높은 포괄의 미학을 확립한다. 시조의 정신이 현실 속에서 하나의 인간적 가치를 발견하는 데에 있다면, 무산 스님의 이야기 시조는 모든 계층의 인간의 말과 소리들을 포괄하고자 한다. 여기서 대화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목소리들은 절간의 승려의 것이기도 하고, 산간 초부(樵夫)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정의 대장장이처럼 평범한 하층민들의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살아 있는 말 그 자체에 해당하기 때문에 하나로 통일된 언어로 표출되지 않는다. 이 목소리들은 내적으로 이미 대화화된 말들이다. 따라서 이 목소리를 드러내는 말들의 내적 대화성은 시적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늘 존재하며 그 대화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현실화한다.

 

(1) <무설설>

강원도 어성전 옹장이

김 영감 장롓날

 

상제도 복인도 없었는데요 30년 전에 죽은 그의 부인 머리 풀고 상여잡고 곡하기를 보이소 보이소 불길 같은 노염이라도 날 주고 가소 날 주고 가소했다는데요

죽은 김 영감 답하기를 내 노염은 옹기로 옹기로 다 만들었다 다 만들었다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요

 

사실은

그날 상두꾼들

소리였데요.

 

 

         (2)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

 

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어주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산마을 벗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

 

오늘도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3) <절간 이야기8>

그러니까 한 20년 전 금릉 계림사 가는 길목에서 어떤 석수를 만난 일이 있었지요. 쉰 줄은 실히 들어 보이는 그 석수는 길가의 큰 바위에 먹줄을 놓고 징을 먹이고 있었는데 사람이 곁에 서서 무엇을 만드십니까?” 하고 물어도 들은 척 만 척 대답이 없었지요. 그 후 몇 해가 지나 무슨 일로 그곳을 가다가 보니 그 바위덩어리가 방금이라도 금구를 열 것 같은 미륵불과 세상을 환히 밝혀 들 사자석등으로 변해 있었는데 그 놀라움에 한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했지요.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어느 날 내설악 백담계곡에서 우연히 그 석수를 만났는데 요즘도 돌 일을 하십니까?” 하고 물어도 그 늙은 석수는 희널찍한 반석 위에 쭈그려 앉아 가만히 혼자 한숨을 삼키며 말이 없더니 시님, 사람 한평생 행보가 다 헛걸음 같네요. 이날평생 돌에다 생애를 걸었지만 일흔이 되어 돌아보니 내가 깨뜨린 돌이 일흔 개도 넘는데 그 모두가 파불破佛이 되고 말았거든요. 일찍이 돌에다 먹물과 징을 먹이지 않고 진불眞佛을 보아내는 안목이 있었다면 내 진작 망치를 들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말끝을 흐려트리고는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더니 시님, 우리가 시방 깔고 앉은 이 반석과 저 맑은 물속에 잠겨 있는 반석들을 눈을 감고 가만히 들여다보시지요. 이 반석들 속에 천진한 동불童佛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저쪽 암벽에는 마애불이, 그 옆 바위에는 연등불이, 그 앞 반석에는 삼존불이, 좌편 바위에는 문수보살님이. 헌데 시님 젊었을 때는 눈을 뜨고 봐도 나타나지 않아 먹줄을 놓아야 했는데. 이제 눈이 멀어 왔던 길도 잘 잊어버리는데. 눈을 감아야 얼비치니. 눈만 감으면 바위 속에 정좌해 계시는 부처님이 보이시니. 징만 먹이면 징만 먹이면 이제는 정말이지 징만 먹이면.” 무슨 통곡처럼 말하고 무슨 발작처럼 실소하더니 더는 말이 없었지요.

   

(4) <신사와 갈매기>

어제 그끄제 일입니다. 뭐 학체 선풍도골(仙風道骨)은 아니지만 제밥 곱게 늙은 어떤 초로의 신사 한 사람이 낙산사 의상대 그 깎아지른 절벽 그 백척간두의 맥 끄트머리 바위에 걸터앉아 천연덕스럽게 진종일 동해의 파도와 물빛을 바라보고 있기에,

노인장은 어디서 왔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아침나절에 갈매기 두 마리가 저 수평선 너머로 가물가물 날아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여태 돌아오지 않는군요.”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초로의 그 신사는 역시 그 자리에 그 자세로 앉아 있기에,

아직도 갈매기 두 마리가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했더니,

어제는 바다가 울었는데 오늘은 바다가 울지 않는군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의 인용 (1)(2)에서처럼 무산 스님은 시조의 균제된 형식 속에서 역동적인 대화적 공간을 열어 놓는다. 기존의 시조에서 말하는 주체가 하나의 목소리로 모든 사물을 포섭하던 방식과는 달리 앞의 시조들에는 몇 개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내적 대화의 공간을 형성한다. 그리고 시적 정황 자체도 정적(靜的)인 데에서 동적(動的)인 것으로 변화한다. 이 역동적 힘은 작품에 동원하고 있는 언어의 일상성과 맞물려 있다. 이들 작품 속의 말은 단순히 발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술의 공간 안에서 발화되고 부딪치고 갈등한다. 실제로 무산 스님이 시조의 시적 형식 속에 끌어들이고 있는 말은 다른 말과 대화적 관계를 맺으면서 그 형태적 구체성을 획득한다. 말은 언제나 타자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유도하고 대답을 지향한다. 그리고 드디어는 내적 대화성이 표현되는 (3)(4)처럼 새로운 이야기 시를 만들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시적 형식의 발견으로 나아가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시적 공간에 끌어들인 서사적 요건이다. 직접적이면서도 현장 지향적인 이 목소리가 결합하여 하나의 특이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텍스트 속의 이야기는 시적 정서의 한 부분으로 작동하는 것이지 객관적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이 이야기는 시인의 목소리에 의해 조정되지 않지만 내면으로 스며드는 음조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산문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시적인 무드를 살린다. 이 무드의 시학을 살려내면서 이야기조의 새로운 시 형식이 만들어진다.

 

2 

무산 시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은 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말과 사물의 소리는 궁극적으로 그 존재가 살아 있음을 뜻하는 징표이다. 소리가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은 곧 말이고 사물의 소리는 곧 그 생명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의 말과 사물의 소리가 서로 섞여 하나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것이다. 무산 스님은 바로 이 살아가는 것들의 말과 소리를 담아 시조를 만들어내면서 시인으로서 아득한 성자의 길에 나선다.

 

(5) <아득한 성자>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말과 소리는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시인은 사람의 말소리를 부리면서 그리고 모든 사물의 소리를 끌어안으면서 시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한다. ‘뜨는 해지는 해라는 말로 암시하고 있는 시작과 종말의 의미를 넘어서면 거기서 무엇이 가능할 것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우문(愚問)에 해당한다. 시인은 이미 중생의 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이야기조의 시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말이라는 것은 존재를 넘어서는 곳에서 비로소 시가 되는 법이니까......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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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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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d 2013.09.01 18:2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지난건 추억에 묻어둬~ 새로운걸 찾아야지!! 지금이 하스웰 만날때야~ 서둘러!!

    http://core-event.co.kr/page2013/eventPage/130812_4thRealManForm2.asp